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40화 (40/320)

40.

애가 아픈 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구경했다는 죄책감이, 가장 먼저 박유찬의 머릿속을 덮쳤다.

“어, 어……?”

박유찬의 시야에 진하온의 얼굴이 담겼다. 열이 올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가쁘게 몰아쉬는 숨이 심상찮아 보였다.

“야! 진하온! 야!”

놀란 이서호가 한달음에 달려가서 마구 흔들었다.

‘내가, 내가 정신 차려야 해. 내가 리더니까.’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뭐가 먼저지? 열 내리는 거? 집에 약이 있었나? 분명히 어제 뭔가 약을, 아, 몸살약. 몸살약이었는데. 거기에 해열제가 있었나? 정곤 형이 먹이라고 해서 비타민 먹였는데, 정곤 형한테 연락해야 하나? 뭘 해야 하지? 내가 리더인데. 내가 형인데. 내가 애들을 책임져야 하는데……. 내가…….

「별걸 다 책임지려고 하시네.」

아. 언젠가 들었던 말이다. 하온이한테 식사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했을 때였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 많으니까 손 내밀어 봐요.」

이건 보컬룸에서 들려줬던 이야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었던가.

박유찬의 시야에 정이한과 이서호가 들어왔다. 정이한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진하온의 이름만 하염없이 부르고 있었다. 어느새 눈가가 붉게 변한 이서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혼란스럽게 헝클어진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얘들아. 다들 진정하고 나 좀 도와줘.”

두 사람이 동시에 박유찬을 바라봤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서호한테 먼저 말했다.

“서호는 먼저 정곤 형한테 전화해줘.”

“아, 알았, 어.”

이서호가 계속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자 박유찬이 이서호를 채근했다. 서두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서 제 방으로 뛰어간다. 휴대폰을 가지러 가는 모양이었다.

박유찬은 제 휴대폰을 찾아 119에 전화했다. 주소를 묻는 데 순간적으로 기억나지 않아서 당황했다. 기민하게 알아차린 정이한이 주소를 불러줬다.

“유찬 형, 하온이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박유찬이 뜨거운 진하온의 이마를 짚었다. 뮤비 촬영하는 내내 컨디션이 좋아서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다. 힘들어했던 건 첫날뿐이니까.

힘들어도 말 안 하고, 꿋꿋하게 웃고 있었던 걸까. 컨디션이 좋다면서 해맑게 미소 짓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데…….

나한테는 의지하라고 해 놓고 너는 이게 뭐야. 타박하고 싶고, 나무라고 싶었다.

“형……. 내가 뭐 할 수 있는 거 없어? 이대로 그냥 기다리기만 해야 해?”

“1층으로 데리고 가자. 조금이라도 빨리 구급차 태우게.”

“으, 응! 그게 좋겠다.”

정이한이 거뜬히 진하온을 안아 들면서 말했다.

“내가 데려갈게.”

“잠깐만, 하온이 옷이 너무 얇아.”

“아…….”

박유찬은 서둘러 옷장을 열어 두툼한 패딩을 꺼냈다. 데뷔 준비 때문에 바빠서 겨울옷 정리가 안 된 게 다행이었다. 패딩을 건네받은 정이한이 진하온의 몸을 꼼꼼히 감싼 다음 다시 품에 안았다.

“가자. 내가 문 열게.”

“응. 알았어!”

두 사람이 다급하게 방을 나왔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잠에서 깬 백강현은 거실에서 얼굴을 찡그린 채 두서없는 설명을 듣던 중이었다.

“형들 어디가!”

횡설수설하던 이서호가 두 사람을 붙잡았다. 박유찬이 현관으로 뛰어가 문을 열며 대꾸했다.

“구급차 불렀어. 1층으로 내려가서 기다리게.”

순식간에 상황 파악을 마친 백강현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1층 말고 지하 주차장으로 오라고 할게. 1층에 사생들 있잖아.”

“아…….”

이서호는 신발을 구겨 신은 채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손톱을 따닥따닥 깨물었다.

“왜 이렇게 안 와!”

이서호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버튼을 계속 눌렀다. 그런다고 빨리 도착하는 것도 아닌데 애가 타서 미칠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무섭진 않았을 텐데, 하필 진하온이었다. 이서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괴로워하던 진하온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쟤는 숨넘어갈 것 같단 말이야. 왜 안 오냐고. 왜.’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던 눈물이 기어코 줄줄 새어 나왔다. 백강현이 그답지 않게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했다.

“왜 울고 그러냐. 그냥 열 나는 것뿐인데. 병원 가서 주사 맞으면 괜찮아져. 괜히 호들갑 떨지마. 별것도 아닌 일인데 자꾸 별일인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치만 혀엉, 나는…….”

“괜찮으니까 진정해. 네가 형이잖아.”

이서호가 손등으로 거칠게 눈을 문질렀다. 닦아도 닦아도 흐르던 눈물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함과 동시에 멈췄다.

“맞아. 내가 형이지. 나 형이었어.”

여전히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제법 강단 있는 눈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멤버들을 곧장 지하 1층으로 실어다 줬다.

구급차를 기다린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지만, 멤버들의 체감 시간은 몇 배나 길게 느껴졌다. 특히 진하온을 안고 있던 정이한에게 그 시간은 유독 길었다.

‘아프지 마…….’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진하온이 안타까웠다. 쌕쌕 내쉬는 숨이 뜨거웠고, 간헐적으로 신음을 토해내며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괴로워 보였다. 할 수 있으면 대신 아프고 싶었다. 정이한에게 진하온은 구원자였으니까.

자신감을 잃고, 멤버들에게 민폐 끼칠 것이 두려워서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대표님도 실장님도 마주치는 게 무서웠다. 예전 같지 않다고 자신을 버릴 것 같아서. 예전과 달리 제대로 된 곡 하나 써내지 못하는 반푼이였으니까.

외롭고 두려웠지만 투정 부릴 수 없었다. 그럴수록 멤버들 앞에 얼굴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처음 진하온을 봤을 때 당당해 보이는 모습이 부러웠고, 두 번째 만났을 땐 왜인지 곁을 지켜주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만난 진하온은, 가슴을 잡아채는 노래를 들려줬었다. 그 재능이 너무나 눈부셔서, 마치 너는 계약서에 사인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네 번째. 진하온이 찾아왔다. 커피 한 잔 들고 ‘무조건 허락해 줘야 할 것이다.’라는 눈으로. 기세에 밀려서 정말 오랜만에 제 개인 공간에 누군가를 들였다.

할 말이 없어서 재미없을 게 뻔한 이야기만 계속했다. 말하다 보니 즐거운 건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람과 긴 시간 대화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이 그리웠다는 걸 그때 알아차렸다.

계속 붙잡고 싶어서 또 다른 노래를 틀어줬다. 실망해도 괜찮으니까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진하온은 오랜 시간 옆에서 재잘거리면서 즐거워했다. 어떤 곡을 들려줘도 진지하게 듣고는 어떤 점이 좋았는지 꼼꼼하게 알려줬다. 아쉬운 건 또 아쉽다고 말해줘서 곧바로 수정해줬더니 박수치면서 즐거워했다.

정이한도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용기 내 밖으로 나왔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멤버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받아들여 줬다. 진하온은 흑야에 갇혀 있던 자신을 양지로 끌어내 준 태양이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정이한이 한달음에 내달렸다. 박유찬이 운전석을 향해 팔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여기요!”

“여기예요! 여기!”

정이한과 이서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서호가 양팔을 크게 교차하면서 껑충껑충 뛰었다.

이윽고 구급차가 멈춰서고 뒷문이 열렸다. 정이한은 진하온을 안은 채 구급차에 올라탔다. 다른 멤버들도 타려고 했는데 저지당했다. 이서호가 ‘왜요!’하고 반항하자 백강현이 잡아당겼다.

“구급차에서 처치하셔야 하잖아. 방해하지 말고 비켜드려.”

“으, 윽. 알겠……어.”

“이한아. 하온이 잘 보고 있어. 정곤 형 온다고 했으니까 병원 도착하면 연락해. 나는 멤버들이랑 같이 갈게.”

“알았어.”

구급차 문이 닫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자마자 사이렌이 켜졌다.

“언제부터 열났나요?”

“……새벽에, 그러니까 3시? 4시? 에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오늘 점심에 깨우려고 보니까 열이…….”

새벽에도 아팠던 걸까? 아니면 그 전부터? 아픈 걸 숨기고 있었나? 사람이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열이 오를 순 없지 않나? 분명 이렇게 되기 전에 증상이 있었을 텐데…….

「난 항상 형 보고 있으니까.」

‘하온이는 항상 날 지켜줬는데…….’

정이한의 고개가 푹 떨궈졌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

갑자기 귀가 트이며 소란스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상태 이상이 막 끝난 건지 온몸이 축 처져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눈도 뻐근하고 목도 말랐다.

그런데 진짜 말 그대로 손가락 들 힘 하나 없어서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잠이나 한숨 더 잘까.

응? 아니, 잠깐만.

상태 이상 지속 시간이 이상했는데? 30분이면 끝나야 했는데 분명 더 길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했던 건 발열을 처음 겪어 본 거니까 그런 거라 쳐도 시간은 이상하잖아.

만약 상태 이상이 30분 이상 지속됐다면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체력 0이 되었을 때 터지는 상태 이상과 이벤트로 인한 상태 이상 지속 시간이 서로 다르듯, 스킬 종료로 인한 상태 이상도 다르다는 것. 혹은 강제 종료 패널티.

둘 중 뭔지 확인해야겠는데. 그래야 앞으로 스킬을 쓸지 말지, 쓸 거면 어떻게 쓸지 정하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일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인……데…….

“하온아!”

“하온아, 괜찮아?”

“야이! 진하온! 이딴 식으로 걱정 끼칠래?”

“……이제 됐네.”

무려 네 사람의 얼굴이 날 내려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망했다.’였다.

나 상태 이상 또 들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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