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시스템: 메인 미션 완료! 보상으로 포인트 1,500이 지급됩니다!>
뭐라고?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이렇게 갑자기? 나는 보컬룸으로 쏙 들어가는 이서호의 잔상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근처의 빈 보컬룸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메인 미션 완료!>
─ 멤버들의 우호도를 중립 이상으로 변경하세요!
박유찬 (1/1) 좋아함
정이한 (1/1) 중립
백강현 (1/1) 중립
이서호 (1/1) 중립
O 성공 시 포인트 1,500 획득
절대 못 할 줄 알았는데 이게 되네? 아등바등한 기억도 없는데 뭔가 공짜로 포인트 받은 기분이었다.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더라니, 이걸 예고한 거였나!
완료한 메인 미션을 한참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새로 등장한 미션을 확인했다.
<메인 미션>
─ 데뷔곡 노래 S+ 등급 받기 (0/1)
─ 데뷔곡 춤 A+ 등급 받기 (0/1)
O 성공 시 포인트 800 획득
O 실패 시 노래, 춤 등급 1단계 하락
O 남은 기간: 데뷔 쇼케이스 전까지
포인트가 짜다.
새로 영접한 메인 미션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어마무시한 패널티. 등급 1단계 하락. 어떻게 올린 경험치인데 이걸 날려?
그래도 이게 우호도 미션보단 훨씬 낫다. 이건 내가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거니까. 인정받아야 하는 등급이 높아서 부담되긴 했지만 해낼 것이다.
무려 데뷔곡이다. 최고의 등급을 받아 내야 내 노래라고 할 수 있지. 오히려 시스템은 밸런스가 잘 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춤도 A+에서 만족할 생각 없거든.
메인 미션을 깼더니 욕심이 득실거렸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오늘은 참 줏대도 없이 계획 바꾸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떡해?
전생의 나만큼 올리는 건 기본이고, 이번 생에는 스탯이 있으니 당연히 그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 올릴 거다.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인데 안 쓰면 바보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결심했다.
***
연말 휴가는 왜 있는 걸까.
보컬 쌤이 가 버렸다. 한 해 잘 마무리하고 1월에 만나자는 매몰찬 인사와 함께 퇴근하셨다. 수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무려 6일이나 보컬 쌤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한숨을 포옥 내쉰 뒤 연습실로 돌아갔다.
벌써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 댄스 연습에 한창인 멤버는 두 명이었다. 유찬 형과 강현 형. 우리는 나란히 숙소로 돌아갔다. 이서호는 아직 안 돌아왔고, 정이한은 숙소에서도 만나기 어려웠다.
매번 얼굴 보기 힘들었던 정이한은 팀 내에서도 알아주는 뚝딱이였지만, 오후에 몇 시간 댄스 연습한 뒤 대부분 개인 작업실에서 보낸다고 들었다. 그게 내 보컬 시간이랑 겹쳐서 난 얼굴 보기 힘들었던 거고.
작곡도 좋지만 못하는 걸 좀 열심히 할 생각은 없나? 뚝딱이 소리 들을 정도면 형편없다는 의미인데…….
모르겠다. 데뷔곡 안무 나오면 내가 아니어도 강현 형이 알아서 가르치겠지. 저 형 춤에 대한 열정이 높아서 같이 하는 사람 수준이 떨어지면 호랑이 교관이 될 것 같거든.
그보다 작곡하니까 생각났는데.
“그런데 유찬 형.”
“응?”
“형은 작곡 안 해요?”
“내가?”
응? 이 반응은 뭐지? 재능 있다고 했는데? 아직 본인도 모르는 재능이었나?
“관심 없어요?”
가만히 내 말을 들으며 빨랫감을 챙기던 유찬 형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것도 달라는 의미였다. 자꾸 심부름해 주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편하니까 건네줬다.
“음. 아니. 관심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독학으로 하고 있긴 한데. 아직 부끄러운 실력이야.”
“실장님한테 말하면 선생님 붙여주지 않을까요?”
“내세울 만한 실적도 없는데 무슨. 일단 지금은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거에 집중해야지.”
어휴. 자기 재능도 몰라보고 남 눈치만 보고 있었네. 이제 곧 스물세 살인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작곡 워크숍도 못 받아본 거야? 기획사에서 이런저런 선생님들 붙여주지 않나? 여기가 중소긴 해도 밀어주는 연습생이 하고 싶은 거 말하면 다 해줄 것 같은 분위기던데.
“형 연습생 오래 하지 않았어요?”
춤추는 거 보면 백 년 묵은 삼산 느낌이 풀풀 난다. 댄스가 무척 안정적인데 딱 배운 대로 정확하게 춘다. 오랜 노력으로 안무를 복사 붙여넣기 하듯이 소화해내는 느낌.
“응. 데뷔 두 번 무산되고 여기로 옮겼어. 여기서만 올해로 4년째인데…….”
씁쓸한 미소였다. 이전 기획사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거기는 꽤 팍팍했나 보다.
“원래 코어에 있었거든. 17살에 한 번, 19살에 한 번. 17살 때는 데뷔 자체가 엎어졌고, 19살 때는 직전에 밀려나서 떨어졌어.”
코어면 대형 기획사였다. 꽤 큰 곳에서 체계적으로 트레이닝 받았었구나. 그런데도 작곡하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니. 너무하네.
“그래서 나 꽤 절박했고, 그만큼 좌절하기도 했는데…….”
멍한 시선이 누굴 떠올리는지 알 것 같다. 시궁창에 처박힌 유찬 형의 멘탈을 끌어 올려준 건, 아마 준재혁이었겠지. 저 머릿속에서 교주를 쫓아내기 위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재능있는 사람 못 알아보고 내보냈으니 형 데뷔하면 원래 기획사 사람들 배 아프겠네요.”
“그럴까?”
“그럼요. 우린 성공할 거니까.”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냥 좋게 생각하자고. 누구나 실패를 생각하면서 도전하진 않잖아.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행복 회로 하나 잘 굴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나아갈 수 있다.
유찬 형이 외모와 닮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맞아. 우리 성공할 것 같아. 성공하면, 우리 잘 되면 그때 작곡을 배워볼까 생각 중이야.”
“뭐하러 그때까지 기다려요. 아이돌이 작곡하는 게 뭐 어때서요. 좋잖아요. 프로듀싱까지 직접 하는 작곡돌. 이한 형도 하고 있는데요. 그것도 형 활동 영역 중에 하나로 만들면 되죠. 곡 만든 거 있으면 꼭 저 들려주세요. 가끔 다른 사람 의견이 좋을 때도 있잖아요.”
“아하하.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진짠데.”
200% 진심이었다. 무려 작곡의 마에스트로 급 재능이랬다. 나중에 뛰어난 작곡가 선생님이 될 사람인데 당연히 콩고물 떨어지는 거 없나 기웃거려야지.
아, 그러고 보니 멤버들 재능 한 명씩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미 두 명 봤으니까 두 명 남은 거잖아. 쓰레기 스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름의 사용처는 있었네.
어차피 같이 갈 멤버인데 뭘 잘하는지 알아두면 좋잖아. 유찬 형처럼 모르고 있으면 슬쩍 알려줄 수도 있고. 너희가 행복해야 내 그룹 활동도 원활해질 수 있으니까.
***
“야! 나 간다!”
“응.”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좋을까. 아침부터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가는 이서호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참 여러모로 복 받은 인생이야.
딸깍,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씻으러 들어갔던 강현 형이 멀끔한 얼굴로 나왔다. 아침잠이 많은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멍한 얼굴로 흐느적거리더니 이제는 제법 눈매가 또렷해졌다.
“서호 나갔어?”
“네. 집에 간다고 신나서 갔어요.”
“너는?”
전자레인지에서 띵, 소리가 났다. 찢어진 핫도그 포장지 사이로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피었다.
“안 가요. 형은요?”
조심조심 핫도그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입 안이 데일 것처럼 뜨거웠지만 씹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도 안 가.”
그렇구나. 핫도그는 몇 번 먹으니 동났다. 나는 아침에 확인한 강현 형의 재능을 떠올렸다.
[백강현]
재능: 두말할 것 없는 타고난 댄싱머신!
개화 조건: 신뢰와 의지는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해요!
지금도 잘 추는데 아직 진화형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개화 조건이 알쏭달쏭했다. 신뢰와 의지라니? 누가 누구한테?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유달리 불친절한 설명은 꼭 메인 미션 당시 강현 형이 지니고 있던 호감도를 떠올리게 했다. 관심 없다면서 착실히 춤도 가르쳐 주고 멤버들도 파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말에도 시간을 투자해서 날 도와줬다. 그런데도 계속 싫어함이었지.
아, 아니다. 언제 중립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니 주말 사건은 빼도록 하고. 어쨌든 중요한 건 싫어하는 상대에게 보일 법한 태도는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버그인지 의심도 했었는데.
“더 안 물어봐?”
“뭘요?”
“왜 안 가냐고. 다들 물어보던데.”
“말하고 싶으시면 말해도 돼요.”
딱히 내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본인 이야기 하고 싶은 걸 수도 있으니까 대충 대답했다. 지금 나는 그것보단 핫도그 하나가 조금 아쉬워서 하나 더 먹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아니. 딱히.”
“형도 핫도그 먹을래요? 하나 더 데울 건데.”
강현 형이 이상한 얼굴로 날 봤다. 영문을 몰라서 말똥말똥 마주 봤더니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아니. 준비하고 연습실 갈 거야. 춤 더 배우고 싶으면 연습실로 와.”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재빨리 전자레인지에 핫도그를 넣으면서 대답했다. 오늘도 도와준다는데 빨리 먹고 체력 회복시켜야지.
“어? 정말요? 저 가르쳐 주실 거예요?”
“원하면.”
“저야 완전 감사하죠! 아, 근데 저 노래도 같이 부를 건데 괜찮아요? 노래 부르면서 춤추는 연습 하려고요. 체력 딸려서 무대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연습할 거거든요.”
“상관없어.”
“그럼 오후에 갈게요. 오전은 노래에 집중할 거라서요.”
전자레인지가 두 번째 핫도그를 따끈하게 데움과 동시에 유찬 형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하온아, 아침부터 핫도그 먹은 거야?”
잔뜩 하품하면서 느긋하게 나온 유찬 형이 내 손에 들린 막대기를 보면서 물었다.
“시리얼이 떨어졌더라고요.”
유찬 형이 곧장 휴대폰을 꺼냈다. 의자에 앉으면서 마트 어플을 켜길래 냅다 그 옆에 앉았다. 회사에서 지원해 준 카드는 형의 휴대폰에만 등록되어 있다. 숙소에 필요한 공용 생활용품은 모두 그 카드로 구매한다. 당연히 식비 포함!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