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시스템: 메인 미션 완료! 보상으로 포인트 500이 지급됩니다!>
<시스템: 메인 미션 완료! 보상으로 포인트 800이 지급됩니다!>
<시스템: 메인 미션 완료! 보상으로 포인트 1000이 지급됩니다!>
<시스템: 메인 미션 3회 완료로 등급이 변경되었습니다.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시스템: 직업이 ’일반인‘에서 ’연습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시스템: ‘죽어도 고(F)’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당장 눌러 보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실장님과 아버지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자마자 재빠르게 미션 정보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첫 번째 연습생 오디션 합격하기.
두 번째 연습생 1군 승급하기.
세 번째 데뷔 조 합류하기.
데뷔 조로 바로 들어오면서 위에 두 단계가 생략된 거구나. 스킵이 아니라 소급 적용까지 해주다니. 여러모로 운이 트였다. 이건 전부 S급 매력 스탯 덕분이다. 물꼬를 터 준 거니까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
자, 그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내 정보창을 한 번 열어볼까?
[E급 진하온(18) - 연습생]
체력: 120
매력: S
노래: B
춤: C+
연기: F-
작사: F-
작곡: F-
남은 포인트: 2340
와! 체력이 20이나 늘었다! 가챠 돌려도 상태 이상 안 걸리겠네. 게다가 저 풍성한 포인트! 나는 배부르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메인 미션 깨다 보면 내 등급도 올려주고, 그럼 체력이 늘어나는 형식인가 보네. 메인 미션 진짜 이 악물고 깨야지.
다음 미션은 좀 자신 없긴 한데…….
나는 새롭게 뜬 미션을 봤다. 아무리 들여다본들 내용이 바뀌지 않을 텐데 말이지.
<메인 미션>
─ 멤버들의 우호도를 중립 이상으로 변경하세요!
박유찬 (0/1) 싫어함
정이한 (1/1) 중립
백강현 (0/1) 싫어함
이서호 (0/1) 매우 싫어함
O 성공 시 포인트 1500 획득
이번 미션은 실패 시 패널티도 없고, 기간 제한도 없다. 그냥 될 때까지 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메인 미션이 막히면 내 등급은 올리기 어려워지고, 포인트도 주간 미션 밖에 답이 없어진다.
어쨌든 해야 하는 거니까 하긴 해야 할 텐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정이한은 이미 우호도가 중립이라는 거다. 의외로 날 싫어하지 않네.
다른 사람은 예상 대로고.
사람 마음 사는 것만큼 서툰 일이 없는데 큰일이네. 그나마 클리어 조건이 좋아함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으음. 어떡하지.
일단 만나서 대화라도 나눠 봐야 관계에 진전이 있을 텐데, 친분을 쌓는 일만큼 자신 없는장르도 없었다. 갑갑하다. 눈앞이 깜깜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보다. 심란한 마음에 이것저것 정보를 눌러보면서 드륵드륵 거릴 때였다.
아, 맞아. 나 엿보기 스킬 있었지. 체력을 50이나 요구하는 쓰레기라서 잊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정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뭔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미연시 게임 공략하듯 해보면……. 음. 좋아!
가만히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뭐라도 해보는 게 낫겠지.
등급이 오른 덕분인지 간당간당했던 체력이 120 풀로 차 있었다. 50 정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결정했으니 실행해야지. 뭐든 써 봐야 아는 거다. 의외로 좋은 스킬일 지도 모르잖아?
이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아무나 한 명만 걸려라.
***
진승철은 방문자용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보는 눈이 있어 형식상 전화하란 말은 했지만, 아들이 걸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가족 사이는 완전히 단절된 걸 여실히 느꼈다.
회사는 진승철의 예상보다 번듯하고 제대로 된 곳이었다.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지만 자식은 자식이었기에 확인은 하고 싶었다.
“그럼 아버님, 아드님은 저희가 잘 보호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예의 바른 인사가 돌아왔다. 김혜미 실장의 배웅을 받은 진승철은 곧바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진승철은 답답한 숨을 토했다. 하온이는 가졌을 때부터 이상한 아이였다. 아내가 임신한 기간 내내 불안증에 시달렸고, 진승철도 지우자는 이야기가 턱 끝까지 차올랐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원해서 가진 둘째였기에 낳았다. 낳으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부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까이 오기만 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일어, 아이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을 정도다.
자기 자식이 무섭고 싫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진승철과 아내는 자신들이 미친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정신이 피폐해졌다.
하지만 첫째인 유준이는 그저 예쁘고 귀엽기만 해서 더 이상했다. 그래서 셋째를 낳았다. 우리가 미친 건지 확인하려고. 막내 유란이도 유준이와 같았다.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두 아이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유독 하온이만 달랐다. 죄책감과 자괴감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고, 아내의 우울증과 히스테리가 심해질 무렵 하온이가 먼저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자식이니까 작은 원룸을 구해주고, 생활비를 대주기 시작했다. 외벌이였기에 생활은 빠듯해졌지만, 가족은 안정을 찾았다. 우울증과 히스테리에서 해방된 아내가 복직을 고려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본 하온이는…….’
무섭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아니. 내 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예쁘장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밀감이 드는 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나.’
마치 타인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인가. 하온이. 하온이. 입속에서 아들의 이름을 굴려봤지만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꼭 처음 불러보는 것처럼.
하긴.
언제 다정하게 불러봤다고.
진승철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죄책감을 가슴에 품으면서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어쩐지 후련했다.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연습실을 좀 돌아다니며 멤버들을 만나 볼 생각으로 실장실을 나왔는데,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강아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강아지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러더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으, 으으.”
이 강아지는 왜 난데없이 신음하고 그런담. 어쨌든 잘 만났다. 스킬이나 써 봐야지. 나는 곧장 엿보기 스킬을 사용했다.
[이서호]
재능: 의외로 연기에 소질 있네요!
개화 조건: 철부지는 철이 들어야 하는 법!
이게 무슨…….
쓰레기다. 이 스킬은 쓰레기가 맞았다. 연기에 소질 있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개화 조건이 있는 거 보면 철이 안 들었다는 것 같은데, 철들면 연기를 잘하게 되나? 하지만 이건 내 알 바 아니다.
정보 확인이 이런 쓰레기라니. 체력 50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게 명명백백하게 판명되었다. 아무래도 이번 미션 되게 오랫동안 질질 끌고 갈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다.
“야. 나랑 얘기 좀 하자.”
“왜?”
“아이씨. 얘기 좀 하자니까.”
“여기서 해.”
“여기는 좀…….”
강아지는 곤란한 듯 목덜미를 쓰다듬으면서 내게 눈치를 줬다. 뭐. 뭔데. 잠자코 응시하고 있었더니 귀가 새빨갛게 변해간다.
“잠깐도 안 되냐?”
뭐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려고 주인 배웅하는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거야.
“알았어. 어디로 갈 건데?”
“이쪽.”
강아지가 앞장섰고, 나는 나보다 한 뼘 높이 솟은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따라갔다. 날 데리고 들어간 곳은 빈 보컬룸이었다. 내가 안쪽까지 들어가는 걸 기다렸다가 문을 닫는다.
“너 이제 괜찮냐?”
“응. 괜찮은데.”
이거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건가? 얘도 진짜 할 일 없…….
“……미안했어.”
“뭐?”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와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아지가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금 빼액 소리쳤다.
“미안했다고! 아씨, 왜 두 번이나 말하게 해? 미안했다고 했잖아, 미안하다고!”
두 번이나 더 말했다. ‘미안하다’라고 말할 때마다 안 그래도 벌게진 얼굴이 점점 익어 곧 터질 것 같았다. 드러난 목이며, 손까지 전부 새빨갰다.
“뭐가.”
“내가 너 그렇게 만든 거잖아.”
“어제 사과했잖아.”
“내가 언제? 제대로 사과하기도 전에 실장님 오셔서 쫓겨났는데…….”
그냥 흐지부지 넘어갔어도 될 일을 굳이 다시 언급한다. 자기한테 불이익 가는 거 생각 안 하고 실장님한테도 이실직고하더니.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진짜 딱 철부지 도련님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사랑받고 자라면 이렇게 솔직하게 될 수 있는 걸까.
기껏 사과해놓고도 아무 말 없이 조용한 내 눈치를 설설 살피는 강아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너 때문 아니야. 사과할 필요 없어.”
따지고 보면 시스템 때문이지. 물론 상태 이상을 유발한 건 강아지가 맞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 짤짤이로 무슨 일이 생기진 않는다. 그러니까 이 녀석 잘못은 아니라는 거지. 내 상황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왜 아니야. 당연히 나 때문이지. 나 아니었으면 너 아무 일 없었을 거잖아. 나는, 물론 네가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널 해칠 생각은 없었어. 정말 미안해……. 진심이야.”
이 녀석 귀엽네. 살면서 이렇게 진심 어린 사과도 다 받아보고. 이것도 첫 경험이다. 인생 2회차 살면서 진귀한 경험 많이 해보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알았어. 사과받아줄게.”
“……그게 다야?”
“그럼 뭐 다른 말이 필요해?”
“아니…….”
“할 말 끝났어?”
이제 내가 말 할 차례인가. 손버릇 나쁜 거 고치라고 얘기해야지. 나한테 듣는다고 고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말은 해야겠다. 내가 괜찮은 거랑 남한테 그러는 건 다르니까. 그러나 나보다 강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재혁 형을 되게 좋아했어.”
“갑자기?”
“아, 조용히 하고 들어 봐.”
“알았…….”
에라이. 귀여워서 봐준다. 날 노려보는 것마저 귀여워서 대답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