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말 아픈 사람은 문 닫는다고 괜찮아지지 않는다. 난 아니지만. 그나마 보컬 쌤이 오려면 최소 1시간은 걸릴 테니 희망을 걸어본다. 두통처럼 30분 만에 끝나는 거면 조용히 지나갈 수 있다.
계약서 쓰기 전부터 폭탄 이미지를 심어줄 순 없다. 이 녀석이 문제인데 적당히 회유하면 입 다물어 주겠지. 들켜봤자 서로에게 좋은 거 없는 상황이잖아.
“야……. 괜찮냐고, 말 좀, 아니, 아니다. 말하지 마……. 유, 유찬 형한테 전화할까? 형이라도 부를까? 아니면 실장님? 쌤? 누구 불러줘? 내가 뭐해야 해? 뭐 해줄까? 어?”
시끄럽네. 아무것도 하지 말랬더니 이서호가 쭈글쭈글 내 옆에 주저앉으며 물어왔다. 왕방울만 한 눈물이 계속 뚝뚝 떨어졌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등을 툭툭 두들겨줬다. 겁 많은 울보 녀석.
“야, 니가, 허억, 흑, 왜, 우냐.”
“말하지, 마, 힘들잖아, 흡, 흐윽.”
강아지는 계속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안절부절못했다. 훌쩍거리면서 내뱉는 말엔 두서가 없어, 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적당히 대답해주려고 했더니 말하지 말라면서 기겁한다. 그러다가 내 손을 꽉 잡았는데 의외로 따뜻해서 깜짝 놀랐다.
***
30분이 지나자 상태 이상이 끝났다. 남은 체력이 1이라 힘없이 소파에 늘어졌다.
“이, 이제 괜찮은, 거야?”
강아지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내 안색을 살폈다.
“응. 근데 나 건드리지 마. 지금 쉬어야 해.”
“어! 물론이지. 안 건드려. 하나도 안 건드릴게!”
강아지가 두 손을 번쩍 들고는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커다란 눈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신경 쓰여?”
“그럼 안 쓰이겠냐? 나 이런 적 처음이라고!”
“나도 처음이야.”
“……진짜?”
“응. 놀라게 해서 미안해.”
“왜 니가 사과해! 사과는 내가 해야지…….”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실장님이 들어왔다.
“하온아, 여기 있니?”
실장님도 굳고, 나도 굳고, 강아지도 굳었다. 상태 이상이 끝난 직후라 내 얼굴은 형편없을 거고, 강아지는 누가 봐도 대성통곡한 티가 역력했다.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실장님이 보컬룸 안으로 들어오셨다. 딸깍, 문이 닫혔다. 인생 참 뜻대로 흘러가는 거 하나 없다. 강아지 회유하기도 전인데. 얘도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주절주절 일러바치지 않겠지?
“죄송해요……. 저 때문이에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강아지는 생각 없는 게 맞다. 일단 서두가 영 안 좋았다. 내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실장님, 어떻게 된 거냐면요.”
“하온이는 가만히 있고, 서호 계속 얘기해.”
실장님 눈치가 백 단인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조용히 날 바라보셨다. 이미 강아지는 나불나불 사건의 전말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욱해서 내 멱살을 잡았고, 그랬더니 내가 갑자기 숨 쉬는 걸 힘들어했다고 전부 다 말해버렸다. 이 멍청한 자식이.
“이서호.”
“네. 실장님…….”
강아지는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전부 제 잘못이에요.’를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저 답답한 자식. 적당히 넘겼으면 얼마나 좋아. 쓸데없이 솔직해서는.
하지만 이상하게 싫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첫인상도 최악이고, 두 번째 만남은 더 최악이다. 세 번째는 상태 이상까지 일으켰고. 그런데도 참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진득하고 무거운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실장님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넌 실장실에서 대기해. 이따 다시 이야기하자.”
“……네.”
강아지가 울먹거리며 보컬룸을 나가고, 남은 건 나와 실장님뿐이었다. 실장님이 내 앞에 다가와 무릎 꿇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지금 일어날 수 있겠니?”
일어날 순 있지만 돌아다니긴 힘들다. 집에 갈 체력도 부족한 판이다. 어쩔 수 없이 고개 저었더니 날 보는 얼굴에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죄책감 같기도 하고. 하여튼 좋은 감정이 아니라서 속이 쓰렸다.
이래서 숨기고 싶었다. 몸 약하다는 인상이 박히면 데뷔 조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아이돌 스케줄이 얼마나 빡빡한데, 벌써부터 비실거리는 사람을 안고 가려고 하겠어? 지금 나한텐 그 정도 가치가 없는데.
“하온아.”
“네.”
역시 잘리는 건가. 심각한 어조에 내심 심장이 덜컥거렸다. 새로운 회사를 알아봐야 하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아서인지 기껏 차던 체력이 다시 떨어졌다.
“평소에 이런 일이 자주 있었어? 탓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회사가 널 지켜주려면 너에 대해 잘 알아야 하니까 묻는 거야.”
지켜준다고? 내치는 게 아니라? 조금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어떻게 해석하신 건진 몰라도 실장님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테오스의 라이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그래서 무대 세트 만들 때 고려하거든. 번지점프를 해야 한다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예능에도 안 보내고.”
그럴 수도 있구나.
“내가 물어본 것도 같은 이유에서야. 앞으로 네가 활동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에서 널 지키려고.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줄래?”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말하고야 싶다.
상태 이상이라고 체력 0이 되면 터지는 건데요. 이게 원인이지 원래 저는 건강 그 자체입니다……. 라고 말했다간 그때는 정말 잘리는 거니까 필사적으로 변명을 떠올렸다.
“제가 체력이 약해요.”
“응. 그건 들었어.”
“조금 한계까지 몰리면 피로 반응이 와서 이럴 때 있어요. 아까는 정말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거지, 형이 잘못한 거 아니에요. 제가 요즘 무리해서…….”
뉘앙스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어차피 들킨 마당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으면 좋으니까. 체력 달리는 건 사실이고 숨길 수 없는 종류다. 그렇다고 굴복하겠다는 건 아니라 말을 덧붙였다.
“원래는 제가 잘 조절해요. 제 몸은 제가 잘 알거든요. 그런데 꿈에 그리던 연습생이 되고, 바로 데뷔 조에 합류해서 그런지 자꾸 욕심이 생겨서 무리했어요. 앞으로 몸 관리 잘할게요. 데뷔 전까지 체력도 키울 거고요.”
체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진 모르겠지만, 관리만 잘하면 상태 이상 터질 일은 없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게다가 상태 이상을 세 번 겪고 알아낸 건데, 체력 떨어지면 타임 리밋은 최대 30분이다. 30분이면 회복까지 한 시간 잡고, 혼자 조용히 잠적해 있다가 나타나더라도 문제없을 시간이었다. 이벤트 때는 하루였지만 조건도 상태 이상 종료 후 체력 상태도 다르니 별개로 봐야 했다.
“그래. 알겠어. 앞으로 힘들면 무조건 쉬어. 아이돌은 몸이 재산이야. 체력 키우는 거 나랑 약속하자.”
“네. 그럴게요.”
“좋아. 그건 됐고, 아직도 못 걷겠니? 조금 더 쉬어야 해?”
쉬어야 한다. 나는 민망함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더 쉬어야 해?”
“20분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럼 오늘 트레이닝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테니까 얌전히 쉬고 있어.”
“엇, 더 할 수 있…….”
실장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집에 가서 해야지 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소파에 완전히 기대듯 누워버렸다. 실장님이 생글생글 웃으셨다.
“20분 뒤에 데리러 올 테니까 그동안 푹 쉬렴.”
“넵……!”
***
김혜미 실장은 보컬룸을 나와 곧바로 실장실로 향했다. 이서호는 순간적인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툰 아이였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진하온을 적대시 한 건 준재혁을 돌려 달라는 시위일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원래 난폭한 짓을 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직접 캐스팅해, 데뷔조에 합류시키기까지 지켜봐 온 시간만 5년이었다. 그동안 이서호는 단 한 번도 폭력적인 행동을 한 적 없었다.
「준재혁은 주변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괴물이에요. 비상식적인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됩니다. 남을 공격하는 것도요.」
박태수. 박태민 대표의 조카이자 준재혁의 본성을 알려준 피해자.
‘대표님이 하온이 캐스팅 한 날 준재혁이 방출당했지.’
차라리 날짜가 어긋났다면 달라졌을까. 이서호가 준재혁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대로 뒀다가 더 난폭해지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만약,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놓아줘야 할 텐데.’
김혜미는 얼굴을 굳힌 채 실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뺨을 흠뻑 적시며 퉁퉁 부은 눈으로 울고 있는 이서호가 보였다.
“흑, 훌쩍, 흐읍, 흑.”
이서호는 어떻게든 울음을 그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혜미를 보자마자 미처 삼키지 못한 울음 섞인 사죄가 튀어나왔다.
“제가, 흑, 잘못, 훌쩍, 잘못해서, 흡, 잘못한,”
김혜미가 휴지를 꺼내 건네줬다. 패애앵, 기운찬 소리와 함께 코를 푼 이서호는 심호흡하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이서호는 참 눈물이 많았다. 하물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누군가가 울면 저도 따라 울 정도였다. 감정이 풍부한 만큼 화를 낼 때도 격렬해서 그 순간 시야가 협소해지는 건 단점이었다.
“서호야.”
“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니?”
이서호는 고개 숙인 채 절레절레 저었다. 젖은 휴지를 꽉 쥔 손이 무릎 위에 정갈하게 올라가 있었다.
“하온이한테는?”
“사과요. 제대로 사과 못 했어요. 사과하고 싶어요…….”
“고개 들고 나 봐.”
이서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온이한테 어떻게 하고 싶다고? 다시 물었더니 울먹이면서도 한 번 더 또박또박 대답한다. 하고 싶은 말은 사과뿐.
“그래. 그런데 서호야.”
“네.”
“네 잘못을 인정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이서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무엇이든 감당하겠다는 결연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하고.
“아무리 이성을 잃고, 화가 나더라도 손 올리는 건 안 돼.”
“……네.”
“나는 그런 애를 데리고 데뷔시킬 생각 없어.”
“……, 흑, ……네.”
김혜미의 말에 담긴 저의를 알아차린 이서호가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네 계약을 파기하려고 했어.”
“흑, 제, 제가, 잘못, 잘못한, 거니까, 흡, 그럴, 그럴게요.”
고개 숙인 채 우느라 바쁜 이서호는 김혜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김혜미는 이서호를 보면서 내심 안도했다. 뭘 잘못했는지 알고, 후회하고 있다. 부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높은 수위의 처벌을 내리겠다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 본성은 그대로였다.
김혜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서호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김혜미는 티슈를 북북 뽑아 이서호의 손에 쥐여주었다.
“네가 뉘우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거란 말이야. 하지만 하온이도 널 감싸고, 너도 뭘 잘못했는지 알았으니 이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없겠지?”
“없어요. 절대, 절대로.”
“하온이를 제대로 봐. 그 애가 어떤 애인지 보렴. 그럼 우리가 왜 데뷔 조에 넣었는지 알게 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서호가 자리를 뜨고, 홀로 남은 김혜미 실장의 한숨이 길었다.
‘서호야, 널 데리고 갈 수 있게 해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