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저들의 반응이 신기하기도 했고, 멤버 전원이 나를 낙하산으로 생각하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쫓겨났고, 내가 그 사람 대신 들어왔는데 오디션 합격과 동시에 데뷔 조에 인사하러 온 거고.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하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데뷔 조라는 거다. 현재 내 스탯으로 데뷔 조에 합류했다는 건 비주얼 멤버로 뽑혔다는 의미다. 내 노래 실력은 메보 감이 아니니까.
기존 멤버들이 지금처럼 저항하면 비주얼 멤버 한 명 자르는 건 일도 아니다. 특히 저 네 명이라면 더더욱. 다들 웬만한 아이돌 그룹 비주얼 멤버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니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실력이다. 노래든 춤이든 뭐 하나 뛰어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메보가 없는 상황이고 메인 댄서가 있으므로 내 길은 결국 노래였다.
노가다는 자신 있다. 아무리 짹짹거려봤자 데뷔 멤버는 위에서 정하는 거다. 놓치기 아쉬운 사람이 되면 끝. 내가 이긴다.
“하온 씨, 미안해요. 일단 나가요.”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실장님.”
“네?”
“저한테도 말 편하게 해주세요.”
“네?”
“말씀 낮추셔도…….”
이거 아닌가? 왜 이렇게 당황하시지? 강아지가 “하!”하고 나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 냈다. 숨소리 저렇게 크게 내면 힘들지 않나.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라니까 ‘다음에 봬요.’ 하고 인사도 착실하게 한 뒤 연습실을 나갔다.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문이 닫히기 전 분에 겨워하는 강아지의 깨갱 소리가 들렸다. 내가 뭐 잘못했나.
“하온 씨 미안해요.”
“네? 뭐가요?”
“애들이 예의 없게 군 거요. 지금 다들 충격받은 상태라 그래요. 며칠만 시간 주세요. 순한 애들이라 금방 받아들일 거예요.”
“아! 네. 괜찮아요.”
실장님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연습생 경험도 없는 애가 데뷔 조에 들어왔는데 환영하는 게 더 웃기지. 나한테 소개하지 않은 연습생이 있을 거고, 그들 중 나보다 잘난 사람이 수두룩할 텐데.
그러나 난 물러날 생각 없다.
“말씀 편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실장님의 동그란 눈이 몇 번 깜박거리다가 부드럽게 접혔다.
“그래, 그럴게. 그보다 애들 오해 풀리기 전까지 따로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겠니? 하고 싶은 거 있어?”
“보컬이요. 저 보컬 트레이닝 제대로 받고 싶어요.”
메보를 노리고 있다. 나는 이 그룹의 메보가 될 것이다.
“알겠어. 1:1 트레이닝 받게 해줄게.”
실력도 없는 낙하산 소리를 들었으니 그 오해는 풀어줘야겠지. 낙하산은 오해지만 실력 없는 건 사실이라 열심히 연습해야 했다.
500포인트 왜 안 들어오나. 계약서에 사인해야 미션 완료로 인정해 주려나. 그거 들어오면 춤이고 뭐고 일단 노래에 투자한다.
***
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회사에 얼굴도장 찍었지만, 멤버들과 마주치진 않았다. 아무래도 실장님이 손을 쓴 모양이다. 대신 보컬룸에 박혀서 선생님에게 1:1 개인 교습을 받았다.
아주 좋았다.
왜냐면 경험치가 쑥쑥 올랐거든. 전문가에게 트레이닝 받으니 올라가는 경험치 양이 달랐다. 못하는 걸 지적받기만 해도 올랐고, 그걸 고치면 대폭 올랐다.
나도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고쳤을 뿐인데, 이렇게 보니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코칭’이 경험치 상승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경험치 오르는 거 보기만 해도 아주 즐거웠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내 노래 스탯은 B를 찍었다. 아직 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포인트 모아서 올리는 것보다 빠르잖아? 집에서 혼자 연습 중인 춤 경험치는 아주 찔끔찔끔 오르고 있어서 차이가 훨씬 커 보였다. 대단해! 쌤 존경해요!
“넌 진짜 가르치는 보람 있다.”
보컬 쌤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방금 막 노래 스탯이 B로 오른 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쌤을 바라봤다.
“조금씩 느나 싶더니, 갑자기 확 늘었네.”
그거야 방금 스탯이 올랐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 정보가 보컬 쌤 입에서 나왔다. 경험치가 오르면 그 즉시 실력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
B 0%와 B 85%의 실력이 다르다는 뜻이었다. 같은 B가 아니라는 거지. 자, 이대로 B+ 까지 달려봅시다! 는 체력이 부족하다.
“쌤, 저…….”
“그래그래. 쉴 때 됐지?”
“헤헤.”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아예 저녁까지 먹고 볼까?”
“넵.”
녹음 부스를 나와 쌤을 배웅한 뒤, 곧장 보컬룸으로 들어와 안쪽의 긴 소파에 늘어졌다.
에고, 힘들다.
체력 좀 채우고 밥 먹으러 가야겠다. 이놈의 체력, 체력. 부족한 체력은 포인트로 올릴 수도 없고, 이렇게 데굴데굴 구르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체력 좀 올려줘~
그 순간 한 뼘 정도 열린 문틈으로 강아지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우연인가? 싶었던 것도 잠시,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휴짓조각처럼 구겨진 얼굴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애기야, 형이 지금 체력 딸려서 너랑 놀아줄 기운 없어.
“야.”
“…….”
무시하자. 내 경험상 무시할 경우 강아지가 보일 반응은 두 가지다. 화나서 문 쾅 닫고 가거나 쳐들어오거나.
“야!”
강아지는 후자였다. 목청도 크네. 마이크 없이 콘서트홀을 쩌렁쩌렁 울리겠어.
“왜.”
“왜? 왜에? 지금 나한테 왜라고 했냐?”
“불러서 대답했잖아.”
“너 이렇게 싸가지 없는 거 다들 알아? 쌤이랑 실장님 앞에서는 착한 척, 약한 척, 예쁜 척 별의별 척은 다 하더니 쓰레기잖아?”
진짜 쓰레기를 못 만나봤나. 고작 나한테 붙이기에는 너무 거창한 칭호인데. 그리고 척이 아니라 그것도 나고, 지금 이 모습도 나다. 모든 사람한테 얼굴이 하나만 있는 줄 아나. 순진해 빠졌긴.
이라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힘이 없다. 체력이 부족했다. 나는 최대한 체력을 회복시켜서 또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므로 입을 다물었다. 겸사겸사 눈도 감았고.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데뷔 조 멤버들과 잘 지내는 건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치면 그냥 지나쳐 주는 거로 족했다. 지금처럼 시비 거는 게 아니라.
그러다 문득 복에 겨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컬 쌤과 실장님이 날 얼마나 예뻐하는데.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라냐. 전생이랑 비교해봐도 여긴 천국이었다.
멤버들이랑 잘 못 지낸다고 문제 될 것도 없다. 예전 멤버들도 카메라 앞에서는 잘도 친한 척 웃더라. 너희한테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그것조차 못하면 프로의식 없는 거고.
“너 이 새끼가! 나 무시해? 무시하냐고!”
반응이 없자 속 터진 강아지가 급발진했다.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끌어 올리더니 그대로 나를 짤짤짤 흔들었다. 투정 수준의 짤짤이인데 문제는 흔들릴 때마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어째서?
그냥 흔들리는 것뿐인데? 완전 애교잖아! 덩칫값 못하는 개가 치대는 것과 똑같다. 아프지도 않고 그저 날 좀 봐달라고 흔드는 건데 체력이 왜 떨어지냐고?
이거 공격이라고 판단해서 체력 떨구는 건가? 트레이닝 끝나서 남은 체력이 얼마 없는데…….
이러다가 상태 이상 터지는 거 아냐?
기겁한 내가 강아지의 팔을 꾹 잡았다. 역효과다. 내가 반응을 보이자 신나서 더 흔들어댔다.
“이거 놓고 이야기하자. 내가 지금 좀 힘들거든.”
“헹! 웃기고 있네. 그럼 또 나 무시할 거잖아!”
“무시 안 하고 너랑 얘기할게. 좀.”
갑자기 강아지 녀석이 “어? 얘기? 잠깐, 내가 얘기하려고 여기 왔던가?” 하면서 얼 탔다. 와중에도 난 멱살이 잡혀 있고, 체력은 빠르게 떨어졌다.
“이것부터 놓으라니까?”
청개구리 녀석인가. 오히려 더 꽉 잡는다. 잔뜩 늘어난 넥라인이 강아지 손에 한 움큼 잡혀 있었다.
“싫어! 나는 너한테 화내러 온 거거든!”
아, 망했다. 체력, 체력!
<시스템: 상태 이상 발생!>
와씨. 이럴 줄 알았어. 기절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아니지. 뭐 하나 좋은 게 없어. 근육통이 제일 무난한데. 제발 근육통. 제발 제발!
인생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스템: 상태 이상 ‘호흡곤란’에 걸렸습니다.>
“헉, 허억, 컥!”
가슴이 콱 막혔다. 숨을 쉬려 할수록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뿐이겠지만 알아차렸다고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부족한 숨을 어떻게든 들이마시려고 쌕쌕대니 듣기 싫은 소리가 나왔다.
깜짝 놀란 강아지가 사색이 된 채 바짝 굳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어, 어어? 왜, 왜 그래? 왜 그래? 어디 아파? 어떡하지? 야, 야! 어, 어떡…….”
급기야 울먹울먹하더니 큰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한다. 숨 막혀서 울고 싶은 건 난데 왜 니가 우냐. 강아지 새끼라서 그런가, 순하기도 하지. 꼴 보기 싫은 놈이 헐떡인다고 당황해서 우는 꼴이라니.
“헉, 허억, 야, 소란, 허억, 피우지, 마, 헉.”
조용히 넘겨야 한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필사적으로 강아지의 팔을 붙잡았다. 강아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숨이 가쁘면 어지럽기도 하구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서 휘청거리자 화들짝 놀란 강아지가 날 붙들어왔다.
“어, 어떡, 어떡해, 야, 야야! 너 왜 그래, 왜 그래, 무섭게, 흐어엉, 왜 그래에…….”
소란 피우지 말랬는데 저 큰 목소리로 울어댄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보컬룸은 방음 따위 전혀 되지 않았다.
“무, 문, 닫아, 헉, 허억, 빨리, 문!”
필사적으로 소리치자 강아지가 본능적으로 반응해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그러고서는 “닫았어! 이제 괜찮아지는 거야?” 하고 묻는다. 얘 뇌가 청순한 계열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