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3화 (3/320)

3.

“억!”

무척 아쉬워 보였다. 가챠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솔직히 두려움도 있고. 자칭 신의 말을 어떻게 다 믿어? 보험으로 최소 S 스탯 하나 있으면 모를까.

“그럼 S 스탯권 주면 할 거냐?”

응? 안 줄 것 같더니?

“줄 거예요?”

“주면 할 거야?”

S 스탯 하나 준다면 모험해 볼 만 하지.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는 신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궁금한 거 하나만 더 해결되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게요.”

“아, 너 진짜 치사하네. 뭔데?”

“별 건 아니고 게임 참가하면 저 지켜보는 거예요? 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게 신경 쓰일 것 같은데…….”

“안 봐.”

“그럼 뭘 보고 노는 건데요?”

신이 허공에 창 하나를 띄웠다. 거기에는 요동치는 황금색과 검은색 막대그래프가 나열되어 있었다.

“이전 게임판인데 우린 저걸 봐. 네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게 아니거든. 저 황금색 바가 제일 먼저 끝에 도달한 신이 이기는 거지.”

“검은색은 뭔데요?”

“비밀이야.”

으음. 꽝이었네.

“그럼 무슨 재미로 게임 하는 거예요?”

“응원하는 재미지. 뭐든 하나 콕 찍어서 잘해라, 잘해라 응원하는 게 재밌잖아?”

그런 게 재밌나? 나는 잘 모르겠지만 본인이 재밌다니까 뭐. S급 스탯이라. 모험해? 말아?

“아, 맞다. 중요한 내용이 하나 있어.”

나는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 노려봤다. 이런 식으로 사기를 쳐? 중요한 건 제일 먼저 알려줘야지! 신이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네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말 못 한 거거든? 질문이 좀 많았어야지! 일단 들어 봐. 여기는 네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차원이야.”

“다른 차원이요?”

“그래. 환생자는 시간을 돌리는 게 아니라서 같은 차원에서 환생할 수 없거든.”

다른 차원? 평행 우주 그런 건가? 또 다른 우주에 무수히 많은 내가 있는, 뭐 그런 거?

“비슷하지만 달라. 너와 유사한 흐름을 타고나는 자들은 있어. 그런 자들의 운명은 대체로 비슷해. 이름이나 얼굴, 가족관계도 비슷할 수 있지. 하지만 영혼은 고유의 것이야. 모든 차원에 폐급 영혼의 진하온은 너 한 명뿐이거든.”

뭔가 어렵다.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다. 일단 중요한 건 폐급 영혼은 나 하나뿐이라는 거고…….

“그럼 여기도 저랑 닮은 진하온이 있어요? 마주치면 기분 되게 이상할 것 같은데…….”

“아니. 여기는 ‘진하온’이 태어나지 않은 곳이야. 서로 마주치면 곤란하잖아? 나도 그 정도는 고려해.”

판을 다 짜두고 내가 허락하면 바로 시작할 준비를 해뒀네. 그렇게 하고 싶은가. 이 게임이란 거.

“당연하지! 혹시 다른 차원은 싫어?”

그건 상관없다. 그리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죄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뿐이다. 마주친다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날 대하는 태도가 변한다면 그게 더 씁쓸할 것 같았다.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꼈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마음에 들었다.

“그럼 하는 거야?”

“게임 했으면 좋겠어요?”

“어.”

질문을 던지자마자 답이 돌아왔다. 애절하게 날 보는 시선에서 간절함이 느꼈다. 솔직하시네. 조금 귀엽기도 하고.

무엇보다 날 응원한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 간절한 바람 하나쯤은 들어주고 싶어졌다. 설사 이게 달콤한 함정이라 할지라도.

“할게요.”

“잘 생각했어!”

신이 활짝 웃더니 대뜸 내게 다가와 두 팔을 벌렸다. 기함해서 뒤로 물러나니 나를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타인에게 안겨본 게 처음이라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고 말았다.

“진하온에게 신의 축복을.”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신기한 감각을 더 느끼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신을 마주 안았다. 포옹이라는 거 되게 기분 좋은 거구나.

갑자기 신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 수 없는 위로와 위안이 차올랐다. 신이라는 거 지금까지 내심 믿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지금 이 순간 데우스가 신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따스할 리 없으니까.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네가 마지막에 도달하는 걸 응원하고 있을게. 다음에 보자.”

신의 모습이 점차 투명해지면서 사라졌다. 텅 빈 방에 나 혼자 남았다. 반투명했던 몸은 어느새 제 색을 되찾은 뒤였다.

다음에 어떻게 볼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건 내 스탯이었다. 올릴 수 있는 게 뭔지, 현재 스탯 상황이 어떤지.

그와 동시에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초기 모드를 선택해 주세요!>

- 이지모드: 성장 속도 x 0.5 체력 600

- 노멀모드: 성장 속도 x 1.0, 체력 400

- 하드모드: 성장 속도 x 2.0, 체력 100

정보는 이게 단가? 하드모드 체력 수준 보니까 난이도가 얼추 예상되기는 하는데.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부연 설명이 없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내 두 번째 인생이다. 인생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하드모드를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인 중에 성장 속도 두 배 참을 수 있는 사람 있나? 성장 속도가 무려 두 배인데? 200%인데? 적어도 나는 못 참는다. 게이머로서도 피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시스템: 하드모드 특성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탯 및 스킬의 등급 상승 요구 포인트가 50% 감소 되었습니다.>

<학습에 따른 스탯 경험치 상승률이 50% 증가하였습니다.>

허어. 그냥 두 배가 아니잖아? 두 배의 탈을 쓴 네 배였다. 기초 체력이 유독 낮은 이유가 있었구나. 좋아. 빠르게 스탯 맥스 찍고 연예계를 찢어 버릴 아이돌이 되어 주겠어!

그런 의미에서 이제 내 정보를 좀 보고 싶은데. 생각과 동시에 창이 튀어나왔다.

[F급 진하온(18) - 일반인]

체력: 100

매력: F-

노래: F-

춤: F-

연기: F-

작사: F-

작곡: F-

남은 포인트: 0

각 스탯은 학습에 따라 서서히 성장합니다.

또한, 포인트를 투자해 급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은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적힌 18이라는 숫자가 눈에 콱 들어와 박혔다. 확인해 보니 나이란다. 18살. 고작 18년 살고 죽은 누군가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도 모르게 왼쪽 손목을 바라봤다. 선명하게 남았던 자국은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강렬했던 깊은 상흔은 내 망막에 새겨진 것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머리를 흔들어 씁쓸한 마음을 털어버린 뒤 정보 획득을 계속했다.

스탯을 각각 눌러보니 현재 경험치와 요구 경험치가 보였다. 전부 (0/1)이었다. 이거 등급별 요구 포인트 못 보나?

<시스템: 각 등급별 요구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친절하시네. 예스! 팝업창 하나가 더 떠올랐다. F부터 S+까지 필요한 포인트가 빼꼭히 적혀 있었다.

어디 보자.

C+를 만드는 데엔 총 20이 필요하지만, B-를 만들려면 400. 그 다음 단계부터는 100단위로 뛰고. A-로 올리려면 1,500포인트? S는 넘사고. 요구 포인트 보니 B-부터 ‘잘한다.’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보다.

내가 공짜로 얻은 S 스탯은 F부터 올라간다 치면 무려 19,552포인트가 필요했다. 처음에 주겠다던 1만보다 훨씬 이득이었다. 물론 1만 포인트를 여기저기 분배해 나눌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이돌이 될 거다. 당연히 무조건 외모에 올인한다. 스탯이라는 설정이 있는 이상 노래나 춤은 노가다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외모는 아니다.

스탯빨로 나아지더라도 나중에 데뷔 초와 후를 비교한 사진으로 성형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여러모로 외모부터 올리고 보는 게 옳다.

아니나 다를까 ‘매력’ 스탯 설명을 보니 메이크업을 받거나,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경험치를 올릴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외모가 F-면 연습생 문턱은커녕 소속사에 발 들이자마자 쫓겨날지도.

매력이 F-에서 S로 바뀌는 기적의 순간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 거울을 찾았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 속에는 창백한 안색의 소년이 서 있었다. 툭 치면 쓰러질 듯 유약한 느낌의 빠짝 마른 몸이었다. 그래도 눈코입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밀조밀 예쁘게 생겨서 미소년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될 정도의…….

10대 때의 나였다.

내가 F-였어? 그래도 얼굴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자금난에 허덕이던 신생 회사의 망돌 출신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비주얼 멤버였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보는 눈은 있다. F-는 아니다.

그냥 스탯권이나 빨리 써 버리자. 스탯권 쓰고 싶어! 어떻게 써?

<시스템: 스탯 1종을 ‘S’로 승급하시겠습니까?>

오! 예스예스!

<시스템: 승급할 스탯을 선택해 주세요.>

매력을 선택하자 곧바로 매력 스탯이 F-에서 S로 바뀌었다.

<시스템: 매력 등급이 S로 변경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계속 거울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장난하나? 버그 아냐? 하지만 정보상으로는 분명히 매력이 ‘S’로 바뀌어 있었다. 뭐야, 왜지? 왜냐고? 뭐 놓친 거 있나?

나는 매력의 추가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스탯 올리는 방법은 대충 넘기고, 혹시나 해 밑으로 내렸더니 내용이 더 있었다. 꼼꼼히 읽어본 뒤 이유를 알았다.

매력 스탯은 외모가 바뀌는 게 아니었다. 내가 타인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느냐에 대한 어필의 척도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처럼 생긴 사람을 선호하지 않더라도 내게 매력을 느낀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보너스 스탯 같은거…….

당연히 매력이 곧 외모인 줄 알았지. 잠깐 허탈해졌지만 금방 떨쳐냈다. 어쨌든 얼굴과 이름이 모두 내 것이니 위화감도 없었고, 외모가 취향 아닌 사람한테도 어필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아이돌로서 이득이다.

이런 꽁템으로는 가장 올리기 힘들지만 필요한 스탯을 올리는 게 맞다. 그게 게임의 기본이거든. 그렇게 따지면 매력 올리는 게 맞지. 카메라 마사지하고, 메이크업 받는 거로 어느 세월에 경험치 쌓겠냐고.

자, 그럼 다음은.

아까부터 시야 한쪽에서 반짝반짝, 나를 부르듯이 깜빡이고 있는 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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