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이 푸슬푸슬 웃음을 흘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시단 말인가. 나는 억울한데.
“이전 삶에서 가장 간절했던 꿈. 그거 도전해 볼래?”
“죽었는데 꿈은 무슨.”
“방법이 있어.”
“어떻게요? 뭐 인생 2회차라도 시켜 주려고요?”
“맞아.”
막 던진 말인데 맞단다. 나는 황당함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쳐다봤다.
“마지막이라면서요?”
“응.”
“윤회 안 된다면서요?”
“그래서 윤회 대신 다른 육체를 활용하는 거야. 영혼이 빈 육체를 너로 재구성하는 거지. 편의상 환생이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환생은 아니야.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너도 환생이라고 생각해.”
“완전 마음대로네요.”
꿀릴 게 없으므로 느끼는 그대로 툭 내뱉었다. 어차피 끝난 인생, 끝난 영혼 아니던가. 이렇게 뒤를 예측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배짱부리는 건 내 특기다.
“그러니까 신이지.”
“아, 예에.”
무덤덤하게 주억거리니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랑받고 싶었잖아. 춤과 노래도 좋아했고. 내가 보기에 넌 아이돌이 적성에 맞는 것 같거든. 다시 도전해 보고 싶지 않아?”
어깨가 움찔거렸다. 관심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반응해 버렸다. 진짜 악마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람 마음 들쑤시는 소리만 골라 할 순 없다.
“악마는 없대도.”
그러나 덥석 응하기엔 결과도, 과정도 좋은 기억 따위 없었다.
“사랑받는 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데였는데 뭘 또 하고 싶냐고 물어요?”
삐딱한 대답에 신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나 신이야.’하고 으스대는 것 같았다.
“하기 싫어?”
할 수 있다면 하고야 싶지. 사랑받는 삶이라는 거 나도 느껴보고 싶다. 자칭 신의 말대로 춤추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곧잘 하기도 했고. 그래서 멤버들과 쓸데없이 엮이지 않으려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꾸역꾸역 연습했었다. 하지만…….
나는 자세를 고쳐 서서 진지하게 물었다.
“왜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데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 조건 없는 적의는 받아 봤어도 그 반대는 없었기에 경계심이 더 컸다. 신이랍시고 더 쓰레기 같은 삶에 나를 밀어 넣고 낄낄거릴 수도 있잖아?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게 희망 고문이다. 이미 숱하게 당해봤으니까 내가 잘 안다.
“조건에 충족됐거든.”
“그 조건이 뭔데요?”
“하나. 마지막 영혼이어야 할 것. 둘. 자살하지 않았을 것. 셋. 깨끗한 영혼이어야 할 것.”
일부러 코웃음 치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저만 조건에 충족한 것도 아닐 거잖아요?”
“의외로 맞는 경우가 별로 없어. 애초에 태어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경우 뭘 할 수가 없어. 자아가 형성되기 전이라 대화가 안 되거든. 그다음으로는 자살이 많지. 마지막까지 잘 살아남아도 결국엔 다른 영혼을 잡아먹어 얼룩이 묻어.”
신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여상한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날 보고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조금 전과 다르게 흥분한 기색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영혼이야.”
나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물었다.
“왜 찾아다니는데요? 그냥 소멸하게 두면 되잖아요? 귀찮다면서요?”
“게임을 하려고.”
게임? 무슨 게임?
“경주 게임. 너는 내 말이 되는 거야.”
“신이 여러 명이에요?”
“당연하지. 영혼이 무수히 많은데 나 혼자 어떻게 관리해?”
“음. 그러니까 신들끼리 폐급 영혼 주워서 하는 게임이란 소리네요.”
‘폐급 영혼’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은 묘한 눈웃음을 짓고는 나를 따라 입안에서 단어를 몇 번 굴려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조건은 모두 달라. 일단 우리 쪽은 깨끗한 영혼일 것, 이라는 공통 조건을 두고 돌림판 돌렸는데 이번에는 하필 내가 제일 어려운 게 걸렸어. 다시 뽑으려면 1억 년 지나야 하는데 앞으로 8천만 년 남았거든? 그러니까 너 게임 해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야.”
아. 이 신은 내게 관심이 없구나. 정말 말 그대로 조건만 따졌구나 싶었다.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장기 말’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음흉한 속내가 있는 것보다 나았다. 깔끔해서 좋네.
“게임 못 이길 것 같다고 중간에 무르고 그러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넌 그저 네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살면 돼. 실패해도, 포기해도 네게 쥐여준 삶을 무르진 않아. 모든 결정은 네 몫이지. 난 방관할 뿐이고.”
“그럼 이 몸의 주인은 어떻게 됐는데요?”
“너와 똑같이 마지막 영혼이었고, 자살했어. 영혼을 넣으려면 같은 단계여야 하거든. 운 좋게 네 영혼은 회수했는데, 좀처럼 너로 바꿀 육체를 찾지 못해서 시간이 걸렸지.”
신의 시선이 내 왼쪽 팔목을 향했다. 무심코 들여다보니 손목에 그어진 한 줄기 자국이 선명했다.
단 한 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몸의 주인이 죽기 위해 얼마나 깊숙이, 진심으로 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살 상흔은 대부분 여러 번 겹쳐서 나기 마련이니까. 쉬운 일이 아니잖아.
“네가 승낙하면 그 육체가 너로 재구성될 거야. 동의도 받아놨으니 문제없지.”
재구성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동의는 뭐, 이 몸의 주인한테 받은 거려나. 소멸한다면서 몸을 주고 갔나?
“육체를 제공해준 대가로 지금은 내가 거둬둔 상태야.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무슨 의미예요?”
“게임 하면 알아.”
처음으로 답을 회피했다. 대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게 정해져 있나? 아니면 변덕인가?
“우리끼리 정한 규칙이 있어. 뭐든 물어봐. 알려줄 수 있는 건 알려줄 테니까.”
어떻게든 나를 게임에 참가시키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하고 싶나? 아까부터 느낀 건데 신이 참 인간적이었다.
“인간은 우리 모습을 따서 만들었으니 그 반대야. 너희가 우릴 닮은 거야.”
“아, 예에.”
자꾸 머릿속이 털리니까 질문이나 하자. 신이 웃었다.
“그럼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는데요?”
“너랑 비슷해. 윤회의 끝자락에 도달한, 그래. 폐급 영혼들이 그렇듯.”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지만 나와 비슷하다면 얼추 짐작은 갔다.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다가 퍼뜩 떠오른 의문점을 던졌다.
“이 사람도, 저도 똑같은 폐급이라면 사람들이 절 싫어하는 것도 같은 거 아니에요?”
“네 영혼에 내 은총을 넣어줄 거야. 그러면 평범한 영혼이 돼.”
“그럼 사람들이 이유 없이 절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고.”
이건 조금 흔들리는데……. 상처만 받고 접어버린 꿈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다. 누군가와 평범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걸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 무엇보다 널 도와줄 가이드가 생겨. 너는 게임을 좋아했으니 네 취향에 맞게 게임식으로 준비해 놨지!”
신이 눈을 반짝였다. 지금까지 중 가장 즐거워 보였다. ‘아, 이걸 드디어 사용해 보는구나.’라면서 들뜬 걸 보니 내 의사가 반영된 건 아닌 것 같았다.
난 아직 한다고 대답 안 했는데? 머릿속으로 생각하기가 무섭게 신의 눈썹이 축 처졌다. 처량한 눈으로 날 본다.
잠깐 생각 좀 해보고. 게임식이라. 내 머릿속에 플레이했던 게임들을 떠올랐다.
스탯 같은 게 생기나? 스탯이 있으면 고정이냐 성장형이냐의 차이가 있을 거고. 스킬도 주나? 아이돌 되는데 스킬이 필요한가? 그럼 칭호? 아이템? 펫……은 아니겠고.
여러 게임의 장르가 뒤죽박죽되어 머릿속을 떠다녔다. 뭘 요구해야 초반에 이득을 볼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신이 박장대소했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셨다. 뜯어내려던 속내를 읽었구나.
“초기 지원을 원하는 녀석들이 가끔 나온다더니 정말이군.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어. 나는 처음 만난 거니까 조금 통 크게 해줘도 되겠지. 초기 포인트 1만을 주마. 스탯 등급 올릴 수 있는 거야.”
주절주절 쓸데없는 말은 다 빼고 필요한 정보만 주워 먹었다. 일단 스탯이 있고, 성장형이라는 거군. 1만 포인트가 어느 정도인지 지금으로서는 감이 오지 않았다. 조금 더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에 잽싸게 내 의견을 말했다.
“스탯 하나만 맥스 찍어주시는 건요?”
“그건 안 돼. S+까지 얼마나 많은 포인트가 필요한데?”
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힌트를 투척해줬다. 일단 스탯 하나당 맥스는 S+까지. 그걸 올리려면 포인트가 필요하고. 그럼 등급이 오를수록 요구 포인트가 늘어나겠네. 맥스는 안 찍어준다고 했으니까 1만으로 맥스까진 안 되고, 대충 A 정도려나?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신의 표정을 살폈지만, 딱히 변화는 없었다. 포커페이스 유지가 잘 되는 건지 내 추론이 틀린 건지 알 수 없었다. 1만 포인트로 올릴 수 있는 등급만 알아내면 포인트 획득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1만도 혹하지 않으면 이건 어떠냐?”
“뭔데요?”
“돌림판을 돌리자!”
신이 손가락을 튕기자 돌림판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전부 신을 닮아서인가 보다. 본인이 망했으면서 나한테도 이걸 하자고 하네?
돌림판에는 스탯 종류가 적혀 있었다. 총 21개로 F-부터 S+까지였다. 쓸데없이 공평하게도 전부 같은 비율로 나뉘어 있었다.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