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화 (1/320)

공금

1.

<하드 모드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드, 드디어 깼다!

이 정도면 꽤 상위권이다. 오늘로 며칠째지. 멍한 정신으로 날짜를 가늠해 보면서도 할 일은 착실하게 했다. 녹음된 파일을 편집하고, 기계음을 입히고, 영상을 업로드했다. 보스 공략 포인트와 너튜브 링크를 게시판에 올리고 새로고침 했더니 벌써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인기 있는 게임을 해야 해. 조회수 올라가는 추이를 보니 이번 달 수익도 간당간당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하다. 졸립다.

며칠 동안 먹은 게 없는데 잠이 부족해서 배고프지도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뭐든 주워 먹겠지.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엎어졌다.

순식간에 의식을 앗아간 피곤에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처음 보는 작은 방, 낯선 침대 위였다. 허전할 정도로 가구가 없는 낡은 반지하 원룸이었다.

“여기 어디야?”

당혹감을 그대로 담은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대답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반사적으로 고개가 올라갔다.

“이제 일어났어?”

멀끔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반듯한 자세로 서서 날 내려보고 있었다. 뒤가 툭 잘린 무례한 첫인사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제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 의지로 들어온 건 아니거든요…….”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딱히 표정 변화가 없어서 서둘러 말을 이었다.

“빨리 나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침대에 누워 퍼질러 자기까지 했다. 집주인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하겠어. 괜히 경찰에 신고해 끌려가는 것보다는 빨리 사과하고 나가는 게 급했다. 내 쪽에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피력해야 했다.

이 황당한 상황은 집에 가면서 생각 좀 해보고. 생각한다고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다행히 집주인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쪽에서 주먹을 올린대도 입도 뻥끗 못 할 상황인데 꽤 너그러운 사람인 모양이다. 초면이라 그나마 다행인 걸지도. 구면이었다면 얻어맞지 않았을까.

일단 빨리 나가자.

손잡이를 붙잡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쇠붙이가 피부에 달라붙는 익숙한 감각 대신 헛손질이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내 손이 손잡이를 통과했다.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 나온다더니 맞는 말이네. 그제야 내 손이 반투명하게 변해 있다는 걸 알았다. 손뿐 아니라 몸 전체가 반투명했다. 내 몸을 통해 반대편에 놓인 사물을 보는 건 구역질 나올 정도로 기괴한 경험이었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나와 대화했던 남자를 떠올렸다. 이런 나에게 평범하게 말 걸었던 사람을. 고개를 돌리자 고아한 자세로 서 있는 남자가 날 보고 웃었다.

“이제 대화 좀 할까?”

“……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요.”

본능적으로 이 남자가 열쇠라는 걸 깨달았다. 왜 낯선 곳에서 깨어난 건지, 왜 내 몸 상태가 이런 건지. 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

죽은 건가? 라고 생각하기엔 난 그저 게임 하나를 클리어한 뒤 잠들었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뭐 꿈이려나. 꿈이라고 하기엔 감각이 너무 현실적이지만, 꿈이 아니라면 이렇게 몸이 반투명하게 변해 버리는 상황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정답에서 우회하네.”

“네?”

앞뒤 맥락 없는 말에 남자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비현실적인 생각이지만 저 남자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답에서 우회한다.’는 말이 나온 거고. 그렇다면 내 추리 중 하나가 정답에 근접했다는 건데…….

‘꿈’이 우회한 거라면 내가 죽었다는 뜻?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전개 아닌가, 이거.

“꿈이 아니래도.”

“그럼 제가 죽은 거예요?”

“그렇지.”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수 없는 말이라서 눈을 끔벅거렸다.

“어쩌다요? 죽을만한 짓은 안 한 것 같은데.”

내가 자는 사이 집에 불이라도 났나? 그게 아니면 강도가 들어와서 칼로 찌르기라도 했나?

하지만 가스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전자레인지로 해결했으니까. 강도가 들어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단 나는 집을 나가지 않으니 모든 문은 꼭꼭 잠겨있다.

게다가 우리 집은 흔하디흔한 원룸이었다. 이 집이랑 거의 비슷한 크기의. 강도가 침 흘릴 만한 곳이 아니다.

“과로사.”

죽은 원인을 추리하던 중 남자가 대뜸 정답을 알려줬다. 아직 젊고 나름 건강한 27살에 과로사가 웬 말이냐?

“허. 과로요? 제가요?”

한 일이라고는 게임밖에 없는데? 나는 듣보 게임 너튜버로서 생계를 위해 열심히 게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과로사라니?

“네가 잠든 이후의 모습이야.”

남자가 대뜸 내게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지만 커다란 손이 내 머리에 올라오는 게 더 빨랐다.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영상이 틀어진 것처럼 또렷한 환영이 보였다.

내 방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 빨리 감기라도 한 것처럼 창문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이 빠르게 어두워졌다가 환해지고, 다시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은 점차…….

“우웩. 그만 볼래요!”

머리에 얹힌 손을 치우면서 고개를 돌렸다. 썩어가는 나를 보는 건 무척 불쾌했다. 비집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몇 번 참았더니 이번에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통증을 호소했다.

“어으, 죽었다면서 왜 아픈데요?”

“그 몸은 아직 살아 있거든.”

“투명한데요?”

“일시적으로.”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상황이니.

“그럼 당신은 누군데요?”

“내 이름은 데우스. 직급은 신. 데우스나 신이나 편할 대로 불러도 돼.”

“정말 신 맞아요? 악마 아니고?”

데우스라는 이름의 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세상에 악마가 어딨냐?”

그쪽은 신이라면서요?

“내가 신인 건 맞지만 악마는 없어. 너희들이 만들어낸 공상 속에나 있는 거지.”

“그럼 뭐 지옥이라던가 천국이라던가 이런 것도 없어요?”

“없어. 영혼 모아서 뭐 해? 귀찮기만 하지. 빨리 윤회 돌리는 게 나아. 관리할 영혼이 얼마나 많은데.”

뭐랄까. 만약 내가 신을 믿었다면 어마어마한 배신감이 느껴질 것 같은 발언인데.

“그럼 저는 왜 여기 있어요? 저도 환생하는 거예요?”

환생 전 면담 뭐 그런 건가. 다음 생에는 뭐가 되고 싶으냐. 이런 거?

“아니. 너는 닳고 닳은 마지막 영혼이야. 윤회의 끝자락에 도착한.”

“닳고 닳았다니……. 표현이 너무 하시네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뭘 해도 안 됐지. 차라리 무시하면 좋을 텐데 알 수 없는 배척과 공격을 받았고.”

“…….”

남의 아픈 기억을 콕콕 쑤셔 대는 신 때문에 속이 쓰라렸다. 나라고 방구석 폐인으로 수익도 잘 안 나오는 너튜브 채널이나 운영하면서 돈에 허덕이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싫어했다. 한때 아이돌을 꿈꿨던 건 그래서였다.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이 정말 눈부셔 보였으니까. 사랑받고, 사랑을 돌려주고. 서로에게 애틋한 친구가 있는. 그런 관계가 부러웠다. 많은 사람에게 나를 노출하면 한 명쯤 받아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광기의 한 종류였을지도 모른다. 극한까지 몰려서 비이성적이고 멍청한 선택을 한 거지.

연습생에 합격했다가 방출되기만 두 번. 세 번째로 들어간 신생 기획사에서 간신히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꿈에 부풀어 보낸 시간도 잠시였다.

그룹은 3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았고, 나는 너 때문에 망한 거라는 멤버들의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한 줌 단인 팬덤에서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건 다른 멤버들의 악성 개인팬과 안티들 뿐이었다. 그것도 극성 안티.

어쩌다가 한 번씩 예쁜 팬레터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 안에 쓰여 있는 건 나를 미워하는 목소리뿐이었다. 가끔 죽은 동물 사진이나 저주 인형 사진 같은 것도 왔다. 작은 회사는 그조차 검열 없이 내게 전달해 줬다. 나중에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실패했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기에 먹고 살기 위해 게임 너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벌어들이는 생활비는 소소했지만, 게임 자체는 좋아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답받을 수 있는 세계,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 NPC.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 결말이 과로사일 줄은 몰랐지만.

생각해보니 최근 언제 잠들었는지, 언제 먹었는지가 가물가물했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씁쓸한 삶이었네. 이렇게 끝내긴 아쉬웠지만 죽었다는데 어쩌랴. 내 몸이 그렇게 되는 걸 보기도 했고.

고독사한 내 시체를 발견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어쩌면 백골화될 때까지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냄새나니까 이웃집에서 신고하지 않을까.

아무런 도움 안 되는 상념이 무럭무럭 뻗어 나갈 때 신이 끼어들었다.

“더는 윤회에 들지 못하는 영혼은 모두 너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왜요? 왜 나를 싫어하는데요?”

살면서 가장 궁금한 의문이었고,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소멸할 영혼이니까. 살아 있는 것들이 소멸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지. 인간 또한 짐승인지라 본능이란 게 있거든. 무서우니까 짖는 거야. 다른 영혼의 마지막도 똑같으니 공평하다고 봐야지. 네 영혼도 누릴 수 있는 건 모두 누린 다음이니까.”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는 소리였다. 그저 순번이 돌아온 것뿐이라고. 데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무던한 어조로 말했다.

“자, 그럼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부터 내 용건을 이야기해 볼까?”

“아, 네에.”

솔직히 관심 없다. 내 삶이 고독했던 이유가 허무할 뿐이다.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다. 공평하다고 해도, 누릴 만큼 누렸다고 해도 내 기억에 없는 일이니 내 것은 아니잖아? 진짜 신인지 아닌지 알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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