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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 거물과 스타들이 만들어 내는 상호작용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이 서슴없이 기부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이 기부했던 금액 이상을 뽑아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상대의 명함 하나가 몇만 달러보다 값어치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가 아닌 사람들도 이곳에 참여했다.
특히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인이나 로비를 해야 하는 인물들의 경우는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기업인 미쓰부시였다.
미쓰부시는 일본의 사채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이었다.
사채시장에서 커서 자동차 산업까지 손을 뻗친 미쓰부시는 남아도는 돈을 주체 못 해서 금융산업에도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일본은 전형적인 마이너스 금리 기조.
그들이 눈을 돌린 것은 바로 미국 시장이었다.
트럼프의 자선 행사에 참석해 주변 인물을 살피던 미쓰부시의 상무, 토리야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곳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의 큰손인 장경자와 최크루지였다.
미쓰부시 내에서는 미라클이라는 이름보다 장경자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재빨리 몸을 숨긴 토리야마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 * *
장경자는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 모습이 마치 모아이 석상 같았다.
외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변함없는 인상이 그렇다는 말이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뛰는 가슴을 주체 못 하고 있었다.
외환 쪽에 능통하다는 최크루지와 왔지만, 이곳은 낯설기만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도 손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물꼬를 트기 위해 기부를 했지만,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와서 인사를 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동네 약수터를 가도 모르는 사람끼리 식사는 했냐는 인사를 한다.
이곳에는 그런 정은 없었다.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분주히 대화를 나누지만, 그들의 눈에는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최크루지는 장경자에게 자신만 믿으라고 큰소리쳤다.
자신이 뉴욕에 쌓아 놓은 인맥이 장난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최크루지와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웠다.
최크루지는 쉬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장경자는 사람들의 표정을 감상했다.
한참 동안 사람들을 관찰하던 장경자가 말했다.
“역시 자본주의의 시조는 다르구만.”
“할멈, 얘네들 중에 한국어 잘하는 애들도 있으니 티 내지 마.”
말을 마친 최크루지가 힐끔 웃더니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아무래도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은 것 같았다.
그는 건장한 체격의 금발의 사내를 장경자에게 데려왔다.
“헤이,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미리클의 장 회장님이시라고요…….”
“흠.”
장경자는 헛기침하며 최크루지를 바라봤다.
왜 미라클을 팔았냐는 뜻이었다.
최크루지는 그냥 빙긋 웃으며 눈짓했다.
미라클을 팔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헛기침을 한 장경자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장경자라고 해요.”
그녀의 영어는 제법 유창했다.
상대방이 활짝 웃었다.
“참, 제가 소개를 못 했군요. 저는 트럼프라고 합니다.”
최크루지가 데려온 것은 다름 아닌 이 자선 행사의 주인공인 트럼프였다.
장경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어요. TV프로그램에도 나왔잖아요. 유행어도 만드셨고…….”
“하하, 유행어라니 기억이 나네요.”
트럼프가 활짝 웃었다.
그 유행어는 트럼프의 상징과 같은 단어였다.
바로 ‘Fire!’라는 말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출연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자들을 향에 붉게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파이어!’라고 말이다.
물론 파이어는 해고를 뜻하는 말이었다.
트럼프에게 이 말을 들은 탈락자는 당연히 고개를 숙이며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그 장면이 강렬한 덕에 트럼프의 이 유행어는 방송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유행어를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먼 나라에서 온 상대가 자신의 프라이드와도 같은 유행어를 알아주자 진심으로 기뻤다.
그때 최크루지가 검지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조용히 트럼프에게 속삭였다.
순간 트럼프의 눈이 커졌다.
최크루지가 가리킨 스크린은 오늘의 기부 명단이 나와 있었다.
보통 자선 행사라면 총액만 발표하지만, 트럼프는 예능 감각이 뛰어난 경영자였다.
자선 행사에 참가한 이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행사의 등수를 매긴 것이다.
철저한 자본주의에 입각한 행사였다.
그런데 지금 1등의 옆에는 ‘JANG’이라는 영문이 표시되어 있었다.
바로 장경자의 이름이다.
금액은 무려 5만 불.
사실 1등을 노리고 거금을 투척한 것은 아니었다.
최크루지가 그 정도는 해야 위신이 선다고 해서 투척한 것이다.
최크루지의 얘기와는 달리 장경자보다 더 많이 기부한 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번 기부 행사의 메인 이벤트는 일반 기부가 아닌 경매 기부라고 들었다.
다른 이들은 경매에 참가하기 전까지 총알을 아껴 두고 있었던 것.
경매가 이어지면 저 순위도 바뀔 것이 뻔했다.
경매로 발생하는 수익 전부가 기부금으로 잡히니 말이다.
그때였다.
장경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알파벳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 자리에는 대신 ‘TORIYAMA’라는 알파벳이 떠 있었다.
장경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비록 저 순위가 메인 이벤트인 경매로 넘어가면 바뀔 것이 뻔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토리야마란 이름이 왠지 눈에 익숙했다.
장경자가 의문을 피워 낼 때 누군가 트럼프의 옆으로 다가왔다.
순간 장경자의 눈이 커졌다.
상대가 미쓰부시의 임원이라는 것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미쓰부시의 토리야마는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금융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장경자 때문에 돌아간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장경자는 토리야마가 이곳에 온 목적이 자신과 같음을 눈치챘다.
그건 눈치가 아니라 본능이었다.
토리야마는 누군가와 함께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금발의 젊은 사내들이었다.
토리야마는 그들과 꽤 친한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는 토리야마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젊은 친구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트럼프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들이 자신의 앞에 올 때까지 참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손을 흔들었다.
“오, 제니스 브라더스!”
“헬로우.”
제니스 브라더스라 불린 친구들이 트럼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번개처럼 인사가 오가고 토리야마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트럼프 대표님.”
“누구…….”
트럼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니스 브라더스는 알아도 토리야마는 처음 보는 듯했다.
제니스 브라더스를 볼 때는 환하게 웃던 그가 토리야마를 보고는 눈썹을 꿈틀댔다.
경계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때 제니스 브라더스의 리더 켄이 토리야마를 소개했다.
자신의 후원사 중 하나라고 하면서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했다.
그리고 저 스크린의 1위 자리에 있는 토리야마가 바로 그라고 했다.
순간 트럼프의 표정이 말랑말랑해졌다.
이야기의 주도권은 토리야마가 가져갔다.
행사의 주최자를 단번에 낚아챈 것이다.
토리야마는 눈을 빛냈다.
물론 모든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트럼프의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제니스 브라더스였다.
아들이 좋아하는데, 그 부모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을 노리고 재빨리 그들을 섭외한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제니스 브라더스에게 미쓰부시의 신차 광고에 대한 제안을 했다.
계획에 없던 제안은 아니었다.
제니스 브라더스는 미국 내의 보이 그룹 중에서도 가장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덕분에 일본의 광고를 제법 많이 가져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장경자와 최크루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최크루지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려고 하면 토라야마는 재빨리 주제를 트럼프의 아들에게 돌렸다.
그렇게 주제를 돌리고 나면 화제는 다시 제니스 브라더스 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트럼프가 사인까지 부탁했다.
그 모습에 장경자는 표정 관리를 못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한일전에서만큼은 질 수 없다고 생각한 장경자였다.
축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돈도 한일전에서만큼은 질 수 없었다.
장경자는 최크루지에게 눈짓했다.
기부금 액수를 조금 더 높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신호였다.
최크루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 대화의 주도권은 돈으로는 빼앗아 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트럼프의 주변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스포츠 스타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명 배우까지 몰려들자 그 뒤를 정재계 인사들도 따랐다.
트럼프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교류의 장이 형성된 것이다.
장경자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것은 비즈니스의 실패였다.
조금 더 상대를 조사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거기에 상대를 토리야마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어질어질했다.
장경자의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건 오랜만에 겪는 패배였다.
그때였다.
트럼프를 둘러싼 원에 살짝 균열이 갔다.
그 균열의 사이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의 사내였다.
그들을 본 트럼프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입술을 달싹이고 있던 것.
그들이 가까이 오자 트럼프가 외쳤다.
“오마이갓, 제이든!”
“오, 반가워요, 트럼프. 전에 방송에서 뵌 적 있죠.”
“물론 기억나지, 그때 다시 한 번 보자고 약속해 놓고 10년이 지났네.”
“하하, 죄송합니다.”
“요즘 신곡 정말 잘 듣고 있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어. 한 이십 년은 젊어진 기분도 들고 말이야.”
“과찬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초대하려고 연락했는데 도통…….”
“어쩌다 보니 매니저도 바뀌고 정신없었네요.”
“어쨌든 잘 왔어.”
트럼프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제이든은 트럼프와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뉴 키즈의 리더 제이든이었다.
트럼프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다른 멤버는 어디에 갔나?”
“소중한 친구가 온다고 해서 파티 홀 앞에서 기다라고 있어요.”
“친구라니?”
“네, 이번 곡을 작곡해 준 친구예요.”
“혹시 빌보드 1위를 찍은…….”
“네, 맞습니다. 그 친구가 이곳에 온다고 하기에 저희도 다급하게 온 거라서요.”
제이든의 말에 트럼프가 눈을 빛냈다.
제니스 브라더스가 그의 아들이 좋아하는 그룹이라면 뉴 키즈는 트럼프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었다.
즉, 자신의 아이돌이라는 뜻이었다.
비록 나이는 들어서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중년이 된 그들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뉴 키즈는 그 매력을 완벽하게 살려 냈다.
바로 이번 앨범을 통해서 말이다.
덕분에 그 앨범의 타이틀 곡은 빌보드 1위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