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43화 (243/250)

(243)

그 지원서를 본 윤장미와 장소담은 눈물까지 흘렸었다.

그 정도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회원 하나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모두의 의견을 종합해서 뽑았던 것이 블랙사랑포에버였다.

그런데 그게 황미주였을 줄이야. 거기에 저런 차림으로 나타날 줄이야.

황미주의 이름은 동생 장소연을 통해서 대충 들었다.

장소담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황미주가 걸어왔다.

장소담이 앞에 도착한 황미주는 멈칫했다.

그것도 잠시, 장소담을 바라보던 황미주가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러더니 장소담에게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한다.

어찌나 공손한지 마치 불상 앞에 절을 하는 듯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덕분에 장소담은 반사적으로 봉투를 받았다.

장소담이 봉투를 받자 황미주가 배시시 웃었다.

“언니, 그거 제주도 하이스 호텔 평생 숙박권이에요.”

“하이스 호텔?”

“네, 장미 언니 거는 여기 있어요.”

황미주는 윤장미에게 가더니 조심스럽게 봉투를 건넸다.

이쯤 되자 장소연은 눈에서는 용암처럼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돈으로 아이들을 휘젓고 다니더니 하다못해 블랙홀 팬 카페에까지 들어와서 이 같은 만행을 저지르다니!

이건 장소연이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소연이 부글부글한 눈으로 황미주에게 달려가려고 할 때였다.

황미주의 동작이 더욱 빨랐다.

황미주는 신아영과 백희자 그리고 오유정에게 봉투 하나씩을 건넸다.

봉투를 받은 운영진들의 눈은 한계까지 커졌다.

장소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봉투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꼬리…… 아니 돈 봉투 아홉 개 달린 구미호에게 모두가 홀린 느낌이었다.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것으로 봐서 벌써 황미주라는 구미호에게 넘어간 것이 분명했다.

역시 자본주의의 힘은 대단했다.

장소연은 이를 부득 갈며 황미주를 쏘아봤다.

황미주는 살기 가득한 장소연의 눈빛에 미동조차 하지 않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냥 손이 아니라 이번에도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건 네 거.”

“…….”

당황한 장소연이 반사적으로 봉투를 받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황미주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너는 차기 회장이니까, 하나 더!”

“이게 뭐야?”

“뇌물이야.”

“뇌물?”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야, 나 이거 구하려고 늦은 거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황미주는 아침부터 있던 일을 빠짐없이 털어놨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문송에서 경영하는 하이스 호텔의 평생 숙박권부터 시작해서 문송 그룹에서 운영하는 하이스 항공권까지 말도 안 되는 회원권이었다.

사실, 그녀의 선물 공세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운영진 후보를 뽑는 회원 투표에서도 기프티콘 폭탄 세례를 퍼부었다.

선거에서 승리하라면 어정쩡한 돈으로는 안 된다는 할아버지 황 회장의 조언 때문이었다.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선물 세례를 한 황미주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장소연에게는 아예 상품권이 두둑이 든 봉투까지 덤으로 건넸다.

갑작스러운 뇌물 공세에 모두는 당황했다.

이 정도 뇌물이라면 대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황미주에게 반대급부로 줄 물건이 없었다.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보이자, 황미주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건 나를 운영진에 남아 있게 해 달라는 뇌물이야, 소연아.”

“왜 그런 뇌물을 주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가장 무서운 적은 친구로 만들라고.”

“내가 무서운 적이라고?”

“아니, 너 말고…….”

“그게 누군데?”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 도와주겠다고 말하면 그때 얘기해 줄게.”

이쯤 되니 기가 찰 정도였다.

학교에서도 콧대 세기로 유명한 것이 바로 황미주였다.

그런데 무서운 적이 있으니 도와 달라고?

장소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스토킹이라도 당하는 거야?”

“무, 무슨 말이야?”

“그게 아니고서야 네가 무서울 게 뭐가 있어?”

“그게 아니라, 친구로 만들어야 할 사람이 있어서 그래.”

황미주의 표정은 단호했다.

마치 광택제를 발라 놓은 것처럼 눈, 코, 입이 초롱초롱 반짝이는 것 같았다.

단호한 그녀의 표정에 장소연이 손을 내저었다.

“너 사생이니?”

“그게 무슨 말이야?”

“블랙홀 오빠들을 왜 친구로 만들려고 그래?”

“블랙홀 오빠들 때문에 여기 가입한 거 아닌데?”

“엥?”

“나는 유레카에 있는 다른 사람 때문에 가입한 거야. 나는 그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야 해. 그러니까 도와줘.”

“대체 그게 누군데?”

“지난번에 우리 학교에 왔던 유레카의 이도훈 매니저.”

“실장 오빠 말하는 거야?”

“너 벌써 그 매니저님하고 오빠 동생 하는 사이야?”

황미주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황미주의 뒤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그림자가 있는 쪽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친구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야, 우리 할아버지가 이기지 못할 적은 친구로 만들라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도와…….”

황미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뒤쪽에 있는 것은 카페 운영진이 아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황수영이었다.

황수영은 다짜고짜 황미주의 귀를 잡았다.

“앗, 언니!”

“너, 잠시 나하고 얘기 좀 하자. 어디 조용한 데 가서…….”

황수영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것도 잠시 뒤쪽에 있던 도훈에게 미소를 띤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다녀올게요, 호호.”

그 말을 남기고 황수영이 사라졌다.

도훈은 점점 멀어지는 둘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떻게 된 거예요?”

“황수영과 황미나는 먼 친척 정도 되는 관계라고 할까? 황백석 회장이 문송에서 식품하고 패션 쪽만 분리해서 나온 건 다 알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서 흔적은 희미해졌지만, 두 집안은 같은 뿌리야. 그러니 친척 언니 정도 되는 거지.”

“그런데 황 매니저가 왜 그렇게 흥분한 겁니까? 자세히 들어 보니 뭔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요. 조금 과한 뇌물을 쓴 건 맞지만요.”

“흠, 내 생각인데…….”

“네, 실장님 생각은 뭔데요?”

“아무래도 과한 화장 때문이 아닐까? 고등학생치고는 조금 지나치잖아.”

“그럼 복장 단속. 뭐, 그런 건가요?”

“황 매니저가 옛날에 선도부였다고 하던데, 그때 기질이 나온 게 아닐까?”

도훈은 고개를 돌려 황수영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물론 이것은 도훈의 오해였다.

황수영이 과잉 반응한 것은 황미주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황수영은 그의 할아버지 황백석처럼 약탈자의 DNA를 타고났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강탈당하는 취미는 없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한민국은 도훈의 말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사이에 장소연과 오유정은 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입술을 지우기 시작했다.

신아영과 백희재는 아예 화장실로 달려갔다.

옅지만,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

화장 한번 했다고 저렇게 죽일 듯이 끌고 갈 줄은 누구도 몰랐다.

*    *    *

황수영이 나타난 것은 정확히 10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황미주는 황수영의 뒤에서 순한 양이 된 듯 따라오고 있었다.

쥐어 터진 흔적은 없었지만,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봐서 멘탈이 갈가리 갈린 것이 분명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것은 카페 운영진 모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물론 끝날 때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황수영이 어릴 때부터 친척들 사이에서는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황강천도 기획사 간의 경쟁으로 번지기보다는 황수영의 선에서 끝내 버릴 수도 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황수영 덕분에 화기애애하게 공식 팬 카페의 첫 번째 행사가 끝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민국이 룸 미러를 힐끔 보다니 물었다.

“룰렛 멤버 둘이 빠지면 다들 고등학생이잖아요, 괜찮겠어요?”

“괜찮아.”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한민국이 다시 물었다.

“애들끼리 두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오늘 참석 못 한 분이 하나 있어.”

“아까 들어 보니 매의눈인가? 무슨 고문이라고 하는 분요?”

“그래, 그분이 알아서 잘 케어할 거야.”

“네? 그 회원을 알아요?”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저도 안다고요? 혹시 유레카 직원이에요? 그거 들키면 욕 좀 먹을 텐데…… 지난번에 다른 팬 카페도 운영진 중에 기획사 사람 심어 놨다가 욕먹었잖아요.”

한민국이 미간을 좁혔다.

기획사 직원이 팬 카페에 상주하는 것은 당연했다.

홍보팀의 경우는 아예 시간마다 팬 카페의 동향을 체크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운영진에게는 자율성을 주는 게 맞았다.

운영진의 대나무숲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통적인 팬 카페의 운영 방식이었다.

팬 카페 회원끼리 소속사도 욕하고 매니저도 욕하고…….

그런데 고문이 아닌 사람이라니?

한민국의 걱정 가득한 표정을 보고 도훈이 피식 웃었다.

“유레카 사람이 아니라 미라클 사람이야.”

“네!”

한민국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을 이었다.

“엄 비서님.”

“컥.”

한민국이 사레라도 걸린 것처럼 헛기침했다.

*    *    *

같은 시간, 장경자의 집.

커피 향에 표정이 말랑말랑해진 장경자의 앞으로 엄지연이 지나갔다.

그런데 엄지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미간은 좁히며 계속 귀를 매만지고 있었다.

순간 마시멜로처럼 풀어졌던 장경자의 표정이 부은 지 한참 된 달고나처럼 굳어졌다.

달콤해 보이면서도 딱딱한 표정이었다.

걱정 반 호기심 반이라는 뜻이었다.

장경자에게 엄지연은 어떤 존재일까?

몇 달 전까지 비서와 친딸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재계에서 왕자의 난이라는 불리는 이세훈과 이세영의 반란이 일어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친자식보다 엄지연이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저렇게 묘한 표정을 지으니 걱정도 되고 호기심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엄 비서, 표정이 왜 그래?”

“귀가 간지러워서요. 누가 제 얘기하나 봐요.”

“흠, 누가 엄 비서 욕을 한다고 그래, 날 욕하면 몰라도.”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회장님을 왜 욕해요?”

“내가 욕먹을 짓을 많이 한 건 맞잖아.”

“회장님 아니면 죽을 사람도 많았죠. 죽인 사람보다 살린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저울이 어디로 기울까?”

“회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은 저울을 안 보고 사람을 본다고요. 그런 면에서 회장님은…….”

“에이 됐다, 엄 비서야. 또 입에 발린 소리 하려고 그래? 참, 다음 달 일정은 어떻게 됐어?”

“네, 뉴욕 쪽 자선 행사부터 시작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최크루지 영감한테도 말해 두고.”

“벌써 그쪽에는 체크해 줬어요. 일주일 간격으로 알람 맞춰 놓게 다시 체크할게요.”

“그래, 늙으면 자꾸 깜빡하니까. 계속 확인해야 해.”

“설마 최 회장님이 해외 일정을 깜빡하시려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