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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문이 열리면 안에 있는 병사들에 당할 것이 블랙홀이라는 점이었다.
황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그때 블랙홀의 옆에 도훈이 나타났다.
도훈이 블랙홀은 거들떠보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눴다.
도훈과 대화를 나누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훈이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며 오케이 신호를 보내며 다시 창가 쪽으로 갔다.
창가 쪽으로 간 도훈이 손을 뻗었다.
순간 블라인드가 쭉 내려오더니 창문을 닫았다.
당황한 것은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지, 지금 뭐지?”
“안쪽이 안 보이는데…….”
“이게 뭐야?”
사람들이 눈매를 좁히며 창가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모습에 황수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 상의할 사람이 필요했다.
황수영은 재빨리 2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상황에 가장 편하게 상의할 사람이 한유라였다.
디링, 디링.
계속 신호음이 가지만, 한유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30여 초가 지나서야 한유라가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황수영이 한유라에게 사정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문이 열렸다.
덜컹.
창문을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도 쭉 올라갔다.
촤르륵.
그 모습에 황수영이 말했다.
“팀장님, 다시 전화 드릴게요.”
황수영은 일단 전화를 끊고 사태를 지켜봤다.
일을 크게 만들면 안 좋다는 것은 이 바닥의 법칙이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이스크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뭐지?”
“어, 어디 간 거야?”
“분명히 블랙홀이 있었는데?”
“여기 뒷문도 없잖아.”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몇몇은 포기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았다.
그중 극성팬들은 포기 못 하겠다는 듯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갔다.
“말 좀 물어볼게요. 여기 있던 블랙홀 어디 갔어요?”
“화장실이 급해서 간다고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못 올 것 같다고 하던데요.”
“아, 그럼…….”
“방금 문이 열릴 때 번개처럼 튀어 나가던데요. 꼭 육상 선수 같았어요. 그 정도 속도라면 100M 세계신기록은 확실…….”
“아, 됐어요.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주세요.”
갈증이 난 극성팬은 입맛을 다셨다.
“뭐로 드릴까요? 일단 용량부터…….”
아르바이트생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주문을 받았다.
극성팬은 아무렇지 않게 주문했다.
아이스크림까지 받은 극성팬이 돌아섰다.
극성팬은 사소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르바이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게를 떠났다.
사람들이 빠지자 황수영이 다급하게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블랙홀을 보기 위해서 들이닥쳤던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다가 황수영을 지나쳐간다.
그중 하나가 황수영에게 말을 걸었다.
“늦었어요.”
“늦다니요? 그게 무슨…….”
“블랙홀 보러 온 거라면 늦었다고요. 급하게 나갔대요.”
“아, 제가 조금 늦었네요. 헤헤.”
황수영이 실없이 웃자 지나가는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히 여기에 있었는데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그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매장 안쪽을 쓱 살폈다.
그러던 그는 조용히 아이스크림 가게를 빠져나갔다.
이제는 듬성듬성 아이스크림을 먹는 손님들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쯤 되니 황수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수영은 매장을 두리번거리다가 계산대 쪽의 점원을 바라봤다.
이전에 봤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눈에 익은…….
황수영은 재빨리 도훈에게 달려갔다.
“도훈 씨!”
“아, 이제 오셨네요.”
“그런데, 복장이 이게 뭐예요?”
“상황을 조용히 넘기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있던 점원분은 어디 있는 거예요? 아니 그보다 블랙홀은 어디로 사라진 거예요?”
“이건 당분간 수영 씨만 아셔야 합니다.”
“제가 누구한테 말해요. 괜히 떠들었다가 또 험한 꼴 당하려고요?”
“한 명은 저기 있어요.”
도훈은 고개를 숙이고 아이스크림을 정리하고 있는 점원을 가리켰다.
황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봤던 아르바이트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매장 안이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는 다름 아닌 우시원이었다.
이제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점원이 다름 아닌 우시원이었던 것.
순간 황수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대체 여기 있던 점원은요?”
“저기 블랙홀 멤버들과 같이 있어요.”
도훈이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젊은 친구들이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황수영의 입에서 자동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이 가게까지 피했던 그들이 저렇게 편하게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자세히 보니 점원으로 보이는 남녀 말고 사람이 더 있었다.
황수영이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도훈이 눈을 찡긋했다.
“아직 사람이 남아 있으니까. 조금 이따 가요!”
“앗,”
“그건 그렇고…… 수영 씨는 뭐 드실래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이스크림요.”
* * *
도훈과 황수영은 블랙홀 멤버들을 데리고 근처의 한정식집으로 이동했다.
개방된 곳에 있다가는 같은 일이 되풀이될 거 같아서였다.
한정식집에는 블랙홀 멤버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도훈에게 도움을 줬던 남녀 아르바이트 대학생 두 명과 아영과 희재라는 고등학생도 같이 자리를 했다.
물론 그들은 부모님께 허락까지 받은 상태였다.
황수영이 그들의 부모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신분은 안 밝히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준 보답이라고 했다.
음식이 나오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
이제는 상 위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대화를 대신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들어요.”
“비싼 것 같은데…….”
아영 학생이 조심스럽게 음식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아까 우리 친구들을 도와줬잖아요. 그러니까 많이 먹어요.”
“그,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예요?”
아영 학생이 도훈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그제야 옆에 있던 친구도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던 대학생도 도훈을 바라봤다.
위기에 순간에 그들을 구한 게 바로 도훈이었다.
침착하게 블라인드를 내리고.
남녀를 나눠서 손님인 척 문 앞쪽에서 대화를 나누게 하고.
능숙하게 점원 행세까지 한 사내가 바로 도훈이었다.
대학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배우 맞죠? 아까 보니까 연기가 너무 능숙했어요.”
“배우는 아니고 매니저예요.”
도훈이 씩 웃으며 블랙홀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두 명의 대학생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박!”
“진짜 매니저예요?”
그들의 질문에 답한 것은 우시원이었다.
우시원이 뿌듯한 얼굴로 도훈을 가리켰다.
“우리 매니저 형 맞아요.”
“맞아, 우리 실장 형이에요.”
서찬휘도 도훈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우시원이 남자 대학생을 보고 물었다.
“혹시 누나 있어요?”
“누나라니요?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아는 형이 하나 있는데요. 잘생기고 돈도 많고…….”
이전에 아영에게 했던 말을 그대였다.
마치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도훈이 서찬휘에게 물었다.
“쟤 왜 그래?”
“그, 그게…… 실장 형한테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준다고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저러네요.”
그때였다.
누군가 젓가락을 소리가 상 위에 내려놓았다.
딱!
소리가 제법 컸기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에 쏠렸다.
젓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은 범인은 멍하니 모두를 보고 있었다.
그 소리는 황수영이 낸 것이었다.
주현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괜찮아요?”
“난, 괜찮아. 그런데…….”
“왜요? 혹시 배 아파요?”
“그게 아니라, 실장님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줄 필요 없다고.”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누나가 소개시켜 준다는 그분은…… 악!”
주현빈은 말을 맺지 못했다.
황수영이 그의 앞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도훈이 웃었다.
“수영 씨 말대로 이제 괜한 짓 하지 마. 나랑 수영 씨랑 사귀기로 했거든.”
“네?”
우시원이 눈을 크게 뜨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너무 닦달하셔서 일단 이렇게 말해 놓기로 한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도와줘.”
“아.”
탄성을 터뜨리던 우시원이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사람이 있는데 괜찮겠냐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다들 비밀 지켜 주실 거죠.”
도훈의 눈빛에 두 명의 대학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덤 속까지 비밀을 가지고 가겠습니다.”
“저도요.”
그들의 과장된 대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사실 우시원이 걱정할 일은 없다.
매니저의 연애사에 신경 쓰는 팬은 없기 때문이다.
뭐, 그들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영과 희재는 신기하다는 듯 블랙홀 멤버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졸지에 팬 미팅 자리가 된 식사 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했다.
물론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부로 앓던 이를 뺀 도훈은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도훈은 고맙다는 눈빛으로 황수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수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산적을 오물거리며 넘겼다.
* * *
식사가 끝난 후 도훈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들에게 명함을 건넸다.
도훈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대학생 두 명은 블랙홀의 팬 카페에 가입한 후 자리를 떠났다.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다고 하며 한 행동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아영과 희재는 도훈이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때였다.
아영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도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실장 오빠! 큰일 났어요.”
“아영 학생, 왜 그래?”
“아까, 지하상가에서 벌어진 일의 악의적인 게시 글이 올라왔어요.”
“악의적이라니?”
“직접 보세요.”
아영 학생이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핸드폰을 받은 도훈은 게시 글을 살폈다.
〈얘들아! 아까 진짜 황당한 일 겪었네. 코엑스 지하상가를 걷다 보니 블랙홀이란 아이돌을……. 댓글 수(2,343)〉
도훈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일단 댓글 수에서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영이 악의적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블랙홀 멤버를 보러 가다가 누군가 자신을 밀쳤다면서 멍이 든 팔을 찍어서 게시판에 남겼다.
누군가 아이돌이 직접 밀쳤을 리가 없다고 하자, 매니저가 그랬다고 반박까지 했다.
사실은 아니지만, 그 게시 글 아래로 매니저를 비난하는 댓글이 쭈르륵 달렸다.
└와, 인성 보소. 매니저가 벼슬인가?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매니저가 팬을 폭행해?
└블랙홀 매니저가 누구야?
└그 유명한 친구 있잖아, 스타플레이어에도 아이돌 대타로 나왔었잖아!
└그래, 그 친구 오늘 코엑스에서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