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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침에 교장 선생님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교장 선생님이 느끼기에 이건 방송 사고였다.
다른 교사들도 뜨악한 표정으로 가필드의 장혁을 바라봤다.
아이들에게 움직이면 죽는다니!
사실 장혁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방송에서도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 내는 그였으니까.
문제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아이들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겁에 질려 뒤로 주춤 물러서는 아이까지 있었다.
방송이 송출되기 전 편집에서 삭제되겠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대로 묻을 수 있던가?
학생 중 몇 명은 벌써 핸드폰의 녹화 버튼을 누르는 이도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장혁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교장 선생님이 내는 먼지가 장혁과 가까워지고 있을 때였다.
장혁이 피식 웃으며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내 미소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 멘트에 여기저기서 헛숨이 흘러나왔다.
학생 중 누군가가 외쳤다.
“진짜 죽는 줄…….”
“저거 농담 아니야. 혁이 형은 죽인다면 진짜 죽일 거야. 아니, 저 형 한마디면 가필드의 흑풍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아, 그렇지!”
그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이 기운이 빠진 듯 멍하니 장혁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진시현 작가를 만나기 위해 오케이 한 일이었다.
그다음은 뉴 키즈에 대한 팬심으로 스타 맛집을 승낙했다.
그런데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카메라가 한두 대가 아니고.
한꺼번에 모인 학생들을 잘 챙길 자신감도 급격히 떨어졌다.
옆을 힐끔 보니 어느새 도훈이 와 있었다.
도훈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교장 선생님?”
“아니…… 괜찮아요.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뭐, 방송에서 포인트를 주려면 저런 애드리브도 괜찮죠. 자기 관리는 철저히 하는 친구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학생들이 말하는 흑풍대는 또 뭔가요? 무슨 테러 집단인가요?”
놀란 교장 선생님은 질문을 쏟아 냈다.
그 모습에 도훈이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을 번갈아 봤다.
팬덤 중에서도 가장 극렬하다는 것이 가필드의 팬들이었다.
그중 리더 격에 속하는 조직이 바로 흑풍대였다.
흑풍대의 원조는 만화 속에 나오는 충성도 높은 호위대의 이름이었다.
현실에서는 가필드의 호위대였다.
거기에 더해 ‘악으로 깡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낸 것도 흑풍대라고 알려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가장 많은 분란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들이었다.
이걸 늘어놓자면 한 시간으로도 부족했기에 도훈이 짧게 답했다.
“가필드 중에서도 장혁을 좋아하는 모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어감이 조금…….”
그때였다.
잠잠하던 학생들의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우리가 왜 장혁 말을 들어?”
“그래, 가필드 팬도 아닌데, 우리가 왜 순한 양이 되어야지?”
짜장 반 짬뽕 반처럼 분위기가 묘하게 뒤섞였다.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다시 표정을 굳혔다.
뭔가 생각난 교장 선생님이 다급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장혁을 통해서 저들의 소란을 막았기에 기대하고 있는 것.
도훈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도훈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미스트의 자현이 있는 곳이었다.
시선을 받은 자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 구른 게 몇 년이던가.
탑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눈치를 얼마나 보았던가?
눈치 백 단 자현이 달려가서 장혁의 마이크를 낚아챘다.
“흠, 마이크 테스트!”
자현의 목소리가 울리자 소란은 멈췄다.
그 모습에 표정을 푼 자현이 외쳤다.
“혁이 형 말대로 질서를 지켜 주세요. 안 그러면 앞으로 콘서트에 출입 금지시킬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알고 출입 금지할 거냐고 웃는 학생도 있겠지만, 지금 카메라가 몇 대일까요?”
자현은 말을 멈추고 학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학생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본 학생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씩 웃는 자현.
그 옆에서 장혁이 어깨동무를 하자 학생들의 눈은 더욱 커졌다.
“말도 안 돼!”
“원래 저렇게 친했어?”
“이건 완전히 위 아 더 월드네!”
갑자기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지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한숨을 내쉰 교장 선생님이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임시 푸드 코트에 입장 못 한 학생들을 바라봤다.
사실 도훈도 정해 놓은 계획은 없었다.
대충 상황을 보니 황금만능주의는 일단락된 것 같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애타게 장소연을 불렀다.
그 음성에 장소연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친구 오유정이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짓하는 친구의 모습에 장소연이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늦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우리 언니한테 부탁해 볼게.”
말을 마친 장소연이 장소담을 바라봤다.
장소담은 바로 도훈에게 달려갔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보는 것 같은 광경에 학생들은 이곳의 먹이사슬에 대해서 바로 파악했다.
친구들은 일단 오유정의 옆으로 모였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오유정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유정아, 저 언니는 뭐야?”
“저 언니?”
오유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소연의 언니인 장소담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유레카에서 무슨 일을 하는 줄은 몰랐다.
도훈에게 허락을 맡고 온 장소담이 웃었다.
“실장님이 그러는데, 친구 다섯 명까지는 더 들어와도 된대.”
“친구 다섯 명?”
장소연이 그것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누군가 다시 달려왔다.
달려온 이는 장소담의 친구이자 같은 멤버인 윤장미였다.
헐레벌떡 달려온 윤장미가 말했다.
“실장님이 그냥 들어오래. 대신 경품은 없다고 하시네.”
“정말?”
“소연이 처지가 난처한 것 같다고, 뭐 친구 할인이라고 생각하라네.”
순간 뒤쪽에 있던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 * *
5시간 후.
푸드 트럭을 비롯한 촬영팀이 철수 한 교정에서 교장 선생님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스타를 보며 소리치고.
누군가의 공연에 따라다니고.
아마도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오늘은 학생과 같이 하루를 즐겼다.
더욱이 진시현 작가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챙겼다고 생각하니 교장 선생님은 마음이 뭉클했다.
팬이 스타한테 도움을 받다니!
이건 로또 당첨 이상이었다.
마지막에 이 실장이라는 사람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약속 하나만 하면 2학기 때 다시 온다고 했다.
그 약속이라는 것은 간단했다.
사이좋게 지낸다면 다시 온다고 했다.
덕분에 학교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오죽했으면 학부모에게 감사 인사까지 받았을까.
사실 간식 타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블랙홀과 미스트 그리고 가필드의 짧은 공연까지 있었다.
그들의 노래가 끝나자 뉴 키즈의 간단한 인사도 이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짧은 공연에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불렀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 관계상 모든 아이의 부모가 온 것은 아니지만, 운 좋게 이곳에 온 학부모들은 계 탔다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연 중 가장 인기가 좋았던 무대는 다름 아닌 유레카의 신생 그룹인 룰렛의 공연이었다.
룰렛의 멤버는 장소담과 윤장미라는 친구였다.
처음 보는 친구들인데, 교장 선생님이 듣기에 목소리가 기가 막혔다.
왠지 어떤 곡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음색을 지닌 친구들이었다.
마치 팔색조 같다고 할까.
교장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온라인 카페 하나를 개설하였다.
〈룰렛 사랑〉
자신도 모르게 팬 카페를 개설하게 된 것이다.
* * *
유레카의 대회의실.
갑작스러운 외출을 마치고 온 도훈 일행은 대회의실에 모여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필드의 장혁은 블랙홀의 멤버들에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이제는 완전히 무대가 자기 집처럼 편한가 봐…….”
“뭐, 형 덕분이죠.”
서찬휘가 넉살이 좋게 활짝 웃으며 장혁의 팔짱을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보던 미스트의 장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살폈다.
자현은 오늘에서야 장혁의 말을 이해했다.
장혁은 도훈에게 빠져든 이유가 곡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도훈의 옆에 있으면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현이 느낀 것은 안정감은 아니었다.
사실 본의 아니게 오늘 학교에 끌려갔을 때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천재 작곡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오늘 출연한 스타 맛집은 번외편이라 설명을 들었다.
그곳에서 장혁과 대선배인 강영웅이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상황에 몰입했었다.
그것도 잠시 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은 휴식기였다.
연습하지 않다 보니, 오늘은 목과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살짝 걱정도 했었다.
비록 한 곡이긴 하지만 대중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대였다.
자현은 학교에서의 짧은 무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군가는 용돈을 아껴서 자신의 앨범을 사 주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은 끝까지 안 풀렸다.
그때 도훈이 다가와 걱정하지 말라면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순간 묘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 자신감이 무대에서 폭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시간 관계상 한 곡만 불렀지만, 마음 같아서는 노래와 안무를 쭉 이어 나가고 싶었다.
도훈이 자신에게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자현이 보기에 도훈은 중독성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도훈이 자현의 앞에 다가왔다.
“오늘 수고 많았어.”
“아니에요, 선생님.”
오늘 일을 겪다 보니 선생님이란 호칭이 입에 붙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손을 저었다.
“장혁처럼 그냥 실장님이라고 불러. 괜히 누군 선생님이라고 하고 누군 형님이라고 하면 나도 내가 헷갈려.”
“풉.”
자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이곳까지 같이 온 장소연이 소리 질렀다.
“언니들!”
“왜 그래?”
놀란 장소담이 동생에게 달려갔다.
“언니, 이거 봐요. 팬 카페 생겼어요.”
“팬 카페?”
장소담이 눈을 크게 뜨자 블랙홀의 우시원이 다가와 손뼉을 쳤다.
“누나들 축하해요.”
도훈은 그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 키즈의 녹음 때문이었다.
뉴 키즈는 유레카의 별관에 마련된 녹음실에 미리 가 있기로 했다.
도훈이 빠져나가자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손을 저었다.
“뉴 키즈 녹음 때문에 그러니 난 신경 쓰지 마.”
“뉴 키즈 선배들이랑 녹임이요?”
장혁이 눈을 가늘게 뜨자 블랙홀의 서찬휘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거 우리 피처링 필수잖아요.”
“아니, 내가 잠시 봐주면 간단하게 끝날 것 같아.”
“저도 갈래요.”
서찬휘가 손을 번쩍 들자 다른 다른 친구들도 손을 들었다.
“저도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모두가 똑같이 손을 들었다.
뒤쪽에서 멀뚱히 서 있던 자현도 손을 들었다.
이건 한마디로 군중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