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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30화 (23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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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을 지운 제이든은 앞장서서 교실이 있는 건물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제이든, 2학년 2반 교실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아!”

    제이든이 입을 벌렸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한국의 건물 자체가 낯선 제이든이었다.

    대충 몇 반이라고 듣긴 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물만 세 개였다.

    그는 건물 세 군데 중 어디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벌레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입을 벌린 제이든의 옆으로 도훈이 지나갔다.

    피식 웃은 도훈은 제이든의 어깨를 두드린 후 앞장섰다.

    *    *    *

    자신 있게 나온 도훈도 학교 건물에서 헤매고 있었다.

    사실 도훈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보통 1학년이 있는 층 위에 2학년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가 아니던가?

    이 고등학교의 학년 및 반 배치는 묘하게 되어 있었다.

    분명 2학년 1반을 찾았는데, 다음 2학년 2반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군가 숨바꼭질을 하려는 듯 일부러 이렇게 배치해 놓은 느낌이다.

    하지만 상황은 낯설지 않았다.

    이런 배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제법 흔히 볼 수 있으니까.

    뒤쪽에서 따라오던 제이든은 배를 잡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도훈도 모르는 것이었어요. 나는 도훈이 당당하게 앞장서기에……. 잘 아는 줄 알았는데!”

    “그나마 나였기에 실패를 빨리 발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제이든.”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답하자 제이든이 약점을 잡았다는 듯 파고들었다.

    “오, 도훈도 그런 변명 하네요. 처음으로 인간적인 면을 봐요, 하하.”

    둘이 투덕거리고 있을 때 진시현이 지나가는 선생님에게 물어보더니 달려왔다.

    “이 실장님,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래요.”

    진시현은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그들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뒤쪽 건물로 가야 했다.

    본래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음지가 있는 법이었다.

    실제로 있는 음지일 수도 있고 추상적인 의미의 음지일 수도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던 그들은 두 가지 모두의 음지를 마주해야 했다.

    다음 건물로 가려고 하는 도중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성이 오갔기 때문이다.

    도훈은 뒤쪽에서 따라오는 제이든과 진시현을 향해 손을 들었다.

    잠시 멈추라는 신호였다.

    진시현도 멀리서 나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확신은 못 하겠지만, 작가님이 말씀하신 ‘설마’에 가까울 것 같다는 직감이 드네요.”

    “그냥 지나치기는 좀 그렇고 확인하러 가 볼까요?”

    진시현이 조심스럽게 그곳을 가리키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 보죠.”

    진시현과 텔레파시가 통한 것이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제이든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떠올린 것은 학교 폭력이었다.

    사실 도훈과 진시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곳에서 조용히 취재만 하고 돌아간다는 약속은 지켜야 했다.

    증거를 잡아서 교장한테 넘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었다.

    교장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으니, 한번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훈은 최악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고성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건물의 구석.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곳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도훈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여학생이었다.

    남학생도 섞여 있긴 했지만 소수.

    이곳이 남녀공학임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확히 세 개의 무리로 갈라져 있었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제이든이 그들을 보며 나서려 하자 도훈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나섰다가는 일만 크게 만들 수 있었다.

    도훈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듣고 보니 대충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들은 지금 누가 최고의 아이돌이냐를 두고 싸우고 있다.

    무리 셋 중 하나는 미스트의 팬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필드의 팬덤이었다.

    조금 놀라운 것은 숫자는 적지만, 블랙홀의 팬덤도 이번 전쟁에 참전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이건 놀라움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블랙홀의 팬덤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악으로 깡으로’가 캐치프레이즈인 가필드의 팬덤.

    ‘최고 존엄으로’를 내세우고 있는 미스트의 팬덤.

    그런데 블랙홀의 팬덤은 그 존재 자체가 희미했다.

    조금 마음이 아픈 것은 블랙홀의 팬을 자처하는 아이들이 동네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  *  *

    학생들은 어딘가를 바라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야, 블랙홀이 낄 자리는 아니잖아.”

    “맞아, 블랙홀이라니 웬 듣보잡?”

    미스트와 가필드의 팬들이 동시에 공격하자 머리를 질끈 묶은 여학생 하나가 나왔다.

    “우리 언니가 블랙홀 팬 카페 회장이거든! 그 오빠들이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데!”

    “증거 있어?”

    “방송에서 들어 보면 알잖아.”

    “너 라이브 가 봤어?”

    “…….”

    여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블랙홀의 라이브를 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나마 라이브를 직접 경험한 언니가 말해 줘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소연.

    도훈의 눈에 들어 유레카와 깜짝 계약한 장소담의 동생이었다.

    사실 장소담은 블랙홀이란 그룹보다 유레카 자체가 좋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민까지 결심했었던 가족이었다.

    조금 남은 돈으로 아르헨티나로 가서 조그만 가게를 차리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희망이었다.

    사실 국내에 남아 있어도 되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속 보증을 서 달라는 친척들이었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것이 바로 유레카의 대표였다.

    유레카의 대표는 그녀의 언니 장소담에게 놀랄 만한 계약금을 건네줬다.

    재미있는 것은 계약금과 정산금에 대한 특약 사항이었다.

    특약 사항에는 돈을 통장에서 뺄 때는 자문 변호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그 자문 변호사 덕분에 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언니가 장산시청의 공연에서 블랙홀을 만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기연이 있을까.

    장소연에게 유레카의 대표는 신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을 만들어 준 블랙홀과 뉴 키즈는 신의 사자고 말이다.

    물론 뉴 키즈는 미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감사를 표할 방법이 없었다.

    유레카 소속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블랙홀의 열성 팬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소연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필드와 미스트의 팬들이 맞붙은 토론에 끼어든 것이다.

    누가 최고의 그룹이냐를 두고 벌이는 그들의 토론은 종이 쳤는데도 멈출 줄을 몰랐다.

    사실 그들은 체육 시간을 틈타서 이런 토론을 벌이게 된 것이다.

    다행인 건 학생들 사이에 블랙홀의 팬이 장소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소연은 지금 최고가 아닌 미래의 최고라고 블랙홀을 대신해서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필드와 미스트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틈을 보이지 않았다.

    미래에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것.

    그때였다.

    누군가 앞으로 나왔다.

    약간은 차갑게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장소연의 앞에 다가왔다.

    사실 그녀는 이곳에서 설전을 벌이던 학생이 아니었다.

    모두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을 때 코웃음을 치며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들이 벌이는 설전이 어이없는 듯 비웃음을 머금었다.

    천천히 설전을 벌이던 무리 사이를 헤집고 다가온 여학생.

    모두는 홍해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본 장소연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녀의 이름은 황미주였다.

    황미주는 그야말로 금수저를 입에 물다 못해 머릿속 깊숙이 새긴 친구였다.

    어찌 보면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쪽이 맞을 수도 있었다.

    장소연은 황미주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 관계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악연이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초등학교 때부터 황미주와 같은 학교에 배정된 장소연은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학교 배정 자체가 램덤이기 때문이다.

    황미주가 장소연을 싫어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장소연 때문에 전교 1등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중학교 마지막 시험도 장소연이 전교 1등 황미주가 전교 2등이었다.

    가장 짜증 나는 것은 장소연을 볼 때마다 황미주가 시비를 건다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걸어온 황미주가 장소연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블랙홀이 최고가 될 거라고?”

    “맞아, 몇 년 후에는 블랙홀 오빠들이 최고가 될 거야.”

    “그래? 그렇다고 치자.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몇 년 뒤에 너는 뭘 할 건데?”

    “그게 무슨 말이야?”

    “블랙홀이 최고의 그룹이 된다고 하자, 그때 어떤 식으로 팬심을 나타낼 거냐는 거야. 혹시 지금처럼 입씨름하고 있을 거야?”

    “…….”

    장소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런 식의 공격은 정말 이가 갈렸지만, 대꾸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대답하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공격해 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 논리를 장소연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황미주가 펼치는 논리는 황금만능주의였으니 말이다.

    황미주의 배경이 우리나라 최고 재벌이라는 문송 그룹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바로 문송의 황 회장이었으니, 황미주의 황금만능주의 논리에 반기를 들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황미주기 말을 이었다.

    “팬 사인회 가려면 앨범을 몇 장이나 사야 할까?”

    “…….”

    장소연은 말할 수 없었다.

    팬질이라는 게 끝없는 현질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팬 사인회에 초대받을 만큼의 앨범은 과연 몇 장일까?

    그때 황미주가 말을 이었다.

    “나는 앨범은 한 장만 사. 초대권 때문에 복권을 긁는 건 시간 낭비잖아. 나는 그냥 초대권을 사면 되거든. 그게 얼마가 됐든 나는 살 수 있으니까.”

    그 여학생의 말에 모두가 대화를 멈췄다.

    한마디로 돈이 없으면 팬질할 자격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야, 너무한 거 아니야?”

    “너, 내가 미스트 팬 사인회 초대권 주면 같이 갈 거잖아. 능력 있는 자만이 팬질할 권한이 있는 거야, 얘들아.”

    “아!”

    반박하려던 학생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여학생은 장소연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런데 너는 그 앨범 하나로 얻을 수 있는 확률도 기대 못 하지. 너희 집 망했잖아.”

    “…….”

    장소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언니 장소담의 계약금 때문에 한숨 돌린 것은 사실이지만, 집이 전처럼 정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때 참다못한 장소연이 말했다.

    “나도 블랙홀 오빠들 앨범은 한 장만 사. 왜 그런지 알아? 그 오빠들이 나한테 팬 사인회 초대권 주기로 했거든.”

    물론 거짓말이었다.

    언니한테 부탁해 보면 어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일단 지르고 본 것이다.

    그때 황미주가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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