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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26화 (22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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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장경자의 대답은 도훈이 예상한 답이 아니었다.

    놀란 도훈의 모습에 장경자가 씩 웃었다.

    “오해는 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서 뒤통수 맞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럼 저를 왜 못 믿으세요?”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자 장경자가 웃었다.

    “이놈아, 다 이유가 있으니 그러지…….”

    “말씀해 주세요.”

    “네가 가진 돈으로는 네 꿈을 펼치지 못할 거 같아서 그러지.”

    “에이, 고작 그런 이유였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허, 이놈 봐라. 다 컸다 그거지?”

    “다 컸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실 저 돈 많아요.”

    도훈이 씩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장경자에게 숨겨 둔 밑천을 모두 드러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 때문에 걱정할 시기는 지났다.

    황강천과 SW 인수를 위한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SW엔터의 인수가 앞으로의 계획에서 필수 선택은 아니었다.

    적당히 가격만 올려놓고 빠질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 유레카도 정상 궤도로 올라간 상태였다.

    케이넷도 이제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

    결론은 현재 상황에서 자금을 걱정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되었다.

    그 모습에 장경자가 씩 웃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아니지요.”

    도훈이 미간을 좁혔다.

    왜 빵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장경자가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도훈의 표정에 장경자가 활짝 웃었다.

    “그렇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

    “네, 맞아요.”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학적인 이야기든 현실적인 이야기든 어찌 빵만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정답이다.

    물론 다른 의미에서도 정답은 똑같았다.

    종교 혹은 철학적인 측면에서의 대답도 역시 아니라고 해야 이야기가 통한다.

    대답을 마친 도훈은 그다음 장경자의 말을 기다렸다.

    장경자가 피식 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대한민국은 빵이다.”

    “네?”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대한민국이 빵이라니!

    아무래도 도훈은 장경자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대한민국이 빵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철학적인 이야기에서의 정답도 아니었다.

    도훈은 장경자의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장경자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본은 돈가스고 중국은 짬뽕이다. 물론 그놈들 음식에 대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네, 말씀하세요. 할머니.”

    “내가 본 너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미식가다. 아마도 국내 시장을 먹어 치우면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넘보겠지?”

    “…….”

    도훈은 말없이 장경자를 바라봤다.

    장경자는 도훈을 미식가로 표현했다.

    그것도 아주 먹성이 좋은 미식가.

    도훈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장경자가 도훈을 손자가 아닌 경영자로 인정한 것이다.

    장경자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뭐 그리 놀라나? 내가 널 너무 잘 꿰뚫어 봐서 놀라나?”

    “놀리지 마세요.”

    “내가 보기에는 네놈 배 속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니 뜻을 펼쳐 봐라…….”

    “저는 이 정도면 만족하는데요.”

    “거짓말!”

    살짝 목소리를 높이는 장경자.

    그런데 입가에 피어난 미소는 점점 진해진다.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도훈은 적당히 맞장구치기로 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장경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심인데요.”

    “그러는 놈이 그리 많은 돈을 숨겨 놨더냐?”

    “돈이라니요?”

    “여의도에서 소문 다 났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얘기다.”

    “헉.”

    도훈이 입을 딱 벌렸다.

    장경자가 말한 여의도는 증권가를 말함이었다.

    그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도훈의 밑천 중 반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소문이 다 났다는 것은 도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었다.

    도훈의 반응에 장경자가 웃었다.

    “뭘 그리 놀라? 지난번에 늙은이들끼리 모여서 설렁탕 한 그릇 먹었을 때 얘기다. 누군가 그러더구나. 사람으로 돈을 잘 버는 젊은 친구가 하나 있다고 말이다.”

    “혹시 그게 저인가요?”

    “눈치는 빨라 가지고……. 이러니 이 할미가 재미가 없지. 그러니까 어떤 할아범이 콧방귀를 뀌더구나. 돈으로 사람을 벌 수는 있어도 사람으로 돈을 벌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가기 증명해 보이겠다고 하더구나.”

    “증명이요?”

    “그래, 자기 손자를 시켜서 말이다.”

    “혹시…… 지금 문송의 황 회장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이쿠, 역시 내 손주네.”

    장경자가 활짝 웃었다.

    장경자가 설렁탕을 같이 먹었다는 할아버지들은 그룹의 총수들인 것 같았다.

    머릿속에 장경자와 회장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자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도훈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자 장경자가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웃어? 우리 손주 지금 이상한 상상 하고 있는 건 아니지?”

    “국내를 쥐락펴락하는 회장님들이 등산로 입구에 모여서 설렁탕 드신다고 생각하니 웃겨서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설마 그분들이 문송이나 미라클의 회장님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것 아니에요. 그리고…….”

    도훈이 살짝 말끝을 흐리자 장경자가 호기심이 동한 듯 고개를 살짝 뺐다.

    “뭐, 궁금한 거 있니?”

    “다른 건 아니고 문송의 황 회장님 말이에요. 항상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할머니한테는 엉뚱한 얘기만 하시니 웃기죠.”

    “기업가도 배우와 다를 바 없다. 우두머리는 그들이 보기 원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법이지. 너도 훌륭한 연기자가 됐으면 한다!”

    “네, 할머니.”

    “그건 그렇고 황 회장이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어떻게 알았어?”

    “얼마 전 황강천이라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오, 벌써 들이밀기 시작했나 보구나.”

    “들이밀다니요?”

    “나하고 살짝 말다툼이 있었거든. 누구 손주가 더 잘났는지를 말이다.”

    “아…….”

    “그리고 그 할아범하고 내가 내기도 했어. 누구 손주가 잘났는지 삼 개월 뒤에 만나서 결론짓기로 말이다. 물론 평가는 다른 노인네들이 하기로 했고.”

    “내가라면 판돈도 있겠네요.”

    “내기에서 진 사람이 그때 밥값 책임지기로 했다. 뭐, 그때는 갈비탕을 먹으니 돈이 조금 더 나오려나?”

    장경자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도훈도 이제야 상황을 알 것 같았다.

    황강천이 자신에게 왜 접근했는지.

    거기에 왜 하필이면 연예계인지.

    아마 문송의 황 회장 성격에 같은 분야에서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을 끝낸 도훈은 입을 크게 벌렸다.

    황강천이 투자한 돈이 떠오른 것이다.

    문송과 황강천이 쏟아붓는 돈을 모두 합하면 갈비탕이 몇 그릇이나 나올까?

    아니, 황강천은 자신이 갈비탕 몇 그릇 때문에 그렇게 구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도훈은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피워 냈다.

    그러고는 장경자를 향해 말했다.

    “그 내기에서 갈비탕을 얻어 드시는 건 할머니일 거예요. 그건 제가 장담할게요.”

    “우리 손주가 뭔가 있는 모양이구나.”

    “뭐, 자세한 건 도장 찍고 말씀드릴게요.”

    “도장이라…….”

    장경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도훈은 장경자와 대화를 끝내고 그녀의 저택에서 나왔다.

    차로 걸어가던 도훈은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흐려서 그런지 밤하늘에는 별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 둘…….”

    도훈이 일곱까지 셌을 때 더는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이나정점에 오른 연예인 모두 스타라고 한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스타는 모두 몇 명일까?

    대충 보니 지금 보이는 별과 자신이 데리고 있는 스타의 숫자가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구름에 가려 안 보이는 별이 더 많은 법이었다.

    “별을 더 키워야 하나…….”

    도훈은 피식 웃었다.

    지금 있는 스타들을 글로벌 스타로 만들고 싶은 것이 도훈의 마음이었다.

    장경자가 재계에 복귀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을 지원하겠다는 뜻이었다.

    장경자도 이제는 사람으로 돈을 만드는 재미를 안 것 같았다.

    도훈을 통해서 말이다.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불이 켜진 거실을 바라봤다.

    장경자가 커피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사색에 잠긴 듯 커피잔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계획을 그리는 것이 분명했다.

    장경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훈을 위해서 말이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 보면 국내 사채시장으로 복귀한 것은 아니었다.

    최크루지라 불리는 최 회장과 함께 국제 사채시장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말이 사채시장이지 이건 펀드를 운용하는 형태였다.

    국내를 넘어서 아시아 시장을 점령할 수 있을까?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장경자의 능력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코가 석 자였다.

    돈은 필요 없다지만, 황강천과의 경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괜히 뒤통수가 근지럽게 만드는 것은 도훈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도훈은 황강천이 연예계에서 발을 떼게 하고 싶었다.

    *    *    *

    삼 일 후.

    황강천을 떠나보낼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증시에서 만기일 네 개. 즉, 선물, 주가지수의 옵션과 선물, 개별 주식의 옵션과 선물 등 네 가지 파생 상품의 만기일이 동시에 겹치는 날을 쿼드플 위칭데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네 마녀의 날이다.

    프로그램화된 매매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큰손들이 장난을 치는 관계로 주가가 요동칠 때가 많다.

    이런 날이면 누군가는 큰돈을 벌기도 하고 누군가는 주머니가 탈탈 털리기도 한다.

    도훈은 바로 오늘이 네 마녀의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모솔전쟁과 소환하라 1987이 맞붙는 날이었다.

    거기에 더해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오늘 몰려 있었다.

    바로 SW 인수에 관한 결과가 오늘 나온다.

    유레카의 회의실로 향하던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디링.

    도훈은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보통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송에서 SW를 먹었어요. 인수 확정. 익일 기사화…….

    그 메시지를 본 도훈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도훈의 표정을 본 황수영이 물었다.

    “이 실장님, 무슨 문자에요?”

    “황강천이 SW엔터를 가져갔대요.”

    “황강천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해요? 지금 우리 발등에 불 떨어진 거 아니에요?”

    황수영이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진심으로 불안해하는 모습에 도훈이 조용히 웃었다.

    결코 비웃음은 아니었다.

    진심이 묻어난 웃음이었다.

    도훈을 데뷔시키기 위해 할 수 없이 동업을 시작하게 된 황수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훈보다 더 열정적으로 유레카와 케이넷을 바라보고 있다.

    도훈의 웃음에 황수영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뭔가 있죠?”

    “역시 눈치는 빠르네요, 정답입니다.”

    “정답이라니요? 아, 궁금하단 말이에요.”

    “일단 가서 보여 드릴게요.”

    도훈이 앞을 가리켰다.

    그곳은 회의실로 가는 복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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