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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25화 (2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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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진시현이 도와 달라니?

이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큰 문제일 수도 있었다.

과연 무슨 문제이기에 이렇게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볼까?

목울대를 한번 꿀렁인 도훈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재력이든 권력이든 제가 동원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뭐든 도와드릴게요.”

이건 진심이었다.

약간은 과장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도훈은 이번만은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김다솜과 정재웅의 이야기까지 밑밥으로 깐 것을 보면 도훈의 신분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훈의 신분, 즉 장경자의 손자라는 것을 알고 부탁하는 일이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은 아니었다.

도훈은 말없이 진시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진시현의 눈빛이 살짝 흔들더니 마치 재미있는 개그 코너를 본 것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이 실장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인맥이 있어도 제가 더 많고 돈이 있어도 제가 더 많아요. 왜 이 실장이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요?”

“아, 혹시나 하고요…….”

“이 실장한테 그런 부탁할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거예요. 이 실장이 인맥이나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부탁해야지. 내가 무슨 벼룩의 간을 빼먹는 빌런도 아니고.”

진시현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너무 앞서 나간 것이 맞는 것 같다.

진시현의 태도를 보면 그저 유레카의 매니저 말고 다른 신분은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왜 일개 매니저에게 이런 부탁을 할까?

혹시 케이넷과 협상에서 전권을 쥐고 있다는 언질을 받아서일까?

케이넷과의 협상은 도훈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물론 실무자로서 진행한 것이지 회사의 대표로서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진시현이 팔짱을 끼더니 도훈을 바라봤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맹수의 눈빛이다.

뭐지?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진시현이 말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나 집필 좀 도와줘요. 딱 까놓고 말해서 월급은 줄게요. 나 좀 보조해 줘.”

“저 보고 보조 작가를 하란 말씀이신가요?”

“보조 작가라고 하니 괜히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냥 나랑 동업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스토리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래요.”

“그걸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요?”

“김다솜 작가가 그러던데…….”

“대체 뭐라고 했기에 그러시는 거예요?”

“초원의 집 작업할 때 뼈대서부터 살붙이는 과정까지 모두 이 실장이 했다고요.”

“아.”

“내가 정재웅 감독하고 김다솜 작가한테 물어봤다고 했죠?”

“네, 그러셨죠.”

“그쪽에서 그러는데 이 실장은 매니저가 아니라 작가를 해야 했다고…….”

진시현은 끊임없이 도훈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나리오 집필 때 도훈이 대부분을 도와줬던 것이 맞았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도훈이 도와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생에 김다솜은 초원의 집을 집필했고 미래는 아는 도훈은 거기에 맞춰서 기억을 끄집어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훈의 영향 때문인지 전생에 봤던 ‘소환하라 1987’과는 살짝 전개가 달랐다.

하지만 도훈이 관여할 사항은 아니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오롯이 진시현의 몫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손을 내밀어 온 것이다.

도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가님 솔직히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부분은 발 벗고 나설게요. 그런데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는 확신이 안 서네요.”

“내가 진짜 보조 작가처럼 옆에서 같이 집필하자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대화만 해 줘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대화하듯이 말이에요.”

“진짜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김다솜 작가도 그런 식으로 도움을 얻었다던데…… 솔직히 저도 반신반의해요.”

“흠.”

“그런데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지푸라기가 됐군요.”

“호호, 그건 아니네요.”

진시현이 그제야 안색을 찾았다.

도훈도 진시현이 대충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김다솜을 도와줬을 당시 그녀는 도훈의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아마도 진시현이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듯.

도훈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소환하라 1987에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한민국과 이지유가 맡은 배역이다.

본래대로라면 그 배역은 없어야 했다.

그들의 배역이 생긴 것은 모두 도훈의 영향.

즉, 역사가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주연급 캐릭터를 두 명이나 추가하다 보니 전개가 꼬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훈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솔직하게 조언을 해 주기로 했다.

“처음에 작가님 작품을 봤을 때 한민국과 이지유의 배역은 없었잖아요.”

“네, 맞아요.”

“저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면…….”

“지금 둘이 맡은 배역은 뺄 수는 없잖아요. 감독님한테 물어보니까 보내 주신 대본이 4화분이더라고요.”

도훈은 힐끔 정찬성을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정찬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시현도 긍정의 눈빛으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른 건 그대로 두고 처음에 전개하려고 했던 스토리부터 풀어 나가 보죠. 제가 작가님의 초고를 처음 봤을 때는요. 그러니까…….”

도훈은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진시현이 현생에서 쓰려는 이야기는 모른다.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꽉 막힌 곳을 뚫어 낼 수도 없는 일.

도훈은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본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던 진시현이 눈을 끔뻑이며 도훈의 이야기에 빠져들자 주변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진시현을 잘 아는 정찬성은 지금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다.

사실 턱이 빠질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정찬성은 그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진시현의 고집이 보통 고집이던가?

도훈이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밝히자 진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나 처음에 보인 반응은 의심의 눈초리였다.

그것도 잠시, 지금 진시현은 순한 양이 되어서 도훈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웃긴 것은 정찬성도 도훈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는 점이었다.

도훈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총 8부작 분량이었다.

그런데 화마다 끊는 부분에 임펙트가 상당했다.

지금 진시현이 써 놓은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이야기였다.

진시현은 5화분을 쓰다가 막혔다고 했지만, 도훈은 6화 7화 그리고 8화까지 쉴 새 없이 풀어 놓았다.

더 황당한 것은 마치 드라마를 미리 본 듯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것은 도훈의 스킬 때문이었다.

알파벳 ‘M’이 뜻하는 마그네틱(Magnetic).

사람을 끌어당기고 집중시키는 비밀 수첩의 스킬이었다.

사실 도훈은 스킬까지 사용해서 진시현과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중간에 눈빛을 보니 질문을 던지려는 낌새가 보였다.

만약 여기서 토론을 하며 스토리를 잡아 나간다면?

며칠간은 진시현과 동고동락해야 할지도 몰랐다.

도훈은 그냥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결과와 상관없이 자리를 뜨려고 마음먹었다.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면 선택은 진시현 작가의 몫이었다.

여기에서 필요한 조건은 바로 사람들의 집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그네틱 스킬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이야기가 끝났다.

“……제가 작가님의 1화 대본을 보고 떠올렸던 전개는 여기까지예요.”

“나이스!”

진시현이 손뼉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 모습에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전생에 기억을 풀어놨을 뿐인데 다소 과한 반응이었다.

그때 박수를 멈춘 진시현이 말을 이었다.

“김다솜 작가 말대로 대단하네요.”

“대단하다니요?”

“이 실장 얘기를 듣고 나니 막혔던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아요. 제 얘기 들어 보세요. 제가 처음에 기획했던 방향과 지금 집필한 대본의 차이점은…….”

진시현은 입에 펌프라도 달아 놓은 듯 막힘 없이 말을 쏟아 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간단했다.

도훈이 풀어놓은 대략적인 스토리를 통해서 전개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 추가된 캐릭터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아요. 어때요?”

“저는 무조건 작가님의 의견에 찬성이에요.”

“아니, 영혼 없이 대답하지 말고요.”

“진심이라니까요.”

“그런데…….”

진시현이 말끝을 흐리며 도훈을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작가님.”

“제 초기 구상을 어떻게 알았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해 보니 이 실장이 말한 전개는 묘하게 제 초기 구상과 똑같네요. 그런데 제 초기 구상은 정찬성 감독한테도 말한 적 없거든요.”

“…….”

“역시 김다솜 작가 말이 맞네요, 그 친구가 이 실장에 대해서 말하기를……. 작가나 매니저보다 어울리는 직업이 있다고 했거든요.”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점쟁이요.”

“아.”

도훈이 입을 벌리자 진시현이 말을 이었다.

“그런 얘기 많이 듣죠?”

“네, 많이 듣습니다.”

도훈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두 달 후.

음약 예능 ‘추억을 소환하라’가 막을 내렸다.

추억을 소환하라는 꽤 많은 파장을 몰고 왔다.

몇백억씩 안겨 줘야 불러들일 수 있는 해외 톱스타들을 케이블 채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거기에 더해 후반부에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국내의 톱스타들로 무대를 꾸몄다.

물론 시청률 면에서도 같은 기간 경쟁 프로그램 중에서는 군계일학에 가까웠다.

마지막 회차는 무려 12%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블랙홀의 인지도도 급상승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타이틀 곡인 아윌비백은 모든 차트의 탑5 안에 들었다.

이제 1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도훈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사실 시청률이나 블랙홀의 성장이 아니라 장경자의 웃음이었다.

어쨌든 프로그램의 기획은 성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장경자가 일선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이건 도훈도 상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시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장경자가 복귀한 분야는 한정적이었다.

미라클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장경자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채 시장에 컴백한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앞에 둔 도훈이 물었다.

“할머니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봐도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요.”

“허허, 이놈 봐라.”

장경자가 귀엽다는 듯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왜요?”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아니에요. 일에서 손 떼신 지 오래잖아요.”

“네가 못 미더워서 그런다.”

“저를 못 믿어서 일을 다시 시작하신 거라고요?”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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