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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22화 (22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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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성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정여진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정여진이 가리킨 도시락은 네 가지 종류의 도시락 모두였다.

    “이걸 다 먹으라고요?”

    “한창 배고플 때잖아.”

    “아무리 그래도…….”

    정찬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은 양이었다.

    도시락 하나만 해도 양이 넘쳤다.

    그런데 도시락 네 개가 한 세트라니?

    이건 위장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제작진 중 몇은 도시락을 각각 두 종류씩 챙겨 갔다.

    총 여덟 개를 품에 든 스태프가 말했다.

    “선생님 잘 먹을게요.”

    “저도 잘 먹겠습니다.”

    다른 스태프들도 도시락을 한 아름 들고 식사 자리로 향하자 정찬성이 외쳤다.

    “거기 막내, 하나만 가져가. 다른 사람이 먹을 게 모자라잖아.”

    정찬성의 외침에 막내 스태프가 억울하다는 듯 도시락을 제자리에 놓으려고 하자 정여진이 막았다.

    “아니야. 한 명당 두 세트씩이니까, 천천히 먹어.”

    “아, 정말로요?”

    “그래. 천천히 먹고 또 먹어. 내가 오늘은 준비 많이 해 놨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막내 스태프는 표정을 확 펴고 자리로 돌아갔다.

    순간 정찬성은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렸다.

    “아.”

    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정여진의 말대로 20대 초반의 스태프들은 돌이라도 씹어 삼킬 나이였다.

    이 정도로 포식을 하고 나면 촬영에도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그때 도훈이 자신이 주문한 푸드 트럭을 가리켰다.

    “제 것도 있어요. 저는 후식이에요.”

    도훈이 옆을 가리켰다.

    도훈의 푸드 트럭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덕분에 모두는 도훈이 가리키는 푸드 트럭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시락을 모두 나눠 준 정여진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궁금하네. 대체 뭘 준비한 거야, 이 실장?”

    “간단한 후식이에요, 빵하고 커피…….”

    살짝 말끝을 흐리자 정여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트럭을 바라봤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빵과 커피라면 이렇게 트럭을 가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트럭을 가려 놓은 것이 아니라 트럭의 옆면에 암막을 쳐 놓았다.

    누가 봐도 수상한 트럭이었다.

    호기심도 잠시, 제작진 대부분은 정여진이 준비한 도시락을 하나씩 비워 나갔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엄청난 양의 도시락을 그들은 남김없이 비웠다.

    도훈도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즐겼다.

    전생에도 맛보던 도시락이었다.

    스태프들이 도시락을 남김없이 비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여진이 가끔 준비해 온 밥차는 전생에도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정여진의 이름을 딴 도시락까지 나올까?

    그러고 보니…….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여진의 도시락은 미라클의 경쟁사를 통해서 나와서 국내 최고 매출을 기록한다.

    이번에는 경쟁사가 아니라 미라클에서 직접 출시해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생에는 기회를 한 톨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훈은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핸드폰 카메라가 시원한 소리를 뱉어 내며 도시락에 담긴 음식을 맛깔스럽게 담았다.

    그때였다.

    찰칵 소리가 주변에서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마치 영화제의 레드카펫 주변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를 연상시키는 소리 같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이들도 도훈과 비슷하게 핸드폰의 카메라를 눌러 대고 있었다.

    허겁지겁 먹던 이들도 젓가락을 놓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낸다.

    도훈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바로 도훈이 원하던 광경이었다.

    좋은 건 우리만 알고 끝나서는 안 된다.

    널리 알려서 상대가 부러울 정도로 약을 올려야 했다.

    초등학생의 기 싸움처럼 유치하지만, 이런 방법이 먹힌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상대는 모솔전쟁의 제작진이었다.

    이 정도면 유명 호텔의 쉐프가 차려 주는 음식 부럽지 않았다.

    도훈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도 입맛을 당기게 했다.

    그렇게 식사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도훈의 푸드 트럭은 아직도 암막에 가려져 있었다.

    도훈은 식사를 마치고 암막이 드리워진 자신의 푸드 트럭으로 걸어갔다.

    식사를 마친 정여진과 제작진도 도훈의 뒤를 따랐다.

    밥을 먹고 나면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자 현대인에게는 반사작용과도 같았다.

    푸드 트럭 앞에서 멈춘 도훈이 뜸을 들였다.

    그것도 잠시, 도훈이 손뼉을 쳤다.

    동시에 트럭을 가린 암막이 걷혔다.

    암막이 걷히자 푸드 트럭의 위쪽에 자그마한 플래카드가 드러났다.

    <스타 맛집.>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푸드 트럭은 마치 빵집 하나를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가득 쌓인 빵과 케이크.

    더 황당한 것은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안에 있던 것은 강영웅과 그의 딸 다미였다.

    강영웅과 다미는 나란히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정여진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게 다 뭐야, 이 실장?”

    “촬영 기간 사이에 가끔 올 맛집이에요.”

    “맛집이라니? 거기에 왜 다미가 여기에 있는 거야?”

    정여진이 다미를 바라봤다.

    다미가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저 방학이라서 왔어요! 헤헤.”

    “그래도 힘들게…….”

    정여진이 다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친할머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정여진은 다미의 친할머니인 임영희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다미의 아기 때 모습을 아는 이 중 한 명이었다.

    정여진이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자 다미가 말했다.

    “하나도 안 힘들어요.”

    “밥도 안 먹었잖아.”

    “저 배 안 고파요.”

    다미가 손을 휘휘 내젓자 강영웅이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 다미 배 터지려고 해요, 선생님.”

    “다미가 왜 배가 터져?”

    “얘 자세히 보세요.”

    강영웅이 다미의 입가를 가리켰다.

    다미는 입가에 빵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어머, 많이 먹었나 보네.”

    “저도 많이 먹었어요. 확실히 빵은 정심당이 맛있네요.”

    “정심당?”

    “대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정심당 모르세요?”

    “거기는 왜?”

    “여기 있는 빵 모두, 정심당에서 털어 온 거예요.”

    “정심당에서 털어 왔다고?”

    “흠, 그러니까…….”

    강영웅은 기분 좋게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틀 전에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은 정심당의 대표님과 연락한 후 오늘 새벽에 다미와 함께 대전까지 차를 몰고 빵을 실어 온 것까지 꽤 자세하게 이야기를 털어놨다.

    문제는 강영웅의 설명에도 정여진의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정심당에는 왜 내려간 거야? 위험하게 다미까지 데리고 말이야.”

    “위를 보셨잖아요.”

    강영웅이 위쪽을 가리키자 정여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스타 맛집이라고 쓰여 있잖아.”

    “그게 프로그램 이름이에요?”

    “프로그램?”

    “저기 보세요.”

    강영웅이 푸드 트럭의 구석에 붙어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러고 바깥쪽에 있는 카메라도 가리켰다.

    카메라는 푸드 트럭의 구석뿐이 아니었다.

    구석에 있는 카메라는 강영웅과 다미를 담고 있었고 푸드 트럭 밖에 있는 카메라 중 하나는 정여진을 가리켰다.

    정여진은 그제야 손뼉을 쳤다.

    요즘 유행한다는 리얼리티 예능이 분명했다.

    하지만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콘서트나 방송도 바쁠 텐데 프로그램까지……. 감당할 수 있겠어?”

    “저 나머지는 다 줄이기로 했어요.”

    “흠.”

    “이제부터라도 다미하고 많이 놀아 주려고요. 제가 이런 고민을 얘기하니까. 여기 있는 동생이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에요.”

    강영웅이 가리킨 것은 도훈이었다.

    도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형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제가 꼭 무슨 큰일 한 것 같잖아요.”

    “큰일은 맞지. 돈도 벌면서 다미하고 놀아  줄 프로그램이 어디 있어?”

    “뭐…….”

    도훈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이 년 정도만 지나도 관찰 예능, 그중에서도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사실 도훈도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할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푸드 트럭을 소재로 스타 맛집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것.

    앞으로 10회 정도 이어질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맛을 찾아서 현장에 배달할 예정이었다.

    그중 바로 첫 번째 배경이 이곳 촬영장이었다.

    물론 강영웅과 다미가 직접 오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이후에 스타 맛집에 나올 음식들은 이곳 현장에도 배달될 것이었다.

    오늘 촬영분은 케이넷을 통해 이 주 후에 방영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환하라 시리즈도 홍보가 될 터.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는 계획이었다.

    그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스태프들이 몰려 들어왔다.

    강영웅을 알아본 스태프들 중 몇몇은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영웅은 잠시 보류하고 일단 커피부터 나눠 주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은 옆에 쌓인 케이크가 자신들이 퇴근 후 가져갈 선물이라는 것을 안 후, 감격해서 외쳤다.

    “최고!”

    “강영웅 만세!”

    “스타 맛집 만세!”

    그들의 반응에 정여진이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봤다.

    “다 생각이 있었네, 이 실장.”

    “그럼요, 선생님.”

    “저 케이크 중 내 것도 있는 거지?”

    “당연하지요.”

    도훈이 씩 웃자 정여진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이제 모두가 커피와 빵을 들고 후식을 즐기고 있다.

    누가 본다면 밥 들어가는 배와 빵 들어가는 배가 따로 있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정도였다.

    상상하지도 못할 양의 도시락을 비운 스태프들은 빵까지 모두 클리어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도시락과 빵을 들고 자리에 앉아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오직 한 명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한민국이었다.

    한민국의 옆에는 이지유가 심각한 표정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파이팅.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이렇게 기가 죽으면 어떻게 해?”

    “아, 이건 안 되는 게 아니잖아.”

    둘은 친해진 듯 오래된 친구처럼 말을 놓고 있었다.

    이지유가 영화제에 참석하기 전에 비해 더 친해진 것 같았다.

    아마도 동료 배우로서의 신뢰까지 쌓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지유가 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자꾸 하다 보면 다 늘기 마련이거든. 나도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

    한민국이 도시락에 손도 안 대고 어딘가를 바라보자 이지유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밥부터 먹어. 내가 실장님한테 말해서 도와줄게.”

    이지유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순간 이지유가 눈을 크게 떴다.

    이미 도훈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대체 뭐가 문젠데 밥도 안 먹고 그래?”

    “안 외워져요.”

    한민국이 울상이 된 채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대본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대본이 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한민국의 문제인 것 같았다.

    도훈은 재빨리 한민국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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