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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20화 (220/250)

(220)

진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민국을 바라봤다.

“한 매니저가요?”

“네, 그때 실장님은 단위는 절대 말하지 않았어요. 한번 들어 보실래요?”

“듣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찬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민국이 핸드폰을 꺼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천오백이면 괜찮겠습니까?…….

도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정찬성이 진시현을 바라봤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도훈의 목소리에 정찬성은 눈을 크게 떴다.

달러라고 한 도훈의 말을 들은 것이다.

정찬성은 진시현의 눈치를 살폈다.

진시현도 마찬가지로 정찬성을 바라봤다.

어떻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할까를 몰라서였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이거 완전히 한 방 맞았네요.”

“하하, 한 방 맞은 게 우리가 아니라 TVL이라서 다행이네요. 이 실장이 호구처럼 보여서 사실 걱정했거든요. 이제는 조금 안심되네요. 이런 일 있으면 미리 말해 줘요.”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호구라는 이미지는 지워졌지만, 진시현을 위해서라는 진심은 조금 퇴색된 상황.

하지만 진시현의 표정을 보면 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도훈은 한민국의 어깨를 툭 쳤다.

잘했다는 신호였다.

도훈은 이런 문제까지 생각해 놓고 있었다.

협상 때 녹음기 하나 정도 켜 놓는 것은 보험과도 같았다.

도훈은 혹시라도 생길 잡음에 대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한민국이 틀어 놓은 것은 편집본이다.

진실을 덮기 위한 편집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편집했다.

잡음이 생기면 이것을 그들에게 들려주라고 한민국에게 부탁했다.

한민국은 적절한 시점에 대화 내용을 들려준 것이다.

웃음이 탁자 위에 오가고 도훈이 진시현을 바라봤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때였다.

“참, 지난번에 미리 점찍어 놓은 배우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배우라도 제가 섭외하겠습니다.”

“흠, 지금 눈앞에 있어요.”

“혹시 저요?”

“네?”

눈을 크게 뜨는 진시현 작가 덕분에 도훈은 살짝 민망해졌다.

하지만 캐스팅만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했기에 다시 한 번 물었다.

“눈앞에 있다고 하기에요. 남자 배우니 여기 있는 황수영 씨는 아닐 거고…….”

“이 실장과 황 매니저 말고 한 명 더 있잖아요.”

진시현은 손을 번쩍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순간 도훈과 황수영은 석상이 되어 버렸다.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감도 안 잡히는지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진시현 작가가 지목한 이지유의 상대역은 다름 아닌 한민국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도훈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에 진시현 작가가 물었다.

“많이 놀라셨나 봐요.”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남자 배우 중 신인 배우를 원하신다고 하셔서, 저는 꽤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아.”

“그런데 갑자기 일반인을 원하신다니…….”

사실 이점이 도훈의 머릿속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한민국이 배우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민국은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도훈의 운전기사였다.

그 후 도훈과 같이 연예 기획사 일을 하긴 했어도 딱 거기까지였다.

한민국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저를 캐스팅하신다고요?”

“왜 그렇게 놀라요? 원래 이 바닥에서는 이런 길거리 캐스팅은 비일비재하잖아요.”

“어, 그러니까…… 여긴 길거리도 아니고 사무실인데요.”

“그죠, 연예 기획사 사무실이죠. 그러니까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문제는 제가…….”

“연기라면 신경 쓰지 마세요.”

“자, 작가님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제발 얘기해 주세요.”

한민국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진시현을 바라봤다.

눈가가 촉촉한 것이 어미 소에게 떨어져 어디론가 끌려가는 송아지같이 애처롭기만 했다.

“이미지요.”

진시현은 딱 한마디만 했다.

그 모습에 이제는 도훈까지 눈을 빛냈다.

하지만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처럼 조용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모두가 눈을 빛낼 때 정찬성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사실 이지유 배우의 상대역인 3번 남자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에요.”

“그게 뭔가요?”

도훈이 묻자 정찬성이 말을 이었다.

“적당한 어설픔과 적당한 야비함.”

“네?”

“적당한 어설픔은 신인들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으니 문제가 없죠. 그런데 적당한 야비함은…….”

정찬성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민국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 그러니까. 제가 야비하고 보여서 제안하신 거란 얘기잖아요.”

“흠, 그건 그런데 작가님과 제가 보는 야비함은 조금 궤가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요?”

한민국은 이제 완전히 울상이 되었다.

야비함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제대로 꽂힌 듯했다.

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는 팝콘이라도 뜯을 기세였다.

놀람에서 황당함 그리고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이 상황은 흥미진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수영은 어디서 탕비실에서 과자가 들어 있는 바구니를 가져왔다.

황수영의 행동에 한민국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그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정찬성이 말을 이었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야망이죠. 그 야망을 자연스럽게 숨긴…….”

“저 야망 없는데요?”

“숨겼으니까 안 보이는 거죠.”

“…….”

“사실 김주현 배우를 섭외하려고 했던 것도 연기를 못 하는 데다가 적당한 야비함이 보여서였습니다. 소환하라 1987에서 남자 3, 참 이제는 이름이 정해졌죠. 그러니까 성찬이의 직업이 뭐죠?”

“…….”

“모범생이었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가 되죠.”

“그건 저도 읽어 봐서 대충 알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합니까?”

“지금 그대로 하시면 돼요. 딕션도 그대로 성량도 그대로.”

“사실, 제가 바빠서…….”

한민국이 말끝을 흐렸다.

누가 봐도 최후의 수단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나가려는 수작에 진시현 작가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때였다.

황수영이 과자를 한입 베어 물며 끼어들었다.

“한 매니저 일은 제가 다 맡으면 되죠. 그럼 됐죠?”

활짝 웃으며 한민국을 바라보는 황수영.

한민국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였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한민국이 캐스팅되는 과정을 바라봤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가장 놀란 순간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한민국이 연기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도훈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누군가의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냐?’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보며 물었지만, 수첩은 대답이 없었다.

*    *    *

한 달 뒤.

제작 발표회 현장.

소환하라 1987은 제작은 잡음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제작 발표회가 끝나면 이틀 뒤 바로 촬영에 들어가기로 한 상태.

오늘은 제작 발표회를 위해 제작진들이 모두 모였다.

행사가 끝나고 이제는 준비한 음식을 즐길 차례.

제작 발표회장 옆에 준비된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 도훈과 같이 이동하던 진시현 작가의 핸드폰이 울렸다.

디리링.

핸드폰을 잡고 걷던 진시현 작가가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시현이었다.

도훈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진시현의 대화에 집중했다.

진시현의 통화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툭.

진시현이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걸음을 멈춘 채 진시현을 바라보고 있다.

진시현이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모두는 고개를 갸웃한 채 조용히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힐끔 진시현을 살피며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만 바란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진시현이 도훈의 소매를 잡았다.

“이 실장님은 잠시만!”

“네.”

도훈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사람들이 모두 이동하고 둘만 남자 도훈이 물었다.

“작가님, 무슨 일이에요?”

“지난번에 이 실장이 김주현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잖아요.”

“아, 제가 언제 김주현을…….”

도훈은 배우란 호칭도 뺐다.

진시현의 분위기를 봐서는 김주현이 사고를 친 것이 분명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빼는 게 맞았다.

그때 진시현이 팔짱을 끼고 눈을 흘겼다.

“제 눈은 못 속여요. 사실 제가 감동 먹은 건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거액의 출연료를 부른 거예요.”

“아…….”

도훈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데, 거액의 출연료를 부른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확실히 연륜은 속일 수 없는 법이었다.

진시현은 도훈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도훈도 진시현이 그 정도의 의심은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보조 작가 생활까지 포함하면 이 바닥에서 구른 게 몇 년, 아니 몇십 년이었다.

도훈이 준비한 변명을 하려 할 때였다.

진시현 작가가 말했다.

“솔직히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게 뭔지 알아요?”

“혹시……. 그 감동의 원인도 저인가요?”

“네, 맞혀 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대책도 없이 그런 출연료를 지른 거요. 이 실장 그러다 잘리면 어떻게 해요?”

“아, 그 말씀이구나. 저는 괜찮아요.”

도훈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때 진시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감동받았던 건 여기까지고요. 제가 놀란 건 이 실장님의 혜안이에요.”

“혜안이라니요?”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진시현이 말을 이었다.

“김주현이 사고 칠 걸 미리 알고 있었잖아요.”

“사고를 쳐요?”

“지금 모솔전쟁 제작진들 난리 났어요.”

“그럼, 아까 전화 온 게…….”

“은미호 언니요.”

“은 작가님이 직접 전화 올 정도면 심각한 상황인가 보네요.”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TVL의 모솔전쟁은 이미 촬영에 들어가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편성까지 모두 완료된 상태였다.

마치 케이넷을 경계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케이넷이 아니라 진시현과 정찬성을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다.

모솔전쟁의 은미호 작가는 진시현과 제법 친분이 있었다.

은미호가 나이가 많은 덕분에 은미호가 언니로 진시현이 동생으로 지내지만, 둘은 경쟁자 관계였다.

거기에 더해 항상 편성 일자가 맞물리는 바람에 작품의 시청률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둘은 이번만은 피해 가자고 다짐했지만, 대충 상황을 보면 또 비슷한 시기에 맞붙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직접 전화까지 걸어올 정도라면?

심각한 일이 분명했다.

도훈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사실 전생과 지금이 똑같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같은 자동차를 몰고 같은 길을 간다고 해도 타이어 자국까지 일치할 수 없는 법이니까.

도훈의 표정 변화를 확인한 진시현이 빙긋 웃었다.

“심각한 일 맞아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출연료 때문에 제작진이 발칵 뒤집혔대요.”

진시현이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곳은 TVL이 있는 북쪽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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