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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19화 (21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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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를 입에 물고 있는 상대라?

사실 도훈이 원하는 건 그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싶었다.

한민국은 못 미더운 듯 도훈을 바라봤다.

“만약에 김주현 배우 쪽에서 좋다고 하면요?”

“내가 출연료로 얼마를 제시했지?”

“천오백이요.”

“그래, 천오백이지. 그런데 나는 단위는 말 안 했어.”

“앗, 그럼 천오백 원도 된다는 거잖아요?”

“천오백 달러도 되지?”

“천오백 달러면…….”

“대충 이백만 원 조금 안 되지.”

“그, 그거 사기 아니에요?”

“김주현의 출연료가 대충 오백 정도니, 적당히 후려쳤다고 봐야지.”

“아무래도 사기 같은데…….”

한민국이 말끝을 흐리며 도훈을 바라봤다.

그때 김상식이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순간 한민국은 재빨리 딴청을 피웠다. 자칫하면 자신의 표정을 들킬까 봐서였다.

역시 눈치 하나는 백 단이었다.

김상식은 분위기의 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저 입술을 달싹이기만 하는 김상식의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혹시 벌써 결정이 났습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작품에 대한 배우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요.”

“출연료 문제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의지라는 거죠?”

“뭐, 출연료는 상관없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물론, 도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문송 측에서 그보다 많은 금액을 불렀을 것이다.

아니면 광고 출연을 약속했을 수도 있었다.

단발성 가전 광고 두 개쯤이면 출연료가 없다고 해도 단번에 계약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래도 이쯤에서 양념 하나 정도는 더 치는 것이 예의상 맞았다.

“꼭 연락 주셔야 합니다. 김주현 배우가 아니면 우리 작가님이 안 된다고 하셔서요.”

“진시현 작가님이 우리 주현이를 그 정도로…….”

“네, 맞습니다. 진시현 작가님은 미리 배우 이미지를 그리고 집필하시잖아요. 변동 사항이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해 주세요. 출연료는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럼…….”

도훈은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물론 도훈은 김상식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리려던 김상식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질문을 던진 김상식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유레카의 대표가 바뀌고 직원들이 고생한다지요.”

순간 도훈은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유레카는 지금 순항 중이었다.

거기에 대표, 즉 도훈 자신은 회사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레카에 있어서 대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런데 대표가 문제라니!

“그건 잘못된 소문 같네요. 대표님이 워낙 자상하셔서…… 일단 저는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도훈은 씩 웃자 김상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잘못된 소문을 들었나 보군요.”

“네, 잘못된 소문이지요. 누가 퍼뜨렸는지는 몰라도 천벌을 받을 겁니다.”

“……하하.”

김상식의 웃음은 그 어느 때보다 어색했다.

소문의 출처가 문송의 황강천이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헤어졌다.

승합차로 돌아간 한민국이 시동을 걸며 도훈을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뭐가 중요한데?”

“이번 주 로또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로또 번호를 왜 나한테 물어봐?”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요. 제가 보기에 실장님은 성씨를 바꿔야 해요. 이 씨보다는 노 씨가 더 어울려요. 노스트라다무스라고 아시죠?”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일단 유레카로 가자.”

“네, 대신 로또 번호 떠오르는 거 있으면 꼭 말씀해 주셔야 해요.”

“지금 말해 줄게.”

“헉, 정말이요?”

“볼펜 준비해.”

“네, 알았어요.”

한민국은 다시 사이드를 당기고 시동까지 껐다.

그러고는 어디선가 메모지와 볼펜을 꺼냈다.

“저는 준비됐어요, 실장님.”

“자 그럼 부른다. 일, 이, 삼, 사…….”

“그러니까…….”

번호를 받아 적던 한민국이 볼펜을 멈췄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번호 불러 달라면서? 내가 지금 딱 떠오른 번호는 이거야.”

“아무리 그래도 일에서부터 육까지 쭉 나올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니라는 거지.”

“에이, 저는 운전이라 하렵니다.”

“그래, 부탁해. 나중에라도 로또 번호 나오면 꼭 연락해 줄게.”

“약속입니다.”

한민국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도훈도 그의 손가락을 걸었다.

이건 로또에 대한 약속은 아니지만, 로또에 버금가는 돈벼락에 대한 약속일 수 있었다.

한민국에 대한 전생의 기억은 미미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와서는 헌신적으로 도훈을 돕고 있는 직원이었다.

사실 직원이란 관계보다는 이제 동생에 가깝다.

거기에 더해 한민국은 도훈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지금 노스트라다무스라고 한 말은 한민국의 진심이었다.

그 예로 지난번에 도훈이 산 주식과 가상화폐에 한민국도 자신의 비상금을 털어 넣었다.

그 결과는 앞으로 8년 뒤면 나올 것이다.

도훈이 득도한 고승처럼 창밖을 바라보자, 한민국이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익숙한 풍경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    *    *

이틀 후.

도훈은 전시현과 다시 만났다.

오늘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함께 계약서와 펜이 그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계약을 위해서 도훈과 황수영 그리고 한민국이 진시현 일행과 마주 보고 있었다.

계약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시현이 잡은 펜이 종이 위를 누볐다.

스슥.

이번에 계약할 작품은 총 네 개였다.

소환하라 시리즈에 한해 케이넷 TV와 함께한다는 시리즈 전속 계약서였다.

현재는 시즌제가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전생에도 소환하라 시리즈는 시즌제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다음 시리즈에서는 배경과 인물을 바꾸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대 배경이 바뀌면서 등장인물을 바꿔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정작 그렇게 이야기를 구성한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우들의 출연료 상승.

열 배에서 스무 배까지 뛰는 신인 배우들의 몸값을 제작사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어찌 보면 대박작이 만들어 낸 부작용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사이에는 진시현 작가와 정찬성 피디만의 맛이 적절하게 녹아 있다는 평을 들었다.

같은 유형이 이야기가 반복되면 자기 복제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만도 한데, 진시현과 정찬성은 달랐다.

오죽하면 소환하라 시리즈의 팬덤까지 생겼겠는가.

이번 계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지유의 출연이다.

초원의 집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 줬다고 한다면 이번 소환하라 시리즈의 첫 작품인 1987는 이지유의 얼굴을 알려 줄 것이라 확신했다.

전시현 작가는 계약서에 서명하고도 넘겨주지 않았다.

독소 조항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진시현 작가가 이 계약서 초안을 그녀의 변호사와 함께 검토했다는 점이다.

진시현 작가가 중점적으로 다시 보는 것은 계약서 초안과 바뀐 부분이 있는 점이다.

아마도 이제껏 뒤통수를 많이 맞았기 때문일 것 같았다.

계약서를 다시 살피던 진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인센티브 조항도 있네요.”

“지난번에 넣어 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거 무리하는 거 아닌가요?”

“전혀요.”

“흠.”

진시현 작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계약서를 넘겼다.

도훈은 그 계약서를 황수영에게 건넸다.

황수영은 계약서를 살피고 서류 가방에 넣었다.

이제 모든 절차는 마무리된 상황.

도훈이 정찬성과 진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하는 날짜에 촬영이 시작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참, 그것보다요…….”

“네, 작가님. 말씀하세요.”

“김주현 배우는 모솔전쟁에 캐스팅이 확정됐다고 하네요.”

“아, 아쉽네요. 제가 그 정도를 불렀으면 올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만났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랬죠.”

“그때 제가 부른 출연료가 회당 천오백이에요.”

“그거 진짜였어요?”

진시현 작가가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아무래도 회당 천오백의 출연료를 제시했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뭐, 이 바닥 소문이야…….

도훈은 고민 없이 답했다.

“네, 진짜 맞습니다. 작가님.”

“이 실장, 미쳤어요?”

진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질문이 아닌 질책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미리 준비된 답변은 있었다.

“작가님이 원하시니, 어떻게든 밀어붙이려고 한 거죠.”

“그게 말이 돼요? 장동일 오빠가 회당 천이에요. 그런데 신인이 천오백을 받는다고요?”

“뭐, 작가님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셔서…… 돈으로라도 캐스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머뭇거리더군요.”

“천오백에 머뭇거려요?”

“네, 그쪽 매니저가 어디론가 전화하고 오더니, 작품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고 답하더라고요.”

“작품은 무슨 작품…… 써 준다고 하면 기어들어 와야지.”

진시현이 매서운 눈초리로 도훈을 바라봤다.

물론 도훈을 질책하려는 뜻은 없어 보였다.

김주현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도훈은 여기에 말뚝 하나를 더 박기로 했다.

“출연료에 대해서는 조정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연락이 없더라고요.”

“와, 회당 천오백 정도는 껌으로 보이나? 욕심도 많다. 이 실장님!”

“네?”

“괜한 고생 했어요.”

진시현이 혀를 차며 도훈을 바라봤다.

못마땅하다는 말투지만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도훈에 대한 호감이 묻어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밀어붙이는 제작사라?

작가에게 신뢰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문송의 황강천에게는 뜨거운 감자를 입안에 던져 주고.

진시현에게는 신뢰를 듬뿍 얻었으니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고 봐야 했다.

그때 정찬성이 입맛을 다시며 도훈을 바라봤다.

“쩝, 이 실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감독님.”

“갑자기 호칭을 바꾸니 머쓱하네요.”

“이제 촬영 시작인데 감독님이라고 불러 드려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호칭은 아무래도 좋은데……. 아까 말한 김주현 배우에 대한 문제가 좀 있습니다.”

“저희하고 김주현 배우가 문제가 있다고요?”

“네, 다름이 아니라 그때 제시하신 출연료 관련 문제가 소문이 돌고 있어요.”

“아, 천오백이요?”

“네, 맞아요. 김주현이 천오백이면 나는 얼마냐고 쑥덕대는 배우들이 꽤 있거든요. 촬영이 들어가고 팀워크에 문제가 될 것 같아서요.”

“팀워크라…….”

도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김주현과의 전쟁인지 황강천과의 전쟁인지는 아리송하지만, 도훈은 귓가에 총성이 울려 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때 한민국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감독님,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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