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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를 본 도훈이 물었다.
“다미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야 하는데 괜찮겠어?”
“삼쫀과 함께 있는 게 새 나라의 어린이라고 배웠어요.”
“누구한테?”
“아빠가 그러던데요.”
다미가 강영웅을 가리켰다.
도훈은 피식 웃으며 다미를 한번 안아 주었다.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모니터링 분위기는 덕분이 화기애애해졌다.
그때였다.
강영웅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도훈을 바라봤다.
다미를 안고 있던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형, 표정이 왜 그래요? 꼭 할 말이 있는 사람 같잖아요.”
“와, 우리 이 실장은 눈치가 백 단이라니까.”
“진짜 할 말 있는 건가요?”
“우리 다미한테 광고 제안이 들어왔어.”
“광고요? 다미한테 광고라…….”
도훈이 신기하다는 듯 다미를 바라봤다.
단발머리에 누가 봐도 귀여움이 묻어나는 외모.
거기에 강영웅 덕분에 제법 알려져 있었다.
요즘 강영웅이 ‘즐거운 나의 집’이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소위 말하는 관찰 예능이다.
강영웅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하나의 코너가 된다.
다미와 강영웅 그리고 다미의 할머니 임영희까지.
강영웅의 가족들은 이제 대중교통을 타면 사람들이 인사할 정도였다.
다만 궁금한 건 자신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단순한 자랑은 아닐 것이다.
“혹시 무슨 일이에요, 제가 도와줄 거라도 있나요?”
“그게…….”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공익 광고라서 돈이 별로 안 돼.”
“흠, 형이 많이 벌잖아요. 다미야 찍고 싶으면 찍는 거죠.”
“그게 섭외 들어온 게 다미랑 이 실장이야.”
“네?”
“교통안전공단에서 의뢰가 들어온 거라서 말이야.”
“혹시……?”
“생각하는 게 맞아.”
“솔직히 그건 다미한테 트라우마잖아요.”
도훈은 다미와 강영웅을 번갈아 바라봤다.
교통안전공단에서 다미를 섭외했다면?
어차피 뻔한 스토리였다.
도훈이 다미를 구했을 때의 움짤은 아직도 온라인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 사진 덕분에 도훈은 일반인치고는 온라인에서 제법 유명해졌다.
그때 강영웅이 피식 웃었다.
“우리 다미는 트라우마 같은 거 없어.”
“아, 그래도…….”
도훈은 다미를 바라봤다.
사실 그때 도훈이 구하지 않았다면 다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도 싫을 것이 분명했다.
어려서 그런가?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다미가 방긋 웃었다.
“삼쫀하고 같이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정말?”
“그럼 하자.”
도훈이 씩 웃자 강영웅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 하려고?”
“왜 그렇게 놀라세요?”
“진짜로 한다고 할 줄은 몰랐거든.”
“공익 광고라고 하니까…… 겸사겸사해 보는 거죠. 덤으로 우리 블랙홀도 홍보하고요.”
“블랙홀?”
“그럼요, 다미하고 제가 출연하는 대신 블랙홀도 출연시키면 좋잖아요.”
“오호.”
“일단 그쪽 담당자 연락처 좀 주세요.”
“그래, 내가 바로 보낼게.”
강영웅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공익 광고는 사실 출연 단가를 맞추지 못한다.
재미있는 것은 공익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 대부분이 톱스타라는 점이다.
공익 광고에 출연만 한다면 초기 이미지는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
도훈의 이미지가 아닌 블랙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작전인 셈.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이제 방영까지 10분 정도가 남은 상태.
노트북을 살피던 황수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도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이 실장님, 이것 봐요.”
“혹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라도 나왔어요?”
“지금 블랙홀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서 폭발 직전인데요?”
“블랙홀에 대한 기사라고요?”
“그게 조금…….”
황수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노트북의 화면을 가리켰다.
〈마리나와 뉴 키즈가 함께 키우는 그룹 블랙홀.〉
다소 허황된 기사의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추억을 소환하라!’와 연관된 기사가 분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기사의 내용이 꽤나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블랙홀은 애초에 해외를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이라는 것이 기사의 핵심 내용이었다.
황수영이 황당한 듯 물었다.
“이거 진짜예요?”
“혹시 우리 회사에 스파이가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럼 진짜라고요?”
“저도 모르는 걸 아는 걸 보니 저건 스파이가 분명해요.”
“허, 지금 농담하신 거예요?”
“뭐,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꽤 괜찮은 계획 아니에요?”
“미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거요?”
“네.”
“흠.”
도훈은 턱을 어루만졌다.
전생의 버릇이 튀어나온 것.
그것을 본 황수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꼭 아저씨 같네요.”
“저 아저씨 맞죠, 뭐.”
“무슨! 무대에서 그렇게 뛰어다니는 아저씨가 어디 있어요. 제가 원하는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용납 못 해요.”
“수영 씨와의 약속은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그렇고 미국은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입니다.”
도훈이 딱 잘라 말했다.
이건 안 봐도 훤한 미래였다.
미국 시장을 공략한 그룹이 한둘이 아니었다.
앞으로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미국이라는 커다란 마켓의 문이 열릴 것이다.
사실 지금 시기에 많은 그룹이 거대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문을 여는데 선두에 선 것이 바로 강시혁이었다.
문제는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수많은 기획사들이 팝의 본고장으로 향하는 시점.
마치 금을 캐기 위한 행렬인 골드 러쉬처럼…….
하지만 금은 나오지 않고 막대한 손실만 입는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에 진출한 아티스트의 멘탈이 문제였다.
무대에 한 번 서기 위해 그곳 스타들의 중간 무대를 때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마저도 기연이란 표현을 할 정도로 운이 좋은 것이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위해서라면 미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여기까지는 전생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 기사를 보고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마리나와 뉴 키즈에 대해서 생각보다 깊이 조사했다는 점이다.
막연한 추측이 아닌 그들과의 인연을 근거로 미국 시장 진출을 예측했다.
도훈은 신문 기사 아래 이름을 확인했다.
“이상인 기자…….”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황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분은 아무래도 기자가 아니라 우리 미국 지사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쪽은 장 비서님이 가기로 했잖아요.”
“장 비서님은 총괄이잖아요. 장 비서님이 모든 걸 다 관리할 수는 없으니, 이분에게 마케팅을 맡기면 딱일 것 같네요.”
도훈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그 모습에 황수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제가 한번 만나 볼까요?”
“너무 쉽게 동의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이제까지 이 실장님이 계획하신 거 모두 성공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뭐라고 해요?”
“아.”
도훈이 입을 벌렸다.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모든 일이 탄탄대로였다.
* * *
‘추억을 소환하라!’ 2회 모니터링 직후 유레카의 대회의실은 마치 폭발 직전 화산과 같았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모두가 도훈을 보며 마리나를 어떻게 섭외했냐고 물어보며 황당해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마리나는 형식상 무대에 선 것이 아니었다.
이 공연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고 그것을 무대에서 남김없이 보여 줬다.
거기에 더해 마리나와 공연한 피가로의 결혼 장면은 팝페라의 교과서와도 같았다.
지금 옆에 있는 황수영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그램이 끝나자 약속했다는 듯 모든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훈은 태블릿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와, 미쳤다.
―저게 공짜라고?
―아니, 마리나는 한국에 온 적이 없잖아. 그런데 첫 공연이 이런 게릴라 콘서트라니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케이넷 TV 섭외력은 무엇?
―내가 알기로는 케이넷이 아니라 유레카에서 섭외했다고 하던데…….
―그러면 이해가 되네.
―뭐가 이해된다는 거지?
―지난번에 뉴 키즈도 거기서 섭외했다고 하더라.
계속 대화를 읽어 나가던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대화가 묘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레카면 미라클 계열사잖아. 그럼 장경자 회장이 데려왔겠네.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딨어?
―돈으로 마리나를 한국 무대에 세울 수 있었으면 이제까지 왜 내한 공연이 없었겠어?
―그럼 마리나가 왜 왔는데?
―유레카에 천재 작곡가가 있데, 그 사람의 곡을 받기 위해 왔다고 들었어. 미국에 있는 관계자한테 들은 거니까. 아마 맞을 거야.
―천재 작곡가?
갑자기 화제가 급선회하자 도훈은 재빨리 태블릿을 껐다.
그때였다.
조마준 팀장이 도훈을 빤히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혹시 에릭 고든 어떻게 안 될까?”
“에릭 고든이요?”
“이번에 마리나 초대한 것처럼 말이야. 에릭 고든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먹어 주잖아. 만약에 에릭 고든을 초청하게 되면 미리 말해 줘. 우리 집사람한테 생색 좀 내게.”
그때였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김민석 부사장이 조마준 팀장의 목덜미를 잡았다.
“조 팀장, 공과 사는 분명히 해. 농담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심으로 섭외를 해?”
“앗, 부사장님 그건 제 조크였습니다. 그러니…….”
“일단, 이리 와 봐.”
김민석 부사장이 조마준 팀장을 끌고 나갔다.
그 모습에 주변에서는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도훈은 또 하나의 시선을 느꼈다.
시선의 주인은 다름 아닌 홍보팀의 곽수정 대리였다.
곽수정 대리는 게걸음으로 도훈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실장님, 저도 섭외 하나 부탁해도 돼요?”
“섭외요? 혹시 외국의 아티스트라면 그건 조금…….”
“그건 아니에요.”
“그럼 누굴 섭외해 달라는 거예요? 편하게 말해 보세요. 저도 추억을 소환하라 5회의 게스트는 고민하고 있거든요.”
“게스트가 아니라…….”
“그럼 뭔데요?”
“제 남자 친구 좀 섭외해 주세요.”
“아.”
도훈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때 대화를 듣고 있던 강영웅이 끼어들었다.
“곽 대리, 그걸 왜 이 실장한테 찾아?”
“여기 보세요.”
곽수정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핸드폰에는 비슷한 머리말로 시작하는 게시물이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있었다.
―비나이다. 그 섭외력으로 내년에는 모쏠을 면하게 해 주세요.
―비나이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작곡의 신이시여.
―비나이다. 섭외의 신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마치 기우제를 지내는 부족처럼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물론 그 누군가는 마리나와 뉴 키즈를 섭외한 사람이었다.
게시판만 보면 도훈은 신이었다.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