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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은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피식 웃음 지었다.
장혁은 도훈에게 바라고 있는 도움이란 건 무엇일까?
그 도움이란 건 정확하게 도훈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다.
그 스킬 덕분에 마리나와의 무대에서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었던 것.
물론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훈과 호흡을 맞추면 편하다고 느낄 뿐일 것이다.
도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도훈이 준 ‘앨리스’에 대한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프로듀싱을 해 준다고 했지만, 피처링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었다.
녹음 부스에 같이 선 도훈은 재빨리 스킬 창을 찾았다.
일단 ‘원포올’을 적용하고.
알파벳을 모두 몰아넣었다.
순간 도훈의 손에서 미세하게 황금빛 줄기가 뻗어 나왔다.
* * *
정확히 한 시간 후.
‘앨리스’에 대한 녹음이 끝났다.
모든 녹음이 완료되자 도훈을 포함한 여섯 명의 전사들이 녹음 부스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을 본 강시혁이 말했다.
“남들이 보면 사우나에 온 줄 알겠어, 하하.”
그의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었다.
그들은 사우나에서 나온 듯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장혁은 숨까지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막내 강찬도 몸을 휘청이고 있다.
둘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치 술에 취한 듯 몸을 못 가누고 있었다.
천천히 소파 쪽으로 걸어가던 장혁이 그대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소파에 자리 잡은 장혁은 다른 말 없이 그대로 뻗었다.
소파를 빼앗긴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조금 동작이 빠른 멤버는 안마 의자를 선점했고 자리를 잡지 못한 막내 강찬은 그냥 바닥에 누웠다.
뭐, 바닥에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으니 입이 돌아갈 염려는 없었다.
앨범의 주인인 가필드가 완전히 뻗어 있는 상황에서 도훈은 강시혁과 함께 결과물을 확인했다.
한참을 보던 강시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도훈을 바라봤다.
“내가 왜 몰라봤지?”
“강 피디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눈앞에 원석을 두고 몰라봤네, 나랑 다음에 작업 하나 같이하자.”
“애들 좀 키우고 나서.”
“이 실장, 결혼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애들 키우고 나서 작업하자면서?”
“아니, 블랙홀이 커야 취미 생활도 하지.”
“이 정도면 취미 정도가 아닌데…… 내가 보기에는 가필드 친구들을 완전히 압도했어.”
“흠.”
“그래, 나도 그게 걱정이야. 괜히 팬들한테 찍히는 건 아닌지 몰라.”
“설마…….”
“아니야, 가필드가 달리 가필드야.”
그들의 말에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장혁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벌써 팬카페에 쫙 뿌려 놨어요.”
그 말에 도훈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뭘 뿌려 놨다는 거야?”
“이번 앨범에는 잘 아는 매니저 형이 참여하신다고요, 헤헤.”
윙크를 한번 날린 장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완벽하게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도훈은 다시 곡에 집중했다.
“일단 들어 보자고.”
“오케이.”
강시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강시혁도 사실 이번 작업이 상당히 피곤했다.
도훈이라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가 있을 때 강시혁은 두 가지 버전으로 결과물을 정리했다.
도훈의 피처링 유무에 따라서 버전을 정리한 것.
지금 그들은 도훈의 목소리가 없는 버전을 확인했다.
곡이 끝나자 도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법 잘빠졌는데, 이 정도면…….”
도훈은 말을 멈췄다.
이 정도면 전생에 들었던 앨리스를 능가할 것 같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였다.
도훈의 말을 강시혁이 받았다.
“이거 명반 소리 듣겠는데.”
“나도 동감이야.”
도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널브러진 가필드의 멤버를 바라봤다.
확실히 스킬의 힘은 대단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마치 게임 속 전사가 스팀팩을 맞은 것 같았다.
모든 체력을 한 번에 쏟아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그 결과가 가필드의 상태였다.
멀쩡한 것은 도훈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수첩의 주인이기에 멀쩡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입맛을 다시던 강시혁이 말했다.
“나머지도 마저 들어 보자고.”
“그래, 강 피디.”
도훈이 답하자, 강시혁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도훈은 곡에 집중하지 않았다.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피처링이 들어간 곡이나 없는 곡 모두 스킬의 효과가 적용된 결과물이었다.
차이점이라고는 자신의 목소리밖에 없었다.
예상대로라면 도훈의 목소리가 없는 편이 더 가필드답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팬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가필드의 음악이었으니,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맞았다.
지금 강시혁과 도훈이 찾으려는 것도 가필드라는 그룹에 딱 맞는 곡이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될 곡이니만큼 신중히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도훈은 헤드셋을 내려놨다.
지금은 강시혁이 혼자 듣고 있었다.
도훈은 조용히 강시혁의 표정을 살폈다.
강시혁은 이전에 듣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표정하게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강시혁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항상 무표정하게 음악에 집중하는 저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다.
그때였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시혁이 갑자기 어깨를 들썩였기 때문이다.
작업할 때는 음악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저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들썩임은 점점 그의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어깨에서 목으로.
목에서 머리로.
이제는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목을 앞뒤로 들썩이며 음악에 취한 듯 그의 몸이 리듬을 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곡이 끝난 것 같았다. 강시혁이 헤드폰을 벗었기 때문이다.
탁.
헤드폰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은 강시혁이 도훈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래?”
“이걸로 가자!”
“내 피처링이 들어간 거로 가자고?”
“그래. 뭐랄까…… 딱 떠오르는 말은 없지만 말이야. 처음 곡이 VIP버전이라면 이번 곡은 마치 VVIP버전과 같아.”
“혹시라도 내가 욕 안 먹겠어?”
“내가 듣기에는 티가 안 나.”
“그게 무슨 말이야, 티가 안 나다니?”
“원래부터 가필드의 멤버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헉.”
“이건 농담이 아니야. 아무래도 블랙홀 다음 앨범에도 이 실장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강시혁은 묘한 웃음을 남겼다.
* * *
이틀 후 유레카의 대회의실.
유레카를 마비시켰던 ‘추억을 소환하라!’에 대한 기사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그 기사가 사그라진 이유는 바로 가필드의 팬들 때문이었다.
가필드의 장혁이 팬카페에 말도 안 되는 기사라는 말과 함께 이런 오해를 받는 게 싫다는 멘트를 남겼다.
장혁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기사의 내용만 보면 블랙홀과 가필드 멤버들만 특혜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유레카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런데 장혁이 불만의 멘트를 남기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가필드의 팬들이 하나가 되어 온라인 신문사에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한 것.
한 대형 신문사의 경우는 결국 사과문까지 대문이 걸어야 했다.
그것을 본 나머지 신문사들이 바로 태세 전환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항간에는 가필드가 유레카로 오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슈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항의 전화를 받고 다시 추측성 기사를 낼 간 큰 신문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들이 유레카의 대회의실에 모인 것은 바로 ‘추억을 소환하라!’ 두 번째 이야기의 시청을 위해서였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번 프로그램은 두 번째부터는 케이블 시청률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돌고 있었다.
유레카의 대회의실에 모인 인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을 바라봤다.
물론 시작 전까지는 아직도 30분이란 시간이 남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동안 못했던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모니터링은 자율에 맡겼지만, 팀장 대부분이 회사에 남았다.
참석에 앞장선 것은 4팀장 조마준이었다.
조마준은 다른 팀장들을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설득했다.
자율이지만, 그래도 정식 이름은 모니터링이었다.
즉, 근무의 연장이라는 말이었다.
조마준의 이론대로라면, 모니터링만 해도 시간 외 수당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물론 조마준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유레카는 다른 기획사와는 다르게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정확히 계산해서 지급했다.
이것은 이쪽 업계에서는 혁신이었다.
업계의 특성상 대기 시간이라는 게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 대기 시간을 과연 근무로 인정해 주는 회사가 있을까?
몇몇 회사는 어느 정도 인정해 주고 있긴 하지만, 유레카처럼 철저히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는 이제까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레카의 직원들은 절대로 이 이야기를 밖에서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 유레카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질 테고 자신의 밥줄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걱정일 수도 있었다.
눈을 반짝이는 조마준의 앞에 멀리서 김민석 부사장이 들어왔다.
조마준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더니 옆을 힐끔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부사장 김민석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불순한 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조마준은 그에게 속삭였다.
“이 실장, 빨리 인사 좀 해. 부사장님한테 예의 좀 차리라고.”
“아, 잠시 딴생각하느라…….”
도훈이 미안한 표정으로 김민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훈의 깍듯한 인사에 김민석이 헛기침했다.
상대의 인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도훈.
거기에 미라클의 회장 장경자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다.
실장 직함으로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김민석은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재벌 3세의 일시적인 역할극 같은 것으로 생각하며 웃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은 완벽하게 벗어났다.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도훈은 그대로 실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이 회사 내에서 도훈을 대하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은 다른 직원처럼 대했지만, 미라클 내에서의 도훈의 위상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이도훈 실장이 실질적인 이 회사의 대표니 모두 조심하라고 외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민석은 자신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은 조마준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조마준은 도훈에게 눈짓하며 한숨 쉬었다.
“휴, 잘못하면 찍히겠어.”
“다음부터는 신경 쓰겠습니다, 팀장님.”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 모습에 조마준이 혼잣말을 뇌까렸다.
“참, 사람은 좋은데 말이지…….”
그의 눈빛은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도훈이 간 곳은 그와 친한 일행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황수영이 시청률 데이터를 받기 위해 아예 노트북을 켜 놓고 있었으며 강영웅까지 모니터링에 참석했다.
게다가 강영웅은 그의 딸 다미까지 데리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