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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10화 (21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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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훈의 말에 장소담이 눈을 크게 떴다.

    한참 동안 말없이 도훈을 바라보던 장소담이 입을 열었다.

    “취미로 매일 노래를요?”

    장소담의 귀에 취미라는 말이 강하게 꽂혔다.

    계약금과 취미는 전혀 상반된 이야기였다.

    돈을 받으면 프로.

    즉, 취미하고는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한참 정답을 찾아 헤매던 장소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이 자신은 안심시키려고 선택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장소담이 생각하기에 취미와 계약금이 공존할 경우는 그 상황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장소담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에게 이런 식으로 계약금을 제안하면 먼저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둘러서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거기에 취미라고 덧붙인 것도 진심이었다.

    도훈은 그들을 정상적인 루트로 데뷔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방송이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었다.

    그곳에서 힘을 키워 천천히 지상파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된다.

    앞으로 오 년 정도만 지나면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국들의 춘추전국시대가 된다.

    현재의 시청률은 모두 지상파가 잡아먹고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들이 시청률을 나누게 된다.

    소위 말하는 대박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지혜를 통해 제안받았던 ‘소환하라’ 시리즈도 그중 하나였다.

    서로 먹고 먹히는 시청률의 춘추전국시대!

    그 아수라장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뉴페이스다.

    방송국 관계자가 찾는 뉴페이스가 대부분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유명인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했을까.

    지금은 온라인과 케이블 그리고 지상파 사이에 엄연한 구분이 있다.

    그때까지는 편하게 장소담과 윤장미를 끌고 갈 것이다.

    도훈이 미소 지었다.

    “그래, 자세한 계획은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계약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해.”

    아무렇지 않게 진짜 삼촌처럼 말하는 도훈의 모습에 장소담의 눈이 한 단계 더 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했지만, 장소담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저 입에 발린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그 칭찬은 모두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입에서 나온 것이니 장소담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장소담은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장소담에게 도훈은 지나가다 만난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금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도훈이 자신을 도와주려는 행동은 마치 지나가다 걸인에게 던져 주는 동전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동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훈은 계속 계약금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장소담이 도훈을 다시 바라봤다.

    얼굴에는 욕심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술해 보이지도 않았다.

    자꾸 보니 빈틈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장소담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대체 왜 저를…….”

    장소담이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장혁이 끼어들었다.

    “본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고 보석 감정사가 자기 보석은 제대로 감정하지 못하는 법이지. 그런데 내가 볼 때 너희 둘은 원석이야.”

    “저희가 원석이라고요?”

    “그 원석을 가공하면 제법 값이 나가는 다이아몬드가 나올걸.”

    장혁이 둘을 번갈아 봤다.

    사실 정확히는 조금 더 값어치가 높은 것은 장소담이었다.

    착실하게 레슨받고 혼자 데뷔한다고 해도 발라드계는 술렁일 것이다.

    대충 일 년 정도면 충분할 정도의 자질이었다.

    다만, 성격이 문제였다.

    저렇게 약해 빠진 성격이라면…….

    아마도 데뷔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도 도전해 볼 만했다.

    장혁이 이 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오며 얻었던 것은 음악뿐이 아니었다.

    사람을 보는 눈도 제법 높아졌다.

    거기에 더해 사업 감각도 제법 발전했다.

    비즈니스적인 감각이 없다면, 그 그룹은 존속하기 힘들다.

    비즈니스적인 성공이 있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장혁의 신념이었다.

    장혁은 이렇게 계속 성공해 왔다.

    그 대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그런 장혁이 보기에 장소담과 윤장미는 원석이 맞았다.

    만약 도훈이 제안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작은아버지에게 말해 스카우트 제안을 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장혁의 말을 도훈이 받았다.

    “그 말이 맞아. 그러니까 말해 봐, 얼마나 필요한지.”

    그때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윤장미가 나섰다.

    “소담아, 가족한테 필요한 돈이 아니라 네가 필요한 돈을 말해.”

    윤장미의 눈에는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을 정리하고 상황을 분석한 것이다.

    윤장미가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말하자 장소담도 표정을 수습했다.

    “그러니까…….”

    장소담이 다시 말끝을 흐리자, 윤장미가 그녀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마치 스커드 미사일이 적중한 것처럼 장소담이 고개를 떨궜다.

    “앗, 아, 아파!”

    “그러니까, 정신 차리자고 이건 기회야.”

    윤장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물론 도훈은 그녀의 말을 정확히 들었다.

    순간 도훈의 눈이 반짝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도훈이 보기에 둘이 정상 궤도로 올라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약금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계약금을 모두 정산하고도 그들의 통장에 막대한 돈이 꽂힐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 줄 자신이 있었다.

    그 돈을 장소담의 돈이라고 생각할 가족이 있을까?

    도훈은 지난 생에서 연예인의 돈과 가족의 독을 구분 못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니, 이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흔히 로또 맞은 당첨자들의 삶과도 비슷했다.

    스타가 하나가 나오면 집안이 일어선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떻게 될까?

    사돈의 팔촌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평등하게 돈을 나눠 준다면 친척들이 만족할까?

    만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윤장미는 최고였다.

    커버퀸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스트리밍 방송을 하며 나중에는 건물까지 올리는 인물이었다.

    거기에 철저히 자신의 재산을 숨기는 재주까지 있었다.

    그런 면에 장소담의 부족한 점을 윤장미가 채워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이 나서면 팀은 깨진다.

    이것은 전생에도 수없이 봐 온 결과였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친척까지 나서면 스타의 삶도 깨진다는 것도 진리였다.

    도훈이 조용히 말했다.

    “한국에 남고 싶니?”

    “…….”

    장소담이 말없이 도훈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장소담의 눈이 반짝였다.

    눈빛에서 장소담의 진심을 확인한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과는 다르게 연예계의 역사가 바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말이다.

    그때 뒤쪽에 있던 마리나가 손뼉을 쳤다.

    “원더풀!”

    식사가 맛있다는 건지 지금의 대화가 좋다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훈도 마리나는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리나는 신기하다는 듯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제 세 공기째를 비우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이 밥일까, 아니면 추억일까?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도훈이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황수영이 있었다.

    황수영은 피곤한지 밥도 뒤로한 채 흐물거리고 있었다.

    도훈은 그녀를 향해 사각형을 그렸다.

    순간 황수영이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훈의 앞으로 텔레포트 하듯 달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장소담은 그 가방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가방이었다.

    마치 미국 대통령의 옆에서 비서가 들고 다니는 검은색 가방과도 같았다.

    마치 저 가방을 열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은 뭘까?

    장소담이 의문을 피워 낼 때 황수영이 가방을 열었다.

    그곳에는 검은색 노트북이 나왔다.

    황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노트북을 펼쳤다.

    몇 번 클릭하자 문서 하나가 뜬다.

    <유레카 전속 계약서>

    순간 장소담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상상할 틈도 없이 도훈이 말했다.

    “일단 다섯 개부터 시작할까?”

    “오, 오천만 원이요?”

    “아니, 오억.”

    “자, 잠시만요.”

    장소담이 손을 휘휘 저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계약서에 당황한 것이다.

    그때 윤장미가 고개를 길게 뺐다.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계약서를 읽어 나갔다.

    “조금만 내려 주실래요.”

    “오케이.”

    황수영이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계약서를 모두 잃고 난 윤장미가 입을 벌렸다.

    “소, 소담아, 이거 대박이다. 빨리 물어.”

    “야. 윤장미, 내가 강아지야. 왜 물라고 해?”

    “이건 물고 놓치면 안 돼, 빨리 물어!”

    “아, 자꾸.”

    “일단 나부터 물게.”

    윤장미가 장소담에게 손짓했다. 일단 물러나 있으라는 신호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모두 도훈과 장소담 그리고 윤장미를 둘러쌌다.

    그들은 마치 라스베이거스 특설 링에서 펼쳐지는 권투 경기를 보듯 입맛을 다셨다.

    마리나도 언제 왔는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었다.

    마리나의 얼굴에는 이전에 보였던 추억에 젖은 듯한 감상적인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에 눈을 빛낼 뿐이었다.

    윤장미가 서명하자 장소담이 이어서 서명했다.

    계약서를 읽어 볼 필요도 없었다.

    윤장미가 옳다고 하면 그 길이 맞았다.

    그때 마리나가 끼어들었다.

    “제 계약서도 있나요?”

    순간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    *    *

    한 시간 후.

    도훈은 호텔을 빠져나왔다.

    마리나와는 적당한 거래가 오간 것 같았다.

    거금으로도 못 살 추억을 마리나에게 줬으니…….

    뭐, 마리나에게도 돈으로도 못 할 기회를 받았다.

    그것은 마리나의 상징성이다.

    마리나는 정확히 도훈과 관련된 방송과 기획사하고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팝의 여제가 한국에 왔는데 기자들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연예계는 뒤집힐 것이 분명했다.

    도훈은 운전대를 잡고 뒤쪽을 힐끔 바라봤다.

    뒤에는 장경자와 엄지연이 아직도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장경자의 건강을 생각해서 뒤풀이 시간 동안 그들은 스위트룸에서 쉬고 있었다.

    뒤풀이가 끝나자 마리나는 장경자가 있는 스위트룸으로 이동했다.

    도훈이 자신의 할머니도 팬이라고 하자, 굳이 사인을 해 주겠다고 우겨서였다.

    마리나가 방에 찾아오자 장경자는 깜짝 놀랐다.

    물론 엄지연도 눈을 크게 뜨고 마리나를 반겼다.

    그들은 같이 사진을 찍고 차를 마시고 나서 헤어졌다.

    도훈은 일행들을 한민국에게 맡긴 채 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룸미러를 확인한 도훈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장경자와 엄지연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장경자가 웃었다.

    “도둑놈처럼 왜 힐끔 쳐다보고 웃어?”

    “할머니와 엄 비서 누나가 즐거워 보여서요.”

    도훈이 빙긋 웃자, 장경자가 말을 이었다.

    “그럼, 당연히 즐겁지…… 그런데 무리하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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