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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원은 눈을 빛냈다.
그는 감기는 눈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사실 딱히 도훈을 지키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우시원은 아까부터 마리나와 도훈이 나눈 대화 내용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분명히 출연료 대신에 메뉴를 준비했다고 했다.
팝의 여제 마리나가 출연료 대신 부탁한 메뉴라?
이건 호기심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나의 출연료를 현금으로 산정한다면 얼마 정도 할까?
백만 혹은 이백만?
아니 그 이상이 될 터였다.
물론 단위는 달러였다.
그런데 출연료 대신 음식이라니?
이 의문은 우시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시원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장혁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대를 누볐는데도 장혁은 눈도 끔벅이지 않고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우시원이 물었다.
“장혁 선배님도 궁금해서 여기에 남으신 거죠?”
“물론이지. 그런데 그냥 형이라고 부르래도.”
“나중에요. 지금은 선배님이 좋아요. 괜히 형이라고 했다가 다른 선배님한테…….”
“그런 놈이 있으면 말해, 내가 그냥 밟아 줄 테니.”
“너무 과격하게 그러지는 마시고요.”
“그래, 알았다. 네 말이니까 듣지.”
장혁이 피식 웃으며 마치 선심 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시원은 그런 장혁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시한폭탄과 대화하는 느낌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았다.
우시원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안 졸리세요?”
“당연히 졸리지.”
“그런데 어떻게 표정 하나 안 변합니까?”
“원래 프로는 이런 거야. 지금 이 시간이면 바쁠 때면 광고 촬영하고 있을 시간이야.”
“네?”
“스튜디오 촬영은 밤낮이 없잖아. 앞에 카메라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눈을 감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게 진정한 프로지.”
“아, 역시…….”
우시원은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장혁 선배님!”
“또 궁금한 게 있어?”
“다른 선배님들은 졸고 있는데요.”
우시원은 다른 가필드의 멤버들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장혁이 피식 웃었다.
“광고 촬영은 보통 나만 하거든.”
“선배님만요?”
“이게 네 미래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해 주지. 자본주의라는 게 좀 그래. 돈이 되는 사람과 돈이 안 되는 사람을 철저히 구별하거든.”
“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단독 광고가 많다는 거지, 그 이유는 당연히…….”
장혁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순간 우시원은 입을 딱 벌렸다.
이건 나르시스쯤의 극치였다.
그 모습에 장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지금 같은 표정 말이야. 광고 감독님들이 자주 요구하는 표정이니까. 딱 기억해 둬.”
“지금 같은 표정이라니…….”
“놀란 표정 말이야, 지금 이게 말이 되나? 뭐 이딴 게 다 있지? 하는 표정을 지었잖아.”
“제가 언제…….”
“에이, 내가 이 바닥 짬이 얼만데?”
“진짜 아니에요, 그냥 왕자병이 좀 있으시구나 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는 거네?”
“앗.”
“괜찮아, 얼굴도 그렇지만 성격도 나랑 판박이야, 하하.”
“성격이 저랑 장혁 선배가 비슷하다고요?”
“똑같이 거짓말을 못 하는 스타일이잖아.”
“아…….”
우시원의 눈이 한 단계 더 커졌다.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미래에는 장혁처럼 된다?
우시원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다른 멤버들도 눈에 힘을 줬다.
마리나가 부탁한 메뉴가 무엇인지 그들도 궁금했던 것.
서찬휘는 이를 악물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찬휘야, 너 꼭 군대에서 정신교육 받는 것 같아. 피곤하면 쉬어도 돼.”
“아, 실장 형!”
“왜 그래?”
“군대 얘기는 하지 말라니까요. 저 아직 많이 남았어요.”
“흠, 그건 그래. 한 이삼 년 정도 남았나?”
“더 남았거든요! 그런데 음식은 언제 나와요? 저 진짜 궁금해요.”
서찬휘의 질문에 도훈은 시계를 봤다.
이제 10분이 남아 있는 상태.
가필드와 블랙홀의 멤버들이 모두 목을 길게 빼고 도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쉿!”
순간 가필드와 블랙홀의 멤버들은 숨을 죽였다.
진지한 도훈의 표정이 모두가 숨을 죽였다.
도훈은 검지를 입술에서 뗐다.
그러고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마리나가 잠이 들어 있었다.
놀란 장혁이 마리나에게 다가가려 했다.
도훈은 그를 말렸다.
“쉿, 그냥 둬.”
“잠들면 부탁했던 메뉴를 확인도 못 하잖아요.”
장혁이 소곤대자 도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제 일어날 거야.”
“저렇게 잠들었는데 어떻게…….”
그때였다.
마리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엎드려서 잠시 잠이 들었던 마리나의 이마는 팔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마리나는 자신의 얼굴을 신경도 쓰지 않고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죠?”
“소라라니요?”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마리나가 연회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마치…….”
“어떤 소리요?”
“누군가 망치질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나요.”
마리나는 불안한 듯 주위를 다시 가리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마리나를 바라보던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들리는군요.”
그 모습에 가필드의 장혁이 물었다.
“형은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요?”
“그건 나도 잘 몰라.”
“소리가 들린다면서요?”
“난 안 들려.”
“그런데 왜 고개를 끄덕여요.”
“그건…… 비밀이야.”
도훈이 씩 웃자 마리나가 물었다.
“괜찮은 거죠?”
“네, 괜찮습니다.”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마리나를 안심시켰다.
마리나는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라셀은 테이블에 엎어진 채 눈을 못 뜨고 있다.
도훈이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5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졸던 마리나가 다시 눈을 떴다.
“또 소리가 들렸어요, 이거 지진 같은 거 아니죠?”
“아닙니다, 마리나.”
“진짜 아니죠?”
“안심하세요.”
도훈의 말에도 마리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연회장의 물이 스르륵 열렸다.
미라클 호텔의 대표 쉐프가 카트를 밀고 조용히 다가왔다.
카트를 밀고 천천히 오는 쉐프의 모습은 마치 시상식에 수상자가 적혀 있는 봉투를 가지고 나오는 진행요원과 같았다.
드르륵.
카트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마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쉐프는 마리나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조용히 음식을 세팅했다.
그가 테이블을 세팅하는 모습에 모두는 입을 딱 벌렸다.
장혁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탐정이라도 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우시원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것은 호텔에서 나올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마리나의 테이블 위에 세팅된 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김치찌개였다.
거기에 다른 반찬도 평범한 한식.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쉐프는 TV에도 자주 나오는 송석현 쉐프였다.
한식 요리전문가가 아닌 중식 요리전문가였다.
모두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도훈과 송석현 쉐프를 번갈아 봤다.
가장 황당한 것은 마리나였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는 음식이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서 살짝 자극적인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마리나도 이 음식이 그렇게 비싼 메뉴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바바로티가 그렇게 극찬했던 음식이 바로 이 음식이었다니!
마리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도훈을 불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마리나가 원하는 음식이 바로 이 수프가 맞아요. 한국에서는 이것을 김치찌개라고 하죠.”
“그,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건 바바로티가 극찬했던 그 음식이란 말이에요.”
마라나는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다소 황당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 마리나가 다시 눈을 크게 떴다.
불안한 표정으로 주의를 둘러보더니 물었다.
“진짜 지진 난 거 아니죠? 또 소리가 들렸어요.”
그 모습에 도훈이 송석현 쉐프를 바라봤다.
“송 쉐프님이 설명해 주셔야겠네요.”
“네, 그러죠.”
송석현 쉐프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나가 물었다.
“설명이라니요?”
“아마 그날이 바바로티와 처음 만난 날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송석현 쉐프는 뭔가를 회상한 듯 살짝 고개를 들어 먼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설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의 설명 중 대부분은 바바로티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일이었다.
바바로티가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인한 폭격이 마을을 휩쓸고 갔다는 것과 그때 구석에 숨어서 먹던 비프스튜에 관한 이야기였다.
설명을 듣던 마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야기는 저도 알아요.”
“네, 알고 계신다고 하니 얘기가 쉽겠네요. 그날은 바바로티가 공연이 끝나고 저희 호텔로 왔던 날입니다. 동료들과 술에 취해서 잠이 들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바바로티는 지금 시간에 깼어요.”
“술에 취해 자다가 지금 시간에 깼다고요?”
마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바로티는 생전에도 술에 취하면 중간에 깨는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때 송석현 쉐프가 말을 이었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전쟁이라니요?”
“어디선가 폭격 소리가 들렸다고 했어요. 그 소리의 원인을 찾아서 온 게 바로 제 주방이었습니다. 물론 그 원인은 찾지 못했죠. 대신 제가 만든 야참에 눈독을 들였죠.”
“그러니까…….”
“네, 이 김치찌개가 바로 그 음식이에요. 나중에 저한테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무슨 얘기요?”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전쟁통에 몰래 먹었던 비프스튜가 떠올랐다네요. 그래서 그날 그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는 그 후 같은 시간이 항상 제 주방으로 내려왔어요.”
“그건 또 왜죠?”
“전쟁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정도의 소리를 들었던 거죠.”
“혹시…….”
“마리나가 들었던 소리가 맞을 거예요.”
“그 소리는 대체 뭐예요?”
“그 소리는 저희 호텔의 보일러실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저도 바바로티가 떠난 후에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바바로티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요. 아마도 그걸 절대음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뭐라고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청력이죠.”
“그, 그러니까. 이 음식은…….”
“바바로티가 진짜 이 음식이 맛있어서 그렇게 극찬했는지는 몰라요. 아마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극했기에 그런 감상에 젖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일 텐데…….”
“지우고 싶은 기억은 아닐 거예요. 힘들었던 그때가 없었다면 영광도 없었을 거니까요.”
“그런가요? 어쨌든 이상하게 그때의 감성에 집착하더라고요. 일단 맛이나 보세요, 마리나.”
“아, 알았어요.”
마리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아직도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조심스럽게 뜬 마리나는 천천히 입안에 넣었다.
순간 마리나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 송석현 쉐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