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05화 (205/250)

(205)

도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였다.

마리나가 재촉하듯 외쳤다.

“그럼 둘 다 같이해 봐요. 바로 시작!”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맞춰 무대 위에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전에 끊겼던 부분과 이어지는 반주였다.

마리나가 반주에 맞춰 들어갔다.

―오늘 저녁에도 바람이 살랑거리겠죠.

이어서 윤장미와 장소담이 들어갔다.

―오늘 저녁에도 바람이 살랑거리겠죠.

마리나가 다시 가사를 받았다.

―작은 숲에 있는 소나무 아래서

뒤쪽에 있던 장혁과 가필드의 화음이 하나의 선을 그려 나간다.

―작은 숲에 있는 소나무 아래서…….

노래가 이어지자 가장 놀란 것은 도훈이었다.

지금 그들이 소화하는 노래는 정확히는 오페라가 아니었다.

대중성에 맞춰 편곡된 팝페라 형식이라고 봐야 했다.

실제 1995년 당시 바바로티는 이번 버전의 편곡을 무대에 올렸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그와 함께한 친구들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조화를 이룬 당시의 편곡은 그 후 명곡이라는 이름으로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 곡은 절정을 항해 치닫고 있다.

도훈은 윤장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장소담은 음색은 윤장미보다 뛰어났다.

이쯤 되니 왜 그녀가 전생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지가 궁금할 정도였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마흔이 넘어 자신의 운동 능력을 자각한 야구 선수라든가.

쉰이 넘어서 가수로서의 재능을 깨달은 사람.

사례를 따지면 수없이 많았다.

문제는 장소담의 곁에는 앞으로 커버퀸이라 불릴 윤장미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도훈은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장소담과 윤장미 그리고 가필드라?

블랙홀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한 과정에 놓인 특별 부록과 같은 인연이 분명했다.

*    *    *

두 시간 후.

블랙홀의 무대를 시작으로 추억을 소환하라 2회차 녹화가 시작되었다.

장소담은 장산시청 앞마당에서 열렸던 1회 공연에 이어 이번 2회도 라이브로 관람하게 되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는 그때는 관중석에 있었던 반면, 지금은 무대 뒤에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살짝 고개를 내밀면 무대 위를 누비는 블랙홀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일 정도였다.

쿵. 쿵.

장소담의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스타들을 보고 가슴이 뛰는 건지 자신이 무대에 서는 상황 때문에 흥분한 건지 아리송했다.

장소담은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 초코바 하나가 보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친구 윤장미가 초코바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지금 뭐 해?”

“먹을래?”

“너는 긴장도 안 돼?”

“현장에서 분석하는 게 더 도움이 되잖아. 아까 마리나 음색 들었어? TV에서 들리던 목소리와는 완전 딴판이야. 내가 마리나에 대해서 지난번에 혹평했던 건 완전히 취소야. 그리고 가필드 오빠들에 대한 것도 다시 분석해야 할 것 같아.”

“아, 역시 그 버릇은 안 없어지네.”

“뭐, 그렇지…… 나야 분석하는 게 취미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 상황에서 떨리지 않을 수 있어?”

“내가 좀 그렇잖아, 헤헤.”

해맑게 웃는 윤장미의 모습에 장소담이 피식 웃었다.

“너 같이 강철 심장이 친구로 있어서 다행이다.”

“흠, 그게 다행인가?”

그때였다.

진행 요원이 그녀들에게 속삭였다.

“일단 이쪽에서 대기해 주세요.”

진행요원이 가리킨 쪽은 통로였다.

게스트 무대를 위한 별도의 대기실이 있는 것 같았다.

윤장미는 무대를 뒤로하고 진행요원을 따랐다.

그곳으로 간 윤장미와 장소담은 눈을 크게 떴다.

그곳은 무대와 객석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윤장미는 공연장을 보고 당황한 듯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장소담이 물었다.

“장미야, 왜 그래?”

“저길 봐 봐.”

“어디?”

장소담이 고개를 갸웃하자 윤장미가 밖을 가리켰다.

“저기 객석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휑하지?”

“그러네.”

장소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나가 나오는데 이런 상황이 가능한가?”

“아마 마리나 공연 최초 아닐까?”

“가필드 공연 최초이기도 하지.”

장소담이 말을 덧붙일 때였다.

뒤쪽에서 장혁이 다가왔다.

“너희들 말대로 최초다.”

“앗, 장혁 오빠…… 미안해요.”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저래 봬도 이천 명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천 명요?”

장소담이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봐도 관중석은 썰렁하기만 했다.

“이천 명 맞아.”

“그런데 왜 이렇게 썰렁해요.”

“이곳 경기장이 워낙 크잖아, 덕분에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 거지.”

“흠…….”

“뭐, 어떻게 보면 일일 매니저인 우리가 홍보를 제대로 못 한 걸 수도…….”

“왜 매니저 잘못이에요.”

“홍보는 매니저가 하기로 했잖아.”

“오빠들도 매니저잖아요, 저 중에 아마 천 명은 저희가 모은 관중일걸요.”

“너희가?”

“팬카페 회원 중 반은 왔어요.”

“반이라…….”

“이천 명이니, 천 명은 왔어요. 여기 보세요, 출석했다고 인증 사진 날렸잖아.”

장소담이 핸드폰에 뜬 인증 사진을 보여 줬다.

그 모습에 장혁이 피식 웃었다.

“너희들 잘하네.”

“뭐, 저희가 좀 잘하는 편이죠.”

“차라리 겸업해라.”

“겸업이라니요?”

“블랙홀하고 가필드 동시 입덕이라고 할까?”

“에이, 아까 짬 내서 벌써 가입해 뒀어요.”

“하하, 고맙네.”

“그런데 괜찮으세요?”

“뭐가 괜찮냐고 하는 거지?”

“너무 썰렁하잖아요.”

“아무래도 저게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인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까 임제호 피디님이랑 잠시 대화 나눴는데…… 관중에게는 추억을, 출연자에게는 초심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목표라나…….”

“앗, 초심이라뇨?”

“우리도 저렇게 텅 빈 객석을 바라보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

“가필드가 그런 적이 있었다고요?”

“오죽하면 우리가 백댄서 알바까지 했겠냐? 사발면 한 그릇 먹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출연한 건데…… 그거 아직도 까이잖아.”

“누가 오빠들을 까요? 팬 중에는 없을 텐데요.”

“우리가 까이는 게 아니라 우리 기획사 대표님이 까이지, 하하.”

“아, 하긴…….”

장소담이 가끔 올라오는 기사들을 떠올렸다.

걸 그룹의 뒤에서 춤추는 가필드의 모습은 아직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

그 장면이 수면으로 올라올 때마다 욕을 먹는 것은 기획사 대표였다.

그때 윤장미가 뭔가 기억난 듯 말을 이었다.

“오빠들은 그렇다 치고 마리나가 객석을 보고 놀라겠는데요.”

“에이, 마리나도 관중 숫자는 확인했어. 오히려 좋아하던데?”

“저걸 보고 좋아한다고요?”

“생각해 봐, 스페셜 게스트가 누가 나왔는지는 비밀이잖아. 뭐, 자존심이 상할 이유가 없지. 더 중요한 건…….”

장혁이 말을 끊자 윤장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중요한 게 뭔데요?”

“중요한 건 마리나의 소원이 이렇게 텅 빈 관중석이었다고 하네.”

“네?”

“귀를 찢을 정도의 함성 그리고 무대 위에 선 자신보다도 더 열정적인 관중. 모든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더라고.”

“그럼 이번 무대가…….”

“뭐, 힐링하는 느낌으로 공연한다던데.”

“와, 긍정 회로가 짱짱하네요.”

“그래, 그런 긍정의 힘이 그녀를 현재 위치까지 올려놨겠지.”

“저 질문 하나 있어요.”

“장미가 내게 질문이 있다고?”

“다른 게 아니라…… 제가 노래에 소질이 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해? 남들은 그렇게 분석을 잘하면서 자기 자신은 모른다고?”

“제가 분석하는 아티스트 모두 최고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에이, 일반인을 어떻게 프로랑 비교해. 그런데 너는 프로로 발을 들여놔도 될 소질이 있으니 믿고 달려도 될 것 같다.”

“달리다니요?”

“성공을 위해 달리는 거지, 여기 있는 친구하고.”

장혁이 가리키는 것은 장소담이었다.

장소담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진행요원이 목소리가 들렸다.

“10분 남았습니다. 이제 준비해 주세요. 참, 제가 나눠 드린 핫팩 챙겨 주시고요.”

*    *    *

여섯 시간 뒤.

강남의 미라클 호텔 연회장.

커다란 연회장에는 모두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들 중 오직 마리나만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마리나의 매니저인 라셀도 피곤한지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올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마리나가 황당하다는 듯 라셀을 깨웠다.

“라셀, 빨리 일어나야지! 지금 뭐 해?”

“저 피곤해요, 마리나.”

“지금을 위해서 우리가 한국에 온 거잖아. 그런데 잠잘 것처럼 폼 잡으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저는 지금 잠이 중요해요? 생각해 보세요, 아까 공연팀이 펑크 내는 바람에 무대를 날릴 뻔했잖아요.”

“그래도 저 사람들 덕분에 잘 넘겼잖아.”

마리나는 다른 테이블에서 흐느적거리는 가필드와 장소담 일행을 가리켰다.

“저도 그건 놀랐어요, 마리나가 말한 한강의 기적을 봤어요.”

“그래, 한국이라는 나라는 참 신기해.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노래를 시켜도 나보다 잘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리고 이상한 게 저들과 노래를 하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어…….”

“무슨 기분이요?”

“뭔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 것 같은 공동체 의식이라고 할까?”

“혹시 무슨 이상한 종교에 빠진 건 아니죠?”

“내가 종교 활동할 시간도 없는 거 알잖아. 내가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면 라셀이 원흉일걸.”

“왜 저를 가지고 그래요, 마리나.”

“그런 종교적인 공동체 의식이 아니었어. 진짜 모두가 하나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에이, 그건 오해예요.”

“아니야, 라셀.”

마리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도훈밖에 없었다.

그건 라셀이 걱정하는 종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훈이 걸어 놓은 스킬 덕분이었다.

도훈이 사용한 것은 무대 위의 공연자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스킬이었다.

블랙홀에게도 가끔 사용하는 ‘원포올’.

모두를 위한 하나가 되고, 그 하나를 위한 모두가 되는 완벽한 스킬.

도훈은 지금 상황이 신기했다.

이제까지 블랙홀에게 썼지만, 그들은 도훈의 스킬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마리나는 느낀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아마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마리나 특유의 감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 마리나가 도훈을 불렀다.

“헤이, 도훈.”

“아, 마리나, 오늘 수고 많았어요. 오늘 무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약속드린 음식은 이 호텔에서 준비하고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게 딱 그 시간에 먹어야 그 맛이 나는 거라서요.”

“시간에 맞춰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고요?”

“네, 바바로티가 반한 것이 바로 그 시간에 먹었기 때문이라고 쉐프라 말하더라고요.”

도훈은 피식 웃었다.

도훈이 그녀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운이 좋게 당시 바바로티가 극찬했던 메뉴를 만든 쉐프가 아직 미라클에 남아 있었다.

그보다 앞서 바바로티가 내한 당시 미라클에 머물렀다는 것이 더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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