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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 음식에 대한 의문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마리나의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리나는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는 미식가였으니까.
그렇게 호기심을 품고 살아가던 중 바바로티의 제자이자 현 세계 3대 테너인 까를로스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어떤 무대에 선다면 바바로티가 극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까를로스도 그 음식의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그 음식이 무엇인지를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만 했다.
그래서 까를로스와 만나 그 사람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 대화의 끝에 이번 무대에 대한 설명을 들었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무대에 설 수 있고.
그다지 화제가 되지도 않으며.
대다수가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마리나는 이 무대에 서기로 결심했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한국은 단지 경유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바바로티 아저씨와의 약속도 지키면서 그 의문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무대였다.
비록 비공식 무대이긴 해도 마리나는 이번 공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바바로티에게 바치는 무대기도 했기에 소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바바로티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예전에 감명 깊게 봤던 공연 하나를 떠올렸다.
바바로티와 팝가수가 듀엣으로 열창했던 오페라의 한 장면은 이 무대에서 공연하기로 한 것.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페라 중 두 파트 정도를 소화해 주기로 한 뮤지컬 배우가 약속을 어긴 것이다.
물론 그들은 한국인들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부터 계약을 하고 이곳으로 오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크루는 아니지만, 믿을 만한 팀이라고 들었었다.
그런데 거하게 뒤통수를 친 것이다.
지금 매니저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은 웃돈을 받고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말도 안 돼!”
마리나가 흥분하자 매니저 라셀이 말했다.
“마리나, 일단 리한테 말해 보는 게 어때요?”
“리요?”
“이 무대로 마리나를 초대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라면 해결책이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꽤 유명한 매니지먼트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이 무대를 소화하기에는 늦었어요, 라셀.”
“일단 내가 얘기는 해 볼게요. 이 오페라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라셀은 오페라의 악보를 가리키며 몸을 돌렸다.
일단 무대의 주인인 리를 만나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 * *
잠실 주 경기장으로 가는 승합차 안.
그곳에는 어색한 시선이 뒤얽히고 있었다.
앞쪽에서 운전대를 잡은 것은 한민국이었다.
백미러를 힐끔 본 한민국이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렸다.
차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주차가 끝나고 이제는 차량에서 내려야 할 때였다.
뒤쪽을 바라본 한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왜 그래요? 그리고 저분들은 누군데 다들 머플러를 하고 있어요?”
“블랙홀의 일일 매니저.”
“정말로요?”
“왜 사람을 못 믿어, 한민국.”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자 한민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저분들 왠지 연예인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데요.”
그때 장혁이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며 물었다.
“혹시 제 눈을 보면 누가 떠오르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민국은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흠, 딱히 누가 떠오르는 건 아닌데…….”
“그래도 누가 떠오르는지 말씀해 주세요.”
“음, 대충 우리 시원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요.”
동시에 장소담이 손뼉을 쳤다.
“거봐요. 제가 실수한 게 아니라니까요. 분위기가 딱 우시원 오빠예요.”
“왠지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장혁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모습에 한민국이 물었다.
“가필드의 장혁 씨 아니에요?”
“앗,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제 눈빛만으로도 알아보시는 걸 보면 팬이 틀림없네요, 하하.”
“아까 같이 식사했다고 들었어요.”
“식사요?”
“아까 직원분들 점심을 사 주셨다고…….”
“제가 카드로 긁긴 했죠.”
“네, 지금 장혁 씨 인기가 장난 아니라니까요?”
“원래 인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밥을 사서 좋아하시는구나.”
장혁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당황한 한민국이 말했다.
“당연…… 아니, 가필드 인기야 당연한 거고요.”
차에서 내린 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때 장소담이 장혁을 바라봤다.
장소담은 사실 앞에 두고 본의 아니게 퍼부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까 한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음. 소담아, 나는 말이야…….”
장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혁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들과 친해졌다.
그냥 동생처럼 대하기로 해서 편하게 부르는 상태.
장소담이나 윤장미도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윤장미는 자신은 친오빠랑 사이가 안 좋다며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장혁의 모습에 장소담이 물었다.
“왜요?”
“지금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야.”
“무슨 걱정을 하는 건데요? 제가 탈덕했다고 해서 삐진 거 아니에요?”
“내가 그 한마디에 삐질 정도로 약해 보여.”
“네.”
“아, 아니라고 해도. 단지 아까 장미가 한 말을 곱씹고 있어.”
“무슨 말이요.”
“우리의 음악에 대해서.”
“흠.”
“눈빛은 시원이랑 똑같은데…… 우리가 잃어버린 초심은 뭘까 하고.”
“너무 심오하세요. 장혁 오빠와는 어울리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윤장미도 끼어들었다.
그 모습에 장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장미가 한 얘기는 잘 들었어. 그런데 그 말을 너무 쉽게 한 거 아니야?”
“쉽게 한 건 아닌데요. 평소에도 고민하던 말이었어요. 사실 오빠가 잃어버린 건 초심이 아니라, 가필드만의 음악성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솔직하게 말하면…… 첫 앨범의 타이틀 곡 한여름 밤의 꿈을 처음에는 이렇게 불렀거든요.”
말을 마친 윤장미가 목청을 가다듬더니 노래를 흥얼거리듯 불렀다.
순간 장혁의 눈이 커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분명히 자신의 첫 앨범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실 모창은 쉬운 영역에 속한다.
상대의 음색 그리고 버릇을 연구하면 모창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감성은 어떨까?
감성이란 부분은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윤장미는 지금 감성을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같은 곡을 시작했다.
장혁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같은 노래인데, 감성이 달라졌다.
지금 윤장미가 부르는 노래는 데뷔한 지 10년이 지난 현재의 가필드의 감성을 담고 있었다.
장혁은 조용히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을 바라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윤장미나 도훈이나 다 같은 천재라고 생각해서였다.
순간 장혁의 눈이 빛났다.
장혁은 천재를 시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재의 능력에 낙담해서 고개를 숙일 남자도 아니었다.
장혁은 천재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만족할 만한 음악을 위해서라면 장혁은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장혁은 윤장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초기 음악과 지금의 음악은 전혀 달라졌다.
물론 의도한 것이다.
장혁은 가필드가 십 년 동안 끊임없이 발전했다 생각했다.
트렌드도 맞추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변화가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찌 보면 초기보다 퇴보한 것은 아닐까?
물론 도훈이 주기로 한 ‘앨리스’로 인해 가필드는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었다.
장혁이 활짝 웃으며 윤장미를 바라봤다.
“일일 매니저 끝나면 뭐 해?”
“뭐 하다니요?”
“녹음 한번 해 보지 않을래?”
“녹음이요?”
“그 정도 목소리면 우리하고 같이 작업할 실력은 충분할 것 같은데.”
“제가요?”
윤장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모습에 도훈은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윤장미가 가수로서 각성하는 미래가 조금 더 앞당겨질 뿐이었다.
윤장미가 황당하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제가요? 소담이 실력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데요.”
도훈은 윤장미의 말에 놀랐다.
갑자기 여기서 장소담이라니?
그때 저 멀리서 진행요원이 달려왔다.
“이 실장님, 황 매니저님이 찾아요.”
* * *
도훈이 향한 곳은 잠실 주 경기장의 안쪽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이었다.
공연을 위한 사무실과 대기실이 나란히 붙어 있는 곳이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한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황수영이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세요?”
“실장님, 지금 좀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요?”
“마리나가 섭외한 공연팀에 문제가 생겼대요.”
“공연팀이라면…….”
“그 오페라 파트요.”
“피가로의 결혼 중 한 파트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그럼 그 곡은 빼면 되잖아요. 이게 정규 공연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꼭 해야겠대요.”
“음.”
도훈은 팔짱을 끼고 대기실을 바라봤다.
그대 장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리나라니요?”
“아, 그러고 보니 들켰네. 이번에 게스트가 마리나야.”
“네? 마리나요? 제가 알고 있는 그 마리나는 아니겠죠?”
“우리가 아는 마리나? 내가 아는 마리나는 딱 한 명인데?”
“그럼, 팝의 여제 마리나요?”
장혁이 눈이 보름달만큼 커졌다.
장혁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세대였다.
나이는 들었지만, 이직도 팝의 여제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은 가수였다.
그녀가 저 대기실에 있다고?
장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에서는 레이저라도 나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만큼 장혁은 놀라고 있었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녀가 국내 무대에 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장혁은 자신이 들고 있는 홍보물을 바라봤다.
홍보물에는 마리나라는 이름이 아예 없었다.
모든 매체에 자신의 입국을 숨기고 이 조그만 공연에 게스트로 참가한다?
장혁은 자신도 모르게 도훈을 바라봤다.
“형, 나 지금 현기증 나요!”
“갑자기 왜 그래?”
“왠지 이거 모두 깜짝 카메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혁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충격적이었다.
주변에 가필드의 다른 멤버들도 황당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황수영이 다급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어떻게 해요?”
“뭐, 공짜로 불렀으면 그만큼 맞춰 줘야지.”
“네?”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잖아요, 수영 씨.”
“준비하다니요?”
황수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장혁을 가리켰다.
“이쪽에 딱 맞는 공연팀이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황수영의 눈동자가 희망으로 물들었다.
입맛까지 다시는 황수영.
그 모습에 장혁이 뒤로 물러났다.
도훈이 장혁의 소매를 잡았다.
“내가 힘든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니야. 일단 마리나한테 인사하러 가지.”
“인사요?”
“응, 일단 인사만.”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혁은 황수영의 눈빛도 잊은 채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