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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02화 (202/250)

(202)

그 포토 카드는 가필드의 것이 아니었다.

블랙홀, 그중에서도 우시원의 포토 카드였다.

장혁은 그대로 석상이 되어 버렸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정확히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때 도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 포토 카드가 눈에 많이 익네요.”

“블랙홀 공연 때 받았어요.”

“저건 딱 한 번 쓴 건데, 그러니까, 장산시 공연에서 받은 거 맞죠?”

“맞아요, 그런데 우시원 오빠가 왜 가필드의 장혁 오빠 사인을 흉내 낸 거예요.”

장소담이 황당하다는 듯 포토 카드를 흔들었다.

황당한 상황에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이 친구가 시원이라고 생각한 거죠?”

“당연하잖아요. 이런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아티스트는 국내에서 우시원 오빠가 유일해요.”

“진짜로요?”

“네.”

장소담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훈이 장혁을 바라봤다.

일정한 박자로 고개를 흔드는 장소담.

그녀의 말은 분명히 칭찬이었다.

장혁은 복잡한 눈빛으로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천장과 벽면에서는 놀이 기구들이 레일을 타고 어지럽게 흔들릴 뿐이었다.

도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장혁 성공했네.”

그 말에 뒤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것은 가필드의 멤버들의 웃음이었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음 짓고 있을 때 장혁과 장소담만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도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친구는 우시원이 아니에요.”

“그럼요?”

“이 친구의 정체는 가필드의 장혁이에요. 가필드 아시죠?”

“에이, 농담도…… 가필드의 장혁 오빠가 왜 실장 오빠랑 같이 있어요? 매니저 오빠는 블랙홀이랑 같이 있는 게 정상이잖아요.”

“가필드가 선배로서 후배를 도와주기로 해서요.”

도훈의 말이 끝나자 장혁은 머플러를 살짝 내렸다.

이어지는 비명.

“앗.”

도훈은 재빨리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그러고는 장소담에게 속삭였다.

“일단 비밀이에요.”

“비, 비밀요?”

“지금 보시다시피 촬영 중이거든요.”

도훈이 카메라맨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따라붙던 카메라맨이었다.

이전에는 병풍처럼 존재감 없던 카메라맨이 지금은 달라 보였다.

카메라맨을 힐끔 본 장소담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장혁을 바라봤다.

“진짜 장혁 맞아요?”

장소담의 질문에 장혁이 다시 머플러를 내렸다.

장소담은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자신이 이제까지 내뱉은 말이 떠오른 것.

가필드에게 실망했다던가, 혹은 그들이 싫어서 탈덕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브랜드를 바꿨을 뿐이다.

브랜드를 바꾼 이유도 그 브랜드가 싫어져서는 아니었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였다.

그것은 마치 명품 백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같았다.

언젠가는 한 번쯤 만져 볼 수 있는 브랜드와 꿈도 못 꿀 브랜드의 차이였다.

그만큼 가필드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팬 사인회에 참석하려 치면 앨범을 몇백 장 구매해서 당첨될 확률이 희박했다.

거기에 요즘은 예능에도 나오지 않는다.

마치 신비주의를 콘셉트로 잡은 것 같았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탈덕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눈앞에 있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것도 잠시, 장소담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사실, 팬덤의 성향이 문제였다.

가필드의 팬덤인 로열 가필드는 국내에서도 가장 급진적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중 몇몇은 한국의 훌리건이라 불린다.

오늘 있었던 일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순간 뒤쪽에 있던 카메라가 떠올랐다.

장소담은 재빨리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보던 장혁이 장소담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오빠 마음은 원래 바다 같아서, 아니 우주라는 말이 정확하겠군. 그런 거 가지고 삐지는 사람 아니다.”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오늘 방송이 나가면…….”

“어차피 얼굴도 모를 텐데, 그걸 걱정한다고?”

“제 목소리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목소리도 변조해서 나갈 거라고 했으니 걱정하지 마.”

“진짜요?”

장소담은 그제야 손을 내렸다.

“와, 바로 태세 전환하네.”

“휴, 저 죽을 뻔했네요.”

“혹시, 일일 매니저 한번 해 보지 않을래? 캐릭터가 확실하네.”

장혁이 팔짱을 끼고 장소담을 바라봤다.

장소담이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뭐, 괜찮다면 우리 옆에 있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혁 오빠.”

“싫으면 말고!”

장혁이 머리를 쓸어올린 후 머플러를 올렸다.

장소담이 당황하고 있을 때 윤장미가 말을 이었다.

“제가 아까 한 말은 다 진심이었어요. 변한 게 없어요.”

감정 없는 윤장미의 말에 장혁의 눈이 커졌다.

“와, 이거 한 방 먹었네.”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저는 팬이 아니라 음악을 분석한 것뿐이에요.”

“아, 음악…….”

장혁이 말끝을 흐리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윤장미의 말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던 도훈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윤장미를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던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단서를 발견한 탐정처럼 윤장미를 살피는 도훈.

윤장미가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지, 지금 왜 그렇게 절 보세요?”

“언니가 윤선미 맞지요?”

“헉, 어떻게 아셨어요?”

이제까지는 석상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윤장미였다.

그런데 갑자기 표정이 바뀐 것을 보며 어지간히 놀란 것 같았다.

윤장미가 당황하자 도훈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렇게 놀라지 말아요. 이쪽 바닥에 있다 보면 꽤 많은 사람을 알게 되지요. 이름이…….’

“윤장미예요.”

“로즈…….”

“로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어로 로즈잖아요. 사실 언니랑 닮아서 바로 알아봤어요.”

“저희 언니를 아세요?”

“뭐, 같은 계통에 있다 보니 명함 주고받은 사이?”

“와, 진짜 머리 좋으신가 보다. 명함 주고받은 사이인데, 얼굴을 그렇게 기억하시다니…….”

윤장미는 눈을 크게 떴다.

이제는 당황한 기색은 사라졌다. 도훈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겼다.

윤장미의 언니, 윤선미는 중견 공연기획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언니에게 듣기로는 연예기획사의 실무진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매니저가 언니를 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윤장미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에 매니저 오빠는 지력 중심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윤장미의 설명이 다시 시작되었다.

윤장미는 도훈을 게임 캐릭터에 비유했다.

마지막에는 삼국지의 제갈량까지 들먹이며 도훈을 칭찬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장혁이 부러운 입맛을 다셨지만, 윤장미는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도훈의 모습은 태엽 인형 같았다.

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칭찬이긴 했지만, 설명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도훈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학생도 같이 일일 매니저 해 보죠.”

“저도요?”

“네. 여기 있는 친구와 함께 일일 매니저를 하는 거예요.”

“…….”

순간 주변은 침묵에 휩싸였다.

장소담에 이어 윤장미까지 일일 매니저 제안을 받은 것이다.

도훈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윤장미를 바라봤다.

윤장미는 도훈의 기억에 있는 사람이었다.

명문대 출신인 윤장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쪽 바닥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것도 생소한 분야인 대중문화평론가로 말이다.

전생의 기억에 윤장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평론이 아니었다.

나중에 활성화될 개인 스트리밍 방송에서 그녀는 독보적이었다.

시작은 시청자들과의 설전이었다.

윤장미의 냉철한 평론이 마음에 안 든 시청자 중 몇이 그녀를 도발했다.

비판만 하지 말고 직접 해 보라는 도발이었다.

그때 윤장미가 선택한 것이 바로 정면 돌파였다.

윤장미는 직접 해 보라고 하는 시청자의 말대로 자신이 비평했던 가수들의 커버곡을 라이브로 부르게 된다.

그게 바로 전설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유명세를 타게 돈 것이 로즈TV였다.

국내 크리에이터 중에는 부동의 국내 1위를 유지한 것이 장장 십 년이었다.

커버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아마도 오 년 뒤의 일이 될 것이었다.

그녀를 여기에서 만나다니!

가필드에 윤장미라…….

도훈은 조용히 머릿속에 담긴 몇 개월간의 계획을 살폈다.

블랙홀이 성공할 수 있는 큰 그림 속에 세세한 만남은 없었다.

하지만 윤장미와의 만남이 성공으로 가는 계단 중 일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    *    *

잠실 주 경기장의 대기실.

금발의 여자 가수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매니저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다.

“오, 마이 갓. 머리가 다 망가져요.”

“지, 지금 머리가 문제에요? 이렇게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해요?”

“그냥 그 곡은 빼기로 해요. 어차피 정규 투어도 아니잖아요.”

“아니에요, 난 아저씨의 생전에 약속했어요.”

그들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갔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나.

1983년 데뷔 이후 모든 여자 팝가수들의 롤모델이자 우상으로 군림해 온 팝의 여제였다.

데뷔 후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그녀.

그녀는 사회학에서도 연구될 만큼 존재감이 뚜렷했다.

마리나가 이처럼 당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마리나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 이후에도 한국을 따로 방문할 일을 없을 터였다.

이것은 그녀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소속사가 철저하게 시장 분석을 한 결과였다.

마리나도 소속사의 결정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어 준 것이 지금의 소속사 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리나가 잠실 주 경기장에서 있을 추억을 소환하라에 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대 세계 3대 테너라 불리었던 바바로티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바로티와 친구들이란 기획 공연에 참가했을 때 한국에 대해 들었다.

그 당시 바바로티는 한국의 어떤 음식에 대해 반했다고 한다.

나중에 뉴욕이나 파리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그 음식을 먹어 봤지만, 현지에서 먹던 맛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바바로티는 마리나에게 그 음식을 함께 먹으러 한국에 가자고 했다.

바바로티는 그녀에게는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와도 같았다.

마리나는 바바로티와 함께 한국의 무대에 선 후 그가 말한 음식을 같이 먹기로 했다.

하지만 바바로티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녀가 한국에 올 기회는 없었다.

바바로티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마리나는 그 음식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바바로티는 마지막에 숨을 거두면서도 그 음식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바바로티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마리나는 자신의 머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의문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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