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01화 (201/250)

(201)

윤장미의 질문에 장혁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민했다.

말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야 할지를 결정 내리지 못한 것.

그것도 잠시, 그는 입을 열었다.

좋은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나? 그러니까…….”

장혁이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멤버들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장혁이 생각한 좋은 방법은 다른 멤버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솔직히 자신의 입으로 밝힐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다. 도훈을 비롯한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 약속에는 허점이 있었다.

장혁은 약속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약속한 적이 없었다.

기분 좋게 고개를 돌렸던 장혁이 표정을 굳혔다.

주위가 휑했기 때문이다.

그의 옆에 있던 멤버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훈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오직 카메라맨 한 명만이 자신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장소담과 윤장미가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장혁이 외쳤다.

“잠시만!”

“왜요? 저희 바빠요. 빨리 잠실 주 경기장으로 갈 거예요. 늦으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요. 지난번에는 뉴 키즈 오빠들도 왔는데 오늘을 누가 오려나……. 진짜 기다렸거든요. 헤헤.”

해맑게 웃는 장소담의 모습에 장혁이 외쳤다.

“같이 가!”

그 외침에 윤장미가 화들짝 놀랐다.

“저희가 왜 아저씨랑 같이 가요? 그리고 그 수상한 머플러는 뭐예요? 누가 봐도 변……. 아니 이상하잖아요.”

윤장미는 변태라는 말을 뱉으려다가 겨우 참았다.

대충 상황을 보니 방송국에서 나온 직원이 분명했다.

윤장미는 조용히 장소담에게 턱짓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는 신호였다.

장소담도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에 카메라가 있기에 조금 안심되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상대의 모습은 수상쩍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나려던 장소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생각에 잠신 장소담은 잠시 후, 윤장미에게 뭐라 속삭였다.

그 속삭임이 윤장미가 팔짱을 끼고 장혁을 바라봤다.

윤장미가 한숨을 쉬다가 말을 이었다.

“휴, 일단 옆에 붙으세요. 그리고 카메라맨 아저씨도 딱 붙으시고. 카메라맨 아저씨라도 있어야. 좀 안심이 되거든요.”

그 말에 카메라맨이 그들의 곁에 바싹 붙었다.

카메라맨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메라맨이 집중해서 그들을 찍고 있을 때였다.

앞서가던 학생 둘이 멈췄다.

그들은 뭔가 잊었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그 모습에 장혁이 물었다.

“대체 어디로 보내는 거야?”

“팬카페에 이 전단지 좀 띄워 달라고 보냈어요.”

장소담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자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가필드 팬카페에는 왜?”

“거기서 가필드가 왜 나와요? 당연히 블랙홀 팬카페죠.”

장소담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장혁을 바라봤다.

사실 장소담은 머플러 뒤에 숨어 있는 얼굴을 의심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다르지만, 눈빛이 누군가와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장소담은 동행을 허락했다.

이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장소담은 지금 이 상황이 깜짝 카메라라고 생각했다.

장소담은 윤장미에게 그 가능성을 미리 이야기했다.

머플러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다는 것도 말해 놓은 상태.

뭐, 윤장미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윤장미는 음악과 아티스트를 분석하려 하지, 마음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블랙홀의 팬카페를 장소담과 함께 만든 이유도 그들의 음악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의 음악을 분석해서 친구인 장소담에게 들려주는 것이 윤장미의 취미 생활.

윤장미가 분석한 자료는 묘하게도 앞으로의 상황을 딱딱 맞추고 있었다.

잠시 대화가 끊기자 장혁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딱히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본능이었다.

사실 장혁은 이런 어색함이 낯설었다.

생각해 보니 그들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목에는 음성 변조를 위해서 장치를 차고 있었다.

헬륨 먹은 목소리와 같이 이상한 음성으로 변조해 주는 장치는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목소리지만, 장혁 본인의 목소리와는 살짝 거리가 멀게 만드는 장치였다.

덕분에 장혁의 목소리는 본래와 살짝 달라져 있었다.

장혁은 아무리 팬이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학생 둘은 계속 어딘가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이 멈추자 장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딱 하나만 물어보자, 얘들아.”

“뭔데요? 아저씨.”

“너희 가필드 팬이었다고 했잖아.”

“얼마 전까지는요.”

“저는 얘 따라서 가입한 거예요, 딱히 팬은 아니었어요.”

윤장미가 어깨를 으쓱하자 장혁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마치 핵폭발 5분 전의 미래를 본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때 장소담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까부터 가필드는 왜 물어봐요? 오빠, 아니 아저씨.”

순간 장혁의 눈이 살짝 빛났다.

중간에 귀에 딱 박히는 익숙한 단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오빠라는 단어였다.

고등학교 대도 오빠였고.

이십 대 중반이 넘은 지금도 오빠였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나도 자신은 대중에게 오빠로 남을 터였다.

장혁은 상대가 자신을 알아봤다고 확신했다.

장혁이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 왜 탈덕했는지가 아니라 왜 가필드란 그룹에 입덕했는지야. 그걸 말해주면 내가 선물을…….”

“에이, 선물을 필요 없어요. 정답은 너무 간단하니까요.”

“정답이 뭔데?”

장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머플러에 가려 그의 목울대는 보이지 않았다.

장소담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장혁 오빠 때문에요.”

“아, 역시…….”

“그런데 탈덕 역시 장혁 오빠 때문이에요.”

“…….”

장혁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변장하고 있다는 상황이 장혁의 폭발을 막았다.

상대의 상황은 모른 채 장소담이 말을 이었다.

“사실 가필드에 입덕한 건 장혁 오빠의 외모나 음악 때문이 아니었어요…….”

장소담은 잠시 말을 멈췄다.

마치 추억을 털어 내려는 듯한 표정이다.

그때 윤장미가 끼어들었다.

“휴, 답답해서 그냥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가 좋아한 건 가필드의 열정이거든요. 그리고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음악. 제가 가필드의 첫 앨범을 들었던 게 아마도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거예요. 저는 그 오빠들의 세 가지 부분을 눈여겨봤어요. 그건 완벽한 군무 그리고…….”

윤장미는 댐이 터진 듯 자신의 소신을 쏟아 냈다. 그녀의 말은 무려 5분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옆에서 듣던 장소담이 몸을 부르르 떨 정도였다.

장소담은 친구의 해설충 본능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혁은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신해서였다.

거기에 대부분이 맞는 말이었다.

윤장미가 지적하는 가필드의 단점은 명확했다.

초기와는 너무 다른 음악에 빠져 있다는 점.

윤장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중이 원한 것은 가필드의 기존 음악에 신선함을 한 방울 첨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가필드는 계속 원래 잘하던 음악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것 같다는 것.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신선함이지 기존 노선에서 탈선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이 왜 거기 있어요?”

장혁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막내 강찬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다른 맴버들과 도훈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카메라맨은 장혁 쪽과 도훈 쪽을 번갈아 잡았다.

어느덧 카메라 앵글이 멈췄다.

둘이 만난 것이다.

장혁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도훈이었다.

도훈이 주변 상황을 보고 물었다.

“와, 우리 간식 먹으러 간 사이에 혼자서도 열심히 하네.”

“실장 형 오셨어요?”

그때였다.

장소담이 손뼉을 치며 펄쩍 뛰었다.

“내가 분명히 그 오빠라고 했지?”

“어머, 얘가 신기가 있나 봐. 정말 맞췄네.”

“거봐, 내가 우리 오빠 눈빛이랑 똑같다고 했잖아.”

“목소리는 분명히 아닌데 신기하네.”

“나는 눈빛만 보면 알거든.”

그들의 대화에 도훈이 끼어들었다.

“실례하지만, 지금 무슨 일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매니저 오빠.”

“네?”

“스타플레이어에서 나왔던 그 매니저 오빠 맞잖아요. 블랙홀 매니저 말이에요.”

“아, 맞아요. 용케 알아보셨네요.”

“어떻게 못 알아봐요?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의 정체도 이미 알아챘어요.”

장소담이 장혁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 정체는 어떻게 아셨어요?”

“눈빛을 보고 딱 알았어요.”

“와, 목소리까지 변조해서 알아볼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팬이라면 눈빛만 봐도 자신의 스타를 알아보는 법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공연 쪽 전공이에요.”

“아, 같은 업계에서 일하실 분이군요.”

“뭐, 그렇죠…….”

“그럼 부탁 하나 드릴게요.”

“말씀하세요.”

“여기에서 빠져나갈 때까지는 이 친구의 정체를 비밀로 해 주세요.”

도훈이 장혁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장소담이 오뚝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요. 그런데 사실 반신반의했거든요. 그런데 실장 오빠 보니까. 딱 확실해지더라고요. 비밀은 제가 보장해 드릴게요. 그런데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말을 마친 장소담이 크로스백에서 포토 카드 하나를 꺼냈다.

그 모습에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인이라면…….”

승낙하려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화 내용의 핀트가 살짝 엇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도훈이 어디가 잘못되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장혁이 품에서 펜을 꺼냈다.

항상 품고 있는 펜이었다.

장혁은 이 바닥의 또라이라는 소리는 종종 듣지만, 팬들을 위한 서비스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생활을 해칠 정도가 아니라면 사인 정도는 어디서든 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스타였다.

장혁은 재빨리 장소담이 들고 있던 포토 카드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그 포토 카드 위에 정성을 다해 사인했다.

장혁은 카리스마 넘치는 동작으로 포토 카드를 장소담에게 건넸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혁은 사실 포토 카드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

무심한 척 사인하고 아무 표정 없이 다시 건넨다.

이런 일련의 동작들이 자신의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장혁은 무심한 눈길로 돌아섰다.

마치 총을 적에게 발사하고 돌아서는 무정한 총잡이를 떠오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장소담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 우시원 오빠 사인이 아닌데요? 꼭 가필드의 장혁 사인하고 비슷해요.”

“그게 무슨…….”

돌아선 장혁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장소담이 내민 포토 카드를 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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