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도훈이 웃자 장혁이 물었다.
“그런데 스페셜 게스트가 대체 누구예요?”
“이건 비밀인데…….”
“네, 말씀하세요.”
“그냥 끝까지 비밀로 해야겠습니다. 궁금하면 우리 황 매니저한테 물어봐요.”
“황 매니저라니요? 저는 처음 듣는데요.”
“현장은 황 매니저가 맡고 있으니까. 이따 소개시켜 줄게요.”
도훈이 뒤쪽을 가리켰다.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뒤쪽은 잠실 주 경기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장혁은 조용히 도훈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는 호기심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사실 그 호기심은 속마음의 백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장혁에게 도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과도 같았다.
그에게 도훈은 난데없이 나타난 뮤지션이었다.
장혁은 도훈을 단순한 매니저라 생각하지 않았다.
도훈은 분명히 뮤지션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앨리스’란 명곡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양미가 들려줬던 ‘앨리스’는 바로 녹음을 시작해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편곡까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장혁이 이렇게 블랙홀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도훈과 작업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하게 곡을 받고 끝내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앨리스’란 곡에 한해서는 도훈의 프로듀싱을 받고 싶었다.
그것은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서였다.
장혁은 도훈과 같이 일할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뛰었다.
* * *
잠실 주경기장으로 돌아간 블랙홀을 반긴 것은 황수영이었다.
황수영은 포근한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간식을 내밀었다.
“자자, 다들 이리 와서 간식 먹어요.”
하지만 블랙홀과 제작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모습에 황수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다들 왜 그러죠? 박 피디님도 그렇고 한 피디님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황수영이 서찬휘를 바라봤다.
눈빛이 심상치 않자 서찬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뒷걸음쳤다.
그 모습에 황수영이 한 걸음 다가섰다.
“지금 그 태도는 뭔가 수상한데?”
“제가 뭘요?”
“너, 밤에 라면 먹다가 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아, 창피하게 그 말을 왜 여기에서 하세요?”
“아무리 봐도 수상하잖아.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찬휘 너는 블랙홀 내에서도 먹성이라면 으뜸인데 도시락을 마다한다고?”
“점심을 든든히 먹었으니까 그렇죠.”
“아무리 든든히 먹어도 그렇지.”
“한 끼에 십만 원짜리 정식이에요.”
“앗, 나 빼고 그걸 먹었다고?”
황수영의 눈이 커졌다.
그때 한지혜가 손을 휘휘 저으며 끼어들었다.
“진정하세요, 황 대표. 아니, 황 매니저님.”
한지혜는 아직도 호칭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옮긴 회사의 대표가 황수영이라는 것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던 것.
매니저로만 알고 있던 사람이 케이넷의 대표라고 하니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황수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한 피디님도 마찬가지예요. 왜 저는 안 불렀어요.”
“황 매니저님은 스페셜 게스트 쪽 통역하신다고 하셔서 안 불렀는데요.”
“아, 그 게스트가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하더라고요.”
“정말로요?”
그때였다.
잠실 주경기장 안쪽에서 흥겨운 리듬이 울려 퍼졌다.
딴따다단! 딴따!
반주에 맞춰 여성의 보컬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노래나 보컬 모두 귀에 익숙했기에 서찬휘의 눈이 커졌다.
“저거 누가 커버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비밀……이라고 이 실장이 그러셨어.”
“아, 몇 시간 뒤면 알 거 아니에요. 그런데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아마 들어 봤을 거야.”
“발음도 좋은데요.”
“당연하지. 네이티브 스피커니까.”
“그런데, 진짜 모창을 잘하네요. 라이크 어 버디를 저렇게 잘 부르는 가수는 처음 봐요.”
“그러니까, 스페셜 게스트지.”
“누군지 진짜 궁금한데요. 진짜 모창 끝내주네요. 리듬도 그렇고 보컬이 아주…….”
서찬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 경기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 경기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같은 시간 잠실 로티 월드.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잠실 주 경기장에 도착한 블랙홀과 달리 가필드의 장혁은 머플러를 두른 채 홍보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혁이 주는 전단지를 받아 드는 행인은 아무도 없었다.
받아 들었다 치더라도 바로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물론 급하게 이곳으로 온 나머지 가필드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머플러 위로 드러낸 그들의 눈동자는 원망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었다.
“혁이 형, 우리 너무한 거 아니에요?”
“조금만 참아.”
“얼굴이라도 드러내게 해 줘야 홍보를 해 주죠. 이 상태에서 어떻게 홍보를 해요.”
가필드의 막내 강찬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모습에 장혁이 말했다.
“너, 머플러 내리면 죽는다.”
“답답해요, 혁이 형. 그리고 주변을 보세요. 다 큰 남자 다섯이서 머플러를 두르고 있으니 다들 이상하게 봐요.”
“짜식, 너는 머플러가 내 미모를 숨길 수 있다고 보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들 이상해서 보는 게 아니라. 내 외모에 반해서 쳐다보는 거잖아.”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얼굴을 숨기고 있는데 어떻게 외모에 반해요.”
“내 초롱초롱한 눈에 반한 거지.”
“눈에 반한다고요?”
“내 눈빛을 보고 머플러 안에 숨겨진 내 외모를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
강찬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열심히 전단지를 돌렸다.
장혁과의 대화를 포기한 것이다.
여기서 몇 마디 더 건넸다가는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연습실에 들러야 할지도 몰랐다.
장혁은 팀원과의 불화를 연습으로 푼다.
그 방식에 대해서는 가필드의 멤버 모두가 수긍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장혁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혁은 활짝 웃으며 길게 줄을 선 후룸라이드 입구로 다가갔다.
장혁은 본능적으로 뒤쪽부터 전단지를 건넸다.
모두가 영혼 없이 전단지를 받아 들고는 곱게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장혁이 외쳤다.
“오늘 잠실 주 경기장에서 블랙홀의 미니 콘서트가 있습니다.”
“블랙홀?”
전단지를 받은 사내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고는 시계를 바라봤다.
모습에 장혁이 말을 이었다.
“블랙홀 모르세요?”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누군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MBS의 스타플레이어에서…….”
장혁은 말끝을 흐렸다. 막상 소개하려니 적당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그냥 솔직하게 들이대는 것이 해답일 때가 많았다.
장혁이 말을 이었다.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떨어진 아이돌이 결성한 그룹이에요.”
“떨어진 아이돌에 왜 그룹을 결성합니까?”
“말하자면 패자부활전 같은 거죠.”
“흠, 한번 보러 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안 되겠네.”
“무슨 문제라도?”
“이거 타려면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가요?”
“아.”
장혁이 입을 크게 벌렸다.
앞에 사내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떤 상황보다 아들과 놀이 기구를 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줄을 쭉 둘러보고 난 장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이 아이의 손을 잡고 줄을 서 있었다.
줄이 하도 길어서 그의 말대로 두 시간은 걸릴 듯했다.
콘서트 홍보물을 돌려도 그들은 분명히 놀이 기구를 택할 것이다.
장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앞쪽부터 돌려야겠네.”
“아, 작전을 잘못 짠 것 같아요. 혁이 형.”
“그래, 우리는 앞으로 나간다.”
말을 마친 장혁은 전단지를 들고 앞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때 뒤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새치기다!”
그 목소리에 장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막내 강찬을 바라봤다.
“찬아, 혹시 나보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우리 보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그때 뒤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새치기하시면 안 되죠.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앞으로 몰려가시면 어떻게 해요.”
장혁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건 새치기가 아니라…….”
“빨리 뒤쪽으로 오세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맞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새치기를 하고. 그것도 대낮에 말이야.”
그들의 아우성에 장혁이 뒤쪽에서 같이 오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우리 지금 촬영 중입니다. 새치기가 아니고요.”
장혁의 말에 다시 아우성이 이어졌다.
“촬영한다고 해도 새치기는 안 되죠.”
순간 장혁은 고개를 떨궜다.
뒤쪽에 있는 카메라맨은 그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카메라맨의 입꼬리.
사실 국내 탑돌인 가필드가 어디에 가서 이렇게 수난을 당할까?
잘 편집하면 가필드의 수난 시대라고 해서 하나의 코너를 짜도 될 정도였다.
도훈도 입꼬리를 같이 올렸다.
도훈의 머릿속에는 벌써 예상 댓글이 그려졌다.
‘그때 전단지 줬던 게 가필드였어?’
‘가필드에 로티 월드에 왔다니. 사인이라도 받을걸…….’
대충 이런 댓글 반응이 주를 이룰 것이었다.
그때였다.
장혁과 다른 멤버는 줄이 짧은 놀이 기구 쪽을 공략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천천히 가고 있는데 누군가 장혁의 뒤를 따라왔다.
뒤쪽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장혁은 걸음을 멈췄다.
딱 보기에 평범한 여학생 둘이었다.
대충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법한 외모였다.
장혁은 피식 웃었다.
드디어 머플러로 얼굴을 가렸는데도 자신을 알아봐 준 팬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것.
여학생 둘은 장혁의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장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람 맞아.”
“진짜로요?”
여학생 중 하나가 눈을 크게 뜨자 장혁의 눈썹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상대가 팬이라 확신한 것이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바로…….”
“블랙홀 오빠들이군요.”
“내가?”
“아니요, 여기 전단지에 있는 공연요.”
그 학생은 꼬깃꼬깃 접힌 전단지를 펼쳐 보여 줬다.
누군가 버리고 간 전단지를 주운 것이 분명했다.
학생은 전단지를 펼치고 블랙홀이라는 단어를 가리켰다.
“그냥 블랙홀이라고 해서 다른 그룹인 줄 알았어요.”
“블랙홀을 알아?”
“그럼요, 저 가필드 탈덕하고 블랙홀에 입덕했어요.”
“자, 잠시만.”
“왜요?”
“왜 가필드를 탈덕한 거야?”
“원래 제가 멀티가 안 되거든요. 제가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이라서요. 제 친구도 그렇고요. 앗, 죄송요. 제 친구는 원래 가필드엔 입덕한 적이 없어요.”
학생이 옆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장미야, 그렇지?”
“당연하지, 소담아.”
둘을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장산시에서 직캠을 찍어 온라인에 퍼뜨렸던 윤장미와 장소담이었다.
둘은 장산시의 공연을 보고 바로 블랙홀의 팬카페를 만든 인물이었다.
둘의 반응에 장혁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실내 테마파크인 로티 공원의 천장에 애드벌룬 모양의 놀이기구가 천천히 움직였다.
“와, 팬심은 움직이는 거구나.”
그 말에 윤장미가 말했다.
“저는 입덕해 본 적이 없다니까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