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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꺼낸 장혁이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네, 말씀하신 대로 셀카 찍었네요.”
“나 말고 팬들하고 찍으라고요.”
도훈이 포토존에서 기다리는 팬들을 가리켰다.
순간 장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하고 찍자는 거 아니었나요?”
“팬부터 챙기시라고요.”
“아, 그 말이었군요.”
고개를 끄덕인 장혁이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바라본다.
누가 봐도 모르게 한 일이 아니었다.
도훈과 사진이 찍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입맛을 한번 다신 장혁이 핸드폰을 넣었다.
그러고는 팬들을 향해 빙긋 미소 지었다.
“다들 이리 오세요.”
장혁이 손짓하자 진행요원이 사진 촬영을 원하는 팬들을 하나씩 들여보냈다.
물론 멈췄던 팬 사인회도 진행되었다.
병목 현상이 해소된 느낌이었다.
사실 많은 팬이 포토존으로 가는 방법으로 스타플레이어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그런데 포토존에서의 촬영이 멈추자 자연스레 팬 사인회가 중단되었다.
지금은 다른 가필드의 멤버들도 포토존에 서서 팬들과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도훈은 조용히 가필드를 바라봤다.
SW의 원탑 아이돌인 미스트가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면, 장 스튜디오의 가필드는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순위를 정확히 매기는 것은 어렵지만, 미묘하게 가필드의 인지도가 높다는 것이다.
물론 팬덤도 단단했다.
뭐, 리더인 장혁의 돌발 행동만 없다면 명실상부 국내 최고라 칭해도 될 터였다.
가필드에서 장혁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마치 로뎅이 다시 살아나서 조각칼로 하나하나 깎아 낸 것처럼 완벽한 얼굴.
가만히 서 있어도 마치 조명을 받고 있는 듯한 외모였다.
거기에 아이돌 사이에서는 눈에 띄는 보컬까지.
생각해 보니 포지션이 우시원과 겹친다.
물론 우시원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우시원이 코알라를 떠올리게 만드는 순둥이 같은 성격이라면 장혁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는 승냥이와도 같았다.
성질이 곤두선 승냥이는 호랑이도 겁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성격은 다소 거칠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배기.
전생의 기억에는 아까운 인재로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가필드는 사 년 뒤에 해체된다.
국내 탑 클래스의 보이 그룹이 해체된 것은 장혁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때 도훈의 상념이 깨졌다.
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팬들이 도훈의 정체를 추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줄을 선 팬들 중 몇 명이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저 매니저 오빠하고 장혁 오빠하고 무슨 사이지?”
“그러게, 남아서 지켜봐야겠네. 그런데 저 오빠가 왔다는 건 유레카의 그 오빠들도 왔다는 거 아니야?”
“그렇겠지. 이름이 뭐더라?”
“블랙홀.”
“맞다! 블랙홀.”
“그럼 저 매니저 오빠도 블랙홀 멤버 아니었어?”
“앗, 그럼 저 매니저 오빠도 아이돌이네.”
“그럼 다른 멤버들은 어딨어?”
“그러게…….”
“야. 우리 뒤쪽 봐 봐.”
“어? 스타플레이어에 나왔던 오빠네.”
“그래 우시원이야.”
“야, 우시원이 네 친구야. 왜 반말하고 그래.”
“우리보다 나이 적어.”
“아, 왜 우리 나이를 까발리고 그래!”
“안경 썼는데도 광채를 못 가리네.”
“그래.”
“말이라도 걸어 볼까?”
“네가 한번 해 봐.”
“아니야, 네가 해 봐.”
대학생으로 보이는 팬 둘은 서로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중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제까지는 가필드에 집중하느라 뒤에 서 있는 우시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막상 이렇게 바라보니 우시원의 외모에 압도당한 것이다.
멍하게 있자 우시원이 어색하게 다신 인사했다.
“블랙홀의 우시원입니다.”
“어머, 진짜네.”
“감사합니다. 저희 블랙홀을 기억해 주셔서요.”
“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여기 스타플레이어 멤버들과 경쟁을 펼쳤던 분이잖아요. 진짜 반가워요.”
“아니에요, 제가 더 반갑습니다. 팬분들과 이렇게 가까이서 인사를 나누기는 처음이에요. 진짜 떨리네요.”
대화를 나누던 대학생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알기로는 블랙홀은 이미 데뷔해다.
타이틀곡인 아윌비백도 사과 차트의 50위 안에 올라와 있었다.
그들의 순위를 아는 것은 블랙홀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가필드의 음원 순위를 유지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음원 사이트에 접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보이는 것이 블랙홀의 이름이었다.
그 정도 순위에 올라가 있으면 보통 도도해지기 마련이었다.
무대란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만드는 곳이었다.
어느 정도 이름을 얻고 나면 무대와 객석 사이 한없이 멀어진다.
그것이 스타의 숙명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 친근함은 뭐란 말인가?
그녀는 서바이벌 무대에서 보여 줬던 우시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시원의 도도함의 극치를 보여 줬다.
말수도 적고 표정도 없었다.
그때는 그게 콘셉트라 생각했다.
이렇게 앞에서 보자 뜻밖의 매력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길이 우시원의 오른손을 향했다.
“그게 뭐예요?”
“여기에 사인받으려고요.”
“진짜로 사인받으려고 줄 선 거예요?”
“네. 맞아요. 제가 스타플레어어 팬이기도 하거든요. 중요한 건 장혁 선배님과 사진도 찍어야 하고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말을 마친 우시원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 부끄러움은 사실이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진심을 다해 연기하라는 것이 도훈의 지시가 아니던가?
문제는 블랙홀 멤버 중 가장 거짓말을 못 하는 것이 우시원이라는 점이었다.
그 모습은 상대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우시원의 모습을 보던 대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화보가 저희가 가지고 있는 거와 다른데요?”
그녀가 말하는 것은 사인을 받기 위한 화보를 말함이었다.
우시원이 답했다.
“다 매진되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이걸 가지고 왔네요.”
“그게 뭐예요?”
“저희 공연 홍보 포스터인데, 여기에 사인받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아. 오늘 공연하세요?”
“네, 여기서 가까운 잠실 주 경기장에서요.”
“헉. 잠실 주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하신다고요?”
“저희가 메인은 아니고요. 깜짝 놀랄 게스트가 나온다는데…….”
“게스트요?”
“누군지는 저희도 몰라요. 그래서 저희는 그분을 위해서 이렇게…….”
우시원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다른 곳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우시원은 침을 튀기며 보험 상품을 설명하듯 콘서트를 홍보하고 있었다.
다만, 우시원과는 다르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현빈과 장선우는 앞뒤 팬들에게 벌써 사인을 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든 홍보물 위에 말이다.
막내인 박수호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박수호를 바라보던 팬들은 귀여워를 남발하고 있었다.
도훈은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다.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기 1단계가 성공한 것 같았다.
그때 팬과 사진을 찍던 장혁이 물었다.
“마음 안 바뀌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그 곡은 가필드와 어울리지가 않네요.”
“아, 그거 저희랑 딱인데. 블랙홀 주려고 남겨 놓으신 곡이에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그 곡 저희 주세요. 형님.”
장혁은 호칭까지 바꾸었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듯 머뭇거린다.
이 상황은 어찌 된 일일까.
그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가필드는 얼마 전 있었던 올림픽 펜싱 경기장의 스타플레어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모든 것은 작은아버지 장준의 부탁 때문이었다.
문송의 황강찬이 거액을 장 스튜디오에 투자했다는 말고 함께 부탁했다.
장혁도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국내에 투자자의 부탁을 거절할 기획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혁의 독특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부탁이 아니라 지시를 했을 터다.
그날 장혁은 콘서트 게스트 출연 후 조용히 사라졌다.
대기실에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올림픽 공원을 뛰었다.
남들 모르게 어딘가를 뛰는 것은 답답한 가슴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음 곡을 선정하기에 꽤나 고심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장혁 스스로 작곡을 배웠을까.
그런데 작곡이라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많은 작곡가에게 독설을 퍼부었던 장혁이었지만, 자신이 작곡하려고 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옮기기 어려웠다.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였다.
하지만 다음 앨범 발표까지 시간이 없었다.
이런 장혁의 행동은 다른 아이돌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속사에서 곡과 안무를 주면 기계처럼 연습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장혁은 곡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 결과 항상 평균 이상의 앨범을 만들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평균의 한계를 깨기로 했다.
이것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닌 아티스트로 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 고민을 털어 버리기 위해 그날은 콘서트가 끝나고 트레이닝복에 마스크를 하고 올림픽 공원의 조깅 코스를 뛰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토끼였다.
여기까지 말하면 토끼와 도훈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토끼가 장혁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깡충깡충 뛰는 토끼를 보며 장혁은 황당했다.
서울 도심 속 공원에 토끼가 있을 줄을 몰랐다.
장혁은 깡충깡충 뛰는 토끼를 쫓았다.
쫓다 보니 멀리서 모이를 먹고 있는 또 다른 토끼가 보였다.
누군가가 모이를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혁은 모이를 주는 사람은 신경을 쓰지 않고 조심스럽게 토끼를 쫓았다.
토끼를 쫓던 장혁은 모이를 주는 사람 앞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귀를 기울였다.
장혁이 귀를 기울인 것은 본능이었다.
토끼에게 모이를 주는 이는 서른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허밍으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자신이 악보에 옮기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곡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때 장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 곡에 관해서 물었다.
상대는 놀랐는지 놀란 표정으로 그곳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혁은 그녀를 뒤쫓았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나 재빠른지 올림픽 공원을 지나 주택가의 골목으로 사라졌다.
장혁은 그날 하루는 탐정이 되기로 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결국, 장혁은 그녀를 찾았다.
사실 그것도 우연이었다.
지쳐서 어느 커피숍에서 차 한잔으로 피로를 녹이고 있었는데, 천장에서 장혁이 들었던 음과 비슷한 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장혁의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장혁 씨, 거기서 뭐 합니까?”
“네?”
장혁이 상념에서 깨어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부른 이가 도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혁이 바라보는 곳에는 다른 이가 서 있었다.
상대는 장 스튜디오의 투자자라고 소개한 황강찬이었다.
장혁은 그가 왜 자신에게 날이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황강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스타플레이어의 팬 사인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하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