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94화 (19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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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훈이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겨울이니까. 코엑스몰도 만만찮게 사람이 몰려 있을걸. 그리고 오늘 전시회도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뭐라더라…….”

    도훈의 말에 서찬휘가 외쳤다.

    “기사님 코엑스로요!”

    경기장을 빠져나온 트럭은 삼성동 쪽으로 향했다.

    서찬휘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주현빈이 물었다.

    “찬휘 형, 왜 그렇게 텐션이 올라갔어요?”

    “그쪽은 내 홈그라운드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네 집은 저쪽이잖아요.”

    주현빈이 손짓하자, 서찬휘가 혀를 찼다.

    “진짜 집 말고……. 거긴 나하고 같이 춤췄던 친구들의 아지트거든.”

    “정말로요?”

    주현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자 서찬휘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설마 지금 날 의심하는 건 아니지?”

    “서, 설마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주현빈.

    그때 주먹을 불끈 쥐었던 서찬휘가 손을 입에 갖다 댔다.

    “호호, 홈그라운드고 뭐고 오늘 왜 이리 춥지?”

    서찬휘는 쉬지 않고 입김을 불었다.

    오늘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기에 추위는 당연했다.

    그들은 입김으로 손을 녹이면서도 눈빛에 담긴 의지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    *    *

    코엑스몰에 들어온 도훈은 팔짱을 끼고 주변을 돌아봤다.

    평일 낮임에도 코엑스몰은 제법 붐볐다.

    블랙홀은 전단을 들고 앞으로 가며, 뒤쪽에서는 박창성이 카메라맨 다섯과 함께 따라가고 있다.

    누가 봐도 방송 촬영 장면.

    그런데 행인들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

    어디론가 다급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수학 능력 고사를 마치고 방황하는 수험생조차 카메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조금은 낯선 풍경에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 비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뒤쪽에서 카메라가 따라붙으면 앞쪽에 누가 가는지 궁금해서라도 시선을 돌리기 마련이었다.

    아직은 무명이라고는 하나 ‘추억을 소환하라’ 1편의 시청률을 고려해 보면 꽤 많은 사람이 블랙홀을 알아봐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이게 뭐지?

    왠지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도훈의 입장에서는 관객을 채울 필요는 없었다.

    추억을 소환하라 자체가 장경자의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던가?

    그런데 예상보다 일이 커져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게스트를 무대 위에 세우게 된 것이다.

    케이블 방송국에서 뉴 키즈를 섭외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때부터 일은 점점 커졌다.

    솜사탕이 점점 크기를 불려 가듯 말이다.

    그렇다고 없던 욕심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뜻밖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피디님, 실장님!”

    분명 한지혜였다.

    도훈과 박창성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도훈이었다.

    다급한 한지혜를 진정시키려는 듯 도훈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요? 한 피디님.”

    “다름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사가 있더라고요.”

    “무슨 행사요?”

    “스타플레이어 팬 사인회요.”

    “음.”

    “이거 복수 아니에요?”

    “무슨 복수요.”

    “지난번 스타플레이어 콘서트를 우리 때문에 망친 거라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그 소문을 본인들도 들었겠죠. 하필 여기에서 팬 사인회가 열린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설마요…….”

    “지난번에 장산시에서 열렸던 추억을 소환하라 녹화 때문에 스타플레이어 콘서트가 망한 건 어느 정도 맞아요.”

    “그건 뭐랄까…….”

    “뭐요?”

    “아마도 실수! 우리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 콘서트는 완벽하게 비밀로 했었는데…….”

    “그래도 SW 쪽은 그게 아닌가 봐요.”

    “그냥 놔두세요.”

    “네?”

    “어차피 한 식구 될 건데 재롱이나 좀 보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마 저희가 SW 엔터를 인수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스타플레이어도 유레카 식구가 되는 거죠?”

    “그럼, 이게 집안싸움이라는 얘기에요?”

    “아직은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정확히 말하면 문턱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항입니다.”

    도훈이 씩 웃었다.

    지금 인수 조건을 가지고 협상 중이다.

    항상 문제는 돈.

    ‘추억을 소환하라’가 잠실 주 경기장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도 이런 짓을 벌였다면?

    아마도 협상 금액을 올려 달라는 무언의 압력일 수도 있었다.

    “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우리 친구들이 분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죠. 경쟁자가 없으면 뭔가 허전하지 않습니까?”

    “이건 경쟁자가 아니라 방해자예요.”

    한지혜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면 몇몇 행인은 화보집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힐끔 앞서가는 블랙홀 멤버들을 보니 이상한 상황을 감지 못한 듯 웃고 있다.

    그때 서찬휘가 과감하게 나섰다.

    서찬휘가 다가간 것은 30대 아저씨였다.

    “안녕하세요. 시간 나시면 공연 보러 오세요.”

    “시간 없어요.”

    아저씨는 손을 휘휘 젓고 어딘가로 황급히 달려갔다.

    아무래도 근처에 있는 회사원으로 보였다.

    서찬휘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우시원이 나섰다.

    우시원은 20대 커플이 있는 쪽으로 가서 자신의 전단지를 주었다.

    “안녕하세요.”

    “저 시간 없어요. 지금 사인받으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들은 손도 내밀지 않았다.

    우시원이 물었다.

    “대체 누구 사인을 받으러 가시는 거예요?”

    “소식 못 들었어요. 프린스가 여기 왔다고 하던데.”

    “가필드요?”

    “네, 프린스요. 스타플레이어 팬 사인회에 게스트로 왔대요.”

    “헉, 가필드가 왜…….”

    우시원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가필드는 한국의 탑 보이 그룹 중 하나였다.

    정확히는 SW의 소속도 아니었다.

    스타플레이어 멤버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국내 최고 아이돌 중 하나인 가필드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느낌이 왔다.

    그때였다.

    저쪽 멀리서 누군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뚜벅뚜벅.

    깔끔한 검은 양복에 크로스백을 멘 사내였다.

    얼핏 보면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내는 천천히 걸어서 도훈의 앞으로 왔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명함을 내밀었다.

    “저는 황강천이라고 합니다. 유레카의 이도훈 실장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명함을 확인했다.

    킹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황강천.

    킹 엔터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전생과 현재 모두 통틀어서 킹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없었다.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황강천이 말했다.

    “SW엔터는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네?”

    “아, SW엔터와 인수 협상 중이시라고 하더라고요. SW엔터는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가져가시는 거면 가져가시는 거지, 왜 그걸 제가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실장님은 제 롤 모델이니 정식으로 선전포고하고 싶었습니다.”

    “선전포고요?”

    “네, 선전포고요. 이 실장님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업적을 이루셨잖아요.”

    “무슨 업적을 이뤘다는 거죠?”

    도훈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주변에 흩어졌던 블랙홀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갑자기 일어난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지켜봤다.

    그들은 마치 복싱 경기를 보듯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사실 도훈은 이 상황이 못마땅했다.

    처음 보는 사내가 대뜸 다가와 하는 말이 선전포고라니!

    그때 황강천이 말했다.

    “아, 명함에 적혀 있는 직책 말고 다른 신분을 설명해 드리자면, 저는 문송 그룹의 막내입니다.”

    “문송이요?”

    “네, 문송이요.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재계 1위라고 하는 그 문송 그룹이요.”

    “흠.”

    도훈이 팔짱을 끼고 상대를 바라봤다.

    문송 그룹이라면 문송전자를 필두로 문송개발 그리고 문송디스플레이까지 산업 전반을 장악한 1위 기업이었다.

    도훈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바라보자 황강찬이 입을 열었다.

    “사실 집안에서는 제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하는 걸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실장님의 업적을 보더니 할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네,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아,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내기를 했습니다.”

    황강천의 표정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반면 도훈은 따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알 필요가 있나요?”

    “그 내기의 중심이 바로 유레카거든요. 할아버지는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유레카보다 더 키우라고 했습니다. 기간은 일 년.”

    “황 대표님.”

    “네, 이 실장님.”

    “그냥, 선전포고 안 하고 저희를 꺾는 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요?”

    “이 실장님께 선전포고하라는 것도 내기에 포함됩니다. 저는 할 말을 마쳤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내는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모두는 귀신이라도 홀린 듯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등장해서 자신의 할 말만 던지고 간 황강천.

    그의 정체가 재벌가의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신병원에 가라고 떠밀었을 것이 분명했다.

    *    *    *

    도훈이 황강천이 재벌가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은 바로 5분 뒤였다.

    블랙홀이 분수대 앞에서 미니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관리인이 나타나 촬영을 제지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혹시 촬영 허가받으셨나요?”

    “네, 구청에서 미리 신고를 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사유지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하십니다.”

    “사유지라…….”

    도훈은 말끝을 흐리며 관리인을 바라봤다.

    이곳은 사유지와 공유지가 섞여 있는 지하상가였다.

    생각해보니 이곳의 대부분은 문송의 상가였다.

    장경자가 현금 부자라면, 문송 그룹의 다른 이름은 땅 부자였다.

    난데없는 상황이 우시원이 불쌍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린 어떻게 해요?”

    “우리 상가 앞에서 하면 될 것 같다.”

    “상가라니요?”

    “여기에 아는 분이 제법 되거든.”

    도훈은 조용히 다른 장소를 찾아갔다.

    그 장소를 찾아간 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옆쪽에서는 스타플레이어의 팬 사인회가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

    황강천은 추억을 소환하라의 일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획 내용까지도 쏙 빼서 검토했을 것이 뻔했다.

    도훈은 그의 행동이 재벌가의 사람답다고 생각했다.

    미라클의 부동산 현황까지 계산 속에 넣고 이곳을 팬 사인회 장소로 잡았을 것이다.

    블랙홀이 여기에서 홍보를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스타플레이어의 팬덤과 가필드의 팬덤 양쪽에서 욕을 먹을 것이 뻔했다.

    황강천이 블랙홀 쪽을 힐끔 보며 손을 흔든다.

    멍한 눈빛에 비해 속에는 능구렁이가 들어있는 인물 같았다.

    도훈은 관계없었다.

    그런 구렁이를 입안에 넣을 수 있는 용이 되면 그만이니까.

    아마도 그가 원하는 것은 이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라는 의도일 것이다.

    도훈은 서찬휘를 불렀다.

    그러고는 그의 귀에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알았지?”

    “정말 그래도 돼요?”

    서찬휘가 눈을 크게 뜨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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