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93화 (19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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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훈이 제목을 읽었다.

    “소환하라 1987?”

    “네, 프로그램 이름하고 비슷하죠?”

    한지혜가 피식 웃자,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드라마 대본이잖아요.”

    “맞아요, 진시현 작가님 아시죠?”

    “네, 알아요.”

    “그 단짝인 정찬성 피디님하고요. 그분들 꽤 유명하신 분들이에요.”

    “네, 압니다. 제가 모를 리가 없죠.”

    “표정이 모르시는 것 같기에…….”

    한지혜는 도훈의 표정을 살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사실 도훈은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소환하라 시리즈는 2010년대를 선도한 드라마라고 봐야 했다.

    수많은 밈을 생성했으며, 수많은 스타를 배출해 냈다.

    아마도 내년 정도에 다른 채널에 편성이 되어 있을 터다.

    문제는 소환하라 시리즈 중 첫 번째인 1987의 대본이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대체 이게 왜?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본을 바라보자 한지혜가 말을 이었다.

    “진시현 작가님하고 정찬성 피디님이 대본을 좀 보여 드리라고 해서…….”

    “지금 보고 있긴 한데, 이건 TVL 쪽이 아닌가요?”

    “어?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정찬성 피디님이 그쪽으로 가신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역시 실장님은 정보가 빠르시구나.”

    “제가 정보가 빠른 건 맞죠.”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사실, 이건 도훈의 실수였다.

    정찬성이 TVL로 옮긴 시점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도훈이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진 않았다.

    한지혜의 표정으로 봐서 중간에 뭔가 틀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지혜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도훈의 표정을 살핀다.

    이럴 때는 먼저 운을 떼는 것이 맞았다.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혹시 TVL하고 문제가 생겼나요?”

    “이번 기획안이 까여서 좀 사이가 틀어진 것 같아요.”

    “소환하라 1987이 까였다고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읽어 보시지도 않았잖아요.”

    “읽어 보진 않았지만, 대충 감이라는 게 있죠.”

    “감이요?”

    “타이틀에 연도가 정확하게 들어간 것을 보면 그 시대의 문화를 그릴 거 아닌가요? 전시현 작가님 스타일로 봐서 한 가정이 중심이 될 거고요.”

    “와, 소름.”

    “왜요?”

    “어떻게 읽어 보지도 않고 그걸 알아요?”

    “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훈이 대본을 다시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지혜가 침을 꼴깍 삼켰다.

    도훈은 본능적으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의미를 오해한 한지혜가 물었다.

    “……안 되는 거죠?”

    “아니에요. 저는 꼭 모시고 싶습니다.”

    도훈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한지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모시고 싶다니요?”

    “저희 쪽으로요. 이번 한 작품만 하고 끝내실 거 아니잖아요. 1987이 나왔으면 1990년대도 그려야 하고 뭐, 그런 거 아닌가요?”

    “와, 또 소름.”

    한지혜가 놀란 듯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놀라시니 좀 민망하네요. 제가 연락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실장님 혹시 전직이…….”

    “점쟁이 맞아요. 그러니까. 김 피디님도 그렇고 박 피디님도 그렇고……. 제가 모시고 왔죠.”

    “헤헤, 그거 칭찬으로 들을게요.”

    “네, 칭찬 맞습니다.”

    “그럼, 정 피디님하고 전 작가님한테 지금 메시지 보내도 되죠.”

    “빨리 보내세요.”

    도훈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자 한지혜가 돌아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도훈은 조용히 대본을 펼쳤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뭔가 대본의 내용이 미묘하게 변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은행원인 가장에 평범한 집은 맞는데 그들이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문제였다.

    도훈이 기억하기로는 분명히 스포츠 중계였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뉴 키즈의 공연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는 뉴 키즈가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푸근한 표정의 DJ가 등장한다.

    도훈은 조용히 읊조렸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이제는 잊힌 추억 중 하나가 비디오자키라는 용어였다.

    비디오자키의 이름을 달고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라디오 DJ.

    도훈은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한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막 웃고 계세요, 작가님.”

    아무래도 전시현과 직접 통화하는 것 같았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아무래도 알로 TV와 케이넷의 합병을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음악 채널로 특화하기보다는 드라마까지 발을 넓히려면 말이다.

    그때였다.

    전화를 끊은 한지혜가 해맑은 모습으로 말했다.

    “혹시 뉴 키즈 영상 써도 되냐고 하시는데요.”

    “출연도 가능하다고 해 주세요.”

    “헉.”

    한지혜의 눈이 보름달만큼 커졌다.

    *    *    *

    지금은 소셜 미디어가 생각보다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다.

    앞으로 10년 후면 실검 1위에 오른 그룹이 1만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다.

    거기에 오늘 올 게스트를 밝힌다면?

    아마도 주 경기장이 미어터질 수도 있었다.

    오늘은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끝까지 게스트를 밝힐 수 없었다.

    그런데 무대 옆에 달을 보면 대충 눈치는 채지 않을까?

    사실 게스트 때문에 도훈도 살짝 걱정이 되었다.

    추억을 소환하라는 앞으로 5회가 더 남았다.

    그런데 점점 게스트의 인지도가 약해진다면?

    아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뉴 키즈만 해도 시청자 모두가 놀랐는데, 이번 게스트는 생각보다 강력하니 말이다.

    그때 도훈의 눈에 전단지를 들고 달리는 우시원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 모습에 도훈이 외쳤다.

    “우시원 스톱.”

    “왜 불러요, 형?”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전단지 돌려야 한 명이라도 더 올 거 아니에요.”

    “차 타고 가야지.”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혼자 뛰어다녀도 사람들은 너 못 알아본다.”

    “네?”

    “혼자 그렇게 뛰어다니면 아직 못 알아본다고! 알아봐도 뭐…….”

    “알아봐도 뭐요?”

    “뭐, 경호원도 없이 험한 꼴 당하겠지.”

    “헉.”

    우시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이런 적극적인 태도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변화였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앞서도 문제다.

    도훈의 옆에서는 서찬휘가 트럭에 오르고 있다.

    선거철에서나 보던 유세 차량이었다.

    서찬휘는 유세 차량에서 가볍게 턴을 하며 전단지를 들고 있는 우시원을 가리켰다.

    “너는 걸어오너라. 나는 가마를 타고 가겠다.”

    “야, 서찬휘.”

    “양반이 노비와 같은 가마를 탈 수는 없는 법! 너는 뛰어오거라.”

    “헉, 너 죽는다!”

    서찬휘는 그 말에 대꾸도 않고 운전석을 바라봤다.

    “기사님, 출발하시죠.”

    동시에 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부릉.

    깜짝 놀란 우시원이 전력 질주로 달려왔다.

    타다닥.

    긴 다리로 한 번에 트럭에 오른 우시원이 서찬휘를 쏘아봤다.

    땀을 흘렸는지 우시원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동생들이 킥킥 웃었다.

    장선우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옆에서 보던 박수호가 이를 꽉 악문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물었다.

    “수호는 표정이 왜 그래?”

    “분해서요.”

    “뭐가 분해?”

    “형들한테 분량 빼앗긴 것 같아서요. 저도 좀 잡아 주세요. VJ 형아.”

    박수호가 VJ를 향해서 하트를 그리자 옆에 있던 다른 멤버도 따라 했다.

    그 모습에 박창성이 손을 내저었다.

    “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게 자연스러운 건데요.”

    서찬휘가 맞받아치자 박창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옆에서 모니터링하던 한지혜가 미소를 지었다.

    “이거 시트콤이네요.”

    “아니, 얘들 너무 카메라는 의식하는 거 아니야?”

    “어때요, 에너지가 넘치잖아요.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죠.”

    그때였다.

    트럭이 천천히 주 경기장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경기장을 빠져나간 블랙홀 멤버들은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거리를 바라보던 서찬휘가 비명을 질렀다.

    “헉.”

    “이게 뭐예요?”

    장선우도 떨리는 시선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경기장을 빠져나오자 보이는 것은 한산한 거리밖에 없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다.

    원래 잠시 경기장 앞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경기장 덕분에 주변에 건물이 없었다.

    맞은 편에 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방학이다.

    이제는 야구도 비시즌이었다.

    농구 경기가 있는 날은 삼 일 후.

    경기장 앞에는 노점상조차 없었다.

    전단지를 들고 열의에 차 있던 블랙홀 멤버들은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죠?”

    우시원이 묻자 도훈이 말했다.

    “오늘은 트럭으로는 안 되겠다. 아무래도 지하 던전을 공략하자.”

    “지하 던전이요? 이게 게임도 아니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겨울에 사람이 우글우글한 곳이 딱 두 군데가 있지.”

    “어딘데요?”

    “롯티월드하고 코엑스.”

    “음.”

    우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던전이라고 했던 이유를 알아챈 것이다.

    잠실도 그렇고 코엑스도 그렇고 지하의 유동 인구가 많았다.

    물론 백화점과 붙어 있는 롯티월드는 지상도 있지만, 놀이기구는 대부분 지하에 있다고 봤다.

    그들의 수용 인원이 얼마나 될까?

    우시원이 눈을 빛냈다.

    “그럼, 롯티월드로 갈까요?”

    “그건 하책인 것 같다.”

    “왜요?”

    우시원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답했다.

    “로티월드가 가장 붐빌 시간은 4시 이후니까.”

    “네?”

    우시원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4시 이후가 입장권이 싸니까 그런 거지. 우시원 너는 로티월드도 안 가 봤냐?”

    어깨에 힘을 주는 서찬휘.

    도훈이 피식 웃으며 서찬휘를 바라봤다.

    “찬휘가 데이트 좀 해 봤나 봐?”

    “저는 시원이랑 다르거든요.”

    서찬휘는 목에 힘을 준다.

    하지만 힘이 점점 줄어 가는 서찬휘의 모습에 우시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풉.”

    서찬휘의 눈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 웃음의 의미는?”

    “야, 아침부터 새벽까지 연습실에 같이 있었잖아.”

    “24시간 같이 있었던 건 아니지.”

    서찬휘가 못 참겠다는 듯 받아치자 우시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네 여자친구 사진 가지고 있다.”

    “뭐? 그걸 어떻게…….”

    말끝을 흐린 서찬휘는 우시원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때 우시원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하얀색 종이였다.

    우시원은 그 종이를 펼쳤다.

    종이를 펼치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시원이 펼친 것은 평범한 A4였다.

    심지어는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바라보던 한지혜까지도 말이다.

    서찬휘가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그게 뭐야?”

    “보면 모르겠어. 여자친구 사진이잖아.”

    “…….”

    서찬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때 장선우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정답.”

    “그래, 선우가 말해 봐.”

    우시원이 선심 쓰듯 장선우를 가리켰다.

    장선우가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그 말에 서찬휘가 황당한 듯 물었다.

    “정답이 없다고? 그게 무슨 정답이야?”

    “아니, 여자친구가 없습니다.”

    “앗, 이런…….”

    서찬휘가 이를 갈자 주변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그때 도훈이 앞쪽을 가리켰다.

    “그냥 코엑스 쪽으로 빠지는 게 어때?”

    “코엑스요?”

    우시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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