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92화 (192/250)

(192)

손가락을 편 채 장경자가 말을 이었다.

“대충 이 정도다.”

“헉.”

도훈이 입을 벌렸다.

50%가 아닌데, 손가락 다섯 개라는 것은 5%라는 것이었다.

이건 상상도 못 할 수치였다.

도훈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이건 숨겨 놓은 자금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전생에 장경자가 쓰러진 것이 돈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 정도 돈이면 이세훈이 미라클을 어떻게 쥐고 흔들던 장경자에게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할 터다.

여기까지는 도훈도 살짝 예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도훈도 다음 계획을 실행하지 않았던가.

도훈이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바로 추억이었다.

장경자와 셋째, 즉 도훈의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창고가 불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도훈은 그래서 창고에 있는 물건 중 장경자의 추억이 될 만한 물건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장경자가 내민 기사처럼 창고는 다 타 버렸다.

이세영을 처벌하길 바라는 것을 봐서는 창고는 이세영 쪽에서 태운 것 같았다.

그때였다.

도훈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단지 추억 가지고 저리 태도의 변화를 보였을까?

거기에 자신의 아들을 법정에 세우기로 한 결심은?

여러 의문이 맴돌자, 한 가지 가장이 떠올랐다.

그것은 도훈의 부모님과 연관된 사건이었다.

만약 부모님의 죽음에 작은아버지가 개입되어 있다면…….

도훈은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의 표정을 본 장경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때로는 잊어야 할 것도 있는 법이지. 판도라의 상자가 대표적인 예다. 도훈아.”

“네. 알겠습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장경자가 내린 벌로 마무리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들의 손과 발을 묶는 걸로 마무리하면 되었다.

지금 가장 걱정은 여전히 장경자의 건강.

도훈의 표정이 바뀌었다.

“할머니 다음 공연도 오실 거죠?”

“그럼, 당연하지.”

장경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이전의 어색한 웃음이 아닌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장경자는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마주 웃으며 바닥에 벌렁 누웠다.

오늘만큼은 할머니 옆을 지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든 도훈을 본 장경자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도훈이 이렇게 자랐을 줄을 상상도 못 했다.

능력이나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장경자가 지금 보는 것은 도훈의 배려심이었다.

장경자는 자신의 이불을 바닥에서 잠든 도훈에게 덮어 줬다.

잠든 도훈을 바라보던 장경자가 피식 웃었다.

“우리 강아지…….”

장경자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 비서야, 도훈이 좋아하는 삼계탕 좀 해 줘야겠다.

*    *    *

사흘 후.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선 블랙홀 멤버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중 우시원이 한숨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 실장님. 이거 너무 큰데요.”

“시원아!”

도훈이 나지막이 부르자 우시원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다시 물었다.

“왜요? 실장 형.”

“실검 1위 한 놈들이 그렇게 떠는 거 아니다.”

“아, 놀리지 마세요. 그거 다 뉴 키즈 형들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뉴 키즈랑 형 동생 먹기가 쉽냐는 얘기지.”

“아!”

우시원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쥬시, 바다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도 곡을 발표하지 않은 블랙홀이었다.

그런데 실시간 검색 순위에서 1위라니!

이건 꽤나 체감이 컸다.

덕분에 블랙홀의 멤버들은 잠도 설쳤다.

그때 서찬휘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런데 오늘 메인이 누구예요?”

“메인은 너희!”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자 서찬휘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가 긴 팔로 휘젓자, 마치 풍선 인형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아, 형! 자꾸 놀리시면 저 울 겁니다.”

“진짜 너희라니까, 콘셉트가 바뀐 것 김 피디님한테 못 들었어?”

“못 들었는데요.”

“추억을 소환하라 고정 게스트가 누구?”

“저희요.”

서찬휘가 자신의 가슴을 팍팍 치며 답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을 이었다.

“너희는 게스트가 고정되고 메인이 계속 바뀌는 거 봤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시트콤 같은 거 보면 메인 출연자는 고정돼 있잖아. 그리고 유명한 게스트가 가끔 출연하지.”

“아. 그게 그거잖아요. 그래서 누군데요.”

“너희도 깜짝 놀랄 인물이지.”

“와,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형이 MC도 아니고 왜 이렇게 뜸을 들여요. 누가 보면 시상식인 줄 알겠어요.”

“그건 비밀이야. 이건 새어 나가면 이 운동장이 미어터질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이곳을 채우는 건 너희들 힘만으로 해야 해.”

“아. 이거 완전히 게릴라 콘서트잖아요.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게스트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야지.”

“헉,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홍보해요.”

“그러니까. 너희 위치가 중요하지.”

도훈이 씩 웃었다.

우시원이 그라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너무 거대하지 않은가요?”

“뭐, 한쪽만 채우면 돼.”

“그러니까. 여기 수용 인원이 5만 명이니까…….”

우시원이 손가락을 꼽더니 입을 딱 벌렸다.

도훈이 씩 웃었다.

“왜 그래?”

“반이라고 해도 2만 명이 넘잖아요. 게릴라 콘서트 도원 인원이 많아야, 5천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많은 인원을 모아요?”

“게릴라 콘서트와는 다른 게……. 인원이 없어도 우린 공연을 진행한다는 거지. 물론 방송도 정상적으로 하고.”

“그럼, 관객을 안 모아도 된다는 거예요?”

“그럼, 게스트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뭐라고요?”

우시원이 목을 백조처럼 길게 뻗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너희에게 실망했다고!”

“헉.”

“걱정하지 마. 안되면 CG로 채워 넣지 뭐. 대신 게스트는 너희에게 실망하겠지.”

“와, 나쁘다.”

우시원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사실, 콘셉트가 바뀐 것은 장산시에 등장한 뉴 키즈의 열풍 때문이었다.

그 후폭풍은 사실 어마어마했다.

그 후폭풍을 직격으로 맞은 것은 다름 아닌 SW엔터.

그러지 않아도 다른 사건에 얽혀 어수선한 SW는 팬들의 아우성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추억을 소환하라’와 같은 날 진행되었던, 올림픽 체조 경기장의 콘서트가 조금 애매모호하게 끝났기 때문이다.

제법 많은 수의 팬들이 그날 장산시청으로 이동했다.

거기에 중간에 들린 소식으로 콘서트가 시작되고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열성 팬들은 그런 모습을 SW의 관리 부재로 봤다.

그들의 원성 어린 게시글 때문에 MBS의 스타플레이어 게시판은 지금 마비된 상태.

그러지 않아도 뒤숭숭한 SW에 악재가 하나 더 배달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표이사의 횡령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아들이었다.

소속 아티스트의 광고료에서부터 시작해서 저작권 수익까지 착복한 것도 모자라 공금 횡령의 의혹까지 받고 있었다.

대표의 아들이라고는 하나 곳간의 열쇠를 쥔 자가 눈을 감아 주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일의 발단이 익명의 제보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는 SW 아티스트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그 메일에는 그들이 이제까지 정산받지 못한 돈에 대해서 자세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누구라도 이 내용을 보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저 내부자라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SW는 아직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아마 반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생의 기억과 내부자의 정보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니까.

전생의 배신자는 도훈의 등에만 칼을 꽂은 것이 아니었다.

배신자는 아티스트에게도 상처를 줬다.

이번에 도훈이 보낸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자신의 등에 빨대가 꼽힌 것도 모른 채 아무렇지 않게 살았을 것이다.

도훈은 자료를 건네준 내부자의 얼굴을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내부자는 다름 아닌 SW의 양대세 본부장이었다.

도훈이 잠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우시원이 물었다.

“그래도 오늘은 스타플레이어 콘서트와 다른 날로 잡았네요.”

“같은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데, 예의는 지켜야지.”

“……혹시 저희가 SW로 흡수되는 거예요?”

SW 출신인 우시원은 살짝 어깨를 떨었다.

그곳에 있었던 기억이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다.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아마도 그 반대가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네?”

그러지 않아도 큰 우시원의 눈이 인형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듯한 그런 놀란 표정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여기 다들 모였네.”

고개를 돌려 보니 강영웅이 자신의 딸 강다미의 손을 잡고 온다.

강영웅을 확인한 서찬휘가 뭔가 떠올랐는지 깜짝 놀라 물었다.

“선배님. 생각해 보니 이번 공연의 메인, 아니 게스트가 선배님 아니었어요?”

“맞아. 분명히 나였지.”

강영웅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서찬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영웅이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밀렸어.”

“헉, 선배님이 밀려요.”

“나야 추억을 논하기에는 조금 젊잖아. 인지도도 그렇고.”

“선배님이 인지도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면……. 그리고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왜?”

“밀렸으면 기분 나쁘셔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즐거워하시는 표정이잖아요.”

“그래도 될 만한 사람이니 즐겁지. 오늘은 순수하게 관중으로 여기에 온 거야.”

“순수하게라고요?”

“그래서 우리 다미도 데려왔지.”

강영웅은 푸근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딸을 가리켰다.

강다미는 우시원에게 인사하더니 재빨리 도훈에게 붙었다.

말없이 도훈의 손을 꽉 잡는 강다미.

해맑게 웃는 강다미를 도훈은 번쩍 안아 주었다.

“혹시 삼촌 보고 싶었니? 다미야.”

“오빠라니까요. 왜 오빠가 삼촌이에요.”

그 모습에, 옆에 있던 강영웅이 웃었다.

“허, 아빠 동생이면 삼촌 맞지.”

“그럼 그냥 삼촌 오빠로 할래요.”

강다미가 우기자 강영웅이 고개를 흔들었다.

“도훈이 네가 이해해라. 지난번 TV에서 본 후부터 이러네.”

“괜찮아요. 젊게 봐준다는 데 고맙죠.”

도훈은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강다미는 손을 흔들었다.

“삼촌 오빠. 저 용돈은 싫어요. 대신 사인 주세요.”

“사인?”

“우리 친구들 나눠 주게요.”

그때 서찬휘가 강다미의 옆에 붙었다.

“다미야, 우리 사인은 필요 없어?”

“음. 생각해 보고요…….”

슬쩍 말끝을 흐리는 강다미.

덕분에 주변에는 웃음이 퍼졌다.

강영웅을 시작으로 도훈의 지인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했다.

이제 막 도착한 한지혜는 갑자기 도훈의 손을 잡아끈다.

“실장님!”

“왜 그래요? 김 피디.”

구석으로 간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한지혜는 가방에서 대본으로 보이는 뭉치를 꺼냈다.

“이거 한번 보실래요?”

“이게 뭐예요?”

“일단 보세요.”

한지혜가 눈을 찡긋하자 도훈은 서류 뭉치를 펼쳤다.

바로 드러나는 제목.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