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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에 유재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말 좀 할게요. 왜 그렇게 저를 미워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몇몇 관중은 고개를 갸웃한다.
유재성을 그때를 잊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이번에 나온 신인 그룹은 뉴 키즈도 반한 친구들이거든요.”
“…….”
관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유재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에이, 왜 사람 말을 못 믿으세요? 저 유재성이라고요.”
과장된 목소리에 관중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남았던 뉴 키즈의 흔적이 슬쩍 걷히는 느낌도 들었다.
관중의 웃음에 블랙홀 멤버들 모두 표정을 풀었다.
그때 유재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무대가 끝나면 뉴 키즈와 블랙홀의 합동 무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순간 블랙홀 멤버들의 표정이 굳었다.
가장 심하게 동요하는 것은 우시원이었다.
“이거 진짜야?”
“나야 모르지. 그런데 어쨌든 우리한테는 기회 아니겠어? 다른 가수도 아니고 무려 뉴 키즈야.”
블랙홀 멤버들 가운데도 서찬휘는 긍정적이었다.
순간 서찬휘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염되듯 휘몰아쳤다.
사실 이것은 도훈이 서찬휘를 중심으로 올포원의 스킬을 걸었기 때문이다.
노래라면 우시원을 중심으로 걸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안무였다.
청각과 시각 중 시각이 더 중요하단 말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보이 그룹의 숙명이었다.
캐릭터 사이에 매력이 먼저고 그다음이 보컬이었다.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캐릭터의 매력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것은 관중의 시각에 호소하는 것밖에 없었다.
우시원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보자.”
“그런데 대체 예정에도 없던 순서를 어떻게 끼워 넣은 거지?”
서찬휘가 무대 옆에 서 있는 도훈을 바라봤다.
“그러게…….”
우시원도 도훈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사실 모두의 눈이 우시원의 눈과 비슷했다.
맨 마지막에 합류한 팀의 막내 박수호는 사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머니 품속에 있는 것처럼 이 무대 위가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어머니라고 하기보다는 도훈의 품속이라고 하는 편이 맞았다.
어머니의 품속은 그리 편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어머니는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무조건 최고가 되어야지 직성이 풀렸다.
자신의 어머니가 유레카와 계약한 것도 신기했다.
거기에 학교도 가까운 곳으로 전학 보낸 것도 어찌 보면 놀라웠다.
박수호의 어머니는 공부도 1등, 노래도 1등, 춤도 1등인 아들을 원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욕심에 발을 맞추다 보니 가랑이가 반쯤은 찢어진 상태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갔다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쪽이 날 터다.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도훈이었다.
그러니 도훈이 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도훈을 편하게 느끼는 만큼 기존에 있던 멤버들도 좋았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형제 같았다.
그가 잠시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유재성의 목소리가 박수호의 귓가에 들어왔다.
“이제 신인 그룹, 블랙홀의 무대를 감사하시겠습니다. 부탁해요.”
유재성은 누군가의 성대모사를 하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제는 팬들과 블랙홀이 마주 보고 있는 상태.
관중은 막 시작될 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관중과 블랙홀 사이에는 스파크라도 튀는 것 같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고 있었다.
만약 그 에너지가 보인다면?
이곳을 훤히 비출 만큼 강렬한 에너지일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와아!”
그 함성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 함성이 맞춰 인트로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관객들은 그 리듬에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는 미래 히트곡인 ‘아윌비백’.
데뷔 무대에 어울리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블랙홀 멤버 다섯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탁.
그들의 스텝 밟는 소리가 무대 위에 울려 퍼지자 관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중 몇몇은 무대 위에서 깔끔하게 안무를 펼치고 있는 블랙홀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장소담 일행이었다.
공연기획을 전공하는 장소담의 친구 윤장미는 극도의 해설충이었다.
팬심에서 아이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설을 위해 아이돌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다가 대학에 입학했던 그녀와 어울리는 콘셉트일 수도 있지만, 장소담은 친구의 설명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윤장미가 고개를 삐죽 내밀자 박소담이 극도로 경계하며 답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어? 저 노래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온 노래 아니야?”
그 말에 장소담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연기획 전공인 그녀가 그 무대에 대해서 잊을 리 없었다.
스타플레이어의 예선에도 지원 갔던 그녀였다.
장소담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분명히 그날 들었던 노래였다.
유레카라는 중소기획사에서 출전시켰던 그룹이 불렀던 노래였다.
그날의 히트곡이 지금 나오는 아윌비백이었다.
그 후 표절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 조금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 후 그 곡이 표절이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표절이든 아니든, 그들은 그렇게 잊혀 갔으니까.
장소담은 그날 이후 가끔 예선전에서의 아윌비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만큼 그 노래는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흥분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괜히 표정을 들켰다가는 친구 윤장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 아는 척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설명을 쉴 틈 없이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저 노래 들어 본 것 같아.”
“와아, 그럼 저 친구들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는 거네. 앗, 나 저 센터에 있는 사람 알아.”
드디어 윤장미의 해설이 시작되었다.
보다 못한 장소담은 말했다.
“나도 알아. 우시원이잖아. 서찬휘도 있고 참, 이도훈이라는 멤버도 있었어.”
“이도훈? 아! 맞다. 그 실장님?”
“앗, 그러고 보니 실장님이 안 보이네?”
장소담은 무대에서 실장이라 불리던 이도훈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무대에는 없었다.
장소담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때 그 감동을 느끼고 싶었는데…….”
“직업이 매니저니 무대에 오를 리 없지.”
“음.”
장소담은 턱을 괴며 아쉽다는 듯 무대를 바라봤다.
무대를 바라보던 장소담은 점점 그들에 대한 정보는 잊었다.
물론 해설충 윤장미는 무대에 빠져드는 대신 무대를 분석하고 있었다.
관중의 표정.
블랙홀의 안무와 보컬.
그 목소리가 라이브인지 아니면 립싱크인지.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관중이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블랙홀이란 그룹은 별 다섯 개에 네 개 이상은 되는 그룹이었다.
블랙홀은 인상적인 춤 동작이 특징이었다.
화음으로 완성된 그들의 노래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했다.
아윌비백이란 곡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그에 따른 안무는 딱 보기에도 따라 하기 쉬워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들썩일 정도였다.
어떤 관중은 어떻게 노래를 아는지 후반부가 시작되자 따라 불렀다.
―그렇게 원해!
―의미를 보여줘
―아윌비백! 아윌비백!
관중은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윤장미는 재빨리 느낀 점을 태블릿에 입력했다.
이 곡과 블랙홀의 조합은 꽤 맛깔났다.
최소 원 히트 원더를 기록할 그룹은 된다고 봤다.
절대 이 곡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윤장미는 사실, 대중문학평론가가 꿈이었다.
남들에게 음악과 영화를 해설하던 이유가 바로 그 꿈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도 누구보다 음악과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녀가 이런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모님은 깜짝 놀랄 것이었다.
태블릿 위를 누비던 윤장미의 손이 멈췄다.
그러고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자신도 모르게 음악에 빠져든 것이었다.
그때 마지막 스텝과 함께 첫 번째 곡이 끝났다.
순간 관중은 멍하니 무대를 바라봤다.
윤장미도 마찬가지였다.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뼉을 쳤다.
짝. 짝.
윤장미를 옆에서 보던 장소담은 눈을 크게 떴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윤장미.”
“내가 뭘?”
윤장미가 고개를 갸웃하자 장소담이 말을 이었다.
“네가 박수 치는 거 처음 봐.”
“헉.”
윤장미가 재빨리 손을 멈췄다.
그녀도 자신이 박수 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녀는 최대한 대중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조금의 팬심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 한계가 살짝 풀어진 것이다.
항상 객관적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고 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을 자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 모습에 장소담이 말했다.
“와, 우리 장미가 이제야 해설충에서 벗어나서 입덕하는구나.”
“아니거든, 그냥 손바닥이 간지러워서 마주친 거야.”
윤장미는 다시 태블릿을 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소담은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대형 신인이 나온 것 같았다.
언제나 매의 눈으로 무대를 분석했던 친구가 순수하게 누군가를 응원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장소담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어쩌면…….”
“너, 뭐라고 하는 거야? 장소담.”
뭔가 찔렸는지, 윤장미가 버럭 화냈다.
막 말을 이으려던 윤장미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막 두 번째 곡이 시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곡이 이어지자 윤장미는 최소 원히트원더는 하겠다는 말을 지워야 했다.
두 번째 곡도 귀에 쏙쏙 박혔기 때문이다.
보컬로 치면 상위 10%였다.
신인 그룹이기에 아직 발전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상위 1%도 바라볼 수 있는 보컬 실력이라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와우!
관중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라이브 무대에서 볼 수 없을 고난도 동작을 다섯 명이 일제히 펼쳤기 때문이었다.
지금 동작을 보면 안무 실력은 현재로써도 상위 1%였다.
윤장미는 연신 같은 단어를 계속 태블릿에 입력했다.
그것은 ‘Wonder!’라는 단어였다.
그들은 무대는 미래의 히트곡에서 다음 미래의 히트곡으로 매끄럽게 전환되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그룹 멤버들의 케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것을 윤장미만이 알고 있지는 않았다.
관중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관중은 마치 그들과 상호작용하듯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서로 끈이 연결되어 있는 듯 보였다.
* * *
한편 무대 뒤에서는 뉴 키즈 멤버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다.
지금 제이든은 도훈의 제안을 후회하고 있었다.
도훈의 제안은 간단했다.
원하는 곡이 있으면 주겠다고 했다.
다만, 그 노래에 뉴 키즈가 어울리는지 증명하라고 했다.
증명은 블랙홀과 마지막 무대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