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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아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 의경들뿐이 아니었다.
공연 기획사 직원들과 실습을 나온 학생들도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실습 온 학생 중 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주임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소담 학생, 뭐가 궁금한데?”
“대체, 이 많은 사람이 배치된 거예요?”
그녀의 이름은 장소담.
공연기획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현장 실습 때문에 이렇게 이번 행사에 투입되게 된 것이다.
단발머리의 장소담은 올망졸망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그녀는 이번 공연이 처음이 아니었다.
손이 모자랄 때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현장에 나가다 보니 이번 학기 들어서만 벌써 스무 번째였다.
그녀는 사실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리는 스타플레이어의 공연에 지원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순번에서 밀려 이쪽으로 지원 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원 오면서 근처에 살던 친구 둘까지 데려왔다.
사실 이번 학기에 지원 나온 행사 중 이렇게 썰렁한 공연은 처음이었다.
객석은 아직 반도 차지 않은 상태였다.
공연 기획사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들 아나? 이게 다 돈지랄이지. 이 조그마한 행사에 동원된 직원만 해도 50명이야. 50명. 아니 저기 있는 경찰 아저씨까지 하면 무려 100명이 넘는다고.”
“그러니까요.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객석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도 심상치 않잖아요. 막 관객들이 몰려오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그럴 일 없어. 그리고 외국인 가수가 나와서 90년대 커버곡이나 부르는데 무슨 관객이 몰려?”
그때였다.
와아!
그들의 뒤쪽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귀를 쫑긋한 장소담이 말했다.
“그런데 안쪽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거 아니에요? 생각보다 함성이 큰데요.”
“에이, 행사 한두 번 오나? 무명 가수가 무대에 서도 저 정도 함성은 나와. 원래 라이브라는 게 분위기에 취하는 거지.”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장소담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그 소리에 직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근무 시간에는 핸드폰 전원 꺼 놓으라고 했잖아, 소담 학생.”
“죄, 죄송해요.”
핸드폰의 전원을 끄려던 장소담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무대에서 진행하는 사람이 진짜 유재성이라는데요.”
“그건 나도 알고 있었어. 뭐,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한 거지.”
“그러면 저 외국인 가수가 진짜 뉴 키즈인 것도 알고 있었어요?”
“어, 어? 뭐라고?”
주임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때였다.
그들이 앞에 여자 둘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그녀들은 숨을 가누기도 전에 다급하게 물었다.
“자, 자리 있어요? 헉헉.”
“자리는 있습니다. 그냥 들어가셔서 앉으면 돼요.”
직원이 안쪽을 가리켰다.
그들이 막 들어가려다 멈췄다.
그중 하나가 장소담을 바라봤다.
“앗? 소담이 아니야?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선미 언니 아니에요?”
“그래, 장미 연락받고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부터 숨도 안 쉬고 온 거야. 그러고 보니 장미가 너 따라서 여기에 온 거였구나.”
그녀는 손뼉을 치며 재미있다는 듯 장소담을 바라봤다.
그녀는 스타플레이어의 공연을 기다리던 관객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뜬 사람 중 하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표까지 암표상에게 넘기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장소담은 그녀가 얼마나 스타플레이어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스타플레이어 공연은 어떻게 하고요?”
“에이, 뉴 키즈가 왔다고 하는데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 너도 같이 들어가자.”
“근무 중이라서…….”
“오늘 아르바이트비는 내가 줄게.”
“아르바이트비가 아니에요. 나중에 취업 점수에 가산점이…….”
“호호, 우리 회사에 꽂아 주면 되잖아. 나도 동종 업계인 거 잊었어?”
“그럼 안 되는데…….”
그때였다.
직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소담 학생, 아는 언니들인 것 같은데, 들어가. 오늘 근무는 다 마친 거로 해 줄게.”
“그래도 되겠어요? 주임님.”
장소담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직원은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다.
들어가려는 장소담은 잠시 멈춰 주임에게 다가갔다.
“주임님,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고맙다는 말은 괜찮아. 어서 들어가. 이 정도 인원이면 나도 어디서 한숨 자고 와도 될 것 같아.”
“그게 아니라…… 조심하시라고요.”
“조심해? 뭘 조심해?”
“저 언니들이 여기로 온 거 보면 뒤를 이어서 몰려들지도 몰라서요.”
“에이,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지난번에 소담 학생이 수고해서 내가 편의 봐주는 거니까. 교수님께는 나중에 잘 말해 주고.”
“네, 감사해요. 주임님.”
언니들과 장소담이 들어가자 주임은 어깨를 으쓱했다.
뉴 키즈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도 나지 않은 공연에 사람들이 몰려들 리는 없었다.
그때였다.
함성이 멈추고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직원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90년대의 가장 상징적인 보이 밴드 중 하나인 뉴 키즈 온 더 록의 무대는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갔다. 아니, 그들이 남기고 간 것은 에너지였다.
사실 중년 관객들은 뉴 키즈가 진짜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갈증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20년 전 젊은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들은 앙코르곡 하나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
어떤 관객들은 뉴 키즈가 물러나자 한숨을 쉬고 있었다.
“휴, 처음 무대 위로 올랐을 때 왜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지?”
“아, 조금 더 목청껏 응원할걸.”
“아니, 유재성도 진짜였잖아. 무슨 시골 장터 같은 행사에 전설의 보이 그룹이 나와?”
그들은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뉴 키즈 외에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덕분에 무대로 오른 블랙홀 멤버들은 하나 같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센터에 선 우시원은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평소 당당하던 서찬휘도 계속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관객들은 목을 삐쭉 내밀며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와도 같았다.
문제는 그들이 기다리는 것이 블랙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관객 중 누군가가 외쳤다.
“앙코르 다시.”
이어서 연달아 다시 들리는 목소리.
“뉴 키즈 앙코르.”
마이크를 잡은 유재성도 당황하고 있었다.
다음 공연자가 무대에 올랐는데 앙코르를 외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실 이건 진행 요원들의 실수일 수도 있었다. 뉴 키즈의 노래가 끝난 지 10분.
그 정도는 객석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앙코르 요청이 나오고 있었다.
다음 공연자가 무대에 올랐는데도 울리는 앙코르 요청.
그것은 무대에 오른 공연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단독 콘서트라면 가능했겠지만, 오늘은 단독 콘서트가 아니었다.
뉴 키즈의 무대이기도 했지만, 블랙홀의 단독 무대였다.
“앙코르!”
요청은 계속 이어졌다.
유재성은 마른침을 삼키며 관객들을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관객들이 점점 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는 이들은 무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이 찾는 것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유재성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에 단골처럼 붙는 수식어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건 각본 없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해결책이 없는 드라마였다.
전설의 보이 그룹을 찾는 관객 덕분에 데뷔 무대를 시작하려는 신인 그룹은 길 잃은 어린 양이 되어 버렸다.
유재성은 조용히 무대의 옆쪽을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어떻게 좀 해봐요.’
이건 SOS였다.
입 모양으로 뜻을 전한 유재성은 한쪽 눈을 깜빡였다.
신호를 받은 도훈은 잠시 상황을 살폈다.
이건 전생에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무대의 열기 같은 건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블랙홀의 데뷔 무대였다.
이 무대의 성공이 그들의 첫걸음이 될 것이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건 이제 막 첫 번째 무대를 앞둔 블랙홀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최소 첫 데뷔 무대가 트라우마가 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도훈은 재빨리 새로 얻은 내비게이션 스킬을 발동시켰다.
순간 도훈의 눈앞에 화면이 떠올랐다.
도훈은 놀란 표정을 숨겨야 했다.
눈앞에 화면은 진짜 내비게이션이었다.
―안내에 따라 목적지를 설정해 주세요.
동시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도훈은 미리 준비한 생각을 떠올렸다.
‘블랙홀의 성공.’
―추상적인 목적지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목적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도훈은 혀를 찼다.
내비게이션의 쿨타임은 무려 석 달이었다.
이번에 내린 설정 하나로 뽕을 뽑으려 했지만, 내비게이션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도훈은 재빨리 생각을 이었다.
‘블랙홀이 석 달 뒤 뮤직 가든에서 1위 할 수 있게 안내해 줘!’
사실 이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던져 본 설정이었다.
뮤직 가든이라면 국내 음방 중에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1위를 한다면?
방송 횟수나 판매량 모두 최상위권이라는 말이었다.
그럼 그것이 성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간 내비게이션의 화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안내를 시작합니다. 목적지까지 편히 모시겠습니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설명.
―경유지를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 경유지는…….
모든 경유지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도훈은 재빨리 옆에 있던 큐시트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큐시트에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준 방법을 쓴 도훈은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제이든이 난감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마치 죄를 지은 듯한 표정이었다.
도훈은 큐시트를 제이든에게 건넸다.
“자, 이거 받아요.”
“리? 이걸 왜 제게?”
“이것 좀 저기 있는 유재성 씨에게 가져다줘요.”
“이것만 가져다주면 됩니까?”
“일단은요.”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든이 재빨리 유재성에게 달려갔다.
제이든은 달려가며 큐시트를 슬쩍 확인했다.
그곳에는 온통 한글밖에 없었다.
제이든은 입맛을 다셨다.
한국어는 인사말 정도는 배우긴 했다. 하지만 한글을 읽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한글을 배워야겠어.”
혼잣말을 뱉은 제이든은 치타처럼 재빨리 유재성의 앞에 도착했다.
제이든이 무대를 가로지르자 관중들의 함성은 잠시 멈췄다.
대신 관객석 사이에서는 간간이 박수 소리와 마른침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제이든은 큐시트를 건네고 재빨리 사라지자 다시 이어지는 앙코르 요청.
큐시트를 확인한 유재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무대의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도훈을 비롯한 뉴 키즈 멤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확인한 유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살짝 톤이 높이 높아지자 관객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