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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도훈은 내비게이션의 효과를 보기 위해 재빨리 아래를 확인했다.
[내비게이션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0.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알려 주는 스킬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목적지와는 다릅니다.]
[1. 내비게이션은 정답을 향한 길을 안내해 줍니다.]
[2. 내비게이션은 정답을 찾게 되면 종료됩니다.]
[3. 내비게이션 기능은 3개월에 한 번 쓸 수 있습니다.]
도훈은 내비게이션 스킬을 확인하는 중에도 응원봉을 멈추지 않았다.
뉴 키즈는 네 번째 곡을 끝으로 무대를 마쳤다.
쌀쌀한 날씨에도 그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젖은 어깨 위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는 리더 제이든은 객석을 힐끔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한참을 보던 제이든은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사내에게 시선을 멈췄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쳤던 자신보다 저 사내가 더 열정적이었다.
제이든뿐이 아니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최대한 천천히 무대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이 정도로 열광적인 관객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팬심이 아니라, 열광적이면서도 절제된 팬심을 보여 줬다.
덕분에 그들은 오랜만에 전성기 시절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제이든은 앞에서 응원봉을 든 사내를 꼭 다시 보고 싶었다.
모든 응원이 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제이든을 알고 있었다.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기다리던 단어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앙코르!”
“앙코르!”
누군가 목이 터져라. 앙코르를 외치고 있었다.
앙코르를 외치는 사람은 제이든이 고마움을 느끼는 바로 그 사내였다.
제이든은 나머지 멤버와 함께 다시 무대 쪽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유재성도 나왔다.
유재성은 큐시트를 들고나와서 뉴 키즈의 멤버들 옆에 섰다.
모든 곡이 끝나고 나면 이제는 그들의 정체를 밝혀도 된다고 했다.
거기에 앙코르곡은 포함이 안 되니 지금이 그들의 정체를 밝힐 때였다.
유재성은 마이크를 들고 제이든을 바라봤다.
“제이든, 한국에 온 게 거의 이십 년 만이죠?”
질문을 던진 유재성은 큐시트를 뒤적거렸다.
큐시트에 있는 인터뷰 내용은 모조리 한국어였다.
문제는 제이든과 다른 멤버들이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까도 황수영이란 매니저가 통역을 해 줘서 그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대 위에 통역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유재성이 말을 이었다.
“아, 이거 미치겠네요. 이거 몰카 맞죠? 인터뷰하라고 해 놓고 죄다 한국어로 질문을 써 놓으면 어떻게 해요?”
옆에 있던 제이든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왓?”
그들 모습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의도된 것으로 연출로 보였다.
그 상황에서 유재성은 보이지 않게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통역할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통역은 황수영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은 황수영이 자리를 비운 상태.
앙코르 요청을 받고 너무 빨리 무대로 돌아왔기 때문에 타임라인이 꼬인 것이다.
그때였다.
객석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다름 아닌 도훈이었다.
도훈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랐다.
어차피 응원으로 시선을 모았던 도훈이었다.
무대에 한 번 더 오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도훈이 무대 위에 오르자 제이든이 눈을 빛냈다.
무대 호응을 잘해 줘서 고맙다고 말할 기회가 이처럼 빨리 생길 줄은 몰랐던 것.
제이든은 도훈이 올라오자마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헬로.”
“한국에 오신 걸 환영 드립니다.”
도훈이 고개를 살짝 숙이자 제이든이 말을 이었다.
“저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하, 온라인에서도 그 말씀을 하시더니…….”
도훈의 말에 제이든이 급히 물었다.
“온라인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당신을 오늘 처음 봅니다.”
“온라인으로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요? 참, 마이클을 통해서였지만요.”
“마, 마이클이라고요? 혹시…….”
제이든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 도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어제까지도 메일을 주고받지 않았습니까?”
“그럼, 당신이 미스터 리?”
“네, 맞아요. 저를 항상 그렇게 부르셨죠, 제이든.”
“오마이갓.”
“혹시 모르고 계셨던 겁니까?”
“저는 제 노래를 좋아하는 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내가 자신이 찾던 미스터 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스터 리가 자신의 노래를 이렇게 좋아하다니 이것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제이든이 멍한 표정을 짓자 도훈이 웃었다.
“팬인 건 맞습니다. 하하.”
이건 도훈의 진심이었다.
도훈도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랐으니까.
둘의 대화에 유재성이 황당한 듯 물었다.
“두 분이 아시는 사이예요?”
“온라인으로만 대화를 나누던 사이라서요. 일단 제가 통역을 맡겠습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진행해 주시죠.”
도훈의 말에 유재성을 다시 큐시트를 확인했다.
“제이든, 이십 년 만에 한국에 오신 소감이 어떤가요?”
“사실 떨리지 않는다고 하면 이상한 거죠. 이십 년이 흘렀으니 우리 뉴 키즈의 노래를 좋아하던 십 대 팬분들은 이제 삼십 대가 되셨겠군요.”
“그렇겠군요. 뉴 키즈뿐 아니라 팬들도……. 그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키즈가 아니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이제는 저희도 키즈가 아닌 어덜트가 됐습니다.”
제이든이 객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유재성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룹명도 바꾸시게요?”
“그럴 리가요. 그룹명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네, 이번에 신곡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한국에서 작업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하드웨어적으로 나이는 먹었지만,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이십 년 전 뉴 키즈 그대로이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아저씨가 됐다고 떠나지 마시고요.”
제이든은 농담을 섞어 가면서 유재성과 인터뷰를 나눴다.
그들의 대화에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가장 놀란 것은 캠코더를 들고 있는 학생이었다.
캠코더를 든 학생의 손이 살짝 떨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옆에 있는 친구가 유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기 있는 사람 혹시 진짜 유재성 아저씨 아니야?”
“아니야, 분명히 오늘 스케줄에는 이곳 행사가 없었어.”
“혹시 이거 게릴라 콘서트 같은 거 아니야?”
“게릴라 콘서트?”
“유재성 아저씨 본진이 M본부잖아. 전에 했던 게릴라 콘서트도 그쪽 프로그램이고.”
“에이, 저기 대문짝만하게 케이넷이라고 쓰여 있잖아. 그리고 프로그램명도 다르고.”
“뭐, 비슷한 프로그램일 수도 있지, 중요한 건 저 사람이 진짜 유재성이라는 거잖아. 와아!”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중년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혹시 진짜, 뉴 키즈?”
“설마…….”
“지금 얘기하는 거 들어 봐, 이십 년 전에 왔다고 했잖아.”
“그래, 그때 너하고 콘서트에 갔다가 깔려 죽을 뻔했잖아. 너는 나 구할 생각도 안 하고 오빠를 외쳤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너 잡아끌면서 소리 질렀지, 오빠라고.”
“그게 그거지.”
“그럼, 무대에 있는 것도 진짜 유재성이고 저 외국인들도 진짜 뉴 키즈 오빠란 거잖아, 와 이거 대답이네.”
서른 후반은 되어 보이는 그녀들은 십 대 소녀처럼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삶에 찌들어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만은 현실을 잠시 잊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이십 년 전 올림픽 체조 경기장 입구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밴을 일일이 확인하던 그때의 모습이 그려졌다.
검은색으로 선팅된 밴이 지나갈 때마다 오빠를 목 놓아 외쳤었다.
검은색으로 선팅이 되어 있는데 안이 어떻게 보일까?
하지만 그 당시 그녀들은 그런 계산은 없었다.
그냥 계산 없이 없었다.
밴에 탄 뉴 키즈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계산 안 하던 이십 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빠!”
그녀는 목 놓아 외쳤다.
그런데 무대에서 인터뷰를 하던 멤버 중 하나가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 준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그 모습에 친구가 물었다.
“지금 뭐 하려고?”
“다른 얘들한테도 알려 줘야지.”
“에이, 지금 알려 줘 봤자 어떻게 와?”
“그래도 오빠들이 선 무대라도 구경하고 가라고 해야지.”
“호호, 그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나도 전화 돌릴게.”
그들은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주변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함께 핸드폰 플래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함성이 커지자 앞쪽에 있던 장경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는 시끄러워지겠네. 자리 잘 지키자, 엄 비서야.”
“네, 회장님.”
그들의 대화에 옆에 있던 애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쪽이 회장님인가유?”
“그건 왜 물어봐요?”
“저도 회장이거든유…….”
구수한 애론의 사투리에 장경자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푸웁, 회장이 여긴 무슨 일이에요?”
“제가 뉴 키즈 팬이거든유.”
“뉴 키즈를 보러 여기에 온 거예요?”
“그건 아니고 사업 때문에 왔다가 정보를 들었구먼유.”
“아, 그거 재미있는 양반이네. 이따 감자탕이나 드실래요?”
“아이구, 고마워유.”
씩 웃는 애론의 모습에 장경자는 그가 기업가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사업을 하러 온 기업가가 어떻게 한가하게 약속을 잡겠는가?
장경자는 지금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십 년 전 기억을 떠올릴 지금의 무대도 재미있고 옆에 있던 외국인도 재미있었다.
이런 재미를 준 외국인에게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푸짐하게 먹여서 보낼 예정이었다.
그 후 인터뷰가 끝나고 뉴 키즈의 무대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함성.
이번에는 도훈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는 진심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앙코르곡으로는 그들의 히트곡이 ‘투나잇, 투잇!’
모두는 추억에 잠긴 듯 그 노래를 따라서 부르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마저 같이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생소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 봤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의 무대가 끝났다.
유재성이 나와 무대를 정리할 때 도훈은 재빨리 무대 뒤로 향했다.
도훈이 임시 대기실로 들어가자 블랙홀의 옆에는 뉴 키즈가 있었다.
뉴 키즈의 제이든은 서찬휘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그들은 강시혁을 찾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다.
강시혁은 제이든에게 블랙홀의 데뷔 무대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제이든은 그들의 긴장을 풀어 줄 겸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 도훈은 혀를 찼다.
젊은이들 중에는 뉴 키즈를 모르는 이들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 중에 뉴 키즈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거기에 보이 그룹으로 한정한다면, 그들은 전설의 대선배였다.
그들이 옆에 있으니 블랙홀의 멤버들은 긴장이 배가 되었다.
피식 웃은 도훈은 옆으로 다가가 그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평범한 응원은 아니었다.
이것은 도훈의 남은 알파벳을 모두 쏟아 넣은 것이다.
거기에 원포올의 스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