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도훈은 재빨리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바라봤다.
[보상 인벤토리 1: M, C, A]
그곳에서 도훈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알파벳 ‘C’였다.
사실 다른 알파벳을 쓰고 싶어도 도훈은 쓸 수 없었다.
잠시 뒤에 나올 블랙홀 멤버를 위해 남겨 놓아야 했다.
도훈은 조용히 걸어가 엄지연의 옆에 앉았다.
도훈이 옆에 왔는데도 엄지연과 장경자는 앞을 향해 쉴 새 없이 응원봉을 뻗고 있었다.
“스텝.”
“하이!”
“스텝.”
한 걸음 한 걸음 하늘을 향해 도전하자는 내용의 가사처럼, 그들의 응원봉은 하늘로 향했다.
여기서 응원봉을 놓는다면 지나가는 새도 맞힐 기세였다.
그때 마침, 뉴 키즈의 노래가 끝났다.
이제 잠시 쉬고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에 무대 뒤로 들어간 그들.
그 뒤를 이어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유재성.
그가 나오자 뒤쪽에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저 사람 유재성 아니야?”
“에이, 유재성이 여길 왜 와?”
“하긴, 지금 바쁠 때인데, 구청 행사에 올 리가 없지.”
그때였다.
무대 위에서 유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유재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전설적인 보이 그룹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학창 시절을 함께하셨던 분들이었죠.”
“…….”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는 옆을 보며 물었다.
“전설적인 보이 그룹이라니?”
“그러게 말이야, 대체 누구지?”
“저 노래는 전설이 맞아. 음악을 모르는 나도 전에 들어 봤으니까.”
“그런데 모창 가수들이 나온 거잖아, 목소리는 비슷하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유재성은 무대의 옆쪽을 힐끔 확인했다.
다섯 명의 멤버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마 관객들의 반응에 실망한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유재성이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저는 딱 여기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이름을 밝히지는 않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뛰는 심장이 그들을 알고 있다는 그 증거겠죠.”
유재성을 흥을 돋우기 위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유재성도 가짜 같은데, 가짜가 가짜 보이 그룹을 소개한다고?”
“어떻게 보면 딱 어울린다. 그래도 재미있잖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런 공연에 왔으면 직촬이 제맛이지.”
말을 마친 학생 하나가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내 들었다.
그 캠코더의 앞에 렌즈까지 결합하는 학생을 본 친구가 물었다.
“아니, 왜 가짜를 찍냐고.”
“이거 찍어서 유재성 아저씨한테 보내 주려고, 진짜 닮았다고 하면 좋아할 거잖아.”
“그러고 보니 너 유재성 팬클럽 장산 지역 부회장이잖아. 지난번에 유재성 아저씨 직접 봤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지난번에 유재성 아저씨가 직접 사인도 해 줬다고. 그런데 저 사람은 가짜가 맞아.”
“그래, 네가 가짜라고 하면 가짜가 맞겠지. 헤헤, 나도 하나만 해 주라.”
“카페 가입하면 해 줄게.”
그때 옆에 아주머니 하나가 물었다.
“학생, 저 사람, 가짜였어?”
“네, 가짜 맞아요. 팬 카페에 올라온 일정 보면 오늘 행사는 없어요.”
말을 마친 학생은 무대를 향해 캠코더를 치켜들었다.
* * *
무대의 옆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뉴 키즈의 멤버들.
제이든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소리에 그의 동생인 조이든이 물었다.
“형, 왜 그래?”
“아무리 그래도 부탁했어도. 이렇게 못 알아볼 수가 없잖아. 객석 반응도 그렇고…….”
“그건 형이 결정한 거잖아. 그리고 우릴 잘 봐, 배 나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십 대일 때 우리가 아닌데 어떻게 알아봐.”
“흠, 그런가?”
“당연하지. 그리고 이런 무대는 우리가 바란 거잖아. 우리 전성기 때보다는 훨씬 즐겁잖아.”
“…….”
제이든은 군데군데 비어 있는 객석을 바라봤다.
그는 피식 웃었다.
동생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이든이 그룹 해체를 선포했던 이유는 밤낮없이 그리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던 열성 팬들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들의 콘서트 때마다 발생하던 수많은 부상자.
그들은 때로는 기성세대들로부터 킬러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들의 전성기는 그야말로 굵고 짧았다.
최전성기에 은퇴를 선언했으니.
하지만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이 하고 싶었던 것은 음악.
그들은 중년이 된 시점에 다시 뭉쳤다.
문제는 그들이 중년이라는 점이었다.
외모와 운동 능력 모두 십 대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남은 것은 목소리였다.
노래할 때면 전성기 때의 목소리가 그대로 나왔다.
사실 지금은 배가 나온 멤버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운동으로 예전의 몸을 회복했으니까.
제이든은 그들의 가장 큰 문제를 곡이라고 생각했다.
곡만 제대로 만나면 나머지 멤버들과 전성기의 인기를 찾을 것으로 생각했다.
인기를 찾는다고 해도 대규모의 콘서트를 열 생각은 없었다.
그때처럼 누군가가 다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
요즘은 공연 문화가 예전보다 많이 발전한 관계로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의 매니저가 얘기했지만, 제이든과 나머지 멤버들은 콘서트는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상황에 놓이니 서운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동생 조이든이 물었다.
“미스터 리는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우리 공연을 보고 곡을 결정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형은 미스터 리 얼굴 알아요?”
“아니!”
제이든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조이든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공연 끝나고 꼭 전화해 봐요.”
“그래, 꼭 전화할게.”
그때 진행요원이 그들에게 큐 사인을 줬다.
다시 무대에 오를 때가 된 것이다.
제이든을 리더답게 앞에 나가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제이든은 여전히 센터였다.
그들이 나가자 진행자가 눈인사하며 빠져 줬다.
빠져나가는 진행자를 본 제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건넸다.
유재성이라고 했던가?
제이든은 너무 신기했다.
그는 자신이 자주 보던 한국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방송인이었다.
번역된 한국 프로그램에서 그는 리더 역할이었다.
리더지만, 항상 손해 보는 캐릭터였기에 더 친근했다.
마치 자신과 비슷해서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사실 한국 무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을 몰랐다.
물론 서로 안면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화면으로 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신기한데, 상대가 자신의 팬이라고 하자 제이든은 적잖게 놀랐다.
거기에 사인까지 부탁해서 해 줬다.
지금도 무대의 텐션을 끌어 올리기 위해 관객들에게 쉴 새 없이 외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했다.
그 모습이 제이든은 이상했다.
유재성이란 방송인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관객들의 표정을 보면 유재성이나 뉴 키즈나 거기에서 거기였다.
그때 상념을 깨우는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따, 따, 따, 단!
스피커가 흔들릴 정도의 비트.
그들의 노래 중 가장 빠른 노래인 ‘TXT’였다.
온라인으로 채팅을 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린 노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
그 과정이 모두 첫 번째 파트에 있다.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첫 파트가 지나가면 두 번째 파트에서는 살짝 음이 느려진다.
이 노래는 기존의 곡이 아니었다.
이건 재결성하고 나서 발표했던 곡이었다.
첫 번째 파트의 비트는 뉴 키즈의 전성기를 표현한 것이다.
빠르게 성장했고 빠르게 저물었던 그들의 이야기.
두 번째 파트에서는 곡의 진행이 살짝 느려진다.
제이든은 나름대로 그들의 미래를 그리려고 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주변 인물이었다.
사실 이 곡을 쓰면서 제이든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랭했다.
악평이 쏟아진 것이 아니라 반응이 아예 없었다.
그래도 애착이 가는 곡이기에 세 번째 곡으로 선정했다.
제이든이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갔다.
“저스트 투나잇…….”
순간 들려오는 함성.
“꺄악!”
그 소리에 제이든의 눈이 커졌다.
객석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것이다.
자신의 파트를 다 마치고 뒤로 빠진 제이든의 눈은 한 사내에게 고정되었다.
미친 듯이 응원봉을 흔들어 대며 관객을 선동하는 듯 미쳐 날뛰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관객들이 그 사내를 보며 모두 따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가 본다면 돈 받고 응원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대체 누구기에…….
의문도 잠시 다시 제이든의 파트가 돌아왔다.
제이든은 턴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몸이 더 부드러워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제이든이 바라보고 있는 사내는 역시 도훈이었다.
알파벳 ‘C’는 다름 아닌 크레이지 모드.
무대에 선 아티스트가 미쳐 날뛰는 효과를 경험했다.
도훈은 크레이지 모드라면 관객이 미쳐 날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응원봉을 들고 가장 앞에서 떼창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크레이지 모드를 장착한 도훈의 존재는 객석 사이에서도 빛이 났다.
도훈의 미친 듯한 응원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객석의 곳곳으로 퍼졌다.
원래 목이 터지라 따라 부르던 엄지연과 장경자는 지금 한계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잇츠 텍스트, 잇츠 라이프!”
그 옆에 있던 애론도 마찬가지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응원봉을 들더니 무대에 선 뉴 키즈를 응원하는 사내는 인상적이었다.
묘하게 그의 동작에 자신도 맞추게 되었다.
갑자기 높아진 텐션에 놀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객석 아래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홍보팀장 김기훈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잇츠 라이프!”
사실 이건 그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뉴 키즈의 목소리는 마치 김기훈의 인생을 읊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그의 전성기는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였던 것 같았다.
그때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지금 노래는 말하고 있었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은 백조가 고고함을 보이기 위해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그들은 다시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뭍으로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고.
당신의 스토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
그때의 꿈이 합격이라면 이제는 진급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때였다.
김기훈은 뛰는 가슴을 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함성에 도훈은 웃음 짓고 있었다.
블랙홀의 무대에서 크레이지 모드를 못 쓴 것이 아쉽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시도는 성공이었다.
[돌발 퀘스트에 성공했습니다.]
[관객 호응도: 93]
[골드 룰렛이 지급됩니다.]
도훈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놔두면 뭐가 된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도훈은 응원봉을 흔들며 재빨리 룰렛을 활성화했다.
골드 룰렛이 돌아가는 것이 무대와 겹쳐서 보인다.
또르륵.
한참을 돌아가던 룰렛이 멈췄다.
[골드 등급 스킬 내비게이션을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