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80화 (180/250)

(180)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만들어진 무대였다.

관객들은 지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이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보이 그룹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박창성은 이번 프로그램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무대에 선 가수라면 관객의 호응이 있어야지 흥도 나는 법이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공연을 봐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미리 공연을 알리지 않았을까?

의문이 쌓여 갈 때쯤 누군가 박창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톡톡.

박창성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도훈이 씩 웃고 있었다.

순간 박창성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노래하고 있는 보이 그룹이 뉴 키즈 온 더 록이 맞죠?”

“네, 맞습니다. 정확히는 이제 어덜트 그룹이라고 해야 맞겠지만요.”

“어덜트라……. 하긴 그렇겠네요. 그런데 왜 끝까지 비밀로 하신 건가요?”

“뭐, 저분들의 부탁이 있었어요.”

“저분들이라니요?”

“뉴 키즈 온 더 록이요.”

도훈은 손가락으로 무대 위를 가리켰다.

“왜, 만리타국 머나먼 한국에까지 와서 홍보를 못 하게 하는 건가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아마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일 것 같아요.”

“빚이라니요?”

“저분들이 한국에 왔을 때 사고가 일어났잖아요.”

“헉.”

박창성은 입을 크게 벌렸다.

사실 뉴 키즈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건 주최 측의 무리한 관객 수용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원을 한참 넘어서 관객을 받는 바람에 꽤 많은 인원이 다쳤다.

박창성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축구 경기 때 경기장이 무너진다고 축구 선수들이 자책하는 경우와 똑같잖아요. 이런 경우가 있나요?”

“뭐, 있을 겁니다.”

“그럼, 뉴 키즈를 데려온 유레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꽤 막대한 비용이 들었을 텐데요. 관객도 없이 그게 가능한가요?”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원한 조건은 따로 있으니까요.”

“그게 뭔가요?”

“제 곡을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실장님 곡을요?”

“네,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도훈은 고개를 돌려 무대에서 날뛰고 있는 뉴 키즈를 바라봤다.

그들 다섯은 무대 위를 휘젓고 있었다

관절이 나갈까 두려울 정도로 그들은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뉴 키즈가 재결성한 것은 도훈 때문이 아니었다.

뉴 키즈는 이미 몇 년 전에 재결성했다.

각자 활동하던 그들은 나이를 먹고 나서 뭉치면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시 뭉쳤지만, 히트곡은 전혀 없는 상태.

그들은 프로듀서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본 것이 유튜브에서 터진 아윌비백의 사건이었다.

지금은 마이클 윌과 머니 윌이 동일인이라는 것이 널리 퍼진 상태였다.

뉴 키즈는 마이클을 찾아가서 곡을 부탁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에 한국의 유명한 작곡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 작곡가가 바로 도훈이었다.

뭐, 마이클이 착각할 만도 했다.

아윌비백의 초기 악보를 보고 편곡과 가사를 완벽하게 완성해 냈으니 마이클은 아마 도훈이 천재인 줄 알고 있을 것이다.

도훈은 그 오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도훈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히트할 수천 개의 악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도훈이 사용할 생각은 아니었다.

주인들이 창작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도와줄 것이다.

물론 조용히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티를 내면서 도와줄 것이다.

전생에 도훈을 배신한 무리가 가지고 있는 히트곡은 이미 정리해서 강시혁에게 넘겼다.

강시혁은 밤을 새워서 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 몇 개를 뉴 키즈에게 들려줬더니 그들은 선택한 것이 바로 한국행이었다.

그들이 한국 공연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겸사겸사 한국행을 택했고 이렇게 도훈이 요청한 무대에 선 것이었다.

도훈은 지금 분위기가 좋았다.

무대의 앞쪽에는 지금 장경자가 환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 무대는 할머니를 위한 무대였다.

사실, 조용한 음악 카페를 빌려서 할머니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할머니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도훈은 알고 있었다.

돈이라면 둘째가면 서러워할 그녀가 왜 그렇게 음악을 듣지 않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추억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밀리며,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탑스타를 기다리는 마음이 안락한 카페에서 재현될까?

도훈은 실제로 장경자의 추억을 재현해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도훈은 이런 일을 왜 벌이고 있는 것일까.

그 정답은 간단했다.

전생이 되풀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세훈 대표의 움직임으로 봐서 장경자가 큰 충격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

그때였다.

디링.

도훈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문자는 한민국에게서 온 것이었다.

핸드폰에는 몇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도훈은 몸을 돌려 사진을 확인했다.

파주의 아트홀에서 찍은 사진에는 산자락에 들어차 있는 일꾼들이 나와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각종 중장비가 산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장경자의 비밀 금고를 열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 모든 것은 도훈이 보낸 한민국에게 기록되고 있었다.

사실 이런 행동을 장경자에게 얘기해 볼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라 생각했다.

도훈이 얘기한다고 해서 핏줄을 놓을 장경자가 아니었다.

벌은 주겠지만, 이세훈을 다시 재기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시 장경자를 노릴 것이 뻔했다.

도훈은 일단 사건이 벌어지게 놔두었다.

장경자가 똑똑히 목격할 수 있게 말이다.

다신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줘서 그 충격을 상쇄시킬 것이다.

거기에 플러스알파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장경자가 쓰러지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터였다.

도훈은 시선을 돌려 앞쪽에서 응원봉을 들고 있는 장경자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엄지연도 같이 신나게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둘은 혼연일체가 되어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연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떼창까지 즐기는 장경자와 엄지연.

“스텝 하이 스텝!”

그녀들이 목청껏 따라 부를 때 그들의 첫 곡이 끝났다.

장경자와 엄지연은 들고 온 생수를 들이켰다.

쌀쌀한 날씨지만, 그들은 후끈 달아올랐는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이 생수를 마시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사내 하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따라 부르는 거예유?”

구수한 사투리에 장경자는 고개를 돌렸다.

순간 장경자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앞에는 예상을 깨고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

“아니, 한국 사람이에요 아니면…….”

“아이구, 죄송해유. 제가 한국어를 사투리로 배워서유. 미국에 있는 제 통역사가유…….”

그는 사투리로 설명을 늘어놨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 통역사가 표준어라고 가르쳐 줬는데 알고 보니 사투리였다는 것.

옆에서 듣고 있던 엄지연은 참지 못하고 마시던 생수를 뿜었다.

“푸웁.”

순간 고래가 등에서 물줄기를 뿜어내듯 엄지연은 생수를 뿜어냈다.

그 물줄기가 얼마나 높이 솟아올랐는지 뒤쪽에 잇던 아이는 엄마에게 분수 쇼라고 말했다.

덕분에 엄지연을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장경자는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이 신기한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양반이네요.”

“그냥 양반 말고 평민이 좋아유.”

“호호, 혹시 개그맨이신가요?”

“아니에유. 미국에서 사업하고 있어유. 이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놀러 오시믄, 대접해 드릴게유.”

“호호, 저는 장경자라고 해요.”

“저는 그냥 머슥이라고 불러 주세유.”

“머쓱이요?”

“네, 애론 머슥이요.”

그때였다.

뉴 키즈의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뒤쪽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도훈은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역시 할머니는 사업 감각이 있으시다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박창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도훈이 말했다.

“우리 할머니 옆에 있는 분도 꽤 유명한 기업가거든요.”

“저 외국인이요?”

“아마 조금 있으면 뉴스에도 자주 나올 겁니다.”

“이름이 뭐죠?”

“그건 비밀입니다.”

도훈은 씩 웃었다.

장경자의 옆에 앉은 외국인은 도훈이 초대한 기업가였다.

그의 이름은 애론 머스크.

테슬라의 수장으로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 사람이었다.

그를 알아보고 저렇게 수다를 떠는 장경자가 신기할 뿐이었다.

뒤쪽에서 바라보니 애론과 장경자 그리고 엄지연은 꽤 친해진 듯 보였다.

공연이 진행되자 애론 머스크는 장경자와 엄지연을 따라 떼창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였다.

도훈이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추억을 소환하라’ 첫날 무대 관객 호응도 90 이상 성공 시 골드 룰렛 보상.]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진짜 오랜만에 나타난 퀘스트였다.

도훈은 그동안 배가 고팠었다.

성공에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퀘스트에 배가 고팠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다시 살펴보니 숫자가 나타났다.

[현재 관객 호응도: 30]

실로 형편없는 수치였다.

도훈은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며 갈등했다.

그들이 진짜 뉴 키즈라는 것을 밝혀야 할까?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 사실을 알린다면 관객 호응도는 올라가겠지만, 이곳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뒤쪽에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지만, 사고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법이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관객 호응도를 높이려면 반전이 필요했다.

이 완벽한 무대에서 무슨 반전이 필요하단 말인가.

도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속으로 외쳤다.

‘힘내자.’

그때 두 번째 곡이 끝났다.

[현재 관객 호응도: 37]

37중 20 정도는 장경자와 엄지연 그리고 애론이 담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훈은 다시 상황을 살폈다.

이곳 관객 중에는 생각보다 젊은이들이 많았다.

거기에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

엄마 중에는 뉴키즈의 노래를 아는지 따라 부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뭐 하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이래서야. 호응도를 끌어올릴 수 없었다.

도훈은 심호흡 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박창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실장님 어디 가세요?”

“조금 앞에서 보려고요.”

“아니, 대기실로 가셔서 아이들도 봐야 하잖아요. 애들은 항상 실장님만 기다리던데…….”

박창성도 느낀 것 같았다.

블랙홀 멤버 모두는 알게 모르게 도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일만 끝내고 바로 갈게요.”

“일이라니요?”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서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도훈은 박창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급하게 무대 쪽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그곳으로 뛰어간다면 공연을 하는 뉴 키즈의 멤버들도 황당할 것이 분명했다.

도훈이 하려는 행동은 간단했다.

바로 흥을 돋우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진짜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분위기를 업시킬 수 있을까?

도훈의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