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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77화 (17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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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에서 나온 게 아니라면 이 땅의 주인이 시켰다는 것이다.

이 산의 주인은 전국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산의 실질적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장경자였다.

실질적인 주인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딱 한 가지를 뜻한다.

누군가 장경자를 배신했다는 것.

도훈은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도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는 덫을 놓고 미끼를 깔아야 할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도훈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문자를 보냈다.

툭.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등산 재킷에 넣은 도훈은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오늘따라 산 아랫마을이 작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발밑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거금이 묻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도훈은 팔짱을 끼고 덫에 깔아 놓을 미끼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미끼를 떠올리던 도훈은 혼잣말을 뱉었다.

“방심?”

이건 도훈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미끼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넘어서 상대가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번 일의 핵심이었다.

*    *    *

열흘 뒤. 경기도 장산시청의 4층 회의실.

회의실에서 나온 김기훈은 이마에 팔자 주름을 만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진짜 미치겠네.”

“김 팀장님 왜 그러세요?”

직원 하나가 고개를 내밀며 김기훈의 표정을 살폈다.

직원은 단발머리에 제법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마리, 김기훈이 맡은 홍보팀의 직원이었다.

그녀를 본 김기훈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일을 이렇게 만드냐고. 자기가 시장이면 시장이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하라고.”

김기훈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가 이리 흥분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새로운 청사로 옮긴 지 딱 한 달이 지난 상황이었다.

이제 시민들에게 옮긴 청사에 대해서 최대한 어필해야 할 때였다.

그런 이유로 장산시는 시민들을 위한 축제를 기획했다.

축제에 대한 기획은 당연히 이곳 시청의 홍보팀장인 김기훈의 몫이었다.

장산시의 특성상 막대한 비용을 쏟아서 행사를 치를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김기훈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뛰어다니며 행사의 라인업을 꾸렸다.

그런데 시장이 행사에 앞서 하루를 케이블 티비의 한 코너에 할애해 주란 지시를 내렸다.

김기훈은 사실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때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또 왜 그러세요?”

“아니, 첫날 공연이 제일 중요한데 왜 자기 마음대로 바꾸냐고!”

김기훈은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철을 마구 흔들었다.

그때였다.

직원이 김기훈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팀장님 저기…….”

“왜? 내가 이 정도 소리도 못 질러?”

“그게 아니라 시장님이…….”

“헉.”

김기훈은 순간 숨을 죽이며 재빨리 뒷걸음쳤다.

그는 직원과 함께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빠져나왔다.

그 모습에 직원이 물었다.

“에이, 팀장님도 간덩이가 작아서…….”

“내 간덩이가 왜?”

“팀장님은 시장님 라인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내가 흥분하게 안 하게 됐어? 생각해 봐, 없는 살림에 내가 꾸려 놓은 라인업이야. 그런데 거기에서 다른 사람을 끼워 넣으면 어떻게 해!”

“행사 전날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더 문제지. 행사 전날이면 전야제잖아, 그다음 행사에 출연하기로 한 가수들하고 기획사 친구들이 기분 상할 거 아니야, 솔직히 내가 사정사정해서 시간 뺀 건데…….”

“시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요.”

“아니야, 내가 시장님을 어떻게 믿어. 이것도 부탁 때문에 무대 내준 게 분명해. 솔직히 첫 무대가 신통치 않으면 다음 날부터는 그냥 망하는 거 알잖아. 내년에 선거도 있는데 어쩌시려고…….”

이 말은 김기훈의 진심이었다.

김기훈은 시장의 직속 라인이었다.

시장이 내년에 있을 지방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김기훈에게도 영향이 있었다.

덕분에 김기훈은 진심으로 이 행사를 준비했다.

“팀장님,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케이블 티브이에서 우리 시청을 홍보해 주는 거잖아요.”

“그래, 다른 곳이면 내가 쌍수 들고 환영했지.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케이넷이야, 케이넷 괴담 몰라?”

“그게 뭐예요?”

“케이넷이 왜 하향세인지 알아?”

“뭐, 메인 프로그램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메인 프로그램 같은 문제가 아니야. 올해 케이넷에서 론칭하는 프로그램마다 다 바닥 쳤잖아.”

“그건 그렇죠.”

“그런데 진짜 골로 간 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자들이거든. 그래서 요즘은 다 케이넷에 신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 꺼리잖아. 마리 씨도 생각해 봐, 이 중요한 시기에 하필이면 왜 케이넷이냐고.”

“그래도 케이블 방송사이잖아요, 빵빵한 출연자들 데리고 오겠지요.”

“내가 알기로는 거기에 출연한다고 하는 가수들이 없어.”

“설마요, 참, 지금 케이넷 쪽 담당자랑 만나 봐야 하잖아요. 바로 가요. 팀장님.”

“뭐, 할 수 없지.”

김기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김마리에게 이끌려 소회의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제법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김기훈은 재빨리 명함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 시장의 지시였기에 서로 말은 맞춰야 했다.

명함을 건네주던 김기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서 같이 명함을 건네던 김마리의 눈빛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평소 쾌활했지만, 지금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정도의 태양처럼 눈빛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김기훈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에 앉아서 손을 내밀었다.

“김마리 씨, 자료 좀 주세요.”

“…….”

김미라가 대답을 안 하자, 김기훈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김기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김마리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김기훈은 김마리를 팔꿈치로 톡 쳤다.

“김마리 씨, 자료 좀 달라니까요.”

“자, 잠시만요, 팀장님.”

“왜, 그래요?”

“여기 이분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요.”

말을 마친 김마리는 상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다.

“저는 장산시청 홍보팀의 김마리예요. 그때 스타플레이어에 나오신 분 맞으시죠?”

김마리의 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훈이었다.

임제호와 박창성이 참석하는 미팅에 유레카의 대표로 같이 오게 된 것이다.

도훈이 막 답하려는 순간 김기훈은 김마리를 자리에 앉혔다.

“죄송합니다, 우리 직원이 좀 엉뚱해서요.”

“아닙니다, 직원분이 말씀하신 게 맞아요. 알아봐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게 고맙네요.”

도훈이 웃자 김마리가 고개를 길게 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당연하죠. 어떻게 매니저님을 못 알아봐요. 연습생보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매니저님 맞잖아요, 헤헤.”

“와, 진짜 자세히 보셨나 봐요? 그런데 연습생보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건 아닌데요.”

“아니에요. 저는 매니저님 시청자 투표 때 나오면 찍으려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나오지 않으셔서 섭섭했어요. 이번 공연 때 나오시는 거예요? 그럼 제가 응원봉 들고 무대 앞에서 기다릴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본업으로 돌아갔어요.”

“본업이요?”

“물론 매니저 일이죠.”

그때 옆에 있던 김기훈이 헛기침을 서너 번 했다.

“흠.”

그 소리에 김마리가 정신을 차리렷다.

하지만 모든 일은 벌어진 후였다.

업무로 만난 자리에서 덕심을 폭발시킨 김마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녀를 진정시킨 김기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조금…….”

“괜찮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와 관련해서 설명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번에 무대에 설 친구들이 스타플레이어 출신이거든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요?”

“네, 맞아요. 메인은 아니고 게스트로 출연하지만,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아이돌이 무대에 설 겁니다.”

“자, 잠시만요. 지금 게스트라고 하셨나요? 그럼 메인은 누군가요?”

김기훈은 눈을 크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재빨리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메인 무대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임제호 총괄 피디님이 설명해 주실 겁니다.”

도훈의 시선을 받은 임제호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추억을 소환하라’의 총괄을 맡은 임제호라고 합니다. 일단 하루밖에 안 되지만, 무대 준비에서부터 차근차근 상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임제호는 박창성을 바라봤다.

신호를 받은 박창성은 재빨리 태블릿을 펼쳤다.

그 태블릿에는 한눈에 봐도 번쩍번쩍한 무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기훈은 그 의미를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김기훈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하자 임제호가 말을 이었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무대 장치입니다. 비록 세 시간 정도의 공연이지만…….”

임제호는 쉬지 않고 열변을 이어 나갔다.

그 모습에 김기훈의 눈은 한계까지 커졌다.

임제호가 왜 무대부터 상의하자고 했는지, 그는 그제야 그 뜻을 알았다.

임제호가 말한 요점은 지금 보여 준 무대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기훈은 목이 타는지 생수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임 피디님, 죄송하지만, 지금 말씀해 주신 무대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장산시청에서는 비교적 단출한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계획과는 너무 벗어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한 가지입니다. 이 무대는 저희가 설치할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공연에서 이 무대를 쓰셔도 좋습니다.”

“네?”

“시청의 행사가 끝나는 날 저희가 모두 회수해 가겠습니다. 그러니 시청 입장에서도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겁니다.”

“지, 지금 말씀하신 게…….”

“네, 사실입니다. 비용은 유레카의 대표님이 다 부담하시기로 했습니다.”

“유레카라면 여기 계신 이도훈 실장님이 계시는 기획사죠.”

“하루 동안 무대를 빌리는 비용치고는 너무 과한데요.”

“뭐, 우리 프로그램 취지가 일상에 찌든 현대인에게 좋았던 추억을 재현해 준다는 거니까.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고……. 참,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대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표님이 누군지 한번 보고 싶군요.”

김기훈은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지 못했다.

시청의 행사는 사실 비용과 싸움이었다.

멀쩡한 길을 뜯어내고 보도블록을 까는 데는 제한이 없지만, 정작 필요한 행사의 비용은 철저히 관리를 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무대까지 꾸며 준다니 이건 생각지도 못한 조건이었다.

초청 가수에게 공연료를 지급하지 못할망정 도리어 무대 설치 비용을 협찬받는다니!

김기훈은 그제야 시장이 왜 케이넷의 부탁을 받아들였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김기훈은 이 정도의 협찬이면 하루가 아니라 이틀 정도 무대를 내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아도 무대 설치를 맡은 업체가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그였다.

그런데 무대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니 이제는 짐을 내려놔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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