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74화 (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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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블릿에는 기획안 한 장이 떠 있었다.

〈추억을 소환하라!〉

여섯 글자가 하얀 바탕 위에 차지하고 있었다.

도훈은 태블릿을 통째로 임제호에게 건넸다.

임제호는 태블릿을 보더니 쓴 입맛을 다셨다.

사실 임제호는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가장 먼저 당황한 것은 황수영이 케이넷의 대표라는 것에 놀랐고 두 번째는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아무렇지 않게 기획안을 내놓는 도훈의 태도에 놀랐다.

피디에게 기획안이란…….

일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기획안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쥐어짜도 번번이 퇴짜맞기가 일쑤였다.

기획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실제 제작으로 이어지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존재한다.

제작으로 이어진다고 확정이 난 후에도 편성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산 넘어 산의 처음 시작이 바로 기획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급조된 기획안이라니!

임제호는 솔직히 용납할 수 없었다.

만약 도훈이 자신의 부하직원이라면 태블릿을 통째로 집어 던졌을 것이다.

임제호가 급조된 기획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획안은 모두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기획자의 본분이었다.

이렇게 텍스트로만 설명해 봤자…….

혀를 차던 임제호는 자신도 모르게 도훈이 전한 기획안에 빠져들었다.

‘대체 이건?’

이것이 임제호의 머릿속에 궁금증이 차올랐다.

이건 분명히 급조된 기획안이 맞았다.

조금 전 통화를 한 내용이 이 기획안에 반영되어 있으니 이동 중에 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빨아들이는 이 포맷은 뭐란 말인가?

순간 임제호는 스타플레이어의 포맷을 가져다주었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때도 사실은 속으로 비웃었던 임제호였다.

일개 기획사 직원이 방송국에 오디션 포맷을 제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박창성과 한지혜가 보고 간 기획안이 알고 보니 기획사 직원이 준 포맷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임제호는 깜짝 놀랐었다.

지금 그때의 일이 데자뷔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임제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기획안에서 맛이 느껴졌다.

어떤 특정 세대에 어울리는 맛이 아니라 전 세대가 입맛을 다실 그럴 맛이었다.

이건 대박이었다.

찬찬히 기획안을 보던 임제호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본 덕분에 임제호의 눈을 살짝 충혈되어 있었다.

“눈이 벌게요. 괜찮으세요?”

“아, 아니야, 나는 괜찮아.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 좀 나눠 볼까?”

“얼마든지요.”

“나는 이 기획안의 가장 큰 문제는 기간이라고 생각해. 여기 나와 있는 기간에 방영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흠, 거기에 나와 있는 날짜는 편성 일자가 아니라 녹화 일자에요.”

“녹화 일자라고 해도 보름 후잖아. 이게 가능하다고 봐?”

“불가능할 건 뭐예요?”

“일단 장소 섭외가 문제야. 구청하고 경찰서 등 관공서부터 얘기를 해 둬야 하는데…….”

“그건 벌써 얘기해 뒀어요.”

“그래, 당연히 불가능…… 지금 뭐라고 했어?”

“그건 이미 해결됐다고요.”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자 임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실장,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아니에요. 저 기획서에 나와 있는 날짜에 허락해 준다는 확답을 받아 놨어요.”

“…….”

임제호는 슬그머니 기획안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추억을 소환’하라는 3일의 간격을 두고 서울 근교에서 벌어지는 돌발 콘서트였다.

예전 추억을 다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처럼 이번에는 게릴라 콘서트로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중에는 지금의 20대와 30대가 좋아할 가수도 있었고 40대 혹은 그 이상이 좋아할 출연자들도 있었다.

기획안에 나와 있는 출연자들만 무려 열 명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는 개방된 공원이었다.

지자체에서 허가를 해 주기에는 촉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허락을 받았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임제호는 쩝 소리가 나도록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출연자들은 어떻게 섭외할 건데? 솔직히 유레카에 있는 강영웅도 이 스케줄에 맞추기는 힘들걸.”

“영웅이 형은 시간 된다고 불러만 달라고 했는데요.”

“흠, 강영웅이 시간이 된다고?”

“네, 다만, 제 기획안에 한해서 출연한다고 약속했어요. 미리 콘서트 일정을 밝히게 되면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요.”

“그야, 당연하지. 강영웅 정도 되면 콘서트 티켓도 1분 컷이잖아. 그런데 공짜 콘서트 일정이 알려지면 공연 장소는 난리가 날걸.”

“네,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가 봐요. 일단 장소는 네 군데에서 로테이션으로 돌리기로 했고요…….”

도훈은 쉬지 않고 설명을 이었다.

그 모습에 임제호는 계속 입맛을 다셨다.

군침이 돌긴 하는데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다.

“이 실장, 하나만 물어볼게. 왜 이렇게 급하게 잡은 거야?”

“아무래도 우리 블랙홀 친구들을 챙겨야 할 것 같아서요. 데뷔와 동시에 조금 띄울 필요가 있어서요.”

“게스트 출연으로 그게 가능하겠어?”

“물론이죠. 그리고 게스트 중에 이 실장 이름은 왜 있어?”

“그건…….”

도훈은 말끝을 흐렸다.

게스트 중에는 블랙홀의 이름뿐 아니라 도훈도 있었다.

대답은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건 제가 밀어붙였어요.”

황수영이 환하게 웃으며 기획안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황 매니저, 아니 황 대표님이 밀어붙였다고요?”

“네, 애초에 제가 이 실장님 매니저를 하고 있는 게…….”

황수영은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요약하자면 도훈이 무대에 서는 것을 보기 위해서 유레카에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도훈과의 지분 관계라든지, 구체적인 내용은 빼고 설명했다.

임제호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실장이 무대에 서는 걸 보고 싶다고요?”

“네, 맞아요. 저는 이 실장님이 무대에 서는 순간 감이 딱 왔어요.”

“어떤 감이요?”

“이 실장님은 세계적인 스타가 될 거라는 걸요.”

“세계적인 스타요?”

“네, 저는 세계 최고가 될 거라고 봐요. 제 감은 틀린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실장님에게 투자를 하고 있는 거예요.”

“투자요?”

“구체적인 건 비밀이에요. 이번 콘서트도 어떻게 보면 제 투자라고 보시면 돼요.”

황수영은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임제호에게 밝히지는 못했지만, 경제인의 밤에서 봤던 도훈의 무대는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명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매력을 내뿜을 수 있을까?

황수영이 보기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수영이 그렇게 좋아하던 국내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미스트조차 도훈의 매력에는 반의반도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황수영의 진심이었다.

황수영이 보기에는 유레카의 대표로 있다는 자체가 재능을 썩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실장이 스타플레이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긴 했습니다. 그런데 가수와 일반인을 비교한다는 것은 조금…….”

“저만 믿으세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대표님,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임제호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황수영이 케이넷 TV의 대표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오면 임제호는 자신이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    *    *

유레카로 돌아가는 차 안.

황수영은 이제까지 참았던 이야기를 물어봐야 했다.

“이 실장님, 이건 매니저로서 물어보는 거예요.”

“말씀하세요.”

“이번 무대를 왜 그렇게 서두르시는 거예요?”

“할머니께 손자의 재롱을 한번 보여 주고 싶어서요.”

“손자의 재롱이요?”

“네. 조만간 미라클에서 JK유통까지 큰일이 터질 것 같아요.”

“큰일이라면…….”

“뭐, 흔히 있는 집안싸움이죠.”

“집안싸움이라면 이 실장님도 관련된 건가요?”

“정확히 얘기하면 제가 중심에 있죠.”

“그런데, 콘서트를 준비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아마, 싸움이 시작되면 할머니가 충격을 받으실 거예요.”

“혹시 그것 때문에…….”

“맞아요, 콘서트가 열리는 기간이 아마도 가장 치열한 기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면 더욱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싸움에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싸움은 제가 하나요?”

“그럼 누가 하는데요?”

“싸움은 돈이 하는 거죠.”

“돈으로 큰아버지를 이기겠다고요?”

황수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도훈의 위아래를 살핀다.

하지만 도훈은 조용히 웃었다.

“원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법이잖아요.”

“이 실장님은 다윗이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큰아버지도 골리앗은 아니죠. 참, 말 나온 김에 투자 한번 해 보시지 않겠어요?”

“어디에요?”

“다윗한테요, 이번에 이기면 배당금이 꽤나 짭짤할 겁니다.”

“헐.”

황수영이 입을 딱 벌렸다.

*    *    *

그날 밤.

도훈은 장경자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

“그래, 잘 먹으렴. 어쩌면 이게 내가 차려 주는 마지막 밥상일지도 모르겠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이제 너도 다 컸으니 네 아비의 몫은 챙겨 받아야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재산을 암시하는 단어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도훈이 진짜 놀란 이유는 지금의 말에 전생에도 똑같이 들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장경자는 지금의 말을 도훈에게 전한 후 쓰러진다.

이세훈의 움직임도 그렇고 장경자의 말도 그렇고…….

전생의 일보다 시간이 앞당겨진 느낌이었다.

다만, 지금의 일은 전생과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시작은 같지만, 결과는 달라야 했다.

그것이 도훈이 바라는 바였다.

놀란 도훈이 눈을 본 장경자가 말했다.

“그놈 참…… 욕심이 있긴 있구나. 그래야 내 손자지.”

“할머니 저 욕심 많아요. 제 욕심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이러고 있겠어요.”

“그러고 있다는 그게 무슨 말이냐?”

“이거 한번 보세요.”

도훈은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순간 장경자의 눈이 커졌다.

아침 회의 때를 빼면 식탁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훈이 서류 봉투를 건네자 놀란 것이다.

도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건 일 얘기가 아니라 손자가 준비한 재롱 잔치예요.”

“재롱 잔치?”

“유치원에서 재롱 잔치 같은 거 하잖아요. 할머니는 제 재롱 잔치에 오신 적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늦게나마 준비했어요.”

“…….”

도훈의 말에 장경자는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고개를 돌린 장경자는 거실을 향해 외쳤다.

“엄 비서야, 내 안약 좀 갖고 온나.”

“네, 회장님.”

엄지연이 번개처럼 와서 장경자의 눈에 안약을 넣어 줬다.

그러고는 손수건을 들었다.

“제가 안약 좀 닦아 드릴게요.”

손수건으로 장경자의 눈 주위를 살짝 닦아 낸 엄지연은 눈을 찡긋하고 돌아갔다.

사실 눈이 안 좋아 안약을 넣었던 것이 아니었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넣은 안약이었다.

그것을 오래된 비서인 엄지연은 자연스럽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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