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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73화 (17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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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업무에 미쳐서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하는 재벌 3세에게 과연 힘이 있을까?

여기까지 와서 손을 내밀고는 있지만, 장 비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장 비서가 대답을 못 하고 있을 때 도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표정을 보니 못 믿으시는 것 같군요.”

“그게 아니라…….”

장 비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여기에서 밝힐 수는 없었다.

그때 도훈이 장 비서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지금 급한 건 제가 아니라 장 비서님이니까요.”

“흠.”

“그냥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저희 장 비서님이 동고동락을 해왔던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처럼 받을 것만 받고 입을 씻는 파렴치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대표님은 저를 믿습니까?”

“대표님이라고 하니 부담스럽네요. 그냥 이 실장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제가 못 믿을 이유는 뭡니까?”

“이 실장님의 뒤를 노리던 사람 중 하나가 아닙니까?”

“이제는 아니지요.”

“그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세훈 대표님이 일을 꾸미는 것 같습니다. 이도준 본부장은 자신의 잘못에 저를 엮어 넣으려고 하고요.”

“이도준 본부장과 장 비서 이야기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장 비서는 도훈의 눈을 바라봤다.

형이라고 안 하고 본부장이란 호칭을 쓰는 도훈이 조금 냉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서로 적이라고 해도 이도훈과 이도준은 사촌 사이였다.

즉, 장경자의 손자라는 말이었다.

그들과는 거리가 느껴졌었다.

그런데 도훈이 거리를 두는 듯한 호칭을 쓰자 장 비서는 묘하게 안심이 됐다.

그 냉정함에 한번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세훈 대표가 노리는 게 아무래도 장경자 회장님 같습니다.”

“할머니를 노린다고요?”

“네, 제가 이세훈 본부장과 오정수 실장의 대화 중 여의주를 뺏는다고 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이세훈 대표가 할머니를 노린다면…….”

도훈이 말끝을 흐리자 장 비서가 바로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그럴 힘이 있을까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세훈 대표는 적어도 지렁이는 아닙니다.”

“제가 모르는 얘기였군요. 이 정도면 장 비서님 몸값으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몸값이라니요?”

“사람도 다 값이 있는 법 아닌가요? 장 비서님을 구하려면 저도 그만큼의 값을 치러야 하고요. 저와 손을 잡으시죠.”

도훈이 손을 내밀었다.

잠시 멈칫한 장 비서가 그 손을 잡았다.

“본부장님보다 따뜻하군요.”

“말씀한 감사하지만, 과도한 관심은 사양입니다.”

도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도훈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마주 오는 차들이 불빛을 반짝이며 지나간다.

그 불빛들을 바라보던 도훈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지금부터 3년 뒤에 장경자는 쓰러진다.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도 동호회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수들의 콘서트까지 정신없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장경자가 쓰러지기 일주일 전이었을 것이다.

도훈은 장경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심각한 목소리로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하필이면 도훈이 찾아가기 바로 전날 장경자는 쓰러졌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그때의 기억을 더욱 자세히 떠올렸다.

지금 상황과 그때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아서였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아.”

깊은 탄성에, 옆에서 운전하던 한민국이 놀라 물었다.

“실장님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어라? 그렇게 당황하는 표정 처음인데요.”

“뭔가 발견한 것 같아서.”

“혹시, 신대륙이라도 발견하신 건가요?”

심각한 도훈을 달래 주려는 듯 한민국이 농담을 던졌다.

도훈이 피식 웃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지.”

“더 중요하다고요?”

“적어도 나한테는…….”

말끝을 흐린 도훈은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도훈은 자신이 놓친 것이 뭔지를 알았다.

그것은 장경자를 잘못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었다.

도훈이나 다른 이들이 바라보는 장경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들어가지 않을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장경자가 본 모습을 숨기고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자신들을 보고 어떻게 느낄까?

그렇다면 전생에도 이세훈은 장경자의 뒤통수를 쳤을 수도 있었다.

전생에는 왜 뒤통수를 쳤을까?

도훈은 전생에 장경자가 도훈에게 전화했을 당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네 아비 몫은 받아 가야지.’ 하던 말이었다.

그때는 형식적인 말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것이 장경자의 진심이었다면?

욕심 많은 이세훈과 그 가족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도 지금처럼 장경자의 뒤통수를 쳤을 것이다.

그 결과가 장경자의 죽음으로 이어졌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도훈이 할 일은 한 가지였다.

이세훈의 음모를 막으면서도 장경자를 보호해야 했다.

*    *    *

다음 날 7팀 사무실.

도훈의 앞에서는 정여진이 아쉬운 눈빛으로 찻잔을 들고 있었다.

“이 실장, 진짜 안 가려고?”

“네, 제가 당분간은 바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서운하다, 이 실장. 훤칠한 배우 하나가 빠지면 주최 측에서도 서운해할 텐데.”

“아닙니다. 선생님과 이지유만 가더라도 무대가 꽉 찰 텐데요.”

“진짜 후회 안 하는 거지? 아니, 안 간다고 이 실장이 후회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노망이 들었네, 호호.”

정여진이 싱그럽게 웃자 그 옆에 있던 이지유가 한마디 거들었다.

“선생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번에 우리가 가서 상이라도 타면 이 실장님도 후회할걸요.”

“그럴까? 그래, 지유밖에 없다.”

그들의 모습에 도훈은 씩 웃었다.

그들은 지금 토론토로 떠나려고 했다.

본래는 매년 9월에 열리지만, 이번 연도부터는 일정이 연기되어 12월에 열린다.

토론토 영화제는 칸, 베를린 등과 함께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였다.

흔히 북미의 칸이라 불리는 영화제로 이번 해에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칸의 전초전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경쟁이 치열해졌다.

토론토에 초원의 집에 경쟁 부분에 초청이 된 것.

전생에는 영화제 출품과 동시에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과연 이번 생에는 어떻게 될까?

도훈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정여진의 핸드폰이 작게 울렸다.

디링.

정여진은 핸드폰을 힐끔 보더니 다시 도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선생님, 왜 그렇게 보세요? 혹시 부탁할 일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게 아니라……. 지금 문자가 왔는데, 조연상 후보에 우리 초원의 집이 올랐다네.”

“선생님이요?”

“나 말고 남우 조연.”

“남자 배우라고 하면…….”

도훈은 미간을 좁히며 초원의 집에 출연한 배우들을 떠올렸다.

초원의 집에서 조연은 너무 많아서 손으로 꼽기에도 부족했다.

도훈은 추측을 포기하고 바로 물었다.

“조연이라면 누군데요? 혹시 남상철 배우님이요? 아니면 서지태 배우요?”

“아니, 이도훈 배우.”

“네?”

“내 말 못 들었어? 이도훈 배우님이 조연상 후보에 올랐대! 축하해, 이 실장.”

“헉, 어떻게 제가? 저는 그냥 단역이었잖아요.”

“정확히는 세 번이나 등장하잖아. 그 정도면 단역이 아니지. 역시 주최 측이 보는 안목이 있나 봐, 호호.”

정여진은 찻잔을 놓고 본격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놀리는 듯한 웃음이 아니라 진짜 기뻐서 웃었다.

그 모습에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토론토 영화제에 남우 조연상 후보라…….

이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아마 평소라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장경자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그럼, 좋은 결과 있길 빌겠습니다. 참, 항공기 좌석은 제가 업그레이드시켜 놨습니다.”

“영화제에서 예매한 좌석이 있을 텐데 그건 또…….”

“아니에요. 선생님이 편하게 다녀오셔야, 제 마음도 편하죠.”

“호호, 이 실장은 마음이 너무 예뻐서 사위 삼고 싶다니까.”

“선생님은 집에는 아드님밖에 없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딸 하나 만들 걸 그랬어. 참, 바쁜 것 같은데 나는 그만 가 볼게.”

정여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멍하니 있는 이지유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이지유, 얼른 가자. 이 실장이 일을 못 하고 있잖아.”

“선생님, 저 여기 오랜만에 왔는데…….”

“나중에 토론토에서 트로피 가져오면 그때 여기에 짐 풀어 놓고 있자고 일단은 후퇴.”

“알았어요.”

이지유가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도훈도 짐을 챙겼다.

*    *    *

케이블 방송사인 케이넷 본사.

도훈과 황수영은 케이넷 본사의 회의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두 사내가 들어왔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금 다급해 보였다.

타다닥.

다급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뛰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멈추고 그들은 멍하니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임제호와 박창성이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임제호였다.

“이 실장!”

“본부장님. 오랜만이에요.”

“그래, 오랜만이지. 그건 그렇고 지금 전화로 말한 게 대체 뭐야?”

“뭐, 연말도 되고 했으니 좋은 의도에서 일 좀 벌여 보자는 거죠.”

“흠, 이거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에 대표님이 알아서 책임지시기로 했으니까요.”

도훈은 황수영을 가리켰다.

순간 임제호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황 매니저가 대표라니?”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황수영 매니저가 이곳의 대표 맞아요.”

“헉, 그럼…….”

임제호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그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드린 프로젝트 가능한가요?”

“음, 가능하긴 한데…….”

“문제가 뭐죠?”

“거기 있는 가수들 다 섭외하려면 프로그램 다섯 개 합친 예산으로도 안 될 거야.”

“그럼, 돈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돈만 있으면 되는 건 맞지만, 내가 얘기했잖아. 예산이 빠듯하다고.”

임제호는 고개를 저었다.

도훈이 제안한 것은 국내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축제였다.

문제는 출연하는 가수의 면면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알아봤는데 그 스케줄을 다 뺀다면 그 비용이 제법 들었다.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부족하면 제가 도울 테니. 추진해 주세요.”

“이 실장이 어떻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뒤에는 여기 황수영 대표가 있잖아요.”

“흠.”

“아마 이번 프로젝트만 잘되면 케이넷은 정상화될 겁니다.”

말을 마친 도훈은 태블릿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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