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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훈은 계속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김주성이 보기에는 그 모습이 마치 재촉하는 신호처럼 보였다.
김주성은 재빨리 마이크를 들고 질문을 이어 나갔다.
“까를로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죠…….”
김주성의 추가 질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큐시트의 모든 질문은 모두 소진되었다.
본래라면 질문을 끝내야 했다. 하지만 문동훈의 신호로 할 수 없이 김주성은 질문을 이어 나갔다.
계속된 질문에 까를로스의 수염이 꿈틀댔다.
그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기쁜 적이 있었던가?
대부분의 기자는 시간이 없다면서 도망치기 바빴다.
자신들이 던진 질문의 답이 끝나기도 전에 촬영 장비를 부랴부랴 챙겨 달아났다.
토크쇼에 출연하더라도 피디 대부분은 시간이 없다면서 까를로스의 말을 끊곤 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한국에 오기 전에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들었었다.
마이클에게 물어보니 그 뜻은 아시아에서 가장 에티켓이 발달한 나라라고 했다.
까를로스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거기에 더해 예의라는 것과 에티켓이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의 예의라는 것은 에티켓보다 조금 더 포괄적이었다.
어떤 형식이 아닌 마음이었다.
모르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한국에서는 길을 물어보면 외국어를 몰라도 손을 잡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는 얘기를 어떤 이에게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까를로스는 그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물론 도훈과 만나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하지만 처음 본 제작진들의 모습은 동방예의지국의 사람들과 거리가 멀었다.
문동훈이란 책임자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미스터 문, 그러니까 문동훈은 자신의 스타일만 고집하면 프로그램을 밀어붙였다.
까를로스에 대하던 행동도 비슷했다.
세계 3대 테너라는 위치에 걸맞게 대우를 하는 듯했지만, 실상으로는 자신의 말만 하고 까를로스의 의견을 무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든 것이 자신과의 인터뷰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를로스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은혜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성심성의껏 김주성의 인터뷰에 응했다.
“……대충 이렇게 된 겁니다. 뭐, 이건 서론에 불과하지요. 그다음 얘기가 궁금하시죠? 일단 물 한 잔 마시고 진행하겠습니다.”
까를로스가 손을 내밀자 막내 FD가 달려와서 그에게 물을 건넸다.
그때 김주성은 자신도 모르게 막내 FD를 쏘아봤다.
차라리 생수가 다 떨어졌다고 하면 될 것을 계속 갖다 주는 눈치 없는 막내 FD가 미웠다.
남들은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김주성의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체력의 한계가 온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최고의 진행자라는 평가에는 체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진행을 도맡아도 그의 체력은 끝이 없었다.
물론 그때는 공연 중간중간 끼어들어 맛깔스러운 입담을 선보이며 무대를 이끌어 나갔다.
지금처럼 상대와 마주 선 상태에서 스탠딩 토크를 진행해 본 적은 이제껏 없었다.
쉴 새 없이 마이크를 잡더라도 잠시 앉아서 쉴 틈은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까를로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지 벌써 네 시간이 넘어선 상태였다.
김주성은 까를로스에게 의문이 하나 있었다.
그 많은 생수를 들이켜면서 화장실 한번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세계 3대 테너의 몸속은 어떠한 신비가 담겨 있을까 궁금해지는 김주성이였다.
그때 도훈이 인터뷰 중간 끼어들었다.
“다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조금 쉬었다가 와도 돼요, 까를로스?”
그 말에 김주성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기나긴 인터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까를로스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영혼의 형제여, 힘들면 자고 와도 괜찮아.”
김주성은 그 말을 의심했다.
갑자기 내일 자 신문의 헤드라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국 최고의 MC 무대에서 사망, 원인은 과로!
김주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그 기사 속 MC는 자신이 될 터였다.
그때였다.
도훈이 까를로스의 팔을 잡아끌었다.
“까를로스도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면 공연에 지장 있잖아.”
까를로스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미스터 리의 말대로 쉬어야 하겠군요. 오랜만의 인터뷰라서 그런지 긴장했나 봐요. 손바닥이 땀이 흥건합니다.”
“그럼 마무리해 주시죠.”
도훈은 김주성을 바라봤다.
도훈의 눈빛에 김주성을 재빨리 마이크를 들었다.
“까를로스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국내 공연 일정은 아래의 자막을 참고하십시오.”
김주성은 아래쪽을 가리킨다.
그 모습에 까를로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김주성은 현재 상황이 조금 황당했다.
가장 황당한 것은 마지막에 한 말이었다.
긴장해서 손에 땀이 흥건하다니!
긴장한 사람이 네 시간 동안 입을 턴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까를로스가 노래를 안 하고 무대 진행을 맡게 된다면 아마도…….
김주성은 그 뒤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김주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노래할 때의 도훈은 조금 달라 보였다.
탑스타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가수였다.
그런데 지금 뒷모습을 보면 그저 평범한 매니저였다.
뭐, 평범하다고 하는 것은 연예인의 기준에서였다.
훤칠한 외모와 황금 비율은 일반인 중에서는 눈에 띄겠지만, 연예인 중에서는 평범했다.
도훈은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바라봤다.
모든 알파벳이 정상적으로 인벤토리 안으로 회수되어 있었다.
마치 폭풍이 쓸고 지나간 것처럼 도훈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 모든 것을 태운 느낌이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재가 아니라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었다.
수첩을 본 도훈은 환하게 웃으며 까를로스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들이 내려오자 연습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짝.
장내를 울리는 박수 소리에 까를로스가 작게 웃었다.
“이렇게 내 토크에 열광하는 나라는 첨이네요. 역시 한국입니다.”
엄지를 번쩍 드는 까를로스를 본 도훈은 영혼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하하.”
소리 내어 웃던 도훈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습생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처음에는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받는 것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것도 잠시, 두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자세는 바뀌었다.
오징어처럼 몸이 흐물흐물해지면서 자세가 흐트러졌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콘서트에서 세 시간 넘게 열광하는 관객은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까를로스는 그가 본 1분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설명을 이어 갔다.
한마디로 디테일에서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도훈을 만나러 가는 날 아침에 먹었던 시리얼의 양과 우유의 양 그리고 식사한 시간까지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까를로스였다.
거기에 식사를 하면서 봤던 TV 프로그램까지 덧붙였다.
결국, 네 시간이 넘어가자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연습생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뭐가 감동적이라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도훈은 까를로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덕분에 마지막에 숨겨 놓았던 덫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니까.
문동훈이 과연 이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을까?
편집한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해 있었다.
세계적인 테너를 불러 놓고 통편집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느덧 도훈은 우시원과 서찬휘가 있는 곳까지 왔다.
우시원이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마지막 날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20호실에서의 마지막 밤이잖아요. 어떻게 딱 맞춰서 선곡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네요.”
“선곡이라…… 시월의 마지막 밤 말하는 거야?”
“네, 아쉬우니까 오늘은 조촐하게 파티라도 해요.”
우시원이 말을 마치자 서찬휘도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래요. 재가 수영이 누나한테 부탁해서 과자라도 준비할게요.”
“그, 그래.”
도훈은 살짝 황당했다.
지금 자신이 과자를 먹으면서 마지막 밤을 보낼 나이인가?
그때였다.
뒤쪽에 있던 주현빈이 눈을 크게 떴다.
녀석을 못 볼 것 봤다는 표정으로 검지로 도훈을 가리켰다.
도훈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주현빈이 공포에 물든 눈빛으로 자신을 볼 리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도훈의 어깨를 톡톡 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까를로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도 끼면 안 될까? 아직 할 얘기도 많이 남았는데…….”
“오, 좋아요. 저도 아직 할 얘기가 좀 남았거든요. 사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잖아요. 저도 할 얘기가 산더미예요.”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찬휘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일정도 바쁘실 텐데…….”
“아니야, 소울 메이트와 함께라면 일정 따위가 대수인가?”
까를로스의 말에 서찬휘의 안색은 점점 파랗게 변해 갔다.
* * *
일주일 후.
도훈은 집에 편안히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자세는 편하게 있었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뜻하지 않는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도훈의 집은 졸지에 유레카의 회의실이 되어 버렸다.
영화 ‘초원의 집’ 마무리로 바쁜 이지유와 정여진을 제외한 모두가 오늘 한 번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친 스타플레이어의 4회가 방영되는 날이었다.
스타플레이어의 타이틀이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내려오자 강영웅이 팔짱을 끼고 눈을 부라렸다.
“지금부터 절대 스포하지 마. 내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알지?”
그의 호통에 황수영과 한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수영과 한민국은 지금 방영될 4회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러니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김이 빠질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생수 한 병을 벌컥 들이켜더니 시원하게 탄성을 질렀다.
“역시, 물맛은 한국이 최고라니까.”
“좀, 조용히 좀 합니다.”
강영웅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바라봤다.
강영웅이 바라보는 것은 다름 아닌 까를로스였다.
20호실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 그는 아직도 할 말이 많다며 도훈의 집까지 쫓아왔었다.
까를로스는 자연스럽게 놀러 온 강영웅과 마주치게 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 서로를 경계하다가 지금을 서로를 옆집 아저씨 대하듯 한다는 점이었다.
강영웅의 호통에 까를로스가 빙긋 웃었다.
“나도 결말을 아는데!”
마음에 안 들면 스포하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때 황수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꼭 견원지간 같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는 덤 앤 더머인데요.”
한민국이 받아치자 강영웅이 그것을 들었는지 손가락 관절을 딱딱 풀며 다가왔다.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려 하자 도훈이 급하게 나섰다.
“다들 조용히 하고 스포 걱정은 하지 말죠.”
“오디션은 죄는 맛이 있어야지. 결과를 알면 김빠지잖아.”
강영웅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말하자 도훈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4회 결과가 여기 있잖아요. 그런데 스포가 무슨 소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