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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불붙은 립싱크 논란.
제작진들은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장면이 제법 재미있었기 때문에 재촬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한승범이 고개를 좌우로 크게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되게 립싱크 드립을 치시니까 그렇죠.”
“립싱크가 아니라고요? 지금 이 실장님, 아닌 101번 연습생이 보여 준 무대가요?”
“립싱크 아니에요.”
한승범의 단호한 말에 이승찬이 씩 웃었다.
“우리 한 작곡가처럼 속는 사람도 있어야 방송의 묘미가 살지. 안 그런가요. 피디님들?”
이승찬은 고개를 돌렸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던 이승찬은 정답을 맞힌 학생이 선생님을 바라보듯 제작진을 응시했다.
마치 보상을 바라듯 이승찬의 눈빛.
이승찬의 모습에 제작진들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묘했다.
그들은 마구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물을 털어 내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피디들의 이상한 행동에 이승찬의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제작진의 계획이 들통나자 당황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승찬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이 정도도 알아채지 못하면 제가 오디션계의 고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말을 마친 이승찬은 이 정보면 분량을 충분히 뽑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제작진의 몰카를 알아챈 심사위원 이승찬.
아마도 자막은 이렇게 나갈 것이었다.
그것도 잠시 이승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쯤 되면 허탈하게 웃으며 걸어 들어와야 할 피디가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승범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거 립싱크 아니에요.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음색이 살짝 달라요. 우리는 이런 걸 빙의라고 하죠. 뭐, 다른 말로 완벽한 모창.”
“네? 이게 모창이라고요?”
“완벽하다고 한 제 말에는 춤까지 포함해서예요.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점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뭔데요?”
“이런 완벽한 무대를 만들려면 적어도 몇 개월의 시간은 필요해요.”
“하긴 제가 이런 무대를 만들려고 해도 적어도 이 주는 걸릴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101번 연습생은 아무 생각 없이 곡을 받았고 그걸 완벽하게 소화했어요.”
“흠.”
“그 얘기는 제작진이 숨겨 놓은 조커이거나…….”
한승범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천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거죠.”
한승범의 말에 실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승범이 누구던가?
자타공인 히트곡 제조기이자 실력자들만 모였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그룹 인페르노의 수장이었다.
그런 한승범의 칭찬은 연습생들을 술렁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승범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저는 모창 하나만으로도 A 클래스를 드리겠습니다.”
한승범이 마이크를 내려놓자 한리나가 말을 이어받았다.
“립싱크 논란에 관계없이 저도 A 클래스를 드리겠습니다. 일단 춤 하나만으로 봐도 당장 데뷔시켜도 될 실력이라고 봐요.”
말을 마친 한리나는 슬쩍 이승찬을 바라봤다.
이승찬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겨울 축구장의 잔디처럼 보일 듯 말 듯 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승찬이 말을 이었다.
“저는 클래스 평가는 내리지 않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앞의 두 분과 같은 A 클래스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101번 연습생은 오늘이 마지막 무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101번 연습생을 A 클래스에 넣게 된다면 나중에 혼란이 생기겠죠.”
이승찬은 마이크와 함께 염화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미소의 반은 사실이었다.
도훈에 대한 멘트는 이승찬의 큐시트에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립싱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도훈이 흔들어 놓고 간 무대에는 새로운 연습생이 올라왔다.
이번에 올라온 연습생은 문동훈이 밀고 있던 기획사인 SW의 참가자였다.
SW의 연습생은 무대로 올라가서 마이크를 들었다.
“SW의 연습생 이지환이라고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보세요.”
이승찬이 사람 좋은 얼굴로 플레이어를 가리켰다.
이지환은 조용히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었다.
정확히는 넣으려고 하다가 못 넣었다.
떨리는 손 때문에 시디를 떨어뜨린 것.
자신감이 가득 찬 것으로 보였던, 연습생은 사실 떨고 있었다.
단순한 부담감은 아니었다.
첫 번째 무대가 너무 강렬했다.
그 이상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탈락이라는 압박감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시디를 다시 잡았다.
탁탁.
떨리는 손 덕분에 시디가 플레이어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였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누군가 외쳤다.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연습생 한마음은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한마음은 그의 입 모양을 바라봤다.
그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잘할 수 있어, 나보다도…….’
그렇게 외친 이는 다름 아닌 방금 무대를 끝내고 들어간 도훈이었다.
순간 한마음의 떨림이 멈췄다.
이유는 몰랐지만, 마법처럼 떨림이 멈췄다.
한마음은 시디를 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연습한 안무와 가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눈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광경.
이상한 것은 뒤쪽에서 누군가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연습생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사실 이것은 도훈의 능력 때문이었다.
도훈은 조용히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보고 있었다.
도훈이 보고 있는 것은 ‘Y’라는 문자였다.
도훈이 매직아이를 보는 것처럼 초점을 흩트리자 글자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sYnc’
즉, 동기화라는 이야기였다.
도훈은 마이클 제이슨의 블랙 화이트에 동기화되었다.
덕분에 완벽하게 원곡을 재해석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재해석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완벽한 동기화였다.
지금 올라간 이지훈 연습생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도훈이 남기고 간 흔적 때문이었다.
그들은 도훈의 열정에 동기화된 것.
물론 도훈에게 호감을 지닌 연습생에게 한해서였다.
이것은 숨겨진, 설정 보기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기능이었다.
기능이라고 하기보다는 매니저의 비밀 수첩의 버그에 가까웠다.
도훈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습생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연습생의 무대를 바라보던 도훈은 혼잣말을 뱉었다.
“꿈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는 것이 보기 좋네.”
그 말에 옆에 있던 서찬휘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누구보다 자신을 불사르는 건 실장 형이거든요. 이건 화염방사기를 가지고 난사하는 느낌이에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우시원이 코알라 같은 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대화에는 상관없이 무대는 계속 이어졌다.
* * *
오전 촬영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심사위원과 제작진들이 모였다.
상석에는 문동훈이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었고 나머지 제작진들은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중 단연 화제는 도훈의 무대였다.
“이건 좀 안타깝네요. 1등인데 1등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떠난다니요.”
한리나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사실 친구인 이지유로부터 도훈에 대해서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당황하는 점은 한 가지였다.
저 정도 실력이 있다면, 진작 데뷔를 하지 왜 매니저를 하고 있냐는 점이었다.
그때 이승찬은 문동훈을 바라보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문 총괄님, 혹시 아까 그 무대 진짜 립싱크 아니었어요?”
“…….”
문동훈은 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도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
도훈과 유레카의 몰락을 바랐는데 이건 아예 판을 깔아 준 꼴이 되었다.
문동훈은 도훈이 기간을 모두 채우고 퇴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실력으로 그 기간을 버텼다.
문동훈은 자신에게 정보를 준 이도준이 미웠다.
이도준이 건넨 모든 정보는 사실이 아니었다.
체계적인 음악 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고 매니저 일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도준이 건넨 정보 덕분에 자신은 아주 커다란 엿을 한 다발 선사 받았다.
아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동훈은 입술이 근질거렸다.
도훈이 재벌 3세라는 것은 터뜨리면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설 것이었다.
명품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연습생이라?
물론 성공하고 나서 밝혀지면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디션 무대에서는 마이너스 요소였다.
오디션이란 흙수저들이 발버둥 치며 정상으로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클리셰였다.
문동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승찬을 바라봤다.
“재벌 3세가 저렇게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하죠?”
“재벌이요? 누가 재벌이란 겁니까?”
“이도훈 실장이요.”
“큭, 립싱크 맞는구나. 립싱크로 속이려고 하시더니 재벌 3세로 깜짝쇼하시려는 거예요? 이 실장이 재벌 3세면 저는 지금 재벌 회장입니다.”
이승찬을 배를 잡고 웃었다.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문동훈은 신분 폭로도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순간 문동훈의 눈이 반짝였다.
곡 선택 1위 보상이 떠오른 것이다.
이것은 보상이면서 벌이 될 수도 있었다.
최소 101번 연습생인 이도훈에게는 그랬다.
뭔가 결심한 문동훈이 맞은편 끝에 앉은 작가를 바라봤다.
“송 작가님!”
“네, 총괄님.”
“지금 대본 수정 좀 하죠.”
“대본 수정이라니요?”
“1등 보상을 받을 연습생이 정해졌으니 대본을 수정해야죠. 이대로 나가면 밋밋해서 어디에다가 써요. 송 작가님 잠시 이리로…….”
문동훈은 한지혜에게 나머지 회의를 맡긴 후, 송 작가를 이끌고 소회의실로 사라졌다.
* * *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무대가 시작되었다.
독설과 칭찬을 반복하던 이승찬의 목소리는 오디션이 끝을 보이자 살짝 힘이 떨어져 있었다.
쳐진 목소리를 살리려고 이승찬은 끝없이 음료를 들이켰다.
카메라는 PPL 제품과 함께 이승찬의 모습을 풀샷으로 잡았다.
이제 모든 무대가 끝나자 갑자기 무대의 막이 내려왔다.
막이 천천히 내려오는 무대를 본 이승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대에 막을 치지?”
“아까 1위 보상이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와 공연이었잖아요. 그 준비를 하는 거 아니에요?”
한리나가 무대를 가리키자 이승찬은 아직도 호기심이 해결 안 된 듯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여기에 온 거야?”
“저야 모르죠.”
“와, 이놈의 오디션은 심사위원한테도 블라인드 스킬을 시전하네.”
“제 생각에는 일단 문 총괄의 작전은 성공인 것 같네요.”
“이게 무슨 성공이야?”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이렇게 궁금하게 만들었는데 시청자들은 어떻겠어요?”
한리나는 활짝 웃으며 무대를 가리켰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한승범도 끼어들었다.
“뭐, 문 총괄이 능력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 무리수를 두는 게 걸리네요.”
“무리수라니요?”
한리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막 내린 무대 쪽에서 갑자기 발성 연습을 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아. 아아 아!
그 소리에 심사위원 셋은 마른침을 삼키고 막 내린 무대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