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연습생 중 어떤 이는 안도의 한숨까지 내쉰다.
“휴, 저거 블랙 화이트 아니야?”
“진짜. 저걸 고른 연습생이…….”
“그래, 저 매니저 형이지.”
“어쩌자고 저 노래를 골랐대?”
“너무 난이도가 높은 곡을 고른 거 아니야?”
“뭐 연습했겠지.”
그 사이에도 인트로의 사이사이에서는 일렉 기타가 포스를 뿜어내며 이 곡의 문을 열려 하고 있었다.
덕분에 당황한 연습생들이 내는 소음은 모두 음악에 멈췄다.
소곤거리던 연습생 중 하나가 고개를 돌려 20호실의 인원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20호실의 연습생들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주현빈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몇 초 후면 인트로가 끝나고 첫 소절에 들어가야 했다.
도훈은 보상 인벤토리에 집중했다.
이것은 본능이었다.
보상 인벤토리를 뚫어지라 바라보면 정답이 나올 것 같은 느낌.
그 본능에 따라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보상 인벤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초점이 흐려진다.
너무 집중했는지 주변이 아웃포커싱 되면서 글자들이 둥둥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도훈은 이런 현상을 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매직아이를 봤을 때였다.
매직아이란 예전에 유행했던 입체화 그림이었다.
초점이 흐트러지게 여러 개의 그림을 섞어 놓은 뒤 눈의 초점을 적절하게 맞추면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때였다.
처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Y’였다.
도훈은 Y에 대한 속성을 확인한 뒤 재빨리 그것을 적용했다.
순간 손바닥에서 황금빛 실선이 흘러나왔다.
그 황금빛 실선은 점점 심장 쪽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심장까지 황금빛으로 물든 도훈.
순간 인트로가 끝나고 첫 소절이 시작되었다.
근래 들어서는 제법 많이 커버되는 곡이긴 했지만, 발매 3주 만에 빌보드 차트 1위를 찍은 명성에 비해서는 무대에서 많이 불리는 곡은 아니었다.
문제는 격동적인 춤과 곡의 테크니컬적인 측면이었다.
원곡의 마이클 제이슨이 쉽게 불렀다고 해서 다른 가수가 따라 할 수 없는 곡이었다.
도훈이 몸이 미세하게 앞으로 쏠렸다.
동시에 스피커를 타고 도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I took my baby……(나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쉴 새 없이 도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순간 이승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이 느낌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이것이 이승찬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었다.
어딜 봐도 완벽한 무대였다.
마치 마이클 제이슨이 빙의한 듯한 목소리와 퍼포먼스.
이걸 흠잡으라고 누가 시킨다면 그 인간을 엎어치기 한판으로 날려 버릴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퍼포먼스의 질을 떠나 자꾸 파고드는 감정이었다.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무대를 바라보던 이승찬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난데없는 상황에 한리나가 눈을 흘기며 눈치를 줬다.
하지만 정답을 찾은 이승찬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낸 결론은 바로 립싱크였다.
립싱크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완벽한 공연을 펼칠 수 없었다.
블랙 화이트가 발표 후 얼마나 많은 립싱크 무대가 난무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무대를 왜 립싱크로 진행할까 하는 의문이 함께 따라와야 했다.
이승찬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승찬은 힐끔 뒤쪽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제작진들을 쏘아봤다.
하지만 속단하기는 아직 일렀다.
일단 이것이 립싱크라는 완벽한 확신이 있어야 했다.
이승찬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안무가 아닌 목소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듣던 이승찬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흔들었다.
눈앞에 마이클 제이슨이 출연했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가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톤이나 테크니컬적인 측면이 완벽하게 원곡과 똑같았다.
이승찬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은 사건의 범인을 밝혀낸 탐정과도 같았다.
그 옆에 있던 한리나는 지금 넋이 빠져 있었다.
넬라 판타지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한리나가 보는 것은 바로 춤이었다.
격렬한 춤 덕분에 그리 길지 않은 도훈의 머릿결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바람이 불어와 도훈을 쓸고 지나가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데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한리나 역시 이것은 라이브로 불가능한 무대라 생각했다.
묘한 것은 가끔 도훈의 격렬한 움직임 때문인지 바람 소리가 마이크에 섞여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한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바람 소리는 이미 녹음된 음원일 가능성이 컸다.
추리를 이어 나가던 한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노래야 립싱크로 커버한다지만, 저 춤은 어떻게…….
한리나는 힐끔 옆을 바라봤다.
작곡가인 한승범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승범의 표정을 확인한 한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승범이 너무 무표정하게 무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리나는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음악은 누가 보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예술 분야라 생각했다.
피카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작품을 보여 주면 과연 뭐라 할까?
물론 피카소의 그림을 낙서라 말하는 이들을 비난하자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였다.
한승범이 보는 관점은 자신이나 이승찬과는 다를 터였다.
어찌 보면 마이클 제이슨을 완벽하게 복사해 놓은 무대.
누군가 본다면 이미테이션이라 욕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 무대를 누비고 있는 것이 바로 신인이라는 점이었다.
매니저로도 신인.
아이돌로도 신인.
그런데 그가 펼치는 퍼포먼스는 프로였다.
만약 몇 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소화할 수 없는 무대.
한리나가 보기에는 마이클 제이슨의 목소리나 춤뿐이 아니라 그의 감성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낸 무대였다.
그때였다.
드디어 음악이 끝났다.
탁.
순간 도훈의 동작도 멈췄다.
도훈이 멈추자 무대 위에는 아련한 여운이 남았다.
재미있는 것은 실재 공연 시간은 불과 3분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체감 시간은 거의 10분이 지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 여운은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대를 압살하던 전사에서 마네킹처럼 서 있는 도훈의 모습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착각은 한리나만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연습생들조차 반응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연습생 중 하나가 손뼉을 쳤다.
짝. 짝.
그 소리는 순식간에 거대한 해일이 된 것처럼 무대를 덮쳤다.
그 순간 도훈을 비추던 모니터 화면이 심사위원석으로 바뀌었다.
심사위원석의 맞은편에 있는 한지혜는 큐 사인을 냈다.
심사 평가를 진행하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에 이승찬이 미소를 머금고 마이크를 들었다.
“하하, 진짜 완벽한 무대였습니다. 이도훈 연습생은 매니저가 아니라 아이돌을 했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재능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된 게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전을 예시하듯 살짝 말끝을 흐리는 이승찬의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멀리 맞은편에 있는 한지혜는 재빨리 손을 흔들어 멘트를 이어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에도 이승찬은 그저 미소만 보였다.
그러고는 이승찬 특유의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제야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뭐, 립싱크만 아니었다면 말이죠.”
순간 제작진들은 입을 벌렸다.
심사위원석을 전담하고 있는 한지혜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건 대본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립싱크가 연상될 정도로 완벽한 모창 혹은 무대였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립싱크라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승찬이 누구던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잇는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이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독설가로 유명한 만렙 심사위원이었다.
한지혜는 이승찬의 말에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주변 카메라들에 오케이 사인을 냈다.
끊지 않고 평소처럼 가도 된다는 신호였다.
이승찬의 말에 연습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립싱크였대.”
“혹시 아까 말한 듀엣이란 게…….”
“맞아, 아까 최고의 아티스트와 듀엣의 기회를 준다고 했잖아.”
“와, 이거 소름 돋네. 춤은 매니저 형이 추고 노래는 마이클 제이슨이 한 거야?”
“어쩐지, 나는 마이클 제이슨하고 어떻게 그렇게 음색까지 똑같은가, 황당했어.”
“그야 음원이 같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데 연습은 언제 한 거래? 이 정도 연습이면 몇 개월 전부터 했을 텐데…….”
“그야, 미리 했겠지. 피디님들이 우리한테 말해 주는 거 봤어?”
“그럼, 심사위원들에게도?”
“봐 봐, 그러니 심사위원들이 저런 표정이지.”
연습생들의 말대로 심사위원석은 모두가 석상이 되었다.
다만 립싱크라 말한 이승찬만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승찬은 입꼬리가 귀 근처까지 도달했을 때야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완벽한 립싱크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우릴 속이고 이런 무대를 준비했나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죠.”
“…….”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말없이 이승찬을 바라봤다.
“이건 심사위원들을 속이기 위한 몰래카메라가 분명합니다. 아마 몇 개월 동안 준비했겠죠. 하지만 제 눈은 못 속입니다. 하지만 제작진들의 노고에는 감사드려야겠죠.”
이승찬은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손뼉을 쳤다.
짝짝.
그 소리에 한리나도 손뼉을 쳤다.
한리나가 생각해도 이것은 립싱크 무대가 맞았다.
립싱크 무대라 할지라도 완벽한 춤에 그녀는 백 점 만점에 백 점을 주고 싶었다.
난데없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에 한지혜는 영혼이 가출한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건 예상치도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도훈의 무대를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한계를 넘은 대단함이 이렇게 엉뚱함의 대잔치가 될 줄은 몰랐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승찬의 반응을 나중에 다시 찍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독설가로 유명한 이승찬이 립싱크라 오해할 만한 무대라니!
대단한 무대가 맞긴 했지만, 이승찬의 캐릭터성이 문제였다.
갑자기 스며드는 허당의 기운 때문에 캐릭터성이 무너진다면 아직 많이 남은 기간이 문제였다.
그때 달려온 고운미가 이승찬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이승찬은 그 신호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던 사냥꾼의 당황한 모습으로 생각했다.
이승찬을 따라 손뼉을 치던 한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옆쪽에서 느껴지는 시선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는 한승범이 혀를 차고 있었다.
방송 중에는 처음 보인 표정이었다.
한리나는 재빨리 한승범에게 물었다.
“지금 왜 그렇게 보시는 거예요?”
“아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해도 정도가 있지, 자꾸 헛소리하니까 그러죠.”
“뭐가 헛소리인데요?”
이승찬이 황당하다는 듯 한승범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