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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51화 (15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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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방송 사고를 예상하고 카메라는 돌렸던 3번, 4번 카메라 감독은 재빨리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앵글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딴청을 피운다.

    가장 놀란 것은 문동훈이였다.

    “이, 이 실장 지금 무슨 짓을…….”

    “아니, 깜빡이는 점이 이렇게 가까운 데 있는데 왜들 다 복도로 뛰쳐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젊음이란 참 좋은 거죠.”

    “아, 그러고 보니…….”

    문동훈은 그제야 이곳에 숨겨 놨던 곡이 기억났다.

    SW의 연습생들에게 알려 주려고 안에 숨겨 놨었다.

    하지만 지금 남은 SW의 연습생은 무려 다섯 명.

    누구 하나를 이뻐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런 이유로 문동훈은 이곳에 숨겨 놓은 것을 비밀로 했다.

    문동훈은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이야기해 주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장소였다.

    아니, 이건 누군가도 알 수 없었다.

    곡을 나타내는 시디는 자신이 몰래 숨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매니저가 어떻게 이 시디의 존재를 알았단 말인가?

    그때 도훈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요, 총괄님.”

    도훈이 가리킨 곳에는 분명히 가운뎃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촬영 장소의 가운데는 바로 이곳이 맞았다.

    연습생들이 이 층이라고 생각하고 뛰게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대체 어떻게?”

    문동훈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공간 지각 능력이 좀 뛰어난 편이라서요.”

    도훈은 작게 웃으며 문동훈을 바라봤다.

    순간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사용해서 시디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숨겨진 시디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이 장면은 몇십 년 동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명장면이 된다.

    붐마이크 위에 마지막 시디를 숨겨 놓은 문동훈은 연습생들을 놀리듯 자신 있게 점프에서 시디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다른 장비가 문제였다.

    시디를 손에 쥐고 내려오는 순간 문동훈의 가발이 다른 장비에 걸리게 된다.

    그러니 도훈이 기억 못 할 수가 없었다.

    비록 프로그램과 시기는 다르지만, 시디를 찾아오라는 미션이 주어졌을 때 도훈은 결말을 알고 있었다.

    전생의 문동훈이라면 도훈에게 감사하겠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도훈이 작게 미소 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복도 쪽이 울리기 시작했다.

    타다닥.

    그 소리에 도훈이 재빨리 무대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던 도훈이 문동훈을 가리키며 황급히 외쳤다.

    “총괄님, 가발 삐뚤어졌어요.”

    “엇.”

    문동훈이 재빨리 머리를 매만졌다.

    이건 소심한 복수가 아니라 문동훈의 가슴에 못을 박을 만한 행동이었다.

    너무했나 하며 고민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도훈은 재빨리 시디를 가지고 이승찬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탁.

    기계처럼 이승찬의 앞에 멈춘 도훈이 외쳤다.

    “곡, 선정했습니다.”

    순간 스크린에 뜬 자막이 바뀌었다.

    <1등, 101번 연습생>

    빰빠방!

    효과음이 실내를 뒤흔들었다.

    자막과 함께 팡파르가 울리자 심사위원들은 동시에 석상이 되어 버렸다.

    이승찬을 시디를 받아 들고는 한리나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우리 속은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한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인물이 도훈이었다.

    완벽한 매니저인가 싶더니 아이돌로 변신했고 아이돌인가 싶었더니 완벽한 게임의 승자로 등극했다.

    그때 한승범이 한리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데 1등 보상이 뭐예요?”

    “1등 보상이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총괄님이 보상은 저희한테도 알려 주지 않아서요.”

    “헉.”

    한승범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심사위원한테도 비밀로 하는 오디션이 있단 말인가?

    뭐라도 알아야 진행을 할 것이 아닌가?

    여기 큐시트에는 듬성듬성 연습생이 정보가 빠져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도훈 실장은 완벽하게 지워져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한승범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살폈다.

    그는 방송의 습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시즌제 방송을 끌고 나가려면 캐릭터성은 필수였다.

    자신이 여기에서 맡은 것은 바로 음악 천재였다.

    이승찬은 보컬 중심.

    한리나는 댄스 중심.

    자신은 음악성 전체를 보며 평가해야 했다.

    그런데 이 큐시트만 보면 완전히 자신을 바보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한승범은 자신도 모르게 문동훈을 째려봤다.

    전에 임제호 총괄이 있을 때는 이런 적은 없었다.

    대본을 짤 때도 무조건 협의 과정을 거쳤었다.

    이건 완벽한 독재였다.

    슬쩍 이승찬과 한리나를 바라보니 둘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화면에서 1등에 대한 보상이 나왔다.

    <1등 보상 – 세계적인 뮤지션과의 깜짝 듀엣>

    순간 여기저기서 터지는 경악성!

    “와아! 지금 저게 뭐야?”

    “혹시 웨스트 라이트라도 온 거야?”

    “그 친구들은 4인조잖아.”

    “그럼, 대체 누구지?”

    “혹시…….”

    “뭐야, 너는 아는 거야?”

    “아니 그냥 던져 본 거야.”

    연습생들을 사이에서 피어나는 연기.

    속담 중에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냐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불을 때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이라는 연기는 막을 수 없었다.

    연습생들은 뇌내망상을 연신 쏟아 내며 추리를 이어 나갔다.

    이것은 제작진이 의도하는 바였다.

    카메라가 연습생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는다.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구냐는 관심 없다는 듯 자신이 선택한 곡을 확인하고 있다.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촬영장은 오늘따라 꽉 차 보였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마치 주사기 바늘처럼 그들의 감정을 뽑아내기 위해 파고들었다.

    스크린에서는 보상에 대한 자막이 없어지고 대신 이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가 나타났다.

    어찌 보면 본격적인 무대를 알리는 신호였다.

    순간 연습생들의 감정이 하나로 모였다.

    그것은 열망.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욕망보다는 이 무대에 남고 싶은 그들의 감정이 촬영장을 가득 채웠다.

    제작진들은 모니터로 그 감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한지혜도 마찬가지였다.

    문동훈이란 불청객이 나타나긴 했어도 스타플레이어는 자식과도 같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한지혜를 모니터에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를 체크하며 반달눈썹이 되었다.

    오랜만에 웃어 보는 한지혜였다.

    제작진들이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있을 때 이승찬이 마이크를 들었다.

    “1번 연습생부터 무대 위로 올라가 주세요.”

    그 말에 고운미가 재빨리 도훈을 무대 쪽으로 안내했다.

    도훈을 무대로 이끌던 고운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재빨리 도훈의 손을 바라봤다.

    다시 이승찬을 바라보는 고운비.

    당황한 고운미의 모습에 심사위원석이 들썩였다.

    “피디님이 왜 그러지?”

    한리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승찬이 말을 이었다.

    “그러게, 무대 준비가 안 됐나?”

    “문제가 있나 본데요.”

    한승범도 말을 거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고운미에게 집중된 상황.

    그녀는 다급히 심사위원석으로 달려왔다.

    심사위원석 바로 앞에 고운미가 멈추자 심사위원들은 죄라도 지은 듯 눈치를 살폈다.

    그때였다.

    고운미는 이승찬 앞에 있는 시디를 들었다.

    그 시디는 다름 아닌 도훈이 미션 수행을 증명하기 위해서 제출한 시디였다.

    순간 이승찬은 슬쩍 큐시트를 바라봤다.

    [1등 참가자가 시디를 제출하면, 간단한 멘트 후 다시 시디를 돌려줌.]

    이승찬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 시디가 어디 쓰이는 것인지는 이승찬도 알고 있었다.

    이 시디를 연습생에게 돌려줘야 매끄럽게 무대가 진행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도 못 한 상항에 완전히 대사를 까먹은 것이다.

    시디를 든 고운미가 무대 쪽으로 달려가자 이승찬은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거 처음부터 꼬이네.”

    “힘내세요. 심사위원계에서는 전문가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의기소침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

    한리나가 웃자 이승찬이 손을 저었다.

    “에휴, 도깨비 같은 저 친구 때문에 혼이 쏙 빠졌어.”

    “그건 그래요.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하긴…….”

    이승찬은 말끝을 흐리며 무대를 바라봤다.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말이다.

    그때 한리나가 이승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마이크 켜진 거 아시죠.”

    “헉.”

    이승찬은 다시 헛숨을 들이켰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한데 끌어모은 도훈은 무대 위로 올랐다.

    무대 위에 오른 도훈이 오르자 고운미는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1번 마이크 온.”

    고운미가 신호를 보내자 뒤쪽의 엔지니어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고운미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도훈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레카의 매니저, 아니 연습생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순간 터지는 폭소.

    “하하, 저 형은 아직도 매니저래.”

    “야, 웃을 때가 아니거든. 저 매니저 형이 우리보다 잘하잖아.”

    “아, 왜 갑자기 뼈 때리고 그래?”

    “야, 이긴 뼈 때리는 게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실이다, 인마.”

    웅성대는 연습생들을 바라본 도훈은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적의 가득한 눈으로 도훈을 바라봤지만, 지금은 동네 형을 보는 듯한 시선이다.

    물론 그 시선 속에는 동경이 섞여 있었다.

    편안함 속의 동경.

    그것이 모든 연습생이 도훈을 좋아하게 된 배경이었다.

    도훈은 슬쩍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에 있는 능력을 사용할 때였다.

    이제까지 획득한 영구 스킬은 두 가지였다.

    늘 지금처럼.

    ONE FOR ALL(원포올).

    그중 ‘늘 지금처럼’은 주현빈에게 썼고 원포올은 솔로 무대에서는 어울리지 않았다.

    도훈은 슬쩍 인벤토리를 바라봤다.

    [보상 인벤토리1: M, C, A, Y]

    인벤토리 속 알파벳을 본 도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M’은 엠씨의 진행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C, A, Y에 대한 능력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번 까를로스를 만났던 호텔 파티의 무대에서처럼 모든 능력을 쓸까도 고민해 봤다.

    하지만 지금 모든 걸 보여 주면 안 된다!

    이것이 결론이었다.

    능력은 어찌 보면 버프 혹은 도핑과도 같았다.

    피자 위에 올려 맛을 돋워 주는 토핑이 아닌 전혀 다른 그릇으로 사람을 만들어 버리는 도핑.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는 것이 도훈의 생각이었다.

    지금 써야 할 것은 도핑도 토핑도 아닌 버프였다.

    도훈은 C, A, Y 중에 무엇을 고를까를 생각했다.

    그때였다.

    이승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101번 연습생은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어 주시죠.”

    말을 마친 이승찬은 힐끔 큐시트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대사는 맞았다.

    도훈도 미리 대본을 숙지하고 있었다.

    조용히 뒤쪽을 본 도훈은 성큼성큼 걸어가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스르륵.

    플레이어는 개구리가 파리를 날름 잡아먹듯 시디를 삼켰다.

    그러고는 소화를 시키는 듯 소리를 냈다.

    쓰윽.

    곡을 찾는 소리였다.

    목적지를 정하자 스피커에서는 전주가 흘러나왔다.

    따라라! 딴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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