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50화 (150/250)

(150)

눈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었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도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위쪽 침대에서는 주현빈이 아직도 웅얼거리며 가사를 외우고 있다.

누가 봐도 그는 노력파가 맞았다.

도훈은 조용히 매니저의 비밀 수첩의 골드 룰렛을 활성화했다.

허공에 커다란 룰렛이 뜨자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황금색 룰렛이 자태를 뽐내며 빙글빙글 돈다.

마치 뽑기 게임을 하는 이 느낌은 뭘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낚싯대를 던져두고 월척이 걸리기를 바라는 강태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따라 룰렛이 오래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얼마나 지났을까?

룰렛이 멈추고 매니저의 비밀 수첩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스킬 ‘늘 지금처럼’을 획득하셨습니다. ‘늘 지금처럼’을 활성화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유효기간은 일주일입니다. 대상은 한 명에 한정됩니다.]

도훈은 멍하니 설명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침대의 위층에서 콜록대는 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웅얼거리던 목소리가 멈췄다.

아무래도 목에 이상이 온 것 같았다.

지금 얻은 ‘늘 지금처럼’은 주현빈에게 딱 맞은 스킬이었다.

문제는 바로 유효기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비공개 서바이벌 무대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지 도훈은 제외한 나머지 연습생들은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이승찬과 한리나 그리고 작곡가인 한승범이 심사위원석에 앉는다.

그리고 멘토 역할을 맡았던 황제우와 정시건 그리고 래퍼 토마호크 사이드로 빠지게 된다.

비공개 오디션이긴 해도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방송용 분량이라고 보면 된다.

편집을 하지만 라이브에 가깝게 파다파닥 뛰어노는 편집 스타일로 가야 했다.

수많은 독설이 유행어가 될 것이고.

심사위원의 표정은 짤이 되어 온라인을 무한히 항해할 것이 분명하다.

20호실에 모인 연습생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특히 우시원은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우시원,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해? 누가 보면 어디 아픈 줄 알겠다. 카메라가 없으면 내가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어.”

도훈의 일침에 서찬휘와 주현빈이 킥킥댄다.

우시원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실장 형은 제 사정 아시잖아요.”

“그래 알지, 슈퍼맨은 안경 벗으면 힘을 쓰는데 너는 안경을 써야 힘을 쓰잖아. 그냥 오늘은 안경 써.”

“아니, 지금 연습생 중 안경 쓴 친구들이 어디 있어요.”

“광고 봐 봐, 일부러 안경 쓰고 오는 친구들도 있잖아. 지난번에 한리나 씨도 안경 쓰고 왔잖아. 그러니까 편하게 행동해. 노래가 중요하지 그깟…….”

도훈은 말을 멈췄다.

그깟 외모라고 하려다가 말을 끊은 것이다.

보이 그룹에서 외모를 뺀다면 솔직히 발라드 가수가 보컬 빼고 다 잘한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정도로 외모는 그들에게 무기였다.

도훈은 씩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너는 안경 쓴 게 너 매력적이야.”

“헉.”

우시원이 체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아 아니에요. 갑자기 그렇게 훅 치고 들어오시니까 그렇죠.”

“지난번에 신서희 선생님도 나랑 똑같은 말 했잖아.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잖아. 녀석, 긴장했구나.”

도훈은 우시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때 서찬휘가 게걸음으로 걸어왔다.

“실장 형.”

“그냥, 101번 연습생이라고 해 줄래?”

“네, 101번 연습생 형.”

“야, 하란다고 진짜 하냐?”

도훈이 헤드록을 걸 기세로 달려들자 서찬휘는 미꾸라지처럼 피했다.

도훈은 장난을 멈추고 진지하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

“이 액세서리 튀나요?”

서찬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눈에 띄지도 않을 만한 귀고리 하나가 왼쪽 귀에 안착해 있었다.

“그거 14K야?”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잘 어울리나 봐 달라고 했더니 왜 사적인 건 물어보고.”

“너 솔직히 말해, 24K지?”

“…….”

“이 황금만능주의에 찌든 연습생 같으니라고. 어울린다, 어울려. 이대로 나가면 금메달은 따놓은 거랑 다름없어.”

활짝 웃는 서찬휘와 우시원.

옆에 있던 주현빈은 부러운 눈빛으로 둘을 바라봤다.

주현빈의 눈에는 도훈이 우시원과 서찬휘의 친형처럼 보였다.

친형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같은 숙소에 있다면?

뭐, 싸우기도 싸우겠지만, 의지가 될 것은 확실했다.

주현빈이 멍하니 둘을 보고 있을 때였다.

주현빈의 어깨에 기다란 팔이 슬쩍 올라왔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서 도훈이 피식 웃고 있었다.

“시, 실장님.”

아직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는 주현빈이었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 인마. 아, 인마는 방송 나가면 현빈이 팬한테 까이려나?”

“괜찮아요, 형.”

“그래, 어깨 좀 펴고! 참, 목은 좀 어때?”

“제 목이요?”

“상태 안 좋은 거 다 알아.”

“어젯밤에 안 좋았는데 아침에 되니까 견딜 만해요.”

“흠, 이걸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도훈은 턱을 괴고 주현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도훈의 태도에 주현빈은 화들짝 놀라 물었다.

“혹시 점도 보세요?”

“앗, 무슨 점은 점이야. 내가 보컬 쪽에 일가견이 있잖아.”

도훈의 말에 주현빈이 눈을 반짝였다.

“네, 그건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죠.”

주현빈은 도훈이 중심에 선 중창 테스트를 떠올렸다.

진지한 주현빈을 본 도훈이 작게 속삭였다.

“그럼, 잘됐다. 내가 성대를 보호할 수 있는 비법 하나 가르쳐 줄 테니 할 수 있겠어?”

“지금요?”

“뭐, 목 푼다고 생각하고 따라 해 봐. 할 수 있겠어?”

“하, 할게요. 형.”

주현빈은 마치 영험한 불상을 보듯 도훈을 간절히 바라봤다.

도훈은 조용히 운은 뗐다.

“도…….”

별건 없었다.

음계를 하나씩 높여 가며 천천히 목을 푸는 평범한 방법.

하지만, 여기에 플러스알파가 있었다.

“도.”

녀석이 따라 하자 도훈이 주현빈의 목을 바로잡아 주었다.

“조금 목을 조금 더 세워! 몸통이 악기라고 생각해. 목에만 의지하지 말고.”

말을 그럴듯하게 했지만, 뭐 판에 박힌 말이었다.

메인은 말이 아닌 행동.

주현빈의 목덜미에 손을 댄 도훈은 재빨리 스킬을 썼다.

[스킬 ‘늘 지금처럼’을 사용하셨습니다. 대상의 컨디션이 일주일 동안 유지됩니다. 그 어떤 역경도 대상의 컨디션이 저하되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도훈은 피식 웃었다.

스킬이 먹힌 것이다.

알파벳 스킬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두 회수된다.

거기에 그 일정 시간조차 불확실했다.

하지만 이번 스킬은 일주일이란 확실한 시간이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음을 높이는 주현빈.

“……파시도레미파솔라!”

컨디션을 조절해 주려고 했더니 한계까지 고음을 뻗었다.

주현빈은 자신의 고음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주현빈은 신앙심 가득한 눈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시, 실장님, 괜찮아요. 이 정도 고음에서는 목이 갈라졌거든요. 참, 형이라고 하라고 하셨죠. 저 오늘부터 형을 믿을래요.”

그 모습에 도훈은 손을 휘휘 저었다.

“괜히 호들갑 떨지 말고 오늘 잘해 보자고.”

도훈이 파이팅 포즈를 취하자 주현빈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졸지에 데칼코마니 같은 형태가 되어 버린 둘.

그때였다.

문밖에서 고운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메이크업까지 해야 하니 빨리 모여 주세요.”

“예 썰!”

서찬휘가 힘차게 외쳤다.

*    *    *

모두는 다시 임시 무대에 모였다.

오늘따라 조명이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심사위원석의 구석구석을 비춰야 하니 조명이 추가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밝아진 실내 분위기에 연습생들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심사위원석을 보고는 가볍게 인사했다.

가장 오른쪽에는 이승찬이 앉아 있었고 순서대로 한리나와 작곡가 한승범이 앉아 있었다.

뒤쪽의 메인 카메라에는 문동훈 총괄이 대본을 말아 쥐고 무대를 체크하고 있었다.

무대 뒤쪽에서는 오늘의 미션이 흘러나왔다.

―가장의 매력을 뽐내 보세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노래를 뽑아 주세요. 곡 선정은 선착순입니다. 가장 먼저 곡을 들고 오는 연습생에게는 상상도 못 할 혜택이 주어집니다. 기대하세요.

자막이 스크린에서 깜빡거리다가 없어지고 촬영장의 지도가 나타났다.

스크린에 뜬 촬영장의 지도 사이에는 붉은색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때 심사위원 이승찬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 점의 개수는 정확히 88개입니다. 자 지금부터 기회를 찾아오세요.”

88개는 지금까지 남은 연습생의 숫자였다.

순간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삑!

연습생들은 마치 운동회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도훈을 제외한 유레카의 멤버들도 전력 질주로 곡이 숨어 있는 복도를 향해 달려 나갔다.

다만 도훈만은 여유 있게 걸어 나갔다.

도훈의 출연 계약은 여기까지였다.

오늘 오디션의 결과와 관계없이 서바이벌 무대에서는 하차해야 했다.

힘없이 걷는 도훈을 본 한리나가 외쳤다.

“이 실장님 힘내요.”

“아, 고맙습니다.”

도훈은 씩 웃으며 한리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는 도훈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중 한리나는 도훈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도훈은 아이돌보다도 아이돌답다고 할 수 있는 매니저였다.

일례로 도훈이 맡은 팀은 항상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

문제는 문동훈 총괄의 지시로 모든 분량이 삭제되었다는 점이었다.

메인 카메라 쪽에 있던 문동훈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의기소침해 있는 도훈의 모습을 보니 묘하게 희열이 느껴졌다.

천천히 걸어가던 도훈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도훈이 향한 곳은 하필이면 문동훈 쪽이었다.

문동훈은 내심 찔렸다.

자신이 유레카에 한 일을 생각하면 여기서 한 대 맞는다고 해도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지금 도훈이 걸어오는 모습에서는 묘한 기세까지 느껴졌다.

마치 UFC 선수가 음악에 맞춰 옥타곤 위에 등장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문동훈에게 걸어가는 도훈을 본 한리나는 재빨리 마이크를 잡았다.

“이 실장님 안 돼욧!”

얼마나 흥분했는지 마지막 발음은 삑사리까지 났다.

거기에 마이크로 전해진 그녀의 목소리는 잡음까지 만들어 냈다.

지잉!

갑작스러운 상황에 멀쩡하게 메인 카메라는 잡고 있던 카메라 감독도 움찔하며 몸을 살짝 돌렸다.

그때 도훈이 손을 올렸다.

문동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카메라를 담당하는 감독들은 묘하게 방송 사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잡아야 하는 방향도 까먹은 채 동시에 도훈을 잡았다.

손을 높이 올린 도훈은 힘껏 점프했다.

휙.

마치 덩크슛을 하듯 높이 오른 도훈이 손이 향한 곳은 붐마이크였다.

붐마이크는 꺼져 있는 듯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붐마이크를 쓸고 간 도훈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시디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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