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49화 (1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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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룰렛이라?

도훈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소위 말하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때였다.

도훈의 눈앞에 누군가의 손이 나타났다.

음료수를 하나 들고 있는 손을 본 도훈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황수영이 멋쩍게 웃었다.

“어? 왜 벌써 왔어요?”

“지금 휴게실 못가요.”

“휴게실에 불이라도 났어요?”

“네, 불이라면 불이 난 거죠. 지금 스타플레이어 뒷이야기 스포일러하라고 직원들이 난리예요. 민국 씨는 지금 직원들한테 잡혀 있어요.”

“아.”

“거기에 이 실장님하고 시원 씨 그리고 찬휘 씨는 언제 나오냐고 난리거든요. 민국 씨는 직원 휴게실에서 그거 무마하느라고 난리 났어요. 진짜 입소문이라는 게 상상력을 자극하잖아요.”

입소문이 시작된 것은 얼마 전 회의실에서 틀어 줬던 메이킹 필름의 영상 때문이었다.

회의실에서 메이킹 필름 영상을 본 이들은 입이 근질거린 듯 여기저기에 말을 옮겼다.

그들이 부르는 랩이 스타플레이어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는 것과 물론 유레카 멤버가 부른 환상적인 중창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탄생했다는 말로 나머지 직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황수영은 뒤쪽을 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그냥 놔둬도 될까요?”

“네.”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젓자 황수영이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럴 때 연습해 봐야죠.”

“무슨 연습이요? 실장님.”

“무슨 연습이긴요. 당연히 유명세 연습이죠. 얼마 남지 않았어요.”

도훈은 활짝 웃었다.

이 웃음은 진심이었다.

우시원에 서찬휘 그리고 장선우까지 이제 남은 것은 딱 두 명만 있으면 되었다.

*    *    *

유레카의 별관 연습실.

장선우는 도훈의 안내로 늦은 오후 이곳을 방문했다.

아무도 없는데도 환하게 불이 켜진 연습실 앞에서 장선우는 멈칫했다.

문고리를 잡고 여는 것은 계약서에 서명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장선우는 가끔 새집을 마련해서 가족과 함께 이사하는 꿈을 꾸곤 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된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유레카와 계약을 한 것도 모자라 아버지까지 만나게 되었다.

자신을 생이별하게 만든 것이 유레카의 전신 JK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미워할 수 없었다.

사실 스타플레이어에서 떨어지면 막막했던 장선우였다.

마지막에 장선우를 스타플레이어에 밀어 넣었던 기획사는 이미 공중분해 되고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계약 해지 순서를 밟고 FA 상태가 된 장선우였다.

하지만 생방송 무대에도 못 올라가고 스타플레이어에서는 얼굴도 내밀지 못한 만년 연습생을 어떤 기획사에서 받아 줄까?

아니 받아 주는 곳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자신이 없었다.

연습생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득바득 데뷔조까지 기어 올라갔지만, 현실은 끝도 없는 기다림뿐이었다.

앨범 표지도 몇 번은 나왔었다.

공중파 데뷔 무대도 몇 번이 취소됐는지 모른다.

물론 음원만 두어 개 나오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팀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현실은 장선우도 알고 있었다.

한 달만 더, 한 달만 더, 하면서 기대하던 것이 지금까지 장선우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이번 스타플레이어 무대가 끝나면 자신의 얼굴이 어느 정도 알려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기대에 불과했다.

총괄 피디가 바뀌면서 흐름은 대형기획사의 연습생 중심으로 넘어갔다.

덕분에 자신을 비롯한 중소기획사의 연습생은 그저 배경 화면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한계를 넘은 랩까지 선보였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혹평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첫 번째 생존 미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바로 유레카의 이도훈 실장이었다.

장선우는 같은 숙소에 있는 도훈을 항상 의지했었다.

도훈의 옆에 있으면 묻혀 있던 아이디어를 굴착기로 파내듯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항상 여유 있는 모습은 그에게 여유를 주었다.

마치 신비로운 힘이 자신을 이끄는 것만 같았다.

장선우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우스워서였다.

그때 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선우, 문 열지 않고 뭐 해?”

“앗, 실장님.”

“너도 시원이처럼 그냥 형이라고 해.”

“아, 실장 형. 지금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문이 무거워서…….”

“무거워도 첫 단추는 네가 끼워야지. 지금부터 너를 지도할 강 피디는 이쪽에서 엄하기로 소문난 친구니까, 각오해. 잘못된 쿠세 같은 게 있으면 전지가위로 나뭇가지를 치듯이 싹둑 잘라 버릴 거니까.”

“…….”

“참, 한 분 더 있어. 신서희 선생님도 엄하기로 따지면 강 피디 못지않아. 아마 네 안무가 부족하면 팔다리에 밧줄을 묶어서라도 자세를 교정해 줄 거야, 꼭두각시 인형처럼 말이지.”

도훈이 씩 웃으며 안쪽을 가리키자 장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바닥의 냉혹한 현실을 가르쳐 주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티스트라는 소리를 듣긴 해도 딱 맞춰진 틀에 들어갈 재료냐 아니냐로 데뷔가 정해지는 게 이쪽이니 말이다.

연습생 생활 3년째인 장선우는 누구보다도 상업적인 기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해 주니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장선우는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빵!

귀청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눈앞에 지렁이 수십 마리가 지나갔다.

잠시 허공에 멈춰 있다가 이내 땅으로 가라앉는 수십 마리의 지렁이.

장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눈앞에서 폭죽이 터진 것이다.

힐끔 옆을 보니 폭죽을 든 서른 초반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폭죽 하나가 더 터졌다.

빵!

그 소리에 장선우는 뒤로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또 한 명이 폭죽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 마이 갓, 이거 내 폭죽만 이 모양이에요. 강 피디, 일부러 내 것만 불량으로 준 거죠?”

둘을 번갈아 본 장선우는 석상이 되어 버렸다.

그때 도훈이 나서 둘을 소개했다.

“이쪽은 앞으로 너를 맡아서 지도할 강시혁 피디 그리고 이쪽은 안무를 지도해주실 신서희 선생님.”

도훈의 소개에 장선우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폴더폰이 접히듯 머리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건네자 신서희가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요, 미스터 장.”

“아니에요, 선생님.”

“아까 밖에서 이 실장이 한 얘기는 모두 거짓말이에요. 내가 무슨 밧줄로 사람을 묶어?”

슬쩍 도훈을 쏘아보던 신서희를 강시혁이 말렸다.

“신 선생님, 우리 이 실장 유머 감각의 한계입니다. 노여움을 푸세요.”

“아니, 강 피디까지 왜 이래요? 이러면 내가 진짜 무서운 사람 되잖아요.”

신서희가 손부채질하자 장선우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번졌다.

장선우도 유레카라는 회사가 전에 몸을 담았던 기획사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회사였다.

이 회사라면 마지막까지 불사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선우의 표정을 본 강시혁이 물었다.

“선우 군, 아니 그냥 편하게 부를게. 표정이 왜 그렇게 비장해.”

“너무 좋아서요. 어떻게든 데뷔조까지 올라가겠습니다.”

“데뷔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주간평가, 월말 평가 같은 거 통해서 데뷔조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데뷔할 친구만 뽑아.”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이 실장한테 못 들었구나.”

“저는 오디션도…….”

“영상은 내가 확인했어. 선우는 이 실장도 찍었지만, 나도 찍었어. 그리고 우리는 딱 데뷔할 친구만 뽑아서 진행할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해 둬. 일단 시원이하고 찬휘는 타이틀 안무는 완벽하거든.”

“…….”

“너는 그 친구들 오기 전까지 신 선생님께 기초부터 확실히 배워야 할 거야.”

강시혁은 힐끔 신서희를 바라봤다.

신서희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할게요. 일단 근처에 숙소부터…….”

장선우는 말을 맺지 못했다.

도훈이 재빨리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유레카에는 거주의 자유는 없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실장님.”

“일단, 숙소는 여기에서 딱 오 분 거리야. 시원이하고 찬휘가 있는 숙소 같이 쓰면 돼. 참, 방은 다섯 개니 남는 방은 알아서 쓰고.”

“벌써 숙소를…….”

“계약서에 있잖아. 계약서도 안 보고 막 서명했구나. 앞으로는 잘 읽어 봐.”

말을 마친 도훈은 어깨를 장선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스타플레이어의 촬영에 합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    *    *

그날 저녁. 파주 스타플레이어 촬영 현장.

20호실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주어진 휴일이었다.

밤낮없이 촬영에 임하던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오늘만은 방에 있는 카메라도 완전히 꺼져 있는 상태.

그래서 그런지 방 안에는 쌔근대는 숨소리만이 들렸다.

장선우와 더불어 한 명이 탈락한 상태.

이곳에는 지금 도훈까지 네 명이 있었다.

도훈은 오른쪽을 확인했다.

이 층에는 우시원이 몸을 뒤척이고 있고 아래쪽에는 서찬휘가 입맛을 다시며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었다.

도훈은 불을 켜지 않고 조용히 왼쪽 이층 침대의 아래쪽으로 스며들었다.

잠을 청하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위쪽 침대에서 쉬지 않고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마치 독서실에서 혼잣말하는 것 같은 것으로 봐서 아마도 가사를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도훈은 위쪽에 있던 연습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름은 주현빈.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는 친구였다.

덕분에 연습할 때나 휴식을 취할 때 항상 단체 행동을 하는 친구였다.

목소리나 얼굴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튀지도 않는 연습생이었다.

주현빈이라…….

도훈은 전생의 기억에서 그 이름을 찾아보았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왜 몰랐지.”

놀람에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하지만 다들 잠을 자고 있고 주현빈도 가사를 외우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지 도훈의 말을 듣지는 못했다.

주현빈이 유명해지는 것은 앞으로 십 년도 더 지나서였다.

뭐, 그가 유명해진 것은 간단했다.

바로 그의 보컬 때문이었다.

방송이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탑을 찍은 그는 수많은 커버곡을 남겼다.

그 커버곡들 하나하나는 모두 전설이라 불렸다.

원곡의 감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한 단계 더 도약시켰다고 음악 평론가들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왜 방송에는 나오지 못했을까?

문제는 그의 목 상태였다.

이미 20대 초반에 망가져 있던 성대는 많은 무대를 소화하기에는 무리였다.

도훈은 주현빈은 자신의 팀에 넣어 보았다.

보컬은 우시원이 메인 그리고 댄스는 서찬휘가 담당한다.

이번에 장선우를 영입하면 랩 파트에 대한 준비도 끝났다.

여기에서 보컬 하나 정도가 더 있다면?

도훈의 눈이 캄캄한 숙소 한가운데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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