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차후에는 한예종의 정식 교수가 된다.
그는 한예종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대학에서 대체 불가 자원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그냥 놔둬도 제2의 인생을 꽃피우게 되는 장진수였다.
도훈은 그의 재기를 조금 더 앞당기기로 했을 뿐이다.
그동안에 유레카에서 재능 기부를 해 주면 더 좋고 말이다.
“자네가?”
장진수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놨다.
평상시 같으면 조심스럽게 물었을 테지만, 도훈이 살갑게 나오자 오래전부터 봤던 사이처럼 느껴졌던 것.
“네, 제가 그렇게 도와드렸는데, 토사구팽은 시키지 않으시겠죠?”
“헉.”
장진수는 입을 딱 벌렸다.
그때 정여진이 끼어들었다.
“뭐, 정해진 건 없으니까. 일단 언제부터 시작할지는 상의 좀 해 보자고.”
“흠, 그러니까…….”
장진수는 슬쩍 말을 끊고 도훈을 다시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 같아서 그러는데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나?”
“얼마든지요.”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진수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그때 환자 하나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허, 진짜 매니저 맞아?”
환자의 질문에 도훈이 웃으며 답했다.
“맞는데요.”
“매니저가 왜 이렇게 훤칠해? 누가 보면 연예인이라고 착각하겠네.”
“에이, 말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도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사실 이렇게 웃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한 가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훤칠하다 잘생겼다.
연예인 같다 등의 말들은 전생에는 들어 보지 못한 말이었다.
요즘 들어 거울을 보면 뭔가 바뀐 것 같기도 했다.
도훈이 잠시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방금 말을 걸었던 환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매니저라니까 물어볼 게 하나 있거든.”
“말씀하세요.”
“혹시 스타플레이어라는 프로그램 알아?”
“네, 알다마다요.”
도훈이 씩 웃었다.
도훈이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 안다니까 물어보는 건데, 여기 있는 장 씨 아들이 진짜 출연하는 거야?”
그때였다.
뒤쪽에서 다른 환자가 그의 입을 막았다.
“아니, 이 사람이 왜 그래? 이분이 어떻게 알아. 매니저라는 게 무슨 방송계의 부채도사인 줄 알아?”
“이거 놓고 말해. 장 씨 말이 맞는지 궁금해서 그렇지.”
그들의 대화에 도훈이 손을 휘휘 저었다.
“사실 제가 매니저라고 해도 다른 소속사의 연습생까지 알 수는 없어요. 그런데 장 선생님 아들이 스타플레이어에 출연한 건 맞아요.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아니, 다른 소속사 연습생은 모른다면서 어떻게 아는 기여?”
“룸메이트거든요.”
“룸메이트?”
환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였다.
다른 환자가 도훈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매니저하고 똑같이 생겼네.”
“누구? 헉.”
환자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 중 하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유레카의 매니저잖아. 연습생보다 더 춤을 잘 추는 그 청년.”
“맞아, 바로 그 친구네”
모두가 놀라자 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와, 저 지금 적응 안 되는 거 아시죠? 매니저만 하다가 연예인 대우받으니 쑥스럽네요.”
도훈은 난데없는 유명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손으로 부채질하던 도훈은 장진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장진수를 살피던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장진수의 표정이 조금 심각했기 때문이다.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 * *
잠시 후.
도훈과 장진수는 병원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조그마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장진수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며 이곳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정여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었다.
정여진을 멀리 떼어 놓은 장진수는 조심스럽게 도훈의 안색을 살폈다.
“이도훈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장진수는 다시 말을 높였다.
그 모습에 도훈은 그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네, 말 편히 놓으세요. 정여진 선생님도 저한테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유레카는 좀 어때요?”
“뭐, 탄탄한 회사죠.”
“흠, 부도가 난다든가, 그럴 경우는 없죠?”
“에이,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도 미라클의 계열사이다 보니…….”
“헉, 미라클이요? 그럼 유레카가 혹시…….”
살짝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장진수의 모습에 도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미라클요. 유레카의 원래 이름이 JK엔터테인먼트였어요.”
“그럼 장경자 회장의 그 미라클…….”
“네, 맞아요.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살짝 목소리에 날이 선 장진수의 모습에도 도훈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혹시 미라클의 이세훈 대표님 아시죠?”
“알다마다요. 그때 그렇게 아니라고 얘기했는데도…….”
장진수는 살짝 이를 깨물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세훈 대표님과 이도준 본부장이 매일 유레카가 망하길 빌고 있습니다. 뭐 조금 과장하자면 매일 고사를 지내고 있죠.”
“…….”
“뭔가 조금 이상하죠? 제가 집안에서 대우를 못 받는 형편이라서요. 제가 허울뿐인 재벌 3세라서…….”
“자, 잠시만요, 매니저님이 재벌 3세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도 장경자 회장님의 손자입니다.”
“…….”
아무 말 없이 입을 딱 벌리는 장진수.
그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정여진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들 사이의 대화가 끊어졌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휴게실 시계의 초침 소리뿐.
짤깍. 짤깍.
초침 소리가 서른 번 정도 이어졌을 때였다.
정여진이 물었다.
“이 실장, 진짜야?”
“네, 진짜입니다. 그런데 비밀로 해 주실 거죠, 선생님?”
“그럼, 지난번에 내 체면을 세워 준 것도 이 실장이었어?”
“아, 뭐…….”
도훈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장진수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무조건 돕겠습니다.”
장진수는 자신이 불편하다는 것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도훈이 그를 재빨리 부축했다.
“네, 그러시려면 빨리 건강부터 회복하셔야죠.”
“흠.”
“그런데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됐나요? 혹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나요?”
“그건 계약서상 비밀이고요. 퇴원하시면 제가 만나게 해 드릴게요.”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말 좀 편하게 놓으세요. 제가 선우랑 형 동생 하는 사이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불편해요.”
“그, 그럼 그래도 될까?”
“네, 지금 딱 좋네요.”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네, 그렇게 하세요.”
“유레카는 적어도 연예인들한테 뒤통수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그건 당연하죠, 제가 보장합니다.”
“휴, 다행이네.”
장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 * *
사흘 후, 유레카 7팀 사무실.
중후한 외모의 중년 사내가 중절모를 쓰고 도훈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와 도훈의 앞에는 머그잔이 희미한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서류를 뽑고 있는 한민국만 아니라면 시간이 멈춰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프린터가 토해 내던 소리가 멈추자 한민국은 서류를 들고 재빨리 달려왔다.
도훈은 그 서류를 받아 장진수에게 건넸다.
“선생님, 여기 계약서입니다. 일단 확인해 보시죠.”
“뭐, 이 실장님이 알아서 해 주셨겠죠.”
“에이, 말씀 낮추시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비밀 지키시기로 하셨잖아요.”
도훈이 천장을 가리키며 말하자 장진수가 웃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러면 정체가 탄로 나겠지.”
“그럼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고 천천히 살펴보세요.”
“뭐, 살펴볼 것도 없고 그냥 도장 찍을게. 인주나 좀 줘.”
“전에도 뒤통수 맞으셨잖아요. 이번에는 천천히 살펴보셔야죠.”
“아니야, 지금은 뭐라고 쓰여 있는지도 눈에 잘 안 들어와.”
“그럼, 서류 대신 봐 줄 친구 불러 드릴까요?”
“서류 대신 봐 줄 친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정여진 선배 부르려고?”
“정 선생님은 조금 바빠요. 이번에 마친 영화 관련해서 미팅이 있거든요.”
“하긴, 우리 나이에 그 누님만큼 바쁜 분이 없지.”
정여진에 대한 호칭이 바뀌는 장진수였다.
도훈은 그런 그가 이해되었다.
아마도 그건 세월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관계라는 흔적을 지웠기 때문일 것이다.
장진수는 도훈이 말한 사람에 대해서 감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질 때 7팀의 문이 살짝 열렸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하얀 얼굴에 누가 봐도 고등학생인 남자아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장진수는 도훈과 마주 보고 있는 상태였기에 뒤에서 누가 들어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남자아이도 얼떨떨한지 사무실 내부를 살피는 중이었다.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친 도훈은 그에게 손짓했다.
그 모습에 남자아이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아이는 도훈을 보며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어, 시간 딱 맞춰서 왔네, 장선우!”
도훈이 환하게 웃자 장선우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미리 나와서 버스를 탔는데 막히는 바람에요.”
“에이, 평소처럼 편하게 말해. 갑자기 그렇게 얼어 있으면 어색하잖아.”
“그, 그럴까요? 헤헤, 계약한다고 하니까 괜히 머쓱하네요.”
“그래, 이쪽으로 와.”
장진수는 도훈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장진수는 중절모를 쓴 중년 사내를 힐끔 봤다.
그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년 사내의 눈가가 이상하리만큼 촉촉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잠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그들.
도훈은 한민국을 향해 턱짓했다.
한민국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도훈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막 문을 닫으려던 도훈이 안을 보며 장선우에게 말했다.
“장선우, 계약서 좀 봐 드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훈은 사무실 문을 닫았다.
살짝 문을 닫은 도훈을 한민국과 황수영이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황수영이였다.
그녀는 모깃소리만큼 작게 속삭였다.
“잠시 우린 어디라도 가 있죠.”
“네, 일단 휴게실로 가죠.”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제는 유레카 내부에 익숙해진 황수영이 당당히 앞장섰다.
그때였다.
도훈이 외쳤다.
“잠시만요, 먼저 가서 기다리세요. 나는 사이다 한 캔만 미리 뽑아 주세요.”
말을 마친 도훈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돌발 퀘스트 부전자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이 산정됩니다.]
[보상으로 실버급 룰렛을 한 개 획득하셨습니다.
[보상 인벤토리2: 실버급 룰렛(2)]
연속으로 이어진 메시지.
도훈은 재빨리 실버 룰렛 두 개를 합성했다.
[보상 인벤토리2: 골드급 룰렛(1)]
순식간에 골드 룰렛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