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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43화 (14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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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혜가 웃으며 답하자 도훈은 방문에 적힌 번호를 바라봤다.

    방 번호가 20번이었다.

    그렇다면 다섯 명씩 끊었다는 것이 맞았다.

    “혹시, 이거 번호대로 룸메이트 끊었나요?”

    “앗, 어떻게 알았어요?”

    “그리고 번호는 실력대로고요? 맞죠?”

    “네, 맞아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이건 뭐, 훈련소 다시 들어간 기분이네요.”

    도훈은 기다란 백을 어깨에 걸치고 숙소 문을 열었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간 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 우시원과 서찬휘가 처량 맞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도훈과 마주친 연습생 하나가 도훈에게 달려왔다.

    갑자기 달려온 녀석의 모습에 도훈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도훈의 앞에 선 녀석은 갑자기 손을 올렸다.

    휙!

    어찌나 빠른지 녀석이 손을 올리자 바람에 느껴질 정도였다.

    도훈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 상황에 실내에 울려 퍼지는 함성.

    “충성!”

    순간 모두의 시선이 도훈과 녀석에 모였다.

    도훈은 그제야 녀석의 얼굴을 봤다.

    녀석의 얼굴은 장선우.

    몇 년 후 강시혁 사단에 합류할 녀석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당황했을 텐데, 도훈은 전생에 녀석이 예능에서 활약하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담고 있었다.

    장선우가 활약한 장면을 보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할 상황에서의 유별난 행동으로 웃음을 줬었다.

    불쾌한 웃음이 아닌 유쾌한 웃음을 주며 예능에서도 승승장구한 장선우.

    도훈은 순간 어떻게 받아 줘야 할지 고민했다.

    여기서 당황한다면 장선우의 과장된 행동이 화면에 어떻게 비칠까?

    계산을 끝낸 도훈이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오른쪽 눈썹에 갖다 댔다.

    그러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충성, 그만 쉬어.”

    도훈의 말에 장선우가 복명복창한다.

    “쉬어.”

    말을 마친 장선우는 자세를 풀었다.

    순간 모두가 멍하니 도훈을 바라봤다.

    갑자기 역할극이 펼쳐지자 여기에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몰랐던 것.

    그때 뒤쪽에서 경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호, 진짜 오래전부터 아는 사인 것 같네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한지혜였다.

    한지혜 뒤쪽의 VJ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는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과장된 상황은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도훈이 경례를 받아 주자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 변한 것.

    그러지 않아도 이들 중에는 ‘노땅’의 이미지가 강한 도훈이었다.

    나이로만 보면 연습생들은

    VJ는 이 장면은 반드시 전파를 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웃음이라도 터뜨리게 되면 영상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뭐, 음성 작업을 하면 된다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편집 기준은 날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첫 대면을 카메라에 담은 한지혜와 VJ는 손을 흔들며 그들의 숙소에서 나갔다.

    그들이 숙소에서 나가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졌다.

    “휴.”

    “아, 이제야 숨을 쉬겠네.”

    그들이 굵직한 한숨을 터뜨릴 때 도훈의 앞에는 우시원과 서찬휘가 텔레포트 하듯 나타났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서찬휘였다.

    “실장 형,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어떻게 돼?”

    “실장 형이 여기에 참가한다는 거까지는 이해하는데 왜 여기 오신 거예요?”

    “새로 온 문동훈 총괄이 손에 발이 되도록 빌잖아. 내가 꼭 생활관에서 지내는 모습이 나와야 프로그램이 산다나 뭐라나.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어떻게 해? 아니, 내가 무슨 힘이 있어. 까라면 까야지.”

    도훈은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서찬휘가 말을 이었다.

    “여기 카메라가 꽤 많아요. 목소리도 잡힐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에이, 괜찮아. 다 계약서에 적힌 건데 뭐.”

    도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바라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숙소의 모든 이들은 경악한 듯 입을 크게 벌렷다.

    그중 우시원은 화들짝 놀라 도훈의 옆에 바싹 붙었다.

    “실장 형. 아무리 그래도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 오기 전에 실장 형이 악마의 편집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그건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묘하게 신경 쓰이는 게 있네.”

    “그게 뭔데요?”

    “이 숙소에 배정된 순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시원이 너는 99번이네.”

    “네, 99번 맞아요.”

    “찬휘는 98번이고. 그리고 아까 경례하던 친구…….”

    도훈이 힐끔 고개를 돌리자 장선우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저는 장선우라고 합니다, 실장님. 제가 100번입니다.”

    “그래, 장선우. 꼭 기억해 둘게.”

    도훈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웃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숙소를 정하는 기준이 그냥 랜덤이 아니라 마치 규칙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규칙이라니요?”

    장선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뭐, 별건 아니고……. 꼭 실력순으로 번호를 매긴 것 같단 말이야.”

    “실력순으로라면…….”

    “선우 네가 꼴찌라는 얘기지. 물론 내가 101번이니까. 오늘부로 꼴찌는 면했지만 말이야.”

    “설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선우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을 이었다.

    “도망치는 건 그만, 실력을 분량으로 때우려는 것도 그만, 우리는 지금부터 진검 승부다.”

    “헉.”

    장선우가 터지는 비명을 막았다.

    누구도 이곳에서 이런 말을 해 준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상대는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시원아 하고 찬휘는 왜 그렇게 쳐져 있었던 거야?”

    “아까 황제우 선생님께 혹평을 들었잖아요.”

    서찬휘가 뒷머리를 긁적이자 도훈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혹평이라…….”

    “사실, 아까 저희가 불렀던 넬라 판타지는 부르는 저도 놀랐거든요. 여기서 더는 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한계까지 끌어 올렸는데도 혹평이 쏟아지니 힘들다는 거지?”

    “네, 맞아요. 특히 멘탈이 개복치 같은 우시원은 더 그렇고요.”

    서찬휘는 우시원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우시원이 화들짝 놀라 손을 좌우로 크게 저었다.

    긴 팔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풍선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와, 내가 왜 개복친데!”

    “그럼, 아니냐? 내가 괜찮다고 하니까. 이제 한계가 다가왔다고 하면서 고개 숙인 게 너잖아.”

    “너도 실망한 건 마찬가지잖아.”

    “나는 너한테 전염된 거고. 잘 봐 봐, 다른 친구들도 너한테 전염됐잖아. 안 그래 장선우?”

    서찬휘는 슬쩍 장선우를 바라봤다.

    장선우는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딴짓을 했다.

    둘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장선우가 돌아서자 서찬휘가 씩씩댄다.

    그 소리에 장선우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다른 연습생의 옆에 가더니 랩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난장판이 된 상황에 도훈이 씩 웃으며 외쳤다.

    “다들 동작 그만!”

    “…….”

    갑자기 울려 퍼진 도훈의 목소리에 모두는 표정을 굳혔다.

    도훈은 이곳에 모인 연습생을 쭉 살폈다.

    대충 상황을 보니 아예 이곳에 희생양을 몰아넣은 느낌이 들었다.

    장선우도 그렇고 우시원과 서찬휘도 그렇고.

    뭔가 소형 기획사의 친구들을 한곳에 몰아넣은 분위기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나도 연습생이니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나는 101번 형이야.”

    피식 웃는 도훈의 모습에 연습생들이 넋이 빠진 듯 입을 벌렸다.

    장선우와 서찬휘는 정신을 수습하고 도훈의 옆에 찰싹 붙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서찬휘였다.

    서찬휘는 사람 좋은 얼굴로 도훈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짐 정리해 드릴게요. 101번 형.”

    “아니야, 내가 먼저 찜했어.”

    장선우가 스타트 선에 선 단거리 선수 폼을 잡았다.

    도훈은 재빨리 둘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냥 놔둬, 내 짐은 절대 풀지 마.”

    “그래도 짐을 푸셔야…….”

    서찬휘가 황당하다는 듯 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군대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기다란 백이 놓여 있었다.

    자신을 짐을 흐뭇한 눈으로 보던 도훈이 말을 이었다.

    “저건 카메라를 의식한 장식품이니까 그냥 저기 둬. 내 짐은 한 매니저 하고 황 매니저가 가져올 거야.”

    “매니저님이 어떻게 여기에…….”

    “계약 사항에 있으니까 괜찮아. 참, 그러고 보니 내일이 랩 파트 테스트가 있는 날이지?”

    “네, 맞아요.”

    서찬휘는 오뚝이처럼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일단 이 방에 있는 연습생끼리 뭉쳐 보자.”

    “어떻게요?”

    이번에 질문을 던진 연습생은 장선우였다.

    도훈은 장선우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보컬이 부족한 사람은 누군가한테 배워야지. 솔직히 트레이너 선생님께 배울 수 있겠어?”

    “…….”

    “101명을 모두 레슨한다는 자체부터 무리지.”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    *    *

    파주 스타플레이어의 촬영장.

    그들은 촬영장으로 기숙사 건물과 체육관을 임대해서 쓰고 있다.

    체육관에는 몇 개의 사무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은 새벽 3시가 가까워졌는데도 대낮처럼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거기에 축구장의 소음보다 더 큰 소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이곳은 다름 아닌 스타플레이어의 임시 편집 회의실이었다.

    임제호의 체제 아래에서는 이곳에서 찍은 촬영분을 모두 MBS의 편집실에서 모았었다.

    하지만 문동훈 체제로 바뀌면서 이곳에 조그마한 임시 편집실을 차리게 된 것이다.

    이쪽에서 임시 장비로 가편집을 한 것을 MBS로 보내는 프로세스를 밟고 있었다.

    문제는 오늘 촬영분에 대한 견해가 완벽하게 갈리는 것.

    문동훈을 제외한 모두는 유레카의 활약상을 첫 번째 메인으로 꼽고 있지만, 문동훈은 달랐다.

    “왜, 유레카의 중창이 첫 번째여야 하죠?”

    “시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 하나면 되지 않나요?”

    한지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반박하자 문동훈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을 울린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죠?”

    “영상을 보면 알잖아요. 누가 봐도 다른 팀과 차별화된 퍼포먼스를 펼쳤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따라야 한다고 봐요.”

    “그러니까. 차별화됐다는 게 누구 기준이냐는 거죠? 객관적인 지표를 가져오세요.”

    문동훈은 서류철을 딱딱 쳤다.

    한지혜를 한숨을 몰아쉬며 옆에 있는 고운미를 바라봤다.

    고운미는 테이블 아래로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만하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것은 백 대 일의 싸움이 가까웠다.

    백에 속한 것이 한지혜라면 일은 문동훈이였다.

    문제는 나룻배 백 척과 항공모함 한 척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예능국장과 MBS 대표의 지지를 업은 문동훈은 꺼릴 길 것이 없다는 듯 회의를 진행했다.

    편집 회의가 끝나자 피디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문동훈에게 전권을 맡기고는 쓸쓸하게 편집 회의를 마쳐야 했다.

    회의실을 나온 한지혜가 미간을 한껏 좁히며 말했다.

    “와,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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