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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원은 넬라 판타지라는 곡명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는 황제우가 노래방처럼 편하게 부르라는 의미를 지금에서야 알았다.
노래방에서 상대에게 창피를 주려는 방법 중 가장 좋은 수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음 파트에 몰빵된 선곡을 던져 주는 것이었다.
넬라 판타지는 1980년대 영화인 미션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작곡의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
그 곡을 1990년대 말에 작사가 키아라 페라우가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이게 된다.
그 곡을 팝계의 3대 디바 중 하나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러서 세계적인 명곡 반열에 오르게 된다.
사실 이 곡은 오디션의 단골 곡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풍성한 음역과 노래에 묻어나는 감성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가수의 몫이었다.
하지만 준비도 안 된 이들이 이것을 소화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제로였다.
차라리 우시원 혼자 부르라고 한다면 가능했다.
어찌 보면 솔로로 열창하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다.
영국에서는 휴대폰 판매원이었던 오디션 참가자가 이 곡을 시작으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알리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것은 기회였다.
도훈은 힐끔 우시원을 바라봤다. 동공이 요리조리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긴장한 듯 보인다.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우시원만 괜찮다면 서찬휘와 도훈은 살짝 저음부의 화음만 내며 립싱크 수준으로 이 위기를 무마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시원의 상태를 보니 솔로도 불가능했다.
도훈은 슬쩍 매니저의 비밀 수첩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방금 획득한 스킬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포올’이란 스킬이었다.
마치 만화영화에서나 나오는 이 스킬은 팀원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스킬이 이 시점에서 나왔다는 것은?
하늘의 계시라 생각했다.
도훈은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당황할 때 도훈이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우가 물었다.
“그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사인 주시면 시작하죠.”
도훈은 아무 걱정 없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카메라 하나가 도훈의 해맑은 미소를 클로즈업한다.
도훈의 미소에 맞춰 황제우도 입꼬리를 올렸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였다.
앞서 줬던 A 클래스 예약 티켓 같은 것은 얼마든지 다시 뿌릴 수 있다.
물론 제한이 있으므로 아무에게나 준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음 테스트를 통해 이전에 전해 줬던 연습생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면 되었다.
지금은 유레카의 실장인 이도훈의 억지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 되었다.
그러면서 호감도를 깎아 낸 후 이도훈의 정체에 대해 한 겹, 한 겹 벗겨 내면 게임은 끝이었다.
황제우는 기대감에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멀리 있는 카메라 감독이 손가락을 말아 쥐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그는 도훈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재빨리 외쳤다.
“시작!”
하지만 도훈을 비롯한 유레카 멤버들은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황제우는 피식 웃었다.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웃음이 튀어나온 것이다.
다른 연습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A 클래스 예약 티켓을 손에 넣은 대형 기획사 연습생들의 경우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그들 중 몇은 유레카의 무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예선 그들이 빛났던 것은 완벽한 안무 때문이었다.
이도훈 실장이라는 자의 안무 실력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매니저 중에서는 꽤 출중한 춤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뭐, 거기까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컬이라면 달랐다.
보컬은 반은 타고 나야 했고 반은 철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했다.
물론 타고난 반이 이 세계에서의 승패를 좌우한다.
당시 예선 무대에서는 안무만을 중점적으로 봤었다.
현직 매니저가 보컬까지 잘할 수는 없었다.
보컬까지 잘했다면 왜 매니저를 하고 있겠는가?
보컬까지 완벽하다면 벌써 데뷔를 했어야 한다.
성공적으로 연예계를 휩쓴 후 은퇴할 나이였다.
그런데 그가 되지도 않는 제안을 황제우에게 한 것이다.
아직도 노래가 시작되지 않자 누군가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존에 받았던 A 클래스 예약 티켓까지 반납하면서, 시작했는데…… 이게 뭐야?”
“그렇지. 그럴 거면 왜 우리 티켓을 뺏어 간 거야?”
“이거 음모 아니야?”
그들의 웅성거림에 제작진들이 당황할 때였다.
도훈의 입이 열렸다.
정확히는 세 명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세 명의 입에서 나오는 허밍.
우우, 우우, 우.
허밍은 맞는데, 셋이 묘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셋은 서로 다른 음역을 쓰면서 화음을 넣고 있었다.
도훈은 저음 파트를.
우시원은 고음 파트를.
그리고 서찬휘는 중간 파트를 허밍으로 부르고 있다.
정확히는 넬라 판타지의 전주 부분이었다.
반주가 있다면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실내를 채우며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할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허밍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인트로였다.
반주 없이 노래하는 가수가 인트로까지 허밍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을까?
이것은 보기 드문 경우였다.
그냥 시도가 아니라,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제작진들도 모두 입을 벌렸다.
그중 고운미는 뭔가를 깨닫고 재빨리 한지혜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김 선배님, 카메라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카메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지혜를 고개를 갸웃하며 고운미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저기 보세요, 한 곳만 잡고 있잖아요.”
“앗.”
한지혜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헤드셋을 끼고 작게 외쳤다.
“카메라 정 위치요.”
그녀의 지시에 카메라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고정된 카메라들의 경우 제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엔지니어가 붙은 카메라가 문제였다.
그들은 지금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앵글을 도훈 쪽으로 돌린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 그들이 내는 화음이 놀라웠다.
이것은 단순한 화음이 아니었다.
도훈이 첼로의 소리를 낸다면.
서찬휘는 피아노로 음의 중심을 맞춘다.
거기에 우시원은 바이올린의 현란한 스킬을 허밍으로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말하면 세 개의 악기밖에 없는 것 같지만, 셋이 합쳐지자 이것은 오케스트라 연주의 웅장함을 주었다.
모두는 숨도 쉬지 않고 도훈을 중심으로 한 유레카 멤버들의 입술을 바라봤다.
그때 입술이 살짝 더 크게 열렸다.
드디어 인트로가 끝나고 본래 곡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저 멀리 떠다니는 구름처럼…….
순간 모두의 입술에서 참았던 숨이 튀어나왔다.
와아!
이것은 연습생들이 뱉어 낸 함성이었다.
아직도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화음이 보컬의 밑에 깔리고 있었다.
지금의 보컬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지금의 무대를 즐길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셋의 입을 하나가 된 것처럼 일정하게 열리고 있었다.
보컬만 들으면 하나인데.
그 뒤에 허밍을 들으면 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을 하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꿈을 꾸곤 하죠…….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환상에서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그들의 노래에 가장 놀란 것은 황제우였다.
황제우는 그중에서도 도훈이 가장 놀라웠다.
지금 유레카 공연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 도훈이라는 것을 황제우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 도훈을 중심으로 한 유레카 멤버는 허밍을 주고받고.
음역에 따라 보컬을 계속 바꾸고 있었다.
그들은 숙련된 오케스트라이자 훌륭한 중창단이었다.
사람의 몸통을 흔히 악기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악기의 소리를 대신하며 이 어려운 곳을 완창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황제우는 처음으로 이도훈이란 사람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도훈이 재벌 3세일 가능성은 낮았다.
지금의 목소리는 인생의 역경을 극복한 자만이 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놀람과는 달리 도훈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다만, 손바닥에서부터 심장까지 이어진 황금색 불빛이 적응되지 않을 뿐이었다.
매니저의 비밀 수첩은 오버클럭된 CPU처럼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 놀라운 무대는 어떻게 된 것일까?
도훈은 지난번 호텔에서의 공연처럼 인벤토리에 있던 모든 알파벳을 썼다.
거기에 한 가지 추가한 것이 원포올이었다.
모두를 위한 하나.
그 하나가 바로 도훈이었다.
자신이 모두를 위한 하나가 되어 지금의 무대를 조율하고 있었다.
물론 우시원과 서찬휘가 기본 능력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무대는 불가능했다.
도훈은 이 스킬을 쓰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황제우의 콧대를 납작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습생들의 마음까지 돌려놨으니 말이다.
솔직히 시청률 10,000%라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 점수를 달성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케이블 채널의 인수가 끝났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의 인수가 끝나자 바로 시청률이 쌓이게 되었다.
도훈과 관계된 시청률 미션의 문구는 예상대로였다.
도훈이 인수한 케이블 채널의 시청률도 포함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어느 누가 케이블 채널을 인수해서 미션을 달성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도훈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을 이어 나가던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환호하는 연습생들을 바라봤다.
아까까지 적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봤던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들까지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둡지 않은 밝은 세상을 봅니다.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 유레카의 멤버들.
그들은 마지막 소절만은 모두의 목소리를 냈다.
갑자기 오케스트라 반주가 멈춘 것 같은 느낌 속에 그들의 목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유레카의 공연이 끝났지만, 누구 하나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무대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연습생 중 누군가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쟁자를 넘어서 선망이 대상이 된 것이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던 한지혜조차 무대가 끝났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빙빙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때 고운미가 한지혜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선배, 리액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
탄성을 터뜨린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짝짝.
그 소리가 시작이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튀어나왔다.
연습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유레카 최고다!”
그들의 시선에 도훈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황제우를 바라봤다.
황제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도훈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도훈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평가를 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도훈에 대한 의문 때문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황제우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