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39화 (139/250)

(139)

황제우의 시선 끝에는 도훈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슬며시 올라가는 황제우의 입꼬리.

그것도 잠시, 황제우는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고 있기에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자애롭게 보이면서 연습생들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그는 재빨리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발라드 위주로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랩 파트를 담당하는 친구들은 손들어 주세요.”

그의 말에 연습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손들어야 하는 거야?”

“그러게, 대충 눈치를 보고 나서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거 손들면 불이익 있는 거 아니야?”

“눈치를 보니까. 아무래도 랩 파트부터 먼저 시킬 것 같아.”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는 말이 있잖아. 그럼 지금 손드는 게 좋지 않아?”

랩 파트를 맡은 연습생들은 슬쩍 모여서 의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황제우가 랩 파트를 담당하는 연습생을 추리려는 이유를 모르니 당연했다.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도훈은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황제우를 바라봤다.

황제우가 레슨 시간표를 바꾼 것은 한여름에 고드름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보기 드문 케이스라는 이야기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레슨에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연습생들의 매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아이돌 오디션 특성상 장면 하나가 무시무시한 팬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중간에 시청자가 웃을 수 있는 코드를 넣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습생들의 매력을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랩 파트를 연습해 왔는데, 보컬로 바꾼다고?

그것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였다.

전생의 기억에서 한 가지가 떠올랐다.

문동훈이 투표 조작으로 구속될 때 별책 부록으로 딸려 들어간 것이 바로 황제우였다.

생각해 보니 지금의 장면이 왠지 익숙했다.

‘그때는 어떻게 됐더라…….’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더듬을 때 서찬휘가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실장 형.”

“그래, 찬휘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저도 손을 들어야 하나요?”

“네가 왜 들어? 너는…….”

도훈은 서찬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서찬휘는 이 팀이 군기 반장, 즉 리더였다. 거기에 랩도 어느 정도 하지만, 서브 보컬에 가까웠다.

거기에 더해 춤은 여기에 있는 연습생 중 탑이었다.

괜찮은 랩 실력 때문에 팀 내에 적당한 래퍼가 없다면 서찬휘가 맡아야 했다.

랩 실력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라면 손을 들어야 했다.

래퍼 중 출중한 보컬을 찾는 것이라 해도 손을 들어야 했다.

서찬휘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찬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우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고민하는 서찬휘의 모습에 도훈이 씩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좋은 의도는 아닌 것 같으니까, 잘 판단해.”

“좋은 의도는 아니라고요?”

“아까 보니 대놓고 유레카를 노리더라고.”

“우리를 노린다고요?”

“나와 친분이 있는 정시건 트레이너를 밀어내고 들어왔잖아. 거기에 유레카랑 친분이 있는 임제호 CP까지 나갔잖아.”

“아, 그것 때문에 지금 연습생들도 술렁이고 있어요. 혹시 프로그램 폐지되는 거 아니냐고요.”

“폐지는 안 될 거야.”

“다행이네…… 그런데 실장님 표정이 왜 그래요?”

서찬휘가 도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시선에 도훈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 표정이 왜?”

“지금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이잖아요.”

“흠.”

도훈은 작게 헛기침하며 주변을 살핀 후 서찬휘를 바라봤다.

서찬휘는 눈치까지 빠른 놈이었다.

우시원이 코알라 같다면 서찬휘는 여우에 가까웠다.

프로그램 폐지는 안 되어도 이대로 나가면 책임자가 구속된다.

전생에 새는 바가지는 현생에서도 새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회귀하고서 얻은 값진 교훈이었다.

비슷한 말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옛 성현의 말씀 중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도훈은 힐끔 뒤쪽을 바라봤다.

자신의 아군을 찾기 위해서였다.

뒤쪽을 바라보니 한지혜 피디가 안타까운 눈으로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입술 모양으로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함정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아들었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그 옆에서 손을 흔드는 이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정재원이였다.

정재원도 필사적으로 손을 흔든다.

적군인 줄 알았는데…….

정재원은 경제인의 밤 이후부터 묘하게 도훈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보면 라인을 바꿔 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도훈은 아직 정재원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속담은 정재원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였다.

그때 황제우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자, 남은 시간은 십 초. 여기 프로필에 다 적혀 있으니 속일 생각 말고 일단 손부터 드세요.”

황제우는 자신의 손에 든 서류철을 가리켰다.

연습생들의 프로필이 들어 있는 두꺼운 서류철이었다.

그가 서류철을 툭툭 치자 눈치를 보던 연습생들이 손을 들었다.

황제우는 옆에 있던 조연출에게 눈짓했다.

신호를 받은 조연출이 재빨리 그들을 끌고 옆으로 간다.

순식간에 무리에서 떨어진 랩을 구사하는 연습생들은 불안한지 고개를 숙인다.

그때 황제우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은 보컬 레슨인 만큼 랩 파트는 제외하겠습니다.”

순간 울려 퍼지는 환호성.

와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컬 레슨에서 랩 파트를 제외하겠다는 것은 오늘 촬영할 분량에서 빠진다는 것이었다.

저건 환호성을 질러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에 제외된 것은 스무 명 정도.

남은 인원이 여든 명 정도였다.

아마도 여든 명 중에서도 카메라에 담기는 연습생은 소수일 것이었다.

황제우의 신호에 재빨리 즉석 무대가 완성되었다.

무대가 완성되자 황제우는 무작위로 하나씩 연습생을 불렀다.

완곡을 불러야 한다는 처음 말과는 달리 황제우는 적당한 부분에서 끊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지정한 곡은 대부분 고음을 소화해야 하는 곡이었다.

그중 몇은 고음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황제우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음에서 음 이탈이 나오기 일쑤였다.

특히 댄스에 특화된 친구들에게는 이번 레슨은 재앙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SW엔터의 연습생들에게는 묘하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곡이 갔다는 점이었다.

누가 봐도 의도적이었다.

SW엔터의 연습생이 무대를 마치자 정재원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렇지, 지금처럼만 해. 딱 지금 그 분위기 머릿속에 기억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칭찬 속에 남은 연습생의 눈빛이 말랑말랑해진다.

자신이 칭찬받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된 것이다.

칭찬을 늘어놓던 황제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A 클래스 예약이라는 점이지.”

순간 연습생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환호성.

와아!

황제우는 탁월한 보컬 실력을 보인 연습생에게는 프리 패스 성격의 A 클래스 예약권을 무작위로 뿌리고 있었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연습생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경쟁 무대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A 클래스 예약권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스타플레이어는 경쟁 무대에 들어서게 되면 철저하게 레벨을 나누어 관리한다.

경쟁 무대는 개인별 능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하기에 조금 더 높은 클래스에 들어가는 것이 다음 무대로 진출하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A 클래스 예약권이라니!

모두가 희망에 찬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다음 연습생의 무대에서는 호통이 튀어나온다.

“흠, 단점은 하나야.”

그의 말에 마이크 앞에 선 연습생이 마른침을 삼킨다.

단점이 하나라고 하니 희망을 본 것이다.

그의 이름은 장선우.

그는 이름 없는 소규모 기획사의 연습생이었다.

그도 눈치가 훤했다.

황제우가 이상하리만큼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에게 호의적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점이 하나밖에 없다고 하자 묘하게 긴장되었다.

그때 황제우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말하는 단점은 장점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그게 바로 유일한 단점이지. 솔직히 이번 무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말을 해 줄 수 없군. ”

순간 장선우는 고개를 떨궜다.

도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장선우는 나중에 강시혁이 결성할 팀에 들어갈 인물이었다.

이번 오디션에서 빼 가야 할 인재란 말이었다.

장선우는 현재는 메인 보컬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장선우가 빛을 발하는 것은 탁월한 예능 감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서찬휘와 비슷한 포지션.

도훈이 보이지 않게 웃고 있을 때 다시 황제우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유레카의 우시원 연습생.”

그의 말에 우시원이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네, 선생님.”

우시원이 고개를 숙이자, 황제우가 말을 이었다.

“음, 그럼 시작해 볼까? 레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대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편안히 불러 보자고. 아, 맞다. 그냥 친구끼리 노래방에 왔다고 생각하고 편안히…… 알았지?”

황제우는 사람 좋은 얼굴로 우시원에게 턱짓했다.

사실 이것은 잘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자상함과 독설 사이를 오가면서 양면성을 보여 주려 하는 것이었다.

*    *    *

카메라는 희망과 좌절이 엇갈리는 체육관 안쪽을 맛깔나게 담아내고 있다.

문동훈은 메인 모니터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 있다.

남들은 자신을 보고 인맥으로 이곳에 왔다고 하지만, 그는 시청률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시청률은 과학이었다.

스크린에 반응하는 시청자들의 모습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와 흡사했다.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를 거치며 웃음 코드, 감동 코드 같은 조건들은 시청자들은 학습한다.

히트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들의 비결을 물어보면 제작진은 똑같은 답변을 한다.

그것은 ‘익숙함 속에 신선함 한 방울이 섞으려 노력했다’라는 이야기였다.

이 판을 제어하려면 먼저 익숙함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노력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신선함을 넣는 것은 천재의 영역이었다.

문동훈은 자신을 천재라 생각했다.

MBS의 대표와 예능국장에게 이번 프로그램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만약 전 총괄인 임제호가 계속 맡았다면 이 프로그램은 그저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이상 이 프로그램, 즉 스타플레이어를 정상으로 올려놓을 자신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뒤돌 돌아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냥개가 필요했다.

그 사냥개 중의 하나가 바로 황제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