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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소개에 연습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들어온 거야?”
“우리하고 경쟁한다고?”
“저분 연세가 내일모레면 서른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이돌이 아니라 중년돌 아니야? 아니면 서른돌.”
도훈을 비웃던 연습생은 서늘한 기운에 말을 멈췄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연습생이 물었다.
“왜 그래?”
“뭔가 한기가 느껴져서.”
“한기는 무슨 한기 이렇게 뜨겁기만 하고…….”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본 것에서는 두 명의 연습생이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뒤쪽에서 살기를 피워 올리는 연습생은 다름 아닌 우시원과 서찬휘였다.
도훈을 욕하던 연습생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미안…… 내가 너희 매니저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 나이가 좀 그래서…….”
“나이가 어때서?”
서찬휘가 턱을 딱 치켜들고는 따지듯 물었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연습생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내가 욕한 건 절대 아니라고…….”
“너, 우리 실장님 뒤끝이 얼마나 센 줄 알아?”
“…….”
연습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뒤끝은 서찬휘가 더 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못한 것은 맞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스물여덟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웬 말인가!
사실 예선에서 펼쳤던 안무는 그도 인정했다.
그 안무에서부터 시작해서 뜨거운 반응이 나온 것은 어쩌면 수학 공식과도 같았다.
그는 수학 공식마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물여덟의 매니저가 이곳에서 버텨 낼 수 있을까?
그들은 요즘 끽해야 세 시간 정도만 자면서 나머지 시간은 말도 안 될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연습생은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죽자 살자 이렇게 덤벼드니 어이가 없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마이크를 든 한리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튀어나왔다.
“거기 연습생 네 명. 지금 뭐 하는 거죠? 자, 집중하세요. 여기 있는 이도훈 실장님은 연습생으로 합류하시는 동시에 여러분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주실 거예요.”
한리나는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고 포근한 눈빛으로 연습생을 바라봤다.
순간 연습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역시 리나 누님이야.”
“그때도 여신, 지금도 여신.”
갑자기 포근해지는 분위기 속에 한리나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여기 경쟁에서 이도훈 실장님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한리나는 마이크를 든 채 모두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포근함은 사라지고 카리스마만이 남아 있었다.
날카로운 한리나의 눈빛에 모두가 움찔했다.
한리나는 연습생들을 눈빛 하나만으로도 들었다 놨다 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녀가 1세대 아이돌 출신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무대 위에서 보여 준 프로 정신과 카리스마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연습생 대부분에게 한리나는 여신이었다.
그 여신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부터 그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 그녀는 연습생들에게는 까마득한 선배.
서른도 안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연습생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연륜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한리나는 재미있다는 듯 모두를 바라보며 마이크를 도훈에게 넘겼다.
도훈이 마이크를 잡자 살짝 눈짓하며 멘트를 치라는 신호를 보내는 한리나.
도훈은 재빨리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안녕하세요, 연습생 여러분 제가 이쪽에 서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결정 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에 계시던 임제호 총괄님의 뒤를 이어받은 문동훈 총괄님의 부탁으로…….”
설명을 이어 가는 도훈의 표정은 온화했다.
하지만 연습생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훈을 형처럼 따르는 서찬휘조차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도훈의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찬휘는 힐끔 우시원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실장님이 카메라 돌아가는 걸 모르고 계시는 거지?”
“아무래도…….”
우시원이 말끝을 흐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서찬휘는 뭔가 생각났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거 편집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잘못하면 악마의 편집 같은 거에 당하는 거 아니야?”
우시원의 눈빛에 몇 배의 걱정이 더해졌다.
서찬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언제 끝나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꼭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듣는 것 같아.”
우시원도 입맛을 다시며 도훈의 멘트를 들었다.
도훈의 멘트는 아직 이어졌다.
“……사실 제가 어릴 적 꿈은 스타를 키워 내는 매니저였습니다. 이렇게 무대에 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카메라 울렁증도 있고 문동훈 총괄님께 부탁을 받았을 때는 제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걱정되기도 하고…….”
도훈의 말은 끝이 나지 않았다.
옆에서 그의 말을 듣던 한리나는 도훈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기소개인데 새로운 제작 총괄인 문동훈의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칭찬 같은 말속에 뼈가 있었다.
한리나는 도훈의 소개에 들어 있는 뼈를 곱씹으며 새로운 제작 총괄인 문동훈과 추가로 들어온 트레이너 황제우를 떠올렸다.
한리나도 도훈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긴 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파이널 방송까지 출연 계약을 한 이상 불협화음 없이 조용히 진행하는 것이 그녀가 맡은 임무였다.
한리나는 도훈이 걱정되었다.
이렇게 척져 봤자, 유레카의 연습생인 서찬휘와 우시원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고 악마의 편집으로 빌런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연습생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도훈 실장 자체가 빌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피디들이 손을 흔든다.
한리나는 자신도 손을 흔들었다.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넨 것이다.
한리나는 피디들이 손을 흔드는 것이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잠시 뒤에 알았다.
그들의 손짓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한리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누군가가 손목을 가리킨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조금 말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20분이나 지났다.
자기소개에 20분이라니 이건 상상도 못 할 시간이었다.
한리나는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아직도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이어 가고 있었다.
저게 대체 어떻게 카메라 울렁증이란 말인가?
이곳에서 비추고 있는 카메라만 해도 마흔 대가 넘었다.
카메라와 조명이 한곳에 집중되고 있는데 20분이 넘게 썰을 푼다고?
아니, 지금은 2분이 지났으니 22분이었다.
한리나는 조심스럽게 도훈에게 다가갔다.
그냥 끊을 수가 없는 것이 도훈의 나이 때문이었다.
지금 연습생들의 평균 나이는 열여덟.
그런데 도훈의 나이는 스물여덟이었다.
사석에서 만나면 오빠라 불러야 할 나이였다.
거기에 더해 그녀는 이지유와 데뷔 동기였다.
가끔 이지유와 통화하면 단골로 나오는 것이 바로 이도훈 실장이었다.
차후에 오라버니 포지션이 될 예정이 분명했다.
말을 끊으려니 목덜미가 뻑적지근했다.
다행히도 도훈이 한리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힐끔 돌아봤다.
도훈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까닥인다.
한리나는 도훈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여러분들의 시간을 너무 뺏었네요. 죄송합니다. 시간 관계상 몇 마디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니까…….”
순간 한리나는 할 말을 이었다.
회의실이나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때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즉, 대중 앞에서 강하다는 말이었다.
그때 도훈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새로운 보컬 트레이너인 황제우였다.
그의 손에는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켜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말에 도훈이 마이크를 내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습생이 모인 자리로 걸어갔다.
순간 황제우는 뻘쭘해졌다.
황제우는 도훈이 제작진 교체에 불만이 있어 이러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마이크를 들었는데도 계속 멘트를 이어 나가면 따끔하게 충고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마이크를 한리나에게 건네고 들어가니 마치 자신이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그는 큐시트를 힐끔 봤다.
“이번 시간은 본래 랩 파트 트레이닝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보컬 트레이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의 말에 연습생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랩 트레이닝이라고 해서 나름대로 프리스타일 랩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명 곡을 연습해 온 연습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랩에 익숙하지 않은 연습생들에게는 랩 트레이닝이 고난이었다.
랩을 흉내 내려면 일단은 자신이 구사할 랩이 모두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하루가 지나면 모든 랩 가사 지워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 중 하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황제우를 바라봤다.
“저 사람은 누군데 레슨 시간표를 바꾼다고 하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스케줄은 일주일 전에 나왔잖아. 아, 난 어떻게 하라고…….”
그들의 웅성거림에 황제우가 설명을 멈췄다.
생각해 봤더니 소개도 안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황제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메인 보컬 트레이너를 맡은 황제우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볼 것은 완성된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분의 잠재력입니다. 테스트 방식은 간단합니다. 한 곡을 완주하시면 됩니다. 혹시 질문 있습니까?”
그의 말에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바로 서찬휘였다.
서찬휘를 본 황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뭐죠?”
“혹시 뽑기 같은 거 안 하나요?”
“뽑기요?”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달려가서 원하는 곡을 뽑잖아요.”
“오늘은 제가 지정하는 곡을 부르게 될 겁니다.”
그때 다른 연습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희는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의 잠재력을 볼 뿐입니다.”
말을 마친 황제우는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묘했다.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매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연습생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본래 랩을 하는 연습생의 경우는 오늘 아무런 준비도 안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보컬 레슨이라니?
랩을 전문적으로 하는 연습생의 경우 대부분 보컬 쪽으로는 약했다.
그런데 지정곡이라니?
만약에 고음 파트가 작렬하는 곡이라도 나오면 지옥이 시작될 것이 뻔했다.
이 무대가 단순한 장기자랑이면 그들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잠재력을 본다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파를 통해 퍼져 나갈 것이 뻔했다.
그 모습은 차후 생방송에서 시청자 투표에 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고 있을 때였다.
황제우가 어딘가를 바라봤다.